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 at a Glance
GS칼텍스는 흔히 ‘중후장대(重厚長大)’로 불리는 대규모 장치산업에서는 드물게 비교적 이른 시점부터 디지털 전환을 추진했다.
2019년 DX 전략팀 신설로 공식 출발했고 2021년 DX센터 설립을 계기로 파일럿을 넘어 전사 확산 국면으로 본격화됐다. DX 1기 (2019~2023)가 현장 데이터와 암묵지를 측정–표준–공유 가능한 형태로 다지는 토대 구축이었다면 2024년부터의 DAX는 축적된 생산·설비·안전·영업 데이터를 현업 맥락에 연결하고 AI로 예측·최적화·자동화를 돌려 비용·품질·안전 지표를 함께 끌어올리는 실행 단계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GS칼텍스는 사내 AI 플랫폼 AiU를 구축하고 전 직원 대상의 활용 교육을 병행했다. 현재 월 사용자 2713명, 누적 에이전트 1079개 등 가시적 지표가 나오고 있다. 이렇게 현업 전문가들이 직접 설계한 AI Agent는 안전·정비·영업지원 등 현장 과제에 곧바로 적용되면서 ‘보텀업(Bottom-up)’식 혁신이 자리 잡게 했다.

국내 정유·석유화학 업계는 2024년 이후 긴 불황의 터널을 지나고 있다. 2024년 6월 이란·이스라엘 충돌 등 중동 지역의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면서 정제마진이 악화됐고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 여기에 중국과 중동의 신규 대형 정유공장 가동이 겹치면서 글로벌 공급 경쟁이 한층 치열해졌다. 중국은 계속해서 정유 및 석유화학 설비를 늘리며 생산량을 확대하고 있고 중동의 새로운 정유 강자들도 연이어 신규 정유 공장을 완공하고 완전 가동에 들어가며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OPEC+(플러스)1 산유국들의 정제품 수출은 2024년에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을 정도다.
반면 수요는 전기차 확산과 차량 연비 개선, 전반적인 경기 변동의 영향을 동시에 받으며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단순히 설비 가동률만 조절해서는 현재의 난관을 극복하기 어려울 정도다. 이에 기업들은 근본적인 체질 개선을 시도하고 나섰다. 설비 고도화를 통해 생산 효율을 높이고 포트폴리오를 고부가가치 제품 중심으로 전환하며 새로운 수익원을 발굴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또한 데이터와 인공지능(AI)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공장 운영 효율을 혁신적으로 끌어올리는 데 집중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GS칼텍스는 국내 최초 민간 정유사로서 디지털 전환(DX)에 AI 전환(AX)을 더한 ‘DAX 전략’을 통해 공장 운영의 안전성, 효율성, 속도를 동시에 재설계하며 위기 속에서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GS칼텍스의 DAX 여정을 살펴봤다.
정유·석유화학의 전환점, 데이터·조직·스케일의 벽을 넘다
정유업은 흔히 ‘중후장대(重厚長大)’ 산업이라 불리는 대규모 기간산업이다. 한국전쟁 후 대한민국은 중화학 산업 진흥정책을 통해 성장의 기틀을 만들어 왔고 정유 및 석유화학 산업은 4대 수출산업으로 국가 수출을 책임지며 핵심 산업으로 기능했다. 최근 과잉 공급과 수요 부진의 이중고 속에서 정유산업과 석유화학산업은 경쟁력 강화를 위한 중요한 분기점에 서 있다. 기업은 스스로 끊임없는 혁신을 시도해 경쟁력을 갖춰야 살아남는다. 마치 러스트벨트(Rust Belt)로 쇠락한 미국 자동차 산업에서 테슬라 같은 혁신 기업이 탄생했듯 우리나라에서도 중후장대 산업에서 새로운 혁신 기업이 등장할 수 있다.

GS칼텍스는 2019년부터 디지털 전환의 바람을 포착하고 과감히 혁신을 추진했다. 2019년 DX 전략팀을 신설했고 2021년부터 여수 공장에 본격적인 디지털 전환을 시작해 다양한 디지털·AI 유스케이스를 현장에 적용했다. 또한 올해부터는 디지털 전환(DX)에 AI 전환(AX)을 더한 ‘DAX(Digital & AI Transformation)’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추진 중이다.
