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가 앞장서서 탄소 국경 조정(CBAM, 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을 무기로 들고 탄소중립을 추진하자고 동참을 강요하고 있다. 이에 부응하듯 지난해 탄소중립 위원회가 앞장서서 2030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이하 NDC(Nationally Determined Contribution))를 2018년 대비 40% 감축하겠다고 급기야 선언해 버리고 말았다. 유럽이나 미국이 40년에 걸쳐서 달성한 목표를 우리는 12년 만에 달성하겠다고 우리의 발목을 미리 잡아버린 현실이 매우 안타깝다. 온실가스 감축은 전 지구적 문제라고 말하면서 역사적 다배출 국가들의 책임 문제와 현재 다배출 국가인 중국, 미국, 인도, 러시아 등의 감축 의무 이행에 대한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앞뒤 안 보고 밀어붙여 탄소중립을 법제화까지 해버리고 말았다. 우리 경제의 주요 제조업과 수출 기업에 미칠 손해는 눈감아버리는 이율배반적인 NDC 목표는 후퇴 금지 원칙에 의해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지켜야 하는 무모한 제약조건을 손에 쥐고 현실적인 여러 가지 문제와 고민이 뒤따르지 않을 수 없다.
최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원유와 천연가스 가격이 천정부지로 뛰고 있다. 원유가 배럴당 $130불을 뛰어넘어 전 지구적 문제로 다시 인식되기 시작했고, 천연가스도 유럽 가격이 $80/MMbtu를 넘어서는 등 인류가 최초로 경험하는 일들이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전쟁만이 유일한 이유일까? 이미 이러한 사태는 탄소중립을 EU가 앞장설 때 이미 예견되어 있었다. 화석연료 산업에 대한 신규 투자가 최근 지속적으로 줄어들어 원유 등 화석연료 관련 투자는 ESG 기준 등에 가로막히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한 공급 부족은 이미 현실화되었는데 아직까지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공정과 연료는 여전히 주요 경제의 근간으로 수요는 그대로이기 때문에 화석연료 가격은 당분간 폭등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작년 10월 이유도 모르게 바람이 불지 않아 유럽의 풍력 발전량이 급감하였고 이를 대체하기 위해 천연가스 가격이 폭등하여 유럽 주요국의 전력 도매요금이 4~5배가량 상승하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들이 발생했다. 재생에너지 발전의 증가로 인한 간헐성과 변동성 문제는 전력 시장 신뢰도와 안정성을 해치게 되고 이는 여전히 해결하기 어렵고 비용이 천문학적으로 드는 문제이다. 최근의 여러 재생에너지의 문제점은 화석연료가 여전히 상당한 역할을 할 수밖에 없어서 화석연료 가격 변동이 심해지는 새로운 문턱에 서 있다는 점을 일깨웠다.
또 다른 문제는 친환경 투자로 인식되는 재생에너지 발전, 전기차, 배터리, ESS 등으로만 투자가 집중되고 있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재생에너지 가격 인상과 관련 친환경 산업에 필요한 주요 광물, 원자재, 소재, 부품에 이르는 가격 폭등이다. 전 세계가 친환경과 재생에너지 관련 투자만을 집중하면서 리튬, 니켈, 코발트, 망간, 구리 등 주요 광물 가격이 폭등하고 있다. 2021년 한 해 동안 리튬은 460%, 니켈로 100% 이상 폭등하는 등 모든 주요 광물 가격의 폭등은 고스란히 배터리 가격 인상으로 이어져서 결국 전기차 배터리와 ESS 가격 상승으로, 나아가 재생에너지 발전단가와 전기차 가격 상승으로 현실화되기 시작했다. 100년도 전에 전기차와 내연기관차가 경쟁한 시절에도 전기차는 충전의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웠으며 배터리의 경제적 양산을 위한 원자재 공급망이 문제가 되었다. 그러한 문제는 여전히 유효하며 배터리 충·방전 기술이 급격히 좋아지고 충전소 망이 충분히 깔림과 동시에 지구상의 광물, 원자재, 소재, 부품의 공급 부족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수준이 될 때까지 가격은 지속적으로 상승하게 될 것이다. 재생에너지 일변도의 탄소중립 추진과 투자의 경향은 결국 재생에너지 가격 증가와 배터리 가격 인상이라는 근본적인 문제를 던지고 있으며 이에 새로운 공급망 문제, 지정학적 전쟁 리스크 등으로 자원 무기화 등으로 이어질 경우 매우 풀기 어려운 문제가 될 것이다.
