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걸프 산유국의 국내 정세 불안은 국제 석유시장의 주요 지정학적 요인 중 하나이다. 이란을 제외한 사우디아라비아를 주축으로 한 주요 걸프 산유국은 대부분이 권위주의 왕정국가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다. 이란 또한, 종교 지도자가 상위에 있는 권위주의 신정 체제 국가이다. 걸프 왕정 국가들은 왕위 세습을 통해 왕권이 결정되며 왕정이 절대적인 통치권을 보유한다. 이와 함께, 왕정에 반대를 표할 수 있는 야당도 존재하지 않는다. 쿠웨이트, 바레인과 같은 일부 왕정 국가들이 선거를 시행하고 있으나 공식적인 정당 설립이 허용되지 않는다. 왕정 국가들은 급격한 반란사태가 일어나지 않는 한 체제 유지는 지속할 수 있다. 하지만 법적으로 야권 세력을 허용하지 않는 만큼 오히려 잠재한 반정부 세력이 언제 어떠한 형식으로 정권에 도전할지 모르는 불확실성을 안고 있다. 특히, 아랍의 봄 시위 확산을 통해 확인한 것처럼 언제, 어떠한 이유로 시위가 발생할지 예측하기 어려우며 그 시위의 양상이 국경을 넘어 주변국으로 확산할 수 있기 때문에 걸프 산유국 정권 체제유지의 불확실성은 항상 잠재되어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2022년 9월 발생한 걸프 왕정 국가의 오랜 라이벌인 이란에서 발생한 반 히잡 시위 사태는 걸프 왕정 국가들에게 위협으로 다가왔다. 이번 시위는 정부의 히잡 강제 착용법에 반대하면서 ‘여성, 삶, 자유(Woman, Life, Freedom)’라는 구호를 들고 일어났다. 하지만 동 시위는 단순히 이란 여성들의 히잡 착용에 대한 불만이 배경이 된 것은 아니었다. 즉, 미국과의 핵협상 타결에 실패 이후 미국의 대이란 경제 제재 강화로 인한 이란 경제 위기, 정치인들의 부패, 사회 및 정치적 억압 등으로 인해 축적된 불만의 표출이었다. 특히, 이번 반 히잡 시위가 그동안 축적된 정치적 절망이 기저에 깔린 만큼 남녀노소 불문한 전 계층이 시위에 참여하며 이란 내 대중들의 불만의 정도를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이번 시위는 여성의 인권 억압에 대한 국제적인 반발을 일으키며 SNS를 통해서 국경을 초월하여 다른 지역의 여성들과 연대하면서 퍼져나갈 정도로 파급효과도 컸다.
한편, 이란의 시위에 주변 걸프 산유국은 일반적으로 큰 반응을 하지 않았다. 이러한 걸프 산유국들의 침묵에 대해 여러가지 분석이 가능하다. 먼저, 아랍 걸프 국가들은 이란의 내부 문제에 대한 반응을 보이면 이란의 아랍 국가들 내정 간섭을 정당화할 수 있다는 우려 속에 상대적으로 침묵의 태도를 보인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 아랍의 봄 시위 확산 당시 이란은 적극적으로 시아파 단체들을 통해 주변 아랍 국가들의 반정부 시위에 개입했던 것과는 반대로 걸프 산유국 왕정 국가들은 큰 논평을 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이란 정부가 이번 시위에 사우디와 같은 주변국이 개입했다면서 내부 문제를 외부로 돌리려는 국면전환 시도를 취하기도 하였다. 실제로 2022년 11월 이란 정부가 사우디에 대한 공격을 계획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하였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란 주변 걸프 왕정 국가들이 가장 우려로 하는 것은 이란의 시위로 인한 도미노 효과일 것이다. 