‘산업의 본질은 데이터’라는 철학 아래 GS칼텍스는 공장 데이터를 넘어 시장과 고객까지 확장된 데이터를 수집·정제·가공해 활용하는 디지털 전환 기반을 구축하고 있다.
여기에 AI 기술을 결합해 일하는 방식을 전환함으로써 제조업 AI 전환을 대표하는 ‘AI 팩토리(AI Factory)’2 기업으로 나아가는 것이 GS칼텍스의 방향성이다. 지동한 GS칼텍스 디지털랩 팀장은 “기존 DX가 데이터와 시스템, 조직문화의 디지털 기반을 구축하는 과정이었다면 DAX는 업무 전반에 AI를 적극 활용해 업무 프로세스와 일하는 방식을 완전히 바꾸는 것”이라며 “이를 통해 직원들이 원하는 것을 바로바로 AI가 도와주고 회사 전체 생산성이 혁신적인 단계로 나아가는 것이 DAX의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정유·석유화학 같은 제조업에서 빠른 디지털 전환을 추구하는 것은 쉽지 않은 과제다. 특히 의사결정체계가 복잡하고 기존 사업 분야의 강점을 강화하면서 성장해온 대기업의 경우는 더욱더 디지털 전환 전략에 대한 내부 저항을 넘기가 쉽지 않다. 또한 GS칼텍스 여수 공장은 단일 부지 기준 세계 4위급 규모를 자랑하는 초대형 정유·석유화학 콤플렉스다. 부지 면적만 약 600만㎡로 여의도 면적의 2배에 달한다. 생산량 역시 세계적 수준이다. 원유 정제 시설은 일일 80만 배럴(bpd)을 처리하고 중질유를 고부가로 전환하는 HOU(Heavy Oil Upgrading) 설비는 일일 정제 능력 27만5000배럴로 국내 최대 수준이다. 하지만 동시에 이 공장은 1969년 가동을 시작해 반세기를 넘긴 기간산업단지라는 한계가 있다. 쉽게 말해 오래되고, 크고, 복잡하다. 이 환경에서 DAX 전환은 데이터, 조직, 규모의 세 가지 벽을 넘어야 하는 도전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벽은 데이터였다. 현장에는 세대가 다른 기계 설비와 이를 통제하는 분산제어시스템, 수십 종의 센서 및 계측기 등이 공존한다. 이 때문에 데이터를 한 화면에서 비교·학습시키는 일 자체가 고난도 엔지니어링이다. 정유 및 석유화학 산업은 안전과 연속 운전이 생명이기에 AI 모델이 아무리 우수해도 실제 제어에 투입하기까지는 장기간의 엄격한 검증이 필요하다.
두 번째 벽은 조직과 일하는 방식의 변화다. 여수 공장 같은 대규모 현장은 주 7일 24시간 내내 공장이 돌아간다. 또한 운전·정비·안전·품질 인력들이 한몸처럼 유기적으로 협업한다. 내부 직원 외에 다양한 협력사 직원들도 현장에서 함께 일하기에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이 필수적이다. 종이 점검표와 숙련자의 경험으로 운영되던 루틴을 디지털 워크플로로 전환하려면 역할·책임·승인권한을 연쇄적으로 조정해야 한다. 이 때문에 경영진에서 아무리 DAX 전환을 밀어붙여도 변화가 일선 현장까지 적용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또한 현장과 본사의 의사결정 구조가 다르고 벤더·라이선스·사내 보안 정책도 충돌할 수 있다. 기술 도입의 성패는 알고리즘이 아니라 ‘데이터 배관을 뚫는 일’과 ‘현장 합의를 만드는 일’에 달렸다.
세 번째 벽은 스케일의 역설이다. 파일럿 테스트를 통해 하나의 공정 혹은 한 개의 라인을 기준으로 테스트를 해 보는 것은 상대적으로 쉽다. 그러나 이를 전체 콤플렉스에 확대 적용하려면 단계별 표준작업서(SOP)와 ROI, 리스크 기준 등을 모두 부서별로 합의해야 한다. 이 때문에 대형 제조 현장의 디지털 및 AI 전환은 그저 ‘새 기술을 들이는 단기 기술 프로젝트’가 아니라 데이터·프로세스·책임·문화를 동시에 재설계하는 장기 체질 개선 프로젝트였다.

