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퍼포징 스튜디오, 로우리트 콜렉티브
로우리트 콜렉티브는 어떤 일을 하는 회사입니까?
“버려진 티끌 플라스틱으로 가구나 벤치 같은 제품을 제작하는 ‘리퍼포징(repurposing) 스튜디오입니다.”
‘리퍼포징’이라는 단어가 새롭습니다. 어떤 의미입니까?
“비교적 잘 알려진 단어로 표현하자면 ‘업사이클링(upgrade + recycling: 버려진 제품을 가공해 새로운 가치를 가진 제품으로 만드는 것)’인데요. 하지만 이 개념으로는 로우리트의 작업을 온전히 담아낼 수 없어서 ‘리퍼포징’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어요.
로우리트의 리퍼포징은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바라볼 수 있습니다. 먼저 생산자 측면에서는 소재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해 완전히 다른 제품으로 탈바꿈시키기 때문에 리퍼포징이라 할 수 있고요. 사용자 측면에서도 로우리트 제품을 사용하는 이의 라이프 스타일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해주기 때문에 리퍼포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희는 세상이 변하려면 플라스틱 재활용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의 행동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로우리트와 같은 제품을 경험하고 가치를 소비할 수 있도록 이끌어나가야 합니다. 로우리트의 리퍼포징은 그 문턱을 넘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죠.”
그렇다면 리퍼포징은 업사이클링의 확장된 개념으로, 평소 재활용에 관심이 없던 일반 사람들까지 가치소비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아이디어라고 이해하면 될까요?
“네, 업사이클링은 단순히 ‘어떤 제품을 재활용해 만들었다’는 개념에 그칩니다. 반면 리퍼포징은 그보다 더 나아가 ‘결과물이 나온 이후로도 그 제품이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에 방점을 찍습니다. 로우리트의 슬로건이 ‘Leftover plastics right under your nose(남겨진 플라스틱을 바로 코앞으로)’인 것도 그래서입니다. 플라스틱 재활용을 어렵게 여기면서 로우리트의 가구나 오브제 제품을 그저 ‘작품’처럼만 인식해선 안 됩니다. 이제는 내 집 안에 두고 자연스럽고 친근하게 사용할 수 있어야 해요. 그래서 일부 사람들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업사이클링 제품을 소비하는 것이 당연해질 때 우리의 라이프 스타일도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할 겁니다.”
어려운 일을 하고 계시는데, 로우리트 콜렉티브는 어떤 과정으로 작업하시나요?
“현대미술 작가, 업사이클링 스튜디오 대표, 산업디자이너 출신들이 모여 함께 일하고 있어요. 그래서인지 다들 작가의 창작 욕구가 강합니다.
작업은 분업 형태로 진행되는데, 대체로 컨셉 기획을 시작으로 비주얼 라이징을 거쳐 도면화 내지는 데이터화 작업을 완료하면 제품 제작에 들어가요. 제품 퀄리티에 대한 욕심 때문에 자체적으로 제작하는 것을 선호하는데요, 제품에 따라서는 더 잘하는 곳에 외주를 주기도 합니다.”
리퍼포징 제품 아이디어는 어떻게 구상하시나요?
“플라스틱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한다고 해서 너무 어렵게 풀어나가지 않으려 해요. 사용자에게 쉽게 전달되지 않으니까요. 최대한 일상적인 이야기로 친근하게 다가가고자 애씁니다. 영감으로 시작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같이 작업하는 분들 중 누군가가 ‘이거 하고 싶어’라고 얘기하면, 다른 분들이 ‘이런 식으로 하면 되겠다’, ‘이런 요소를 담으면 재밌겠다’, ‘만들어서 어디에 사용하면 좋겠다’는 식으로 의견을 덧붙입니다. 즉, 콜렉티브(collective) 방식으로 아이디어를 구체화시켜 나가는 거죠.”
로우리트 리퍼포징의 시작, 티끌 플라스틱
티끌 플라스틱을 활용해서 제품을 만드실 때, 어떤 의도를 가지고 만드시나요?
“처음에는 플라스틱의 랜덤한 패턴과 더불어 다양한 형태로 만들 수 있다는 점에 매력을 느꼈어요. 지금은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 예상할 수 있어서 다르게 접근하고 있는데, 오히려 플라스틱이 아닌 것처럼 보이고 의외성을 느끼도록 만드는 작업에 재미를 느끼고 있습니다.
벤치를 기획할 때도 그랬어요. 원하는 형태를 만드는 과정에서 패턴을 다양하게 조합해 의외성을 보여줄 수 있는 방법에 중점을 두고 접근했죠. 예를 들어 ‘태산’ 벤치는 북한산을 위에서 바라본 형태로, 수묵화에 그려진 북한산의 모습을 먹의 색채로 표현한 제품입니다. 티끌이 모여서 태산을 만들 수 있다는 게 모티브였고, 의외성을 주고자 플라스틱 재질을 암석처럼 표현했습니다.”
