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칼럼] 계속되는 전기요금 인상, 산업계는 어떻게 풀어야 할까

GS칼텍스 -

전기요금 인상이 피부로 와닿는 지금, 산업계는 ‘전기의 시대’라는 새로운 질서 속에서 중대한 전환을 요구받고 있습니다. 정유를 비롯한 에너지 다소비 산업은 단순한 비용 절감을 넘어, 에너지 안보와 지속가능성까지 고려한 전략적 대응이 절실해졌습니다.
변화의 파고 앞에 선 산업계는 이제 생존과 전환의 균형을 모색해야 할 때입니다.

에너지 전환의 파고는 위기이자 기회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수상직을 역임한 윈스턴 처칠은 “좋은 위기를 허투루 흘려보내지 마라”는 말을 남겼다. 조금 뻔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오늘날 글로벌 거시경제의 불확실성과 파편화된 세계 질서속에서 대한민국을 찾아온 에너지 전환의 파고는 정유업계뿐만 아닌 산업계 전반에 있어 위기이자 기회다. 재조명된 전력의 중요성, 기후 변화와 에너지 안보 위기가 교차하는 구조적 변화의 시대에 살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산업이 스스로의 미래를 다시 설계해야 할 시점이다.

S&P 글로벌 부회장이자 세계 최대 에너지 컨퍼런스인 CERAWeek 창립자 대니얼 예긴(Daniel Yergin)은 에너지 전환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더 많은 비용, 시간과 희생을 요구한다면서 재생에너지의 간헐성, 광물 공급의 제약, 송배전 인프라의 한계 등을 핵심 병목 요인으로 꼽는다. 그의 포린 어페이스 (Foreign Affairs) 기고문 “Troubled Energy Transition”에서 그는 재생에너지 확대 과정에서의 간헐성 문제, 전력망 투자 부족, 광물 자원의 공급 제한, 개발도상국의 에너지 접근성 등 다양한 변수들이 충분히 고려되지 않을 경우 에너지 전환이 오히려 새로운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고 경고한다. 에너지 전환은 기술적 도전만이  아니라 사회적 수용성, 지정학, 경제성까지 종합 고려해야 할 다층적 과제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에너지칼럼] 계속되는 전기요금 인상, 산업계는 어떻게 풀어야 할까 | electricity 1

원유, 가스, 희토류 등의 에너지 자원이 국제질서와 외교의 핵심 축으로 재부상하고 있는 시점에서 우리 또한 탈탄소 사회로의 이행 과정에서 산업 생태계와 고용 구조를 아우르는 다층적 전략을 마련해야 할 시점이다. 이에 더불어 경제 주권과 지정학적 리스크 뿐만 아니라 외환 리스크, 공급망 안정성, 국가간 자원 연대 체계까지 고려하는 통합적 시각이 요구된다.

우리 정부도 2030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상향하며, 산업계에 더 높은 감축 기여를 요구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재편하고 있다. 새 정부는 실현 가능성과 기술 중립성을 고려한 탈탄소 정책 기조를 유지하되, 민간 중심의 혁신을 유도하는 구조를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환경 변화 속에서 국내 정유업계는 기존의 정유 중심 구조에서 벗어나, 에너지 전환과 지속가능성 중심의 경쟁력 확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에 직면하고 있다.

전기요금 인상과 수익성 악화, 이에 산업계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에너지칼럼] 계속되는 전기요금 인상, 산업계는 어떻게 풀어야 할까 | 01

산업 전반에서 고조되는 전력요금 인상 압박은 정유업계를 포함해 에너지 다소비 업종 전체에 커다란 부담을 안기고 있다. 최근 몇 년간 지속된 국내 전기요금 인상은 에너지 집약 산업인 정유업계뿐 아니라 반도체, 철강, 시멘트, 석유화학 등 대규모 전력 사용 업종 전반에 치명적인 부담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제조공정의 특성상 24시간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받아야 하는 산업군에서는 요금 인상이 곧바로 생산원가 상승과 직결되며, 이는 글로벌 시장에서의 가격 경쟁력 약화로 이어진다. 이러한 산업들은 최근 전기요금 인상에 따른 수익성 악화와 생산량 조절 압박에 직면하고 있으며, 일부 기업은 전력 소비를 줄이기 위해 야간생산 전환, 전력 직접구매, 가동률 조정 및 생산설비 국외 이전을 고려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에너지칼럼] 계속되는 전기요금 인상, 산업계는 어떻게 풀어야 할까 | 02 v2 2