이란과 라이벌 관계인 사우디의 경우 이번 시위로 이란 정부가 위협에 처한 것에 회심의 미소를 지을 수도 있지만 동시에 이란 정부만큼 정치적 자유를 억압하는 사우디 정부가 이란의 반정부 시위에 기뻐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었다.*[efn_note]사우디는 최근 여성의 운전 허용 등 사회적 개방 정책을 취하고는 있지만 반정부 세력에 대한 정치적 억압은 지속하고 있다.[/efn_note] 사우디를 포함한 걸프 권위주의 산유국 왕정들은 이란 시위 뉴스를 대중들이 접하는 것을 두려워하였을 것이다. 아랍의 봄 시위 확산 당시, 알자지라 방송을 통해 주변국 반정부 시위 보도에 적극적이었던 카타르의 경우는 이란 시위에 대해 적극적으로 보도하지 않았다. 이는 카타르가 다른 걸프 국가들과 비교했을 때 이란과 상대적으로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복잡한 입장도 반영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최근, 이란 반 히잡 시위는 이란 정부의 강력한 억압으로 확산의 양상이 줄어든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전 세계적인 연대와 이란 내부 광범위한 참여는 이란 시민사회 내 축적된 불만의 강도를 확인하게 해주었다. 이란과의 복잡한 관계로 인해 걸프 산유국 왕정 국가들은 각자의 셈법을 계산하면서 이란 시위에 대체로 침묵하고 있는 모습을 보였다. 자칫 자국 내 시아파 세력의 시위로 번질 수도 있고 또 정치적 자유를 요구하는 반정부 시위로도 번질 수 있다는 우려 속에서 걸프 왕정 국가들은 이란의 시위 사태의 확산 여부를 침묵 속에서 예의주시하고 있다.
한편, 걸프 왕정 국가들은 이란 시위 등 주변 국가의 불안정 속에서 왕권 강화에 주력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경우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살만 국왕 즉위 이후 국방 장관, 경제 개발 위원장, 제2 부총리 등을 겸직하며 주요 실세로 자리 잡았으며 특히 2022년 9월 총리로 임명되면서 사실상 사우디의 실질적 권력을 확보하며 향후 왕위 승계를 위한 초석을 다시 한번 굳혔다. 살만 국왕이 현재 87세로 노쇠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조속한 시일 내에 빈 살만이 왕위를 계승 받을 가능성이 크다. 이런 상황에서 빈 살만 왕세자는 네옴시티 등 다양한 산업 다각화 경제 개혁 프로젝트를 적극적으로 추진하면서 경제적으로 새로운 도약을 하고자 하고 있다. 또한, 전 세계적인 탄소 중립 실현의 흐름 속에서 탈석유 시대를 대비한 신재생에너지 개발 프로젝트에도 박차를 가하면서 더 이상 석유 지대 경제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다각화된 산업과 경제를 기반으로 더욱 강력한 왕정을 세우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 한편, 내부적으로 반정부세력에 대한 정치적 억압을 시도하면서 왕권에 도전하는 위협 요인들을 억제하고 있다. 이처럼 다각도로 왕권 강화를 위한 전략을 추구하면서 새로운 형태의 걸프 왕정으로 변모하고 있다.