제품 소재로 플레이크만 사용하시는 줄 알았는데, 작업하시는 모습을 보니 펠렛도 많이 사용하시는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티끌 플라스틱을 분쇄한 플레이크(Flake: 폐플라스틱을 조각조각 분쇄한 형태)만 활용했습니다. 무엇보다 펠렛(Pellet: 분쇄된 플라스틱을 일정한 모양으로 성형한 형태)을 만들 때 발생하는 탄소를 고려했고요. 또 펠렛의 경우 일정량 이상의 플라스틱을 모아야 작업에 들어갈 수 있는데, 저희 작업은 규모가 작아 펠렛을 활용하기 어려웠거든요.
지금은 펠렛도 활용하고 있습니다. 티끌 플라스틱만 갖고 제품을 만들어내는데 한계가 있어서요. 예를 들어 야외에 두는 벤치들의 경우 자외선에 의한 분해를 방지해야 하는 점 때문에 펠렛과 분해 방지를 위한 전용 첨가제를 조합해 제작하기도 했습니다.”
제품을 만들 때 손바닥보다 작은 티끌 플라스틱을 수거해 소재로 사용하시던데, 이유가 무엇입니까?
“로우리트의 존재 이유에 대해 아주 많이 고민한 결과입니다. 플라스틱 재활용 산업에 속한, 전혀 새로울 것 없는 업사이클링 업체여선 안 된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스튜디오를 시작하면서 로우리트가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티끌 플라스틱을 소재로 사용하게 된 것 역시 그런 배경에서 비롯되었어요. 6개월에 걸쳐 기존 재활용 시스템의 문제를 찾아 고민하는 과정에서 병뚜껑 등의 작은 플라스틱들이 재활용되지 못한 채 선별장의 필터링 과정에서 버려진다는 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거구나 싶었죠. 로우리트(low-lit)는 원래 저조도, 저조명이라는 뜻입니다. ‘잘 보이지 않는 것,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티끌 플라스틱에서 의미를 찾아내는 것’이 바로 기존 업체와 다른 로우리트만의 차별화된 역할이라고 확신했습니다.”
플라스틱 순환구조 완성으로 향하는 로우리트의 네트워크
앰배서더 지정 수거 활동, 시니어 분류 작업 등 분업 형태가 많은 로우리트는 연결과 네트워크를 대단히 중요시 여기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로우리트가 추구하는 네트워크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무엇입니까?
“순환구조 완성을 위한 재활용 트랙 구성에 있어 특정 분야를 잘 아는 누군가가 해당 분야를 담당하는 분업 시스템을 정착시킴으로써 전문성과 작업 효율성을 높이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플라스틱 폐기물은 그 종류나 양이 많고, 재활용 방법도 각기 다릅니다. 때문에 플라스틱을 제대로 재활용 하려면 플라스틱 종류에 따른 여러 재활용 트랙들이 갖춰져야 합니다. 만약 모든 종류의 플라스틱을 재활용할 수 있는 트랙들이 갖춰진다면 플라스틱의 완전한 순환이 가능해지겠죠. 물론 다양한 재활용 트랙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각 분야별로 누가, 그리고 어떤 기술이 필요할지 고민해야 합니다.
저희도 처음 로우리트를 시작할 때는 티끌 플라스틱 수거부터 재료 가공, 제품 생산에 이르기까지 모든 게 난관이었어요. 하지만 이제는 재활용 산업이 커졌고 관련 작업을 하시는 분들도 다양해져 저희 작업도 많이 수월해졌죠. 그렇게 점점 더 작업 과정의 분업화가 이뤄져간다면 전문성과 효율성도 높아져 갈 겁니다.”
순환구조를 구성하는 네트워크 안에서, 로우리트의 전문성이자 강점은 무엇입니까?
기업이나 고객이 로우리트를 찾는 이유를 들어보면 ‘오리지널리티(Originality: 독창성)’, 그리고 ‘의외성’인 것 같습니다. 망치로 맞은 듯한 기분을 느끼시는 것 같아요. 누구나 할 수 있는 뻔한 이야기를 담지 않으니까요.
실제로 저희는 제품 제작 시 사람들이 두 번 볼 수 있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제품 자체로 눈길을 끌도록 하고, 두 번째로는 제품에 관한 설명을 듣고 관심이 생기도록 하는 것이죠. 요컨대 단순히 흥미만 유발하는 게 아니라 제품을 본 사람에게 모종의 의미가 전달되어 한 번 더 제품을 바라보게끔 만드는 게 저희 목표입니다.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제품을 통해 사용자의 기존 라이프 스타일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도록 리퍼포징을 하는 것이죠.
반대로 로우리트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부분도 있을 것 같습니다.
“가장 어려운 점은 전문성에 한계가 있다는 점입니다. 플라스틱 분류 작업을 예로 들어 보면, 현재는 매우 1차원적인 방법을 쓰고 있어요. 그냥 직접 모아서 분류하는 방식인 것이죠. 하지만 수거할 때부터 플라스틱을 재질 별로 분류하는 전문적 시스템이 존재하고 모두에게 오픈 되어 있다면 좋을 겁니다. 저희가 잘 하는 일에 더 집중함으로써 전문성과 작업 효율성이 높아질 테니까요.
