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바구니 원유 의존의 위험함 그리고 다변화의 중요함

원유 도입선 다변화를 지원하는 정부 정책이 있습니다. 정유사들이 도입하는 원유의 산지가 특정 지역에 집중하는 것을 막기 위한 제도입니다. 특정 산지 이외의 지역에서 원유를 들여오면 정부가 자금을 지원합니다. 특정 산지는 중동을 말합니다. 비중동산 원유를 도입하면 자금을 지원하는 것입니다. 정부는 지난 1982년 원유 도입선 다변화 지원 제도를 처음 도입한 이후 현재까지 중단없이 운영 중입니다. 지난해에도 500억 원이 넘는 세금이 이 제도 운영에 투입됐습니다. 이 제도는 올해 말 일몰 되는데 정부가 세금을 투입하면서까지 원유 도입선 다변화를 지원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요?

매력적인 중동 원유 비중 낮추라는 이유는

우리나라 정유사들이 도입하는 원유는 80% 이상이 중동산입니다. 사우디를 비롯해 세계 최대 산유국이 밀집한 중동 지역은 우리나라가 가장 경제적이고 안정적으로 원유를 수입할 수 있는 중요한 창구입니다. 중동 산유국들은 원유 수출이 국가 재정의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합니다. 원유 수출로 먹고살기 때문에 우리나라가 일 년 내내 소비할 수 있는 물량을 안정적으로 공급해줄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미주나 아프리카, 유럽 등에 비해 지리적으로 가깝고 브렌트나 WTI(서부텍사스중질유) 등의 경쟁 유종보다 가격이나 수송 경쟁력이 있다는 점도 놓칠 수 없는 장점입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중국, 일본 등 우리 주변국들 역시 중동산 원유 의존도가 높습니다. 그런데 정부는 중동 이외의 지역에서 도입하는 원유를 늘리라며 정책 자금까지 지원하고 있습니다.

 

분쟁 화약고 중동, 언제든 원유 무기화할 수 있어

중동만큼 안정적이고 경쟁력 있는 가격으로 원유를 공급할 수 있는 지역을 찾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중동은 종교, 정치 등 다양한 이유로 분쟁이 끊이지 않는 치명적인 한계를 안고 있습니다. 지정학적 이유로 언제든지 유전이 잠기거나 수출이 중단되는 극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중동입니다. 1970년대에 발생한 제 1, 2차 오일쇼크의 발원지가 바로 중동입니다.

중동 산유국들이 원유를 전략 무기화하면서 생산과 수출을 제한하자 전 세계 원유 가격이 폭등하고 수급 차질이 발생한 사건인데 당시 우리나라도 석유 가격 급등과 배급 제한 등 심각한 위기를 겪었던 역사가 있습니다. 정부가 원유 도입선 다변화 지원 제도를 처음 도입 운영한 것이 1982년 3월의 일이니 오일쇼크가 이 제도의 탄생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셈입니다.

언제든 원유를 무기화 할 수 있어 위험한 중동

 

중동 보다 먼 지역 수송비 차액 지원

원유 도입선 다변화 지원 제도의 핵심은 중동 이외 지역에서 도입되는 원유의 추가 운송비를 지원하는데 있습니다. 중동산 원유를 도입할 때의 수송비를 기준으로 미주나 아프리카, 유럽 등 중동 보다 먼 지역에서 들여오는 원유의 추가 수송비 차액을 지원합니다. 이 제도가 처음 도입된 1982년 당시에는 추가 운송비는 물론이고 추가 금융비와 장려금까지도 지원했습니다. 국가 안보를 위해 안정적인 원유 확보가 얼마나 중요했는가에 대한 정부의 절박함을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그 사이 도입선 다변화 지원 제도는 현실에 맞게 정비되면서 현재는 중동 이외의 지역에서 도입되는 원유의 수송비 차액만 지원하고 있습니다. 제도 도입 당시 현물시장의 스팟 거래 원유도 지원 대상에 포함됐지만 이제는 장기 계약 물량으로 한정하고 있습니다. 중동 이외의 지역에서 1년 이상 장기 계약 형태로 연간 200만 배럴 이상의 원유를 도입해야 도입선 다변화 자금을 지원받게 됩니다.

지역별 원유 수입량

 

비중동산 원유 도입 비중 늘어나

지난 해 정부는 원유 도입선 다변화 자금으로 총 562억원을 집행했습니다. 2016년에 471억원이 집행된 것과 비교하면 19.3%가 늘어난 금액입니다. 중동산 원유 비중을 낮추겠다는 제도 운영 취지에 맞게 지난 해 비중동산 원유 도입은 증가했습니다. 2016년에 도입된 중동산 원유는 9억2620만 배럴을 기록했는데 지난해에는 9억1344만배럴에 그쳤습니다. 전체 도입 원유에서 중동산 원유가 차지하는 비중도 감소했습니다. 2016년 기준 85.9%이던 것이 지난 해에는 81.7%까지 떨어졌습니다. 중동산 원유가 우리나라 석유 수급에 여전히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비중동산 원유 도입선을 발굴하고 도입하려는 다양한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는 점은 확인된 셈입니다. 특히 전 세계 셰일원유 개발을 주도하며 원유 수출국으로 변신중인 미국이 중요한 도입선으로 떠오르면서 이곳에서 수입되는 원유가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원유도입선 다변화 지원제도 변쳔

 

미국산 셰일오일도 다변화 자금 지원받아

셰일원유 개발 붐에 힘입어 미국이 금수 조치를 해제하면서 미국산 원유 도입이 크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지난 해 우리나라는 총 1343만 배럴의 미국 원유를 도입했습니다. 2016년 도입된 245만 배럴과 비교하면 448.2%가 늘어난 것입니다. 올해 들어서는 2월까지 480만 배럴의 미국산 원유가 도입됐습니다. 지난 해 수입량의 35.7%에 해당되는 물량이 2개월 만에 수입된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미국산 원유는 정부의 원유 도입선 다변화 자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원유 도입선 다변화 자금 지원 대상인 영국산 원유도 2016년 대비 83.5%가 늘어난 3411만 배럴이 지난해 수입됐습니다. 일각에서는 정부 세금이 대기업 정유사의 원유 도입에 지원된다는 점을 문제로 지적합니다.

원유도입선다변화 지원실적 및 중동의존도

하지만 국가 에너지 안보를 명분으로 비싼 수송비를 감수하면서 비중동산 원유 도입을 늘린다면 그렇지 않은 정유사와의 생산 원가 경쟁력에서 밀리는 것을 감수해야 합니다. 추가되는 수송비는 소비자 가격에 반영될게 분명합니다. 한 바구니에 담겨 있는 원유만 의존하지 않는 에너지 안보 포트폴리오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중동산 원유 비중을 낮추기 위해 추가 수송비를 지원하는 방식은 특혜가 아닌 에너지 안보를 강화하기 위한 유인 수단으로 해석되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요?


industrial writer GS칼텍스 에너지, 에너지칼럼
지앤이타임즈 김신 발행인

전북대학교에서 독어독문학을 전공했다. 하지만 전공과는 상관없는 에너지 분야 전문 언론에서 20년 넘는 세월을 몸담고 있는 에너지 분야 전문 기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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