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텔 OPEC에 힘보태는 비 OPEC, 감산 줄여 증산했지만…

‘카르텔(cartel)’은 담합 공동체를 뜻한다. 특정 업종이나 산업에 속한 기업, 국가들이 경쟁에 따른 손실을 방지하기 위해 결성한 담합 공동체가 카르텔이다. 대표적인 카르텔이 석유수출국기구로 불리는 OPEC이다. OPEC은 원유 생산량을 조절하며 자신들이 추구하는 국제 유가 수준을 지탱하려 한다. 국제 원유 종류와 산지가 다른데도 원유 가격이 동시에 오를 수 있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수요와 공급의 균형점에서 가격이 결정되는 것이 시장 작동 기본 원리이다. 그런데 생산・공급자가 생산량을 합의해 결정하고 시장 가격을 통제한다는 점에서 담합 공동체인 카르텔은 반시장적이고 불공정한 조직체인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국제 사회는 OPEC에 옐로우카드나 레드카드를 내밀지 못하고 있다. 그들이 가진 막강한 원유 생산・수출 지배력 때문이다. 그런 OPEC이 최근 총회를 열어 생산량을 늘리는 데 합의했다. OPEC 공급 물량이 늘어나면 유가가 떨어지게 될 텐데도 증산을 결정한 배경이 궁금하다.

감산 목표 이행이 곧 증산

OPEC은 지난 6월 22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총회를 열고 증산에 합의했다. 다만 구체적인 증산 물량은 정하지 않았다. OPEC과 비OPEC 산유국이 지난 2016년 11월 합의한 감산 이행률을 100%에 맞추겠다는 것이 이번 총회의 핵심 내용이다. (이하 OPEC과 비OPEC 산유국을 묶어 ‘OPEC+’로 칭한다)
유가 부양을 목표로 OPEC+는 지난 2016년 11월, 감산에 합의하고 하루 173만 배럴 규모의 원유 생산량을 줄이기로 뜻을 모았는데 실제로는 이보다 더 많은 물량을 감산 중이다. OPEC+는 목표 대비 147%에 해당하는 물량을 줄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는데 당초 약속한 감산량을 지키자는 것이 이번 총회 의결 내용이다. 풀어 설명하면 유가가 폭락하자 산유국들은 원유를 100 만큼 덜 생산해 가격을 끌어올려 보자고 약속하고 실행에 돌입했는데 실제로는 이보다 많은 양인 147이 줄어들며 유가가 고공 행진 양상을 보이자 이번 총회에서 당초의 감산 목표까지는 생산량을 맞추자고 합의한 것이다. ‘감산(減産)’ 목표를 지키는 것만으로도 시장에 공급되는 원유 물량이 늘어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으니 ‘증산(增産)’으로 표현되고 있다.

OPEC+가 전향적으로 증산에 나선 배경 중 하나는 세계 최대 석유 소비국인 미국, 중국, 인도의 요청 때문으로 알려지고 있다. 국제유가가 배럴당 70달러를 넘었고 추가 상승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글로벌 경제에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우려를 전달한 것인데 OPEC은 이 요청을 수용하고 있다. 증산을 통해 시장점유율을 늘릴 수 있다고 판단한 사우디와 러시아 등 OPEC+ 일부 산유국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것도 OPEC이 증산에 나선 배경으로 풀이되고 있다.

OPEC, 비 OPEC 원유 생산량, 감산량, 감산이행률

원유 증산 효과 상쇄할 불안 요소 산재

OPEC이 증산에 합의했지만 실제로 얼마만큼의 원유가 시장에 더 풀릴지에 대한 해석은 분분하다. 물량 기준으로 얼마를 확대 생산하겠다고 합의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OPEC+는 2016년 11월 합의한 감산 목표보다도 덜 생산되는 것을 해소하겠다고 밝혔을 뿐 각 산유국이 생산량을 얼마씩 늘릴지에 대한 명시적인 결정도 하지 않았다. 그 결과 OPEC+가 합의한 증산 효과로 늘어나는 원유 생산량은 적게는 하루 20만 배럴에서 많게는 110만 배럴까지 유동적으로 해석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블룸버그(Bloomberg)는 올해 3분기와 4분기 두바이유 현물 가격을 배럴당 평균 74.0달러와 72.7달러로 전망했는데 그 배경이 흥미롭다. OPEC이 원유 생산량을 늘리겠다고 선언했는데도 불구하고 블룸버그는 올해 1분기 두바이유 평균 가격인 70.8달러, 2분기의 73.5달러와 대비해 소폭 오르거나 미미한 폭의 인하를 예측한 것이다. 오히려 원유 수급에 악재로 작용할 요인들이 더 부각되고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미국발 경제 제재 이행을 앞둔 이란, 베네수엘라의 원유 생산과 수출에 차질이 본격화되면 OPEC 증산 효과를 상쇄하고 수급 불안까지 야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생산량 늘렸지만, 유가 상승 가능성도 배제 못 해