또 다른 어려운 점이라면 제품 판매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점입니다. 사실 이는 저희의 철학 때문이기도 해요. 다른 회사들의 경우 소비자가 쉽게 구매할 수 있는 제품을 기획해 판매하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로우리트 제품들은 그런 제품이 없습니다. 저희 목표 중에는 ‘업사이클링 제품=소비재’라는 인식을 없애는 것도 있거든요. 애당초 500년간 존재할 수 있는 플라스틱을 빨리 소비하고 버릴 일회용품으로 쓴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아이러니이니까요.”
로우리트가 꿈꾸는 사회적 영향력
로우리트의 사회적 영향력을 일반 대중으로까지 확장하고자 기울이는 특별한 노력이 있는지요?
“변화를 위해서는 일반 개개인의 생각이 바뀌기를 기대하기보다 우선은 영향력 있는 사람들을 만족시켜야 한다고 봅니다.
일반적으로 가구가 대중화되는 과정은, 오리지널리티가 있는 제품이 출시된 다음, 이후 연관된 특징을 가진 하위 제품들이 유사한 형태로 계속 나오게 되고, 그 결과 모두가 낮은 가격에 부담 없이 살 수 있게 되는 식으로 진행됩니다. 이 과정에서 로우리트가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오리지널리티를 통해 영향력을 전달할 만한 제품을 만드는 것이죠. 사회 변화를 주도할 수 있는 사람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제품이요. 그런 분들의 입을 통해 로우리트의 이야기가 전파되기 시작하면 비로소 저희 영향력이 대중에게까지 퍼져나갈 거라고 기대합니다.”
사회적 영향력이 확대되면, 로우리트가 제안하는 삶의 방식인 ‘레스 플라스틱(less plastic) 라이프 스타일’이 가능해질까요?
‘레스 플라스틱’이란 ‘제로 플라스틱(zero plastic)’으로 가는 데 있어 징검다리 같은 개념으로, 환경을 위한 노력을 조금은 가볍게 해나가는 의도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플라스틱 사용에 무심한 사람들을 무작정 나쁘다고 낙인찍지 말고, 그런 사람들도 레스 플라스틱에 동참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사회는 한 순간에 바뀌지 않기도 하고, 모두가 공익적인 목표를 갖고 살아야 한다고 강요할 수도 없으니까요.
가령 로우리트 제품과 같은 업사이클링 제품을 접하는 등 어떤 계기로 가치소비에 대한 관심이 생기면 플라스틱 쓰레기가 거슬리기 시작하겠죠. 예를 들어 한번 플로깅(plogging: 버려진 쓰레기를 주우며 하는 조깅)을 하고 나면 길가에 버려진 쓰레기들이 계속 신경 쓰이는 것처럼요. 저희도 그런 경우에 사용할 수 있는 플로깅 키트를 만들었거든요. 일상에서 쓰레기를 바로 주울 수 있도록요. 이처럼 소소하지만 일상에서부터 자연스럽게 변화해나가는 것이 로우리트가 추구하는 레스 플라스틱입니다.”
플라스틱은 죄가 없다
로우리트 콜렉티브의 출발점인 플라스틱은 환경에 있어 가장 큰 문제로 취급받는 소재입니다. 대표님에게 플라스틱은 어떤 의미인가요?
“저에게 플라스틱은 그저 재료일 뿐, 그 자체로 ‘좋다, 나쁘다’의 평가를 받아야 할 소재는 아닙니다. 사실 잘 순환될 수만 있다면, 플라스틱은 지금처럼 사용해도 괜찮고, 심지어 꼭 있어야 하는 소재이죠. 플라스틱 문제가 해결되는 순환 시스템이 만들어진다면 로우리트가 다뤄야 할 재료 역시 반드시 플라스틱일 필요도 없습니다.
플라스틱 문제의 원인은 인간이에요. 만들어진 플라스틱의 70% 이상이 재활용되었다면 이렇게까지 지탄 받지 않았을 겁니다. 가성비가 좋고 무게도 가볍기 때문에 지금까지 다양한 산업을 발전시키고 인간의 삶에 기여해왔습니다. 500년을 쓸 수 있는 자원이라는 점을 모르고 일회용품 포장지로 이용하기 시작한 선택이 잘못된 거죠. 생산할 때부터 500년간 사용할 생각을 했으면 상황이 지금과 달랐을 겁니다.
그렇다고 지금의 상황이 절망적이라고 보지도 않아요. 플라스틱 문제가 이슈로 불거지지 않았다면 생분해 소재나 바이오 플라스틱에 대한 논의도 이루어지지 않았겠죠. 위기가 있어야 담론도 형성됩니다. 물론 지금은 단순히 선악 구도 속에서 논의되는 게 안타깝지만 언젠가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타협책을 만들어 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