GS칼텍스 혁신의 핵심 엔진, 교육·플랫폼·리더십
제조업체 다수는 디지털과 AI 전환 과정에서 이른바 ‘세 가지 벽’이라는 공통의 난관에 부딪힌다. 복잡한 현실 앞에서 변화를 미루거나 시도조차 하지 않는 기업도 적지 않다. GS칼텍스 역시 DAX 전환의 여정에서 이 벽들에 직면하며 결코 순탄하지만은 않은 길을 걸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가 흔들림 없이 혁신을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세 가지 핵심 동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첫째, 디지털 아카데미를 통해 현업 인재를 데이터 분석가와 시민 개발자로 직접 육성했다. DX 1기(2019~2023)에는 애자일 방식으로 빠른 파일럿 테스트를 반복하며 3개월 내 프로토타입을 제작하고 생산계획 데이터를 기반으로 ‘단일 진실 공급원(SSOT, Single Source of Truth)’ 체계를 구축했다. 이 과정에서 60여 명의 직원이 12주간 풀타임 교육을 받으며 개발 역량을 키웠다. 최근 1년간 생성형 AI 교육 이수자만 1392명에 달하며 직원들은 외부 전문가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대시보드와 AI 도구를 개발해 내부 역량 중심의 문제 해결 문화를 정착시켰다.
둘째, 그룹 차원의 통합 AX 플랫폼 ‘미소(MISO)’와 이를 활용해 GS칼텍스가 직접 개발한 AI 플랫폼 ‘AiU’3다. AiU는 로우코드·노코드 기반의 사내 AI 에이전트 개발 플랫폼으로, 전문 개발 지식 없이도 직원 누구나 간편하게 AI 도구(챗봇, 자동화 에이전트 등)를 직접 만들어 낼 수 있다. 각 부서와 공정의 데이터를 AiU에 연결함으로써 과거에는 외부 개발자에게 의존하던 프로젝트도 빠르게 현업 주도형으로 전환됐다. 실제로 전문 개발자가 3개월 걸려 만들 수 있었던 ‘안Gen봇’을 올해는 현업 직원이 2주 만에 TBM AI 비서로 직접 구현하기도 했다. 현재 AiU는 월 2713명이 활용하는 플랫폼으로 정착했다. GS칼텍스 직원이 3000여 명 정도라는 것을 감안하면 거의 전 직원이 AiU로 생산성 향상을 도모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처럼 AI는 ‘특별한 프로젝트’가 아닌 ‘일상의 도구’로 자리 잡았고 표준작업서(SOP)와 기준 마련, 긍정적 경험의 전파를 통해 혁신이 조직 전반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셋째, 리더십의 전폭적인 지원과 거버넌스 혁신이 있었다. 허세홍 대표는 DAX라는 용어를 직접 만들고 업 고유의 도메인지식과 기술 전문성에 AI 기술역량을 적극적으로 접목하기를 당부하면서 변화에 힘을 실었다. 허 대표를 포함한 회사 경영진은 직접 3~4시간 이상 디지털·AI 교육을 체험하며 조직의 수용성을 높였고, 예산·우선순위·변경관리(MOC, Management of Change) 등을 신속하게 결정하는 거버넌스 체계를 운영했다. 이은주 DX센터장은 “리더들이 AI를 이해하고 써보려는 태도가 조직 저항을 크게 줄이고 역량의 내재화를 만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GS칼텍스는 디지털·AI 전환의 핵심 인프라로 데이터레이크(Data Lake)4를 적극 구축했다. 데이터레이크는 현장 설비와 공정, 시장·고객 등에서 생성되는 모든 데이터를 원본 그대로 한곳에 집적하는 대규모 저장소다. 이를 통해 과거에 분산돼 있던 데이터를 누구나 실시간으로 추출·분석·모델링에 활용할 수 있게 됐다.
