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 한용운의 독립정신을 서체에 담다

GS칼텍스, 독립운동가 손글씨 서체를 만들다

GS칼텍스는 올해 삼일절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이해 ‘독립서체’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과거 독립운동을 지원했던 GS그룹 이념에 기반하여 파편적인 기록으로 남아있는 일부 독립운동가분들의 글씨체를 모아 연구, 전문 폰트 개발업체와 협업, 당시의 글씨체를 현대에 맞게 복원하여 디지털 폰트로 제작하였습니다. 이는 독립운동가의 필체를 디지털로 복원하여 독립운동가의 독립정신과 독립운동의 위대함을 계승하고자 함입니다.

독립서체 1차 캠페인을 통해 삼일절 100주년을 기념하여, 독립운동가 한용운 서체와 윤봉길 서체를 개발/무료 배포하였고, 독립서체 2차 캠페인에서는 백범 김구 서체와 윤동주 서체(별 헤는 밤 & 서시 두 가지 버전)를 개발하여 무료 배포 중에 있습니다.

독립운동가분들의 정신과 마음이 담긴 글씨체를 다운받아 직접 사용해보며, 독립운동가분들의 나라를 위한 희생정신과 아름다운 마음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보시길 바랍니다.


독립운동가 한용운(1879-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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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 속에서도 나라를 사랑했던
감옥 속에서도 독립을 설파했던 만해 한용운

한용운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과 함께 『조선불교유신론』, 『님의침묵』,『후회』 등을 저술한 승려이자 시인, 독립운동가이다.

님의 침묵’에서는 ‘님은 갔다’고 말하며 객관적인 현실을 인정합니다. 하지만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다’고 덧붙이며 주관적인 의지로 ‘님은 자기와 함께 있음’을 강조하는데요. 이는 조국이 일본의 식민지 치하에 있지만, 자신은 여전히 조선을 독립된 조국으로 생각하고 있음을 드러냈다고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시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한용운은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이자 민족 독립을 위해 끝까지 변절하지 않고 민족의 자존심을 지킨 사람입니다.

1910년, 한일 강제 병합으로 나라를 빼앗기자, 한용운은 본격적으로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는데요. 그는 중국과 만주, 시베리아 등을 돌아다니며 흩어져 있는 독립군 부대를 방문해 격려했습니다. 또 1919년 3.1운동 때는 독립선언서의 행동 강령인 ‘공약 3장’을 썼으며, 민족 대표의 한 사람으로 참여하기도 했죠.

한용운은 만세 시위를 펼치다가 일본 경찰에게 현장에서 붙잡히게 됩니다. 결국 그는 감옥살이를 피해갈 수 없었는데요. 감옥에서도 당당하고 의연한 모습을 잃지 않았다고 합니다. 특히 그는 옥중에서 조선독립을 갈망하며 ‘조선 독립의 서’를 집필하기도 했는데요. 인간의 권리, 자유와 평등에 대한 길을 가로막는 어떠한 형태의 무력, 군사력, 압제 정치는 결국 스스로의 덫에 걸려 스스로 패망하게 되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나 집필 중 일제에 발각되어 원본을 형사에게 제출할 수밖에 없었는데, 한용운은 ‘조선 독립의 서’를 일본인 서울지방법원 검사에게 제출하기 이전에 일부를 휴지에 작은 글씨로 옮겨 적었습니다. 이를 접고 접어 종이노끈을 만들었고, 형무소로부터 차출하는 의복 갈피에 삽입, 간수의 감시를 피해 형무소 밖으로 유출한 것이 상해까지 전달 되었습니다. 이런 지난한 과정을 거쳐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기관지인 독립신문 1919년 11월 4일의 기사 부록에 ‘조선독립에 대한 감상의 개요’라는 제목으로 발표, 보도되었습니다.

출옥 후에도 한용운은 신간회를 결성해 치열하리만큼 일제의 침략에 맞섰습니다. 또 합병징병과 일제의 황민화 정책에 반대하며 군국주의를 날카롭게 비판하면서 스스로 고난의 칼날 위로 올라가 맨몸으로 불의와 싸웠고요.

이처럼 만해 한용운은 서리 밭 같던 시대에 대한독립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바쳤지만 안타깝게도 광복 1년 전인 1944년, 끝내 조국의 광복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출처 : 만해기념관>

 

독립운동가 한용운 시로 본 독립서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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