이러한 우려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는 분산에너지특구 지정을 통해 공급자와 수요자간의 직접전력구매(PPA)와 같은 신유형 전력거래를 장려하고 있으며, 정유사는 이러한 제도적 기회를 활용해 전기요금 절감뿐 아니라 신재생에너지를 일부 활용해 탄소 배출 감축도 병행할 수 있다. 이는 단순한 비용 절감을 넘어서 중장기적 에너지 자립과 국가 에너지전환 정책과의 정합성을 갖춘 대응 전략이기도 하다. 본고에서 제시하고자 하는 대응 전략은 크게 3개 축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첫째, 재생에너지 직접 구매(PPA)와 가스 기반 자가발전의 병행이다. 글로벌 차원에서도 전력 수요의 구조적 변화가 빠르게 나타나고 있다. 특히 북미 지역의 대형 데이터센터와 인공지능(AI) 연산 인프라의 폭발적 확장은 고도의 전력 안정성과 지속적인 공급 능력을 요구하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24시간 고정 전력 수요를 발생시키며, 간헐성이 큰 재생에너지로는 이러한 수요를 온전히 감당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에너지 믹스 내 “기저 전원”의 중요성이 재조명되고 있다. 이에 따라 가스발전은 석탄 발전 대비 친환경적인 측면과 신재생에너지 간헐성에 대응할 수 있는 유연성, 공급 안정성을 동시에 갖춘 과도기적 전원으로서 재평가되고 있으며, 원자력 역시 전세계적으로 탈탄소, 공급 안정성과 에너지 안보를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는 선택지로 재등장했다.

다만 가스터빈의 글로벌 공급망이 최근 몇 년간 수요 급증과 제조 병목 현상으로 인해 불안정해지고 있다. 이로 인해 실제 자가발전 설비 투자를 계획하고 있는 기업들 사이에서도 설치 시기와 비용 증가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산업계는 이러한 현실적 한계를 고려해 단기적으로는 기존 에너지 사용 효율 개선 및 가격 경쟁력이 수반된 신재생 PPA 확보, 중장기적으로는 천연가스 발전소 혹은 천연가스 이외의 대체 발전 수단 또는 산단 내 공동 수전 모델 등을 병행 검토할 필요가 있다.

둘째, 도매시장 전력 직거래 제도의 활용이다. 30 MW 이상의 산업용 고객을 대상으로 한 해당 제도는 올해 초 부터 제조 기업들을 대상으로 큰 관심을 끌기 시작했고, 이를 통해 기존 한전 중심 구조에서 탈피한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려 하고 있다. 다만 해당 제도는 전력 도매가격인 SMP에 추가 요금을 지불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SMP가 국제 에너지 가격과 환율, 지정학적 변수에 따라 큰 변동성을 보일 수 있다는 점에서 일정 수준의 리스크가 존재한다. 분석 결과, 실제로 일부 시기에는 한전 산업용 요금제보다 높은 비용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복잡한 에너지 시장 환경 속에서 기업들은 원자재와 에너지 가격의 실시간 흐름, 국제 정세에 따른 공급망 위험 등을 상시적으로 모니터링하고 분석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춰야 한다. 일각에서는 경제 성장의 중심 축이 석유에서 전력 중심으로 이동 중이며 인공지능, 전기차, 데이터센터 등 새로운 산업 구조에서 전기가 자본주의의 핵심 자산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진단하고 있다. 전력은 단순한 에너지 인프라를 넘어 산업·경제 전략의 핵심 축이 되었음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이에 따라 글로벌 커버리지를 갖춘 원자재·에너지 정보 분석기관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으며,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예측력과 의사결정 역량이 전력 조달 및 기업 경쟁력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소로 부각되고 있다.