데이터레이크는 AI, MLOps(Machine Learning Operations), 생성형 AI 플랫폼과 연동돼 현업이 문제를 정의하고 데이터를 즉시 가공해 업무 효율화와 혁신으로 연결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었다. 단순한 기술 인프라를 넘어 데이터가 조직 전체의 공유 자산으로 자리매김하며 전사적 디지털 전환과 AI 혁신의 기반이 됐다. 결국 ‘데이터로부터 시작하는 전환’이라는 GS칼텍스 DAX 철학이 현장과 업무 전반에 깊숙이 스며든 셈이다.
현장 성과로 입증된 DAX의 가치

GS칼텍스의 여수 공장은 2019년 이후 꾸준히 디지털 전환을 추진한 결과 누적 200건 이상의 유스케이스를 발굴했다. 2023년 38건을 현장에 적용했고 2024년에는 140건으로 급증했다. 2025년 들어 1분기에만 72건을 발굴하며 매주 1건 이상(주당 약 1.4건)꼴로 새로운 개선안을 탄생시키고 있다. 여수 공장의 경우 총 80만 개 설비에 연결된 20만 개 이상의 센서가 설치돼 있다. 이를 통해 실시간으로 공정 전반의 각종 데이터를 AI를 활용, 총체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이러한 방대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다양한 분석을 통해 문제를 찾고 개선해 유스케이스를 만드는 과정이 여수 공장 전반에 내재화되고 있다는 것이 회사 측 설명이다. 특히 이처럼 지속적으로 유스케이스를 증가시킬 수 있었던 배경에는 ‘톱다운(Top-down)’이 아닌 ‘보텀업(Bottom-up)’이라는 현장 중심의 접근 방식이 있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QR코드를 활용한 현장 검사 지원 앱 개발이다. 공장 대정비(TA) 시 기존에 수기로 작성하던 볼팅 태그(Bolting Tag)5 관리와 검사 결과 입력을 디지털화해 현장에서 바로 QR코드를 스캔하면 설비 위치·작업 이력·검사 포인트를 즉시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그 덕분에 방대한 수의 플랜지 포인트(Flange Point)6를 일일이 기록·관리하던 비효율이 크게 줄었고 검사 결과도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돼 정비 품질과 추적 관리 수준이 향상됐다. 이는 DAX 전환이 ‘전문가 혹은 IT 조직 주도’가 아닌 ‘현장 주도’의 습관으로 자리 잡았다는 증거다. 200건이 넘는 디지털·AI 유스케이스 중 실제 여수 공장에 적용된 대표적인 사례는 다음과 같다.
1. 3D 모델과 AI 두께 측정을 결합한 배관 부식 관리
여수 공장의 배관은 재질과 직경, 길이가 제각각이었다. 이에 검사 포인트의 선택과 CR 필름 판독에는 오랫동안 숙련자의 경험이 크게 작용해왔다. 그 결과 포인트 선정의 편차, 판독 오류, 기록·인수인계의 단절이 빈번했고 수작업 누적으로 검사 지연과 백로그7가 생기곤 했다. GS칼텍스는 배관을 정교한 3D 모델로 구현하고 포인트별 과거 검사 데이터를 3D 모델과 연결했다. 외주업체가 업로드하는 CR 필름 이미지는 자체 머신러닝 모델이 자동 해석해 최저 두께와 부식 위치를 검출한다. 이제는 ‘데이터가 포인트를 고르는’ 구조다. 결과적으로 검사 백로그가 줄고 판독 정확도와 처리 속도가 동시에 개선됐다. 무엇보다 모든 포인트의 이력을 체계적으로 남길 수 있게 돼 담당자가 교체되더라도 신속하게 인수인계를 할 수 있게 됐을 뿐 아니라 부식 위험을 시간 축으로 수치화해 관리할 수 있게 됐다. 시스템 도입 전, 월평균 3300여 건의 배관 검사가 진행됐고 총 2090시간을 검사에 썼다면 도입 후에는 배관 부식 관리 업무에 소모되는 작업 시간이 1125시간으로 약 46% 줄었다. 그에 따라 검사 백로그 또한 크게 감소했다.