이번 OPEC 증산 결정에 대한 주요 기관들의 평가는 호의적이지 않다. 글로벌 신용평가 기관인 S&P Global 관계자는 ‘OPEC과 비OPEC의 증산 규모는 하루 약 70~75만 배럴에 달할 것으로 예상돼 현재의 수요 증가세를 충족하기에는 충분하지만 4분기 이후 이란과 베네수엘라 공급 차질분을 충당하기에는 충분하지 않은 규모’라며 ‘결국 유가는 상승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BNP파리바(BNP Paribas) 관계자는 ‘산유국 증산은 즉각적으로 시장에서 흡수될 것으로 수급 상황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지는 않을 것이지만 베네수엘라와 리비아 공급 차질 위험이 존재하며 이란 제재로 원유 수출이 감소하는 11월부터 공급 차질 논란이 시작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골드만삭스는 세계 석유 재고 감소세가 지속되고 공급 차질 위험도 여전하다고 분석하고 OPEC 총회 결과 증산이 합의됐지만, 기존 유가 전망치를 그대로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요약하자면 OPEC의 이번 증산은 지난 2016년 11월의 감산 결정 물량 중 일부를 회복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고 이란에 대한 미국의 경제 제재가 실행되는 오는 11월 이후의 원유 공급 감소 충격을 극복하기에도 부족하다는 분석들로 세계 원유 수급 및 가격 변동성은 오히려 커질 공산도 배제할 수 없다.

OPEC 증산 결정에 대한 주요 기관의 평가

 

원유 생산량 조절에 비 OPEC까지 합세

OPEC의 이번 증산 결정에도 불구하고 유가가 상승세를 보이면서 OPEC의 시장 지배력을 의심하는 분석이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OPEC이 생산량을 줄이고 늘리는 것보다 이란에 대한 경제 제재 등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행동 하나하나에 국제 원유 투자자들이 더 주목하면서 유가를 좌우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란, 베네수엘라에 대한 미국의 경제 제재 여파로 발생하는 수급 공백을 메울 수 있는 열쇠는 결국 OPEC이 쥐고 있다는 점에서 세계 원유 시장 지배력은 여전히 OPEC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OPEC이 총회에서 증산을 결정한 이후에도 유가 오름세가 지속되자 세계 초강대국인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사우디 살만 국왕에게 직접 전화해 석유 증산을 요청한 대목에서도 카르텔 OPEC의 지위는 확인된다.

이제는 러시아 등 비OPEC 산유국까지 OPEC에 힘을 보태고 있다. 지난 2016년 11월의 OPEC 감산에 러시아를 비롯한 비OPEC 산유국이 참여했고 증산에 합의한 이번 6월 총회 역시 비 OPEC 산유국까지 망라해 생산량이 결정되고 있다. 석유 수출국 기구인 OPEC의 결정을 비 OPEC 산유국이 지지하고 공동 참여하는 것이 익숙해지면서 이제는 ‘OPEC+(OPEC 플러스)’로 불릴 정도로 석유 카르텔에 참여하는 산유국의 수가 늘어나고 힘도 비례해 커지고 있다. 하지만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원유 시장도 OPEC의 뜻 대로만 움직인 것은 아니었고 앞으로도 그럴 개연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12월 총회가 향후 유가 수준 결정

원유 생산량이 줄면 유가가 오르고, 공급량이 늘어나면 원유 가격이 떨어지는 것이 일반적인 시장 원칙이다. OPEC은 ‘원유 생산’이라는 무게추를 조정해 자신들이 기대하는 유가를 유지할 수 있는 수단을 확보하고 있다. 그런데 모든 세상일이 그렇듯 원유 시장 역시 OPEC 뜻대로만 움직여지지는 않는다는 것이 현실 세계에서 증명되고 있다. 2013년까지만 해도 원유 1배럴당 100달러를 넘던 것이 2016년 1월에는 20달러 선 까지 추락하며 1/5토막이 났던 기억이 생생하다. OPEC 카르텔이 제대로 작동했다면 절대 벌어지지 않을 일이 일어났던 것인데 원유 수출로 먹고사는 세계 최대 산유국이자 OPEC 회원국인 베네수엘라가 국가 부도 위기에 내몰린 것도 유가 폭락 영향 때문이었다. 미국 등 북미 지역에서 셰일 원유 등 비전통 자원 개발과 생산이 늘어나면서 OPEC의 ‘무게추’에 힘이 빠진 영향이 컸다. 사우디를 비롯한 OPEC 산유국들이 유가 폭락을 방치한 탓도 적지 않았다는 평가이다. 저유가를 용인하면서까지 자국의 시장 점유율을 늘리려던 OPEC 회원국들의 ‘욕심’이 ’카르텔’이라는 무기를 스스로 무력화시켰기 때문이다. 이후 OPEC은 감산을 결의하며 유가 부양에 성공했고 최근에는 증산에 합의하며 석유 소비국의 유가 안정 주문에 호응하고 있으니 OPEC이라는 카르텔은 집단속 이기주의에 의해 힘을 잃기도 또 때로는 공동의 위기의식 속에서 효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OPEC은 오는 12월 총회를 열고 2019년 이후의 원유 생산량을 결정한다. 다가오는 총회에서 석유 카르텔 OPEC의 행보가 자신들의 공동 이익을 위한 방향으로 향할 것인지 집단속 이기주의가 재현되는 쪽으로 흐를 것인지는 그래서 향후 세계 석유 수급과 가격을 전망하는 중요한 포인트가 될 수밖에 없다.


industrial writer GS칼텍스 에너지, 에너지칼럼
지앤이타임즈 김신 발행인

전북대학교에서 독어독문학을 전공했다. 하지만 전공과는 상관없는 에너지 분야 전문 언론에서 20년 넘는 세월을 몸담고 있는 에너지 분야 전문 기자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GS칼텍스에 의해 작성된 본 콘텐츠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4.0 국제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으며, 지앤이타임즈의 저작물에 기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