[에너지칼럼] 계속되는 전기요금 인상, 산업계는 어떻게 풀어야 할까 | 03 v2

셋째, 중장기적으로는 비전력 부문까지 아우르는 탈탄소화 방안이 요구된다. 오는 2026년부터 적용될 제4차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 (K-ETS) 계획기간은 정유업계를 비롯한 산업계 전반에 큰 영향을 끼칠 것으로 사료된다. 특히 최근 한국거래소는 배출권 시장의 유동성과 안정성 제고를 위해 선물시장 도입을 발표했으며, 이는 기업들이 배출권 가격 변동에 대응할 수 있는 헤지 수단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와 같은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단기적으로는 탄소배출 데이터의 정교한 계측과 보고 체계를 강화하고, 중장기적으로는 배출권의 효율적 관리가 정유사의 지속가능성과 시장 경쟁력을 좌우할 핵심 지표로 부상할 가능성에 주목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더불어 정부의 재생에너지 인허가 간소화 및 국내 공급망 확대 기조, 녹색금융 지원 확대, 수소 인프라 투자 계획 등을 적절히 활용한 지속가능한 경쟁력 확보가 요구되며, 수소 및 CCUS, 지속가능 항공유(SAF), 폐자원 순환연료화 등 정책 연계성이 높은 분야를 집중적으로 검토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SAF 및 수소를 비롯한 신에너지원의 경우 높은 가격과 기술적 제약이 수요의 발목을 잡고 있는 상황으로, 대규모 투자 이전 얼마나 빠르게 수요가 올라올 수 있을지에 대한 “Sanity Check”은 반드시 병행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미래 탈탄소 정책에 대비한 선제적 전환 전략 검토되어야

지속가능한 미래를 향한 탈탄소 흐름은 명백한 시대적 과제다. 하지만 그 추진 방식에 있어 보다 정교하고 균형 잡힌 전략이 요구된다.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지속적인 방향성으로 보이며, 대한민국 또한 탈탄소 사회로의 이행 과정에서 산업 생태계와 고용 구조를 아우르는 다층적 전략을 마련해야 할 시점이다. 특히 석유화학 및 정유업계의 핵심 지역에 대해선 에너지 전환과 지역균형발전이 결합된 구체적 계획이 요구된다.

실제로 글로벌 에너지 메이저들도 수익성과 기후 전략 간의 균형 문제에 직면한 바 있다. BP는 청정에너지 투자 확대를 선언했지만, 수익성 악화와 주주 압력으로 일부 감축 목표를 완화했고, 쉘은 에너지 전환 전략을 수정하며 석유·가스 부문 투자를 확대하는 쪽으로 선회했다. 이는 탈탄소 정책의 속도가 기업 현실과 어긋날 경우 추후 조정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국내 정유업계는 에너지 패러다임의 대전환기에 서 있다. 고탄소 기반의 기존 사업모델은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 어렵고, 전기료 상승, 배출권 부담, 정책 리스크는 현실적 위협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전기요금 절감을 위한 자가발전 및 분산특구 활용, 배출권 거래제에 대한 전략적 분석과 조기 대응, 강화될 탈탄소 로드맵에 부합하는 기술 전환과 투자등은 단기적 대응책이 아니라 중장기적인 기업 체질 개선의 과정이다. 정유업계의 지난 100년을 돌아보며 향후 100년을 그려나가야 할 시기다.

함께 보면 좋은 글

[에너지칼럼] 신재생에너지만 믿다가 전기료, 가스값 폭등…‘원전 확대 시급' 주장에 힘 실려 | TH

2024-12-26

[에너지칼럼] 신재생에너지만 믿다가 전기료, 가스값 폭등…‘원전 확대 시급’ 주장에 힘 실려

과잉 생산 우려로 급락했던 글로벌 천연가스 가격이 오름세를 이어가고 있다. 신재생에너지 비중이 높은 유럽에서 흐리고 바람이 불지 않는 날이 이어지면서 ‘대체 에너지원’인 가스 수요가 늘었기 때문이다. 지난달 유럽 가스 가격은 연중 최고치를 경신했다. 신재생에너지의 간헐성 문제가 계속되면서 전기 가격의 변동성도 극심해졌다. 이런 가운데 기저 전원으로 가스 화력 발전 외에도 원자력 발전을 시급히 확장해야 한다는 주장에 더욱 힘이 실리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썸네일

2025-06-25

[에너지칼럼] 글로벌 전력망 통합 가속…‘전기 섬’ 한국의 고립 우려

싱가포르는 아시아의 '물류 허브'다. 유조선과 컨테이너선 등이 싱가포르 앞바다를 가득 메운 채 석유에서부터 전자제품, 자동차 등 모든 것을 수입하고 실어 나른다. 이들 선박이 운반하지 않는 품목은 딱 하나다. 바로 전기다. 그간 싱가포르는 가스를 수입해 화력발전으로 전기를 자급해 왔지만, 이제는 대안을 모색해야 했다.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도시국가의 특성상 땅덩어리가 좁아 태양광 패널을 깔거나 풍력발전소를 짓기도 쉽지 않았다.

GS칼텍스 뉴스레터 구독신청

에너지 산업 이슈, 석유 관련 기초 지식 등 다양한 콘텐츠를 보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