한편, 그동안 중동 및 북아프리카 지역 내 정치 역학 구도는 반이스라엘, 반이란이라는 민족적 구분, 혹은 시아파 대 수니파라는 종파적 구분에 기반한 진영 구도에서 형성되어 왔다. 그러나 현재 중동 및 북아프리카 지역 역내 정치 지형은 이런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 실용적인 이익에 기반한 역내 관계 구도로 탈바꿈하고 있다. 결정적인 계기가 이스라엘과 아랍에미리트, 바레인, 수단, 모로코와의 관계 정상화 합의였다. 이스라엘과의 관계 정상화 이후 아랍에미리트나 바레인 걸프 국가들은 이스라엘과 다양한 방식으로 이스라엘과 협력의 영역을 확장하고자 하고 있다. 즉, 더 이상 민족적 차이 혹은 종교적 정체성에 기반하여 외교 관계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이익을 기반으로 한 외교적 관계 구축의 양상이 걸프 산유국을 포함한 중동 및 북아프리카 지역 전역에서 나타나고 있다. 양국은 2022년 6월 양국 간 연간 교역량을 100억 달러까지 끌어올리기 위한 목표로 자유무역협정(Free Trade Agreement, FTA)을 체결하기도 하였다. 석유가스 부문에서도 이스라엘과의 협력이 증가하고 있는 것을 확연하게 발견할 수 있다. 그동안 이스라엘과 레바논이 해상 경계 설정을 두고 주변국 간 갈등을 빚어왔던 동지중해 해상 국경 설정에 합의하면서 개발진전에 대한 기대감이 고조된 가운데 아랍에미리트의 “무바달라(Mubadala Petroleum)”사는 이스라엘 해상 “타마르(Tamar)” 천연가스전에 대한 지분 22% 인수를 지난 2021년 합의한 바 있다. 이처럼 다방면에서의 경제적 협력이 강화되고 있다.
한편, 지난해 11월 이스라엘 총선 실시 결과 베냐민 네타냐후 전 이스라엘 총리와 그의 극우파 블록이 총선에서 승리하였다. 특히, 네타냐후 전 총리가 총선에서 승리한 데에는 독실한 시오니즘 정당의 역할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동 정당은 팔레스타인에 유대 민족 국가 건설을 목표로 하는 유대 민족주의 운동인 시오니즘을 기반으로 한 정당이다. 이번 네타냐후 내각은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강력한 극우 세력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아랍에미리트 Abdullah Bin Zayed 외무 장관은 네타냐후 총리에게 국우 정치인을 내각에 임명하는 것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표현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네타냐후 총리는 극우 정치인으로 알려진 Ben Gvier를 신임 국가 안보 장관에 임명하는 등 극우 성향의 정치가 더욱 강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에 따라 이스라엘 정부의 팔레스타인 억압 정책이 더욱 강화될 것이 예상되는 가운데 최근 서안 지역에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유혈 충돌이 발생하며 양측 간의 갈등이 다시 고조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관계 정상화를 맺은 아랍 국가들과 이스라엘의 관계 향방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현재까지는 경제적인 사안과 정치적인 이슈를 연계시키고 있지 않지만 향후 이스라엘 정부의 팔레스타인에 대한 정치적 압박이 심화하거나 심각한 유혈사태가 발생한다면 이스라엘과 경제 협력에도 비난의 압력이 가해지고 이러한 실용적 이익에 기반한 역내 정치 구도도 어느 정도 변화가 생길 수 있다.
한편, 최근 국제 질서를 주도하는 미·중 경쟁 구도는 중동 지역도 벗어나지 못했다. 미·중 갈등 속에서 나타난 중동 정치 지형의 뚜렷한 변화는 중동에서의 미국의 영향력 감소와 중국의 입지 확대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철수 등에서 나타나듯 미국은 중동 떠나기를 지속해서 추진 중이다. 이런 가운데 미국의 주요 우방 국가인 걸프 산유국 왕정들도 미국의 보호에서 벗어나 각자의 길을 모색하기 시작하였다. 중동 우방 국가들의 미국에 대한 냉랭한 태도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미국의 주요 중동 우방국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는 2022년 2월 “UN 안전보장이사회” 러시아 규탄 결의안 회부에 참여하지 않았다. 이뿐만 아니라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국제유가가 크게 상승하자 미국이 사우디와 아랍에미리트에 증산 요청을 하였으나 양국은 미국의 제의를 거절하였다. 이에 더해 2022년 10월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개최된 OPEC+ 회의에서 사우디아라비아를 주축으로 한 주요 석유 수출국들은 미 바이든 정부의 원유 증산 요청에 반하는 감산 조치에 합의하기도 했다. 