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발유 해외직구, 과연 가능한가?

올해 초 휘발유를 해외에서 구매대행 해준다는 직구사이트가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싱거운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소비자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저유가 상황에도 불구하고 기름값을 줄이려는 소비자들의 관심이 그만큼 높았는데 폭발위험성이 상존하고 높은 유류세가 부과되는 석유제품의 해외 직접구매(이하 직구)는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자칫 범법자가 될 수도 있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석유 제품 취급 절차

위험물로 분류되는 석유제품은 취급과정에서 까다로운 절차가 필요하다. 석유를 제조, 유통하려면 법에서 정한 안전기준 등을 충족시켜야 한다. 석유판매사업장에서는 위험물 안전관리자도 의무적으로 선임해야 한다. 교통에너지환경세 등 다양한 제세공과금이 부과되면서 세무당국의 날카로운 감시 대상에도 포함된다. 한 해 석유제품에서 걷히는 교통에너지환경세만 14조원에 달하는 엄청난 규모이니 석유 유통과정에서 다양한 세금관리 수단이 마련되어 있는 것이다.

석유수출입업체 등록, 배보다 배꼽이 더 클 수도

석유제품을 제조하거나 저장, 유통시키려면 법에서 정한 일정 기준 즉 자격을 갖춰야 한다. 휘발유 해외직구 대행 업체라도 석유제품을 외국에서 수입하는 것이니 먼저 석유수출입업에 등록해야 한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운용하는 석유사업법에 따르면 석유수출입업에 등록하기 위해서는 최소 5천 킬로리터의 석유를 저장할 수 있는 저장탱크가 필요하다.

02 4 2016년 기름값 에너지, 에너지칼럼

수입물량이 소량일 경우에는 수출입업에 등록하지 않아도 되는 예외조항이 있다. 그렇다고 한 번 주유할 만큼씩 소량의 휘발유를 매번 수입하고 품질검사 등 까다로운 절차를 감수할 수도 없는 일이다. 휘발유 해외직구를 하겠다고 석유수출입업에 등록하려면 저장시설을 갖춰야 하니 배보다 배꼽이 더 클 수 있는 것이다.

직구 휘발유가 품질기준에 어긋나면?

석유제품은 자동차나 보일러, 각종 기계류의 동력원으로 사용된다. 기계 설비규격이 표준화되어 있는 만큼 에너지로 사용되는 석유제품도 표준화된 규격이 필요하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운용하는 석유사업법에서는 휘발유, 경유, 등유 등 각종 석유제품의 표준 품질기준이 설정되어 있다.

수입과정에서도 엄격한 석유품질 관리가 이뤄진다. 각 나라마다 석유품질 기준이 달라 우리나라에서 유통되기 이전에 법적 기준에 적합한지 여부를 검사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석유는 수입과정에서 법정 검사기관인 한국석유관리원으로부터 품질기준에 적합한지 여부에 대한 검사를 받는다.

휘발유 해외직구를 의뢰했다면 수입 대행업체가, 소비자가 수입한다면 직접 품질검사를 받아야 한다. 직구한 석유가 품질기준에 어긋난다면 통관이 되지 않는다. 법적 기준에 맞추기 위해서 브랜딩 등 품질보정 과정을 거쳐야 한다. 건강이나 안전, 보건 등에만 위해하지 않으면 해외에서 손쉽게 직구할 수 있는 일반 공산품과 달리 복잡하고 까다로운 검사와 보정절차가 요구되는 셈이다.

세금 탈루하는 가짜 석유

석유사업법에서는 ‘가짜석유’를 석유와 다른 석유 또는 석유화학제품 등을 혼합해 연료로 사용할 목적으로 제조된 제품으로 규정하고 있다. 가짜석유를 제조하거나 유통시키는 불법업자들이 번거로운 혼합 과정을 거치는 이유는 간단하다. 석유에 부과되는 유류세를 피하기 위해서다.

석유제품 중 휘발유에 가장 높은 유류세금이 부과된다. 석유화학제품 중에는 휘발유와 유사한 용도로 사용되지만 석유제품에는 해당되지 않아 유류세 부과대상이 아닌 용제가 있다.

유류세를 탈루하는 가짜 석유

휘발유에 용제를 섞어 팔면 혼합비율만큼의 유류세금을 탈루할 수 있어 불법수익을 얻을 수 있다. 해외직구한 휘발유가 국내 석유품질기준에 맞지 않으면 유통될 수 없다.

품질기준에 맞추겠다고 용제 같은 석유화학제품을 혼합하게 되면 가짜석유 제조 행위에 해당된다. 석유사업법에서는 가짜석유 제조 사범은 물론 단순히 저장했거나 소비한 경우도 처벌받을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가짜석유 사범이 되는 것은 생각처럼 어렵지 않은 셈이다.

