바이든 행정부의 에너지 정책과 국제 에너지 지정학의 재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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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바이든 행정부가 든 양날의 검
2. 관성의 끈이 풀렸다
3. 석유 전쟁에서 탄소 전쟁으로
4. 좋았던 옛날은 오지 않는다. 하지만 새로운 내일은 온다

바이든 행정부가 든 양날의 검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미국의 에너지 정책 기조는 큰 폭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기후변화체제로의 복귀를 화두로 해서 일련의 친환경 에너지 정책이 전면으로 부상했다. 2035년까지 발전 부문의 탄소배출을, 2050년까지 미국 전체의 탄소 배출을 없애겠다는 과감한 탄소 중립 정책과 더불어, 화석 에너지 개발 규제와 자동차 연비 기준 복원이 발표되었다. 향후 4년간 2조 달러 규모의 청정에너지 인프라 투자가 이루어지는 반면, 화석 에너지 인프라 건설과 연방 공유지에서의 신규 개발은 보류되었다. 미국에서 발표된 친환경 이니셔티브가 처음은 아니지만, 그 강도와 우선순위에 있어서 바이든 행정부의 정책 기조는 전임 트럼프 행정부와 큰 대비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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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행정부에서부터 본격화되기 시작한 미국 내 셰일 가스와 석유 생산의 증대는 2008년 금융위기로 휘청거리던 미국을 다시금 초강대국으로 만들었다. 에너지 자급으로 더 강력해진 영향력을 가지게 된 미국은 국내 산업의 부흥과 함께 중동과 러시아 등 기존 에너지 생산국들을 압박할 수 있게 되었다. 트럼프 행정부의 적극적 지원 하에서 생산이 지속적으로 증대되어 온 미국 에너지 산업은 코로나 19의 확산으로 인해 일시적으로 둔화되었으나, 생산성이 높은 광구를 중심으로 한 지속적인 생산 여력은 유지되고 있다. 새로운 규제들로 인해 미국의 국내 에너지 및 정유·화학 업계는 상당 부분 위축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바이든 행정부의 기후와 환경에 대한 강조가, 미국 국익의 보호와 경제적 이익 창출의 기조 자체를 폐기하는 것은 아니다. 바이든 행정부는 “Build Back Better”(더 나은 경제 복구)를 강조하며, 전략적 입장을 공유하는 파트너 국가들과의 공조체제를 강화하고 있다. 코로나 상황의 지속에 따른 경기 침체 방지와 입법 과정에서의 이해관계 조율에 있어서도 기존 에너지 부분의 침체를 의도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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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적으로 미국은 유·가스 부분의 경쟁력과 친환경 부문의 경쟁력을 동시에 가지는 양날의 검을 쥐고자 한다. 현재 미국은 유일하게 생산 차원의 조절 능력과 내수 시장을 통한 수요 역량, 그리고 환경 차원에서의 대응 역량을 동시에 축적해 가고 있다. 달러의 발권력과 금융 시장에서의 영향력까지 고려했을 때, 국제 에너지 시장의 주도권은 더 강력해지고 있다.

관성의 끈이 풀렸다

바이든 행정부의 친환경 에너지 정책은 코로나 19 확산으로 인한 전 세계적 에너지 수요 감소와 묘한 시기적인 중첩을 이룬다. 유·가스 가격의 하향 안정세가 지속되는 반면 전기차 및 신재생에너지를 중심으로 한 에너지 전환은 가속화되고 있다. 이는 단순한 풍력과 태양광의 증가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코로나 사태는 거대한 변곡점을 만들었다. 언택트 사회와 근무방식의 변화로 가상 체험과도 같은 탄소 저감 효과를 가져오기도 했고, 디지털 플랫폼의 확대는 새로운 삶의 방식을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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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기간 지속되어 온 시스템은 통상적으로 관성을 지니게 된다. 코로나 사태는 대량생산과 대량소비 방식의 기존 에너지 체제의 레거시 비용(legacy cost)을 낮춤으로써,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의 이행을 촉진시켰다. 전기차, 수소 등과 같이 멀리 있다고 생각한 에너지원들과 새로운 에너지 시스템에 대한 수용성은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 탄소 중립이나 그린 딜과 같은 정책 기조들은 이러한 변화의 움직임에 올라타며 그 파장을 증폭시켰다. 과거의 에너지 구조를 붙잡고 있던 관성의 끈이 풀리면서, 그동안 믿어 왔던 많은 관행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되었다.

석유 전쟁에서 탄소 전쟁으로

에너지 지정학은 전통적으로 석유 전쟁으로 일컬어지는 화석연료 수급이 중심이 되어 왔다. 중동 산유국, 러시아 등 주요 공급국과의 연계는 국제 정치·경제의 핵심축을 형성해 왔다. 그러나 지난 10여 년간 미국의 에너지 증산에 따라 이러한 에너지 지정학의 변동이 생겨났다. 미국의 중동산 석유 의존도는 빠르게 감소했고, 과거의 석유 확보를 위한 사활적 개입에서 보다 선택적인 전략으로 선회하기 시작했다. 미국이 취할 수 있는 선택폭은 더욱 증가한 반면, 기존 생산국의 영향력은 감소했다. 이란, 러시아, 베네수엘라 등 주요 생산국에 대한 제재는 국제 에너지 시장에서의 수급을 제한시켰지만, 미국을 위시한 신규 공급원으로 인해 충분한 물량을 확보해 왔다. 시장은 구매자 우위 구조로 돌아서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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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행정부 하에서 대 이란 제재 완화를 비롯해 시장으로의 새로운 공급이 이루어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그러나 기존 핵 협상(JCPOA)으로의 복귀와 제재 완화는 미국 내의 더 많은 논의와 이란 대선, 그리고 국제 에너지 시장이라는 다차원적인 변수를 모두 반영한다. 트럼프 행정부 시기와 같은 미국의 OPEC+에 대한 직접적인 개입의 수준은 낮아질 전망이고,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 역시 새로운 관계 설정이 필요하다.