2. AI CCTV를 활용한 플레어스택 운전 최적화
플레어스택8은 과도한 스팀 주입 시 에너지 손실이 커진다. 또 스팀이 부족하면 연기가 발생한다. 과거에는 운전원이 24시간 화면을 지켜보며 불꽃과 연기를 눈으로 판별해 스팀을 조정했다. 지금은 컴퓨터 비전이 불꽃·연기·스팀을 자동 탐지해 과다 또는 반대로 부족이 감지되면 즉시 알림을 띄운다. 운전원은 알림에 따라 스팀 주입량을 조정해 에너지 절감과 환경 리스크를 동시에 관리한다. 회사는 다음 단계로 영상과 공정 데이터를 결합해 스팀 자동 제어(클로즈드 루프)까지 계획하고 있다. 숙련자의 주관적 판단이 아니라 객관적 데이터에 기반한 ‘지속가능한 제어’로 옮겨가는 과정이다. AI CCTV를 활용한 플레어스택 운전으로 스팀 사용량을 약 10% 절감했으며 이는 스팀 생산을 위한 에너지 사용량 및 온실가스 배출량 감소로 이어지고 있다.
3. 회전기계 AI 진동 분석 시스템
펌프·컴프레서 등 회전기계의 이상 징후는 생산과 안전을 동시에 흔든다. 과거에는 개별 센서 알람과 수기 모니터링에 기대는 일이 많았고 문제 발생 시에도 경험과 직관에 기대어 원인을 추정하는 탓에 조치 타이밍과 방향이 엇나가기 쉬웠다. GS칼텍스는 진동 데이터에 딥러닝 모델을 적용하고 유량·온도·압력 등 보조 센서 데이터까지 연계해 분석하는 체계를 도입했다. 이 모델은 정렬 불량, 베어링 손상 등 13개가 넘는 이상 원인의 발생 확률과 우선 조치안을 제시한다. 담당자는 방대한 데이터를 일일이 훑는 대신 모델이 제시한 ‘가능성 높은 원인’과 현장 맥락을 대조해 신속하게 대응한다.
진단 방식은 사후 분석 중심에서 사전 예지 중심으로 전환됐다. 운영 문화 역시 중단을 예방하고 설비가 안정적으로 가동되도록 관리하는 방향으로 변화했다.
회전기계 AI 진동 분석 시스템 도입 이후에는 회전기계 이슈의 원인 분석에 소요되는 시간이 도입 전보다 절반 이하로 줄었다. 그 결과 신속한 문제 대응이 가능해졌고 설비와 운전의 건전성도 한층 높아졌다.
4. 데이터로 만든 디지털 트윈
디지털 트윈은 특정 솔루션의 이름이 아니다. 실제 공장을 가상으로 모사하고 예측하기 위해 쓰는 기술의 묶음이다. CDU 공정의 CO 감지센서 역시 디지털 트윈 포트폴리오의 일부다.9 여기에 3D 모델, 공정 AI 모델, 회전기계 진단 AI까지 범위를 넓혀 공정–설비–안전을 관통하는 다층 구조로 키웠다. 중요한 변화는 관점의 전환이다. 예전처럼 ‘한 설비–한 화면’이 아니라 ‘한 문제–여러 데이터’로 묶어 보고 시뮬레이션–예측–제어까지 한 화면에서 연결하려는 시도다. 실제 공장과 똑같은 ‘하나의 거대한 트윈’을 단숨에 만드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현장이 필요로 하는 기능 단위의 트윈을 빠르게 쌓아가며 실전에서 정확도와 신뢰도를 높여가는 전략이다.
AI, 현장의 안전망이 되다
AI는 성과 개선 및 업무 효율화뿐만 아니라 현장 안전 혁신의 핵심 도구가 되고 있다. 정유 공장에서의 안전은 무엇과도 타협할 수 없는 우선 가치다. GS칼텍스는 디지털 전환의 다양한 성과 중에서도 AI 기반의 안전 혁신에 최우선으로 집중했다.
첫 번째 변화는 AI CCTV다. 여의도 2배 면적의 광대한 공장에서 모든 상황을 실시간 모니터링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한계가 있었다. 160여 대의 CCTV가 설치돼 있지만 인력만으로는 24시간 감시에 한계가 있던 상황에서 컴퓨터 비전 기반 AI 기술이 해답을 제시했다. 여수 공장 전역에 설치된 160여 대의 카메라는 단순 감시를 넘어 작업자의 보호구 미착용이나 위험 구역 접근을 실시간으로 감지한다. 인식 정확도는 93%를 넘어섰다. 사람이 일일이 화면을 지켜보던 방식 대신 AI가 빈틈없는 감시망이 된 것이다.

