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지 않는 소비량 vs 흔들리는 유가
지난 20년간 석유 소비량은 약 30% 증가했는데 그 추세가 일정한 편이어서 매년 평균 1.2%씩 증가하면서 완만하게 우상향했다. 연 평균 유가가 전년 대비 20% 이상 상승하며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했던 2011년에도, 전년 대비 20% 이상 하락하며 40달러대로 추락했던 2016년에도 석유 소비량은 크게 줄 거나 늘지 않았다. 인구 증가율과 비슷한 수준의 증가세를 유지했을 뿐이다. 이렇게 가격에 대해 석유 소비량이 비탄력적으로 움직인 것은 석유가 인류의 일상과 산업의 필수재이기 때문이다. 석유는 가격에 따라 쉽게 소비를 줄이거나 늘릴 수 있는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바로 이것이 엑슨모빌의 장기 전략의 배경이 되고 있다. 전략의 기반은 흔들리지 않는 요소여야 하는데, 인구 변화와 석유 수요 변화, 그리고 이 둘의 상관관계는 수십 년간 흐름이 일정한 변수였다. 엑슨모빌의 CEO 대런 우즈(Darren Woods)는 올해 언론과의 인터뷰 등을 통해 2040년까지 인구 증가, 특히 중산층 증가로 에너지 수요는 20% 증가할 것이며 이 수요는 석유와 가스에 의해 충족될 것이라고 주장했다.*[efn_note]Oilnow(2020).“ExxonMobil sees future demand for oil and gas increasing by 20% – Darren Woods”, May 03.[/efn_note] 엑슨모빌은 위와 같은‘인구 증가에 따른 석유 수요 증가’를 올해 연례 보고서에서도 명시하며 장기 전략의 근거로 삼고 있다.*[efn_note]엑슨모빌은 연례 보고서에서 인구 증가 외에 현재 지구상에서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지역에 사는 인구가 약 10억명에 달한다는 점도 향후 에너지 수요에 중요한 암시를 준다고 주장한다.[/efn_note]
석유 수요를 결정하는 가장 큰 요인 : 세계 인구 변화
신재생에너지,‘추가’이지 ‘대체’가 아니다.
물론 인구 외에도 석유 수요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신재생 에너지 확대, 전기차 보급, 에너지 효율 개선 등을 들 수 있다. 특히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기대가 크고, 그것의 확대는 바람직한 미래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에 대한 IEA와 OPEC의 입장은 분명하다. 향후 신재생에너지가 기존 에너지 믹스에 ‘추가’되지만, 그것이 기존 에너지를 ‘대체’ 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하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IEA는 에너지원별 수요에서 현재 14.1% 수준인 신재생에너지*[efn_note]수력, 풍력, 태양광, 바이오매스 등을 모두 포함[/efn_note]의 비율이 2040년에 20.7%로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정도 비중 확대로는 석유 수요 증가세를 ‘ 둔화 ’시킬 수는 있지만 , 증가세 자체를 ‘상쇄’ 할 수 없다. 물론 향후 신재생에너지 확대 추세는 과거보다 뚜렷해질 것이다. 그래서 IEA는 세계 인구가 2040년까지 19% 증가하는 상황에서도 석유 수요는 약 10% 증가하는 수준에서 머문다고 보았다. 신재생에너지의 비중 증가 정도인 6.6%포인트(14.1%→ 20.7%)가 어느 정도 석유 수요 증가세를 완화한다고 본 것이다.
IEA의 전망도 현재 분위기에서는 불투명하다. 현재 에너지 믹스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던 원자력발전과 석탄 화력발전이 감소하는 추세이다. 신재생에너지는 이 감소분을 충당하는 역할을 하는 것만도 쉽지 않을 것이다. 원자력발전에 대해서는 나라마다 입장과 정책이 달라 그 미래를 예측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미세먼지와 온실가스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석탄 화력발전은 파리 기후협약의 이행과 기후 변화 이슈에 의해 가장 먼저 퇴출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에서 석탄 화력발전은 전체 발전량의 약 40%를 담당하고 있고, 전 세계적으로도 약 37%의 비중이다. 신재생에너지로 현재 주력 발전 수단인 석탄 화력발전을 대체하는 것만도 쉽지 않다. 여기에 탈원전 정책까지 더해진다면 향후 20~30년간은 신재생에너지의 확대가 석유 수요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한편, 전기차가 늘어나면 휘발유, 경유 등의 수요가 줄어들기 때문에 석유 수요가 감소할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전기차 확대 정도에 대해서는 기관별로 다르게 예측한다. 2040년 전 세계의 차량 수는 약 20억대로 예상되는데, 이 중 전기차의 수로 IEA는 3.3억 대*[efn_note]IEA(2020), World Energy Outlook 2020, p.180[/efn_note], OPEC은 2.8억대, 블룸버그는 5.6억대를 제시한다. 이 중 가장 많게 예측하는 블룸버그의 예측대로 20억대의 차량 중 5.6억대가 전기차로 채워져도 여전히 14억대 이상이 내연기관차로 남는다. 2020년 현재 전체 차량이 약 14억대 정도다. 전기차가 아무리 늘어도, 내연기관 차량의