더블 그린플레이션이 현실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에너지·자원 안보가 중요한 정치적 아젠다이며 신정부 정책 순위 중 최우선으로 격상되어야 한다는 인식이 필요한 시점이다. 주요 자원의 가격 폭등으로 전 세계가 자원을 확보하여 경제를 성장시키기 위한 각축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우리는 NDC 목표 상향과 탄소중립 시나리오 설정 과정에서 국제 에너지, 자원 가격에 대한 고려는 어디를 찾아봐도 나오지 않는다. 화석 에너지와 재생에너지 가격이 동시에 오르는 더블 그린플레이션 상황을 고려한 에너지·자원 안보적 관점에서 새로운 탄소중립 이행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며, 그래야만 하는 전 세계적 변화가 도래하고 있다. 중국을 중심으로 저임금과 저에너지 가격을 기반으로 디플레이션을 수출하던 시대가 드디어 막을 내리고 초인플레이션(great inflation)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탄소중립으로 예기치 못한 비용 인상 인플레이션이 이미 도래하였고 COVID-19의 수요 회복까지 겹치게 되면 더블 그린플레이션이 어디까지 폭등할지 두려움마저 앞서게 된다. 지뢰밭처럼 펼쳐질 경제 위기를 앞둔 시점에서 전통적 에너지·자원 안보의 개념과 더불어 주요 자원의 공급망 관리와 사이버 안보까지를 포괄하는 새로운 개념의 에너지·자원 안보에 대한 개념을 정의하고 글로벌 거시경제적 관점에서 화석연료에 대한 새로운 안보적 접근이 필요한 때이다.
각 나라는 그 나라가 처한 상황과 주변 조건을 중심으로 정합적(整合的)인 경제구조를 발전시키게 된다. 유럽의 자원환경, 경제구조, 인구 회학적 배경을 기반으로 추진하는 재생에너지 확장과 우리나라가 처한 재생에너지 잠재력 상황은 너무나도 열악하다. 더 나아가 반도체, 석유화학, 자동차를 중심으로 대규모의 에너지를 소비하나 막강한 국제경쟁력을 지닌 제조업의 수출주도형 중심으로 설계된 우리의 경제환경은 다른 나라와는 체질적으로 다르다. 유럽이 저렇게 친환경을 강조하는 것은 탄소 가격을 높여 동북아시아 지역의 비교우위에 있는 수출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역전시키려는 의도가 있음을 간과하면 안 된다. 한국의 경제 상황을 근간으로 새로운 탄소중립의 이행 과정을 재설계해야 할 시점이 되었다. 환경만이 유일한 정책목표일 수 없으며 지속 가능하며 경제성장을 견인할 곳에 투자하고 한국 경제의 잠재성장률 향상으로 이어질 수 있는 비용 효과적인 관점을 견지해야만 진정한 탄소중립의 의미가 달성되는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 본 글은 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GS칼텍스의 공식입장은 아닙니다.
조홍종 - 단국대학교 경영경제대학 경제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경제학과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치고, 미국 University of Pennsylvania에서 경제학 박사를 받았다. 2011년 단국대 경제학과에 부임하였으며, 주요 연구분야는 거시경제, 에너지자원, R&D지식산업의 경제적 분석이다. 현재 한국자원경제학회 부회장, 에너지경제연구 편집위원장, 전력거래소 비용실무협의회 위원, 장기천연가스 수요예측분과 위원 및 가스기기 보상평가 위원 활동도 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