AI는 안전 지식의 전달 방식도 바꿔 놓았다. 안Gen봇은 수십 건의 안전 규정과 사고 사례를 학습해 현장에서 필요한 정보를 즉시 제공하는 생성형 AI 챗봇이다. 작업자들이 언제 어디서나 안전 규정을 신속하고 정확하게 찾아볼 수 있는 도구를 지원하기 위해 개발됐다. 안Gen봇은 회사 내부 안전 절차서를 학습해 사용자가 안전 규정에 대해 질문하면 안전책임자가 설명해 주듯 신속하고 정확하게 답변을 해준다. 그뿐만 아니라 현장 사진을 찍어 업로드하면 사진 내 포함된 정보를 기반으로 잠재적 위험 요소를 식별해 경고하는 기능도 탑재했다. AI를 통해 사전 위험 감지 대응을 돕는 셈이다.
그런가 하면 현장 혁신의 대표적 사례로 앞서 소개한 ‘TBM AI 비서’가 있다. TBM(툴박스 미팅)은 하루 400건 이상 열리는 협력사와의 작업 안전회의다. 과거에는 짧은 시간 내 모든 위험 요소를 일일이 전달하는 것이 어려웠고 전달 편차도 컸다. 실제로 여수 공장에는 GS칼텍스 직원 외에도 협력사 60곳 이상의 인력들이 매일 들어오지만 대부분 안전 전문가가 아니다 보니 미팅의 질이 천차만별이었다. 기존에는 감독관이 샘플링을 통해 평가와 피드백을 했지만 30가지 평가 기준을 완벽하게 충족시키긴 어려웠다.
그러나 AiU를 통해 자체 제작한 TBM AI 비서가 도입된 이후 작업 허가서·사고 사례·기상 정보 등 핵심 데이터를 자동 취합해 대본을 생성함으로써 브리핑 누락과 오류가 크게 줄었다. 날씨 정보 등 상황별 변수가 자동으로 스크립트에 반영되다 보니 현장 대응력이 대폭 높아졌다. “TBM 오픈 3주 차 만에 협력사 40%가 사용했을 정도로 현장 반응이 뜨겁다”는 평가가 나온다. 안전 교육 역시 디지털로 진화했다. MR·VR 기반 시뮬레이션 훈련은 밀폐 공간 사고, 가스 누출, 고소 작업 등 실제 현장에서는 경험하기 힘든 위험 상황을 가상으로 재현한다. 작업자들은 단순 지식 전달을 넘어 신체로 직접 대응 요령을 익히며 체화된 안전 습관을 구축하고 있다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DAX, 영업 현장도 바꾸다
공장을 중심으로 시작됐던 DAX 변화는 2024년을 기점으로 전사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S&T본부, C&L본부 등 사업본부에서도 다양한 DAX 우수 사례가 발굴됐다. 국내 주유소와 충전소 운영 및 파트너·고객 관리를 총괄하는 Mobility & Marketing(M&M) 본부가 대표적 사례다. 전국 2400여 개 주유소와 2000만 명의 고객 등 전국의 영업 네트워크를 관리하는 M&M 본부는 DAX를 내부 효율화는 물론 시장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해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한 혁신 목표로 삼았다. B2B 고객(주유소 운영인)부터 B2C 고객(일반 소비자)까지 DAX를 통해 관계를 지속적으로 강화한다는 점이 차별화 포인트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마케팅 체계다. GS칼텍스는 에어브릿지(Airbridge), 앰플리튜드(Amplitude), 브레이즈(Braze) 등 전문 솔루션을 도입해 고객 분석부터 캠페인 실행까지 전 과정을 데이터와 AI 중심으로 재편했다. 그 결과 기존 4~5주 걸리던 캠페인 준비 기간을 3일로 단축했다. 현대카드와 협업해 소비 데이터 기반 정밀 타깃 마케팅도 강화하고 있다. 실시간 대시보드와 고객 의견 분석을 결합한 피드백 체계로 마케팅 투자수익률(ROI)이 약 30% 개선됐다.