이러한 감산 조치 시행은 미국에 대한 걸프 산유국의 냉랭한 태도 변화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반면, 중도에서 중국의 입지는 지속해서 확대되고 있다. 특히, 2013년 시작된 중국의 일대일로(Belt and Road Initiative) 정책을 통해 중동 국가들과 협력을 확대해 오고 있다.*[efn_note]2013년 중국 시진핑 국가 주석의 제안으로 시작된 일대일로는 중국 주도의 신 실크로드 전략 구상으로써 내륙과 해상의 실크로드 경제벨트를 지칭한다. 국가급 프로젝트인 일대일로를 통해 중앙아시아,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등 주변 신흥국 시장으로 진출하여 경제성장 동력을 확보하겠다는 취지이다.[/efn_note] 일대일로 전략이란 동아시아에서 유럽을 잇는 인프라 프로젝트로서 중국의 경제 부양, 무역 강화 등을 목표로 시작한 전략이다. 특히, 중동 지역에서의 일대일로 추진 전략에서 에너지 부문 협력이 제1순위인 것으로 알려졌다.*[efn_note]중동 지역에서 일대일로 협력을 구체화한 중국과 아랍 협력 구상안의 골자는 1+2+3 협력으로 1은 에너지 협력, 2는 인프라 건설, 투자 및 무역 촉진, 3은 신에너지, 항공우주, 원자력 등의 고도 기술 분야 협력이다.[/efn_note] 이에 따라, 중국의 주요 원유 공급원인 걸프 산유국 국가들은 일대일로 정책을 추진하는데 주요 파트너 국가로 떠오르고 있다. 또한, 중국의 에너지 수요가 지속해서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2022년 중국의 중동으로부터 원유 수입량은 중국 전체 원유 수입량의 50%를 넘어섰다. 특히, 2022년 “BP” 통계에 따르면 사우디아라비아가 중국의 최대 원유 공급원인 동시에 중국도 사우디아라비아의 제1의 원유 수출 대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배경에서 최근 중국과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관계도 더욱 돈독해지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시진핑이 지난해 12월 사우디 방문하여 원유 및 천연가스 대급을 위안화로 결제해야 한다고 직접 발언하면서 미·중 갈등이 석유 시장을 넘어 금융 시장에까지 확대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하였다.
최근 중동 걸프 주요 산유국은 기존의 전통적인 친미, 반이스라엘, 수니파 혹은 시아파 등의 진영 구도에서 벗어나, 실용주의에 기반한 새로운 정치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이 가운데 미·중 갈등 구조까지 합세하여 향후 걸프 산유국을 둘러싼 정치 지형 변동의 예측을 더욱 어렵게 하는 요인이 되어가고 있다. 특히, 최근 전격 이루어진 중국 주재의 사우디와 이란의 관계 회복 합의는 걸프 산유국을 둘러싼 역내 및 국제 정세의 변화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는 계기가 되었다. 현재 걸프 산유국들은 지난해 발생한 이란의 반 히잡 시위 사태처럼 언제 재발할지 모르는 국내적 정치 혼란에 대비하여 정권 단속 및 강화에 나서고 있다. 동시에 급격하게 변화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그동안의 기존의 외교 관계 틀에서 벗어나서 자신들의 실리를 추구하며 생존을 다양하게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다양한 정치 변화 속에서도 여전히 걸프 산유국이 석유 시장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은 여전히 크다. 먼저, 최근 감지되는 사우디와 이란의 관계 정상화 노력은 중동 지역의 다양한 정치적 갈등이 해소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높이며 석유 시장에서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리스크를 줄이는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지난해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위기 속에서 걸프 산유국들이 취한 감산 조치는 여전히 그들이 지닌 최대 무기인 석유자원을 통해 국제사회에서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특히, 최근 4월 2일 사우디 등 주요 OPEC+ 산유국이 올해 5월부터 12월까지 원유 생산량을 116만 b/d 추가 감산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처럼 급변하는 세계 질서 속에서 걸프 산유국들은 그들의 석유 공급 능력을 앞세워 다양하게 자신들의 실용적 이익을 확대해 나갈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