가짜 석유 불법 밀수하다 철컹철컹

가짜 석유 불법 밀수

해외에서 직구한 석유제품이라도 각종 유류세금은 반드시 부담해야 한다. 석유제품으로 수입했다면 통관이나 품질검사 등의 과정에서 원칙적으로 관세, 교통세, 주행세 등을 회피할 방법이 없다.

그렇다고 세금을 피할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수입과정에서 휘발유를 다른 제품으로 위장 통관시키면 유류세 부과는 피할 수 있다. 실제로는 ‘휘발유’인데 수입면장 등에서 유류세가 부과되지 않는 ‘용제’ 등으로 허위 신고할 수 있다. 물론 세관에 걸리지 않아야 된다. 통관 과정에서 석유세금 부과를 회피하기 위해 석유가 아닌 다른 상품으로 수입신고하다 적발되면 관세법에 근거해 밀수(密輸) 범죄자가 된다.

또한 석유에 부과되는 세금을 납부하지 않고 사용하면 조세법처벌법에 근거해 고발조치와 탈루세액 추징을 당하게 된다. 휘발유 해외직구를 위해 잘못된 꾀를 썼다가는 중범죄자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폭발 위험성 높은 휘발유, 함부로 다루면

석유제품은 위험물안전관리법에 근거해 위험물 제4류 ‘인화성 액체’에 해당된다. 액화상태의 위험물로 인화가능성이 있는 물질이라는 뜻이다. 실제로도 석유는 휘발성이 높아 폭발 위험성이 상존한다. 화기(火氣)나 직사광선에 노출되면 특히 위험하다.

폭발 위험성 높은 휘발유 전용용기에 취급해야한다

액체상태인 석유제품은 보관 방식에도 특별한 관심이 필요하다. 플라스틱 재질 용기를 사용하면 휘발유가 용기의 벽을 녹여 이물질을 발생시키거나 구멍이 뚫려 노출될 수 있어 금속으로 만든 전용용기를 사용해야 한다.

또한 위험물안전관리법에 규정된 규격 등을 갖춰 허가를 받은 장소에 지정돼야 한다. 화가 나면 언제든 폭발할 수 있는 석유제품을 함부로 다루다가는 위험물안전관리법 위반으로 처벌을 받을 수 있다.

돈 버리고 몸 버릴 수도

굳이 법을 따지지 않더라도 휘발유 해외직구로 연료 비용을 아끼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휘발유 가격 구성비에서 직구로 절약할 수 있는 비중이 극히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정부의 지원을 받아 석유 가격 등을 워치독(Watchdog)하는 시민단체인 ‘에너지석유시장감시단’이라는 기구가 있다. 감시단에서는 주기적으로 석유가격을 모니터링해서 발표하는데 5월 넷째 주 기준 전국 평균 휘발유 가격은 1리터당 1404원을 기록했다. 그런데 이중 교육세를 포함한 각종 제세공과금이 약 64퍼센트를 차지했고 내수 석유가격 지표가 되는 국제휘발유 가격이 약 28퍼센트를 기록했다.

소비자들이 구매하는 휘발유 1리터에는 빼도 박도 못하는 원가와 세금비중이 92.3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는데 이는 휘발유 해외직구도 피해 갈 수 없는 부분이다. 반면 정유사 유통비용은 소비자 가격 중 2.4퍼센트에 해당되는 33.7원, 주유소 유통비용과 마진은 5.3퍼센트 수준인 74.34원에 그쳤다.

정유사와 주유소가 휘발유 유통 비용을 모두 반납하고 주유소가 취하는 마진을 포기하더라도 해외직구로 아낄 수 있는 금액은 휘발유 1리터당 108.04원에 불과한 것이다.

하지만 현실도 그럴까? 오히려 해외직구 물류비와 수수료도 부담해야 한다. 그래서 휘발유값은 더 높아질 것이고 배달된 휘발유를 소비자가 직접 차량에 주유해야 하는 번거로움까지 감수해야 하니 돈 버리고 몸 버리는 꼴이 될 수 있다. 석유제품은 누가 제조하는지 또 유통경로가 어떻게 되는지 등에 따라 가격을 낮출 수 있는 일반 공산품과 크게 다르다.

휘발유 해외직구가 해프닝으로 막을 내린 결정적인 이유가 바로 이런 것들 때문이다.


industrial writer 2016년 기름값 에너지, 에너지칼럼
지앤이타임즈 김신 발행인

전북대학교에서 독어독문학을 전공했다. 하지만 전공과는 상관없는 에너지 분야 전문 언론에서 20년 넘는 세월을 몸담고 있는 에너지 분야 전문 기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