이런 역량은 자체 개발한 ‘에너지 플러스 앱(Energy Plus App)’의 경쟁력으로 이어졌다. 올해 이 앱은 레드닷(Red Dot), IDEA, 굿디자인(Good Design) 등 세계 4대 디자인 어워드 중 3개 상을 휩쓸며 정유업계 최초로 디자인 혁신성을 인정받았다. 생성형 AI를 활용해 고객 데이터를 디자인에 반영한 점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지속가능한 변화의 여정

GS칼텍스의 목표는 ‘AI를 가장 잘 쓰는 기업’으로 도약한다는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중장기적으로는 공장이 스스로 시설 상태를 진단하고 최적 운전 조건을 계산해 설비 관리와 에너지 사용, 온실가스 배출, 안전까지 한 번에 최적화하는 ‘완전 자율 운전 공장’으로 진화하는 것이 목표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 데이터 품질 관리와 표준화 작업, 실질적인 검증 절차, 현장 구성원의 설득과 협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GS칼텍스는 이미 여수 공장 사례를 통해 자율 운전의 기술적, 조직적 방향성을 검증하고 있다.
특히 2025년을 기점으로 본격적으로 AI와 협업해 업무 자동화와 효율화를 함께 추진하고 있다. 실제로 2026년부터는 AI 에이전트가 본격적으로 일상 업무에 투입돼 기존 업무 프로세스의 상당 부분이 자동화되고 직원들은 전략과 혁신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될 전망이다.
GS칼텍스는 산업통상자원부 등과 협력해 2028년까지 디지털 트윈 기반의 스마트 콤플렉스(AI 팩토리)를 구현하는 비전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피지컬 AI(센서·로봇 등 실물 지능과 결합한 AI)의 실현을 구체적인 목표로 삼아 업무와 생산 현장의 효율성과 지능화를 한층 앞당기겠다는 계획이다. 이은주 센터장은 “우리는 단순히 디지털이나 AI 기술을 도입하는 수준을 넘어 전사적 프로세스 혁신과 조직 역량 전환을 동반한 지속가능한 변화의 여정을 밟고 있다”며 “데이터와 AI 활용을 중심으로 미래형 스마트팩토리, 나아가 AI 팩토리로 진화하는 것이 회사의 목표”라고 설명했다.
- OPEC 회원국과 러시아 등 비OPEC 산유국이 참여한 확장형 산유국 협의체. 2016년부터 공동 감산 정책을 추진하며 국제 유가 조정 역할을 수행하고 있음. ↩︎
- AI 팩토리는 AI 기술을 활용해 로봇·장비 등을 제조 공정에 결합시켜 생산의 고도화와 자율화를 구현하는 미래 첨단제조 환경을 의미한다. ↩︎
- AIU는 AI와 油(기름 유)를 합친 단어로 전통적인 정유 산업에 AI 기술을 접목해 경쟁력을 강화하는 전략 방향성을 상징적으로 담은 이름이다. GS그룹의 공통 AX(AI Transformation) 플랫폼인 ‘미소(MISO)’를 기반으로 개발됐다. MISO는 GS그룹의 오픈 이노베이션 조직인 52g(5pen 2nnovation GS)와 GS네오텍에서 공동 개발했으며 유통·에너지·건설 등 그룹 내 다양한 계열사에서 디지털 전환과 업무 혁신을 지원하고 있다. ↩︎
- 여러 다양한 데이터를 원본 그대로 대량으로 저장하는 중앙 저장소. 데이터베이스와 달리 ‘정해진 테이블’이 아닌 매우 자유로운 형태로 저장. ↩︎
- 배관 플랜지·밸브·기기 하우징 등 볼트 체결부(볼팅 작업)에 부착하는 식별·관리 태그. ↩︎
- 배관과 배관, 배관과 장치가 맞물려 가스켓+볼트로 체결되는 접합 부(플랜지) 하나하나의 점(검사 대상 지점)을 뜻함. ↩︎
- 처리해야 할 작업이 제때 처리되지 못하고 ‘밀려서 쌓여 있는 상태. ↩︎
- 정유·석유화학 공장에서 과잉·비상 가스를 안전하게 태워 대기로 방출하는 높은 굴뚝형 소각 설비. ↩︎
- DBR Case Study: GS칼텍스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X) (2023년 11월 2호)에도 소개된 바 있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