그러나 에너지 지정학은 이제 탄소 전쟁이라는 새로운 단계로 이행해 가고 있다. 탄소 및 친환경 경쟁력을 가진 주체들이 새로운 통상 규범 및 표준 선정을 주도하고자 한다. 탈탄소화는 결코 느슨해진 국제 통상환경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실제로 트럼프 행정부 시기 동안 미국의 친환경 부문이 상대적으로 가려져 있었을 뿐, 신재생에너지 및 에너지 신기술과 관련한 주 차원과 기업 차원에서의 경쟁력, 그리고 민간 R&D 역량은 글로벌 경쟁을 선도할 역량을 갖추고 있다. 유럽 역시 그린 딜과 탄소 중립 이니셔티브를 중심으로 저탄소 경제의 주도권 및 기술 표준을 선점하려는 노력을 진행하고 있다. 중국과 일본, 그리고 한국 역시 그린 딜과 탄소 중립 정책을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다. 희토류를 비롯한 소재 및 원료를 놓고도 중국과 주요 산업국들이 발 빠른 경쟁을 벌이고 있다.

좋았던 옛날은 오지 않는다. 하지만 새로운 내일은 온다.

석유는 오랫동안 에너지 산업의 핵심을 차지해 왔다. 하지만 바이든 행정부의 정책 기조도, 그리고 기존 지정학의 축도 변화하고 있다. 주요 산업국을 중심으로 한 탈 탄소, 탈 화석연료의 추세가 본격화되고 있다. 특히 수송 분야의 석유 수요는 크게 위축될 것으로 보인다. 탄소 제로 정책은 기존 에너지 기업들에게 부담이 아닐 수 없다. 탄소세, 배출권 거래제, 플라스틱세는 더 이상 미래의 규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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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석유와 가스 부문이 현재, 그리고 가까운 미래에 차지하는 비중이 갑자기 줄어들지는 않는다. 에너지 안보와 산업 활동에 있어서 석유와 가스는 여전히 핵심적인 근간을 이룬다. 수송 분야 외에도 정유·화학이 담당하는 분야는 다양하다. 코로나 사태가 진정되고 세계 경제가 본격적인 회복 국면에 들어가면 석유, 가스의 수요는 단기적으로 상승할 전망이다. 미국의 셰일 생산이 위축되고, 코로나 시기 동안 정지된 상류 부문의 투자는 중장기적으로 석유 및 석유제품 가격의 상승을 가져올 것이다.

노병은 죽지 않는다. 하지만 좋았던 옛날(good old days)이 다시 오기는 힘들다. 석유 화학 산업이 상, 하류 부문 모두 과거와 같이 최전방 공격수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기는 어려워졌다. 덜 빛나는 자리에서 더 많은 규제에 대응하며 살아남아야 한다. 거칠어진 생존 환경하에서 시장의 구조조정도 필연적이다. 단기적인 시장 변동성은 여전히 위협적이고, 작은 뒤처짐 하나가 시장에서 큰 손실로 이어질 수도 있다. 지속적인 혁신, 그리고 유연하고 신속한 복원력의 두 개의 키워드는 생존의 축이 된다. 중후장대의 기반산업인 정유·화학이 신속성과 유연성을 갖는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기업 차원에서 이러한 변화를 감지하고 새로운 접점을 만들어나갈 선봉 조직을 갖추는 것은 필수적이다. 루이스 캐럴이 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속편인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서 붉은 여왕은 앨리스의 손을 잡고 뛰면서 말한다. “제자리에 있고 싶으면 있는 힘껏 뛰어야 해. 어딘가 다른 곳으로 가고 싶다면 적어도 두 배는 더 빨리 달려야 하지!” “붉은 여왕의 딜레마(Red Queen’s Dilemma)”로도 불리는 이 표현이 아마도 지금 상황을 가장 잘 표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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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상황은 언젠가 회복이 되겠지만, 우리는 원점으로 돌아가지는 않는다. 깊은 변화(Deep change)는 이미 시작되었다. 이제까지 들어보지 못한 새로운 분야와 새로운 플레이어가 속속 등장하고, 그동안 믿어 왔던 관행의 끈은 느슨해졌다. 탄소는 석유를 대체하는 새로운 자산이자 비용으로 올라왔고, 최고 탄소 책임자(Chief Carbon Officer)의 역할은 더욱 커진다. 장기적인 변화에 주목하고, 더 효율적인 포트폴리오 구성과 신속한 복원력을 키워야 한다. 새로운 큰 게임이 시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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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콘텐츠는 고려대학교 국제학부 장 모네 석좌교수 이재승 교수로부터 기고를 받아 재구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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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승 - 고려대학교 국제학부 장 모네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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