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이후 석유 수요를 결정짓는 가장 큰 요인은 코로나 19 확진자 수 증감이다. 팬데믹 초기 대비 민감도가 다소 줄어들기는 했지만, 어찌 됐든 확산세가 빨라지면 수요가 줄어들고 확산세가 둔화되면 수요가 증가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거리 두기 등 방역 조치만으로 코로 나19를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이미 입증되었으나, 다행히 성공적으로 백신이 개발되어 앞으로 석유 수요 회복은 백신 접종에 가장 큰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백신의 효능과 관련해서 가장 중요한 데이터를 제공해 주는 국가는 이스라엘이다. 인구 9백만 명의 이스라엘은 화이자에 접종 관련 데이터를 제공하는 조건으로 백신을 우선 공급받아 작년 12월 19일부터 접종을 개시하였다. 이후 1월 중순 일일 확진자 수가 1만 명을 넘기는 등 심각한 상황이 이어졌으나 2월 초 이후 드라마틱한 감소세를 보이면서 최근에는 500명대까지 감소하였고, 주간 증감률의 경우에도 -55% 수준까지 내려와서 매주 확진자가 전 주의 절반 이하로 떨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이스라엘 정부는 봉쇄 조치를 대부분 완화하였으며, 조만간 코로나 19 종식을 선언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스라엘 사례에서 가장 눈여겨볼 부분은 과연 백신 접종률이 어느 지점에 달했을 때 실제로 집단면역이 작동해 확진자 감소가 일어나는가 하는 부분이다. 또한 이 계산에는 백신 접종자 외에 코로나 19에 감염되었다가 회복됨으로써 자연적으로 면역을 획득한 사람의 숫자도 포함하여야 한다. 결론만 이야기하자면 1회 이상 접종자와 기 감염자를 합친 “매직 넘버”는 65%로 보인다. 최근 이스라엘 신규 확진자의 99%가 영국 변이 감염자임에도 불구하고, 면역보유자가 65%가 넘으면 바이러스 확산을 제압할 수 있는 것이다.
이제 이 “매직 넘버”를 타국의 접종 진행 상황에 대입해 보면 언제쯤 각국이 일상을 회복할 수 있을지 추정할 수 있다. 각국의 접종 전략이 상이(영국은 빠른 1차 접종을 우선 추진)하므로, 일일 접종 건수가 아닌 ‘1회 이상 접종 인구수의 일일 증가분’을 이용하여 목표지점(=65%-기 감염자)까지의 소요일수를 산출하면 아래의 표와 같은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
미국의 정상 복귀 시점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휘발유를 소비(2019년 기준 전 세계 소비량의 40.6%, OECD 소비량의 74.6%)하는 국가인데, 가장 소비량이 많은 계절은 바로 Driving Season인 6~8월이다. 즉, 현재 속도대로 접종이 진행될 경우 올여름 Driving Season 수요는 당초 전망인 부분적 회복이 아니라, 풀 스케일로 발생하는 것이다. 코로나 19가 완전히 종식되지 않았더라도, 상황 개선이 뚜렷하고 소위 ‘보복 소비’ 현상이 발생하면 휘발유뿐 아니라 다른 제품의 수요까지 증가하면서 총 수요는 평년을 초과할 가능성이 충분하다. 작년 감염 통제에 성공했던 중국에서 항공유 소비 부진과 수출 침체에도 불구하고 전체 석유 소비량이 팬데믹 이전 수준을 넘어서는 현상이 관측되었던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미국 시장에서 실물 수요가 본격적으로 회복되게 되면 그 파급력은 이스라엘과는 비교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시장의 규모뿐 아니라 원유선물 투자자가 가장 많이 거주하는 지역이기 때문에 투자심리 면에서도 엄청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최근 WTI 선물의 월물간 변동률을 자세히 보면, 상승기뿐 아니라 유가 하락 중에도 7월물의 하락률이 비교적 낮아 근월물 대비 강세를 보였는데, 수요가 회복하기 시작할 5월이 되었을 때 거래되고 있을 최근 월물(Front Month)이 바로 7월물이라는 점을 돌이켜 보면 시장이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한편 미국, 영국에 비해 EU의 백신 접종 속도가 많이 저조한 것이 현재 많은 우려를 낳고 있는 상황이다. 원재료 부족 등으로 인한 백신 생산 차질에 따라 EU는 2분기까지 충분한 백신을 확보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향후 미국의 접종률이 일정 수준에 오르면 상황은 급속히 개선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일일 접종량을 보면 미국이 EU 전체를 다 합친 것보다 2배나 많은 숫자를 보이고 있는데(3.27일 기준 미국 268만 회/일, EU 134만 회/일), 2분기 이후 미국의 백신 수요가 줄어들면 해당 백신 생산량이 타국으로 돌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선진국 이외에서는 칠레의 상황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칠레에서는 최근 확진자가 급증하고 있으나, 중국이 개발한 Sinovac 백신을 대량으로 접종하고 있다. 3.26일 기준 접종률은 33.4%이며, 일일 접종자 수는 인구의 0.87%에 달한다. 화이자 백신의 효능이 이스라엘에서 증명되었듯이, 칠레가 Sinovac 백신의 테스트베드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한다면 개발도상국의 코로나 19 종식에도 희망의 빛이 보일 수 있다.
수요 측면을 종합하면, 올여름 미국과 영국을 중심으로 강력한 수요 회복세가 관측될 것으로 전망되며, 상대적으로 상황이 좋지 않은 유럽 및 타 OECD국가의 경우에도 2분기 이후 백신 수급이 개선되면서 긍정적인 전망이 힘을 얻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생산성이 좋은 백신들이 실전에서 효과를 드러낼 경우 개발도상국도 연내 종식은 되지 않더라도 종식에 대한 시간표 제시까지는 가능할 것으로 예상되어, 석유 수요 회복에 긍정적 요소로 작용할 전망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항공유 수요 부진에도 불구하고 금년 말 세계 석유 수요가 팬데믹 이전 수준인 1억 b/d 이상으로 회복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는데, 현재 상황에서 큰 변화가 없다면 무난히 달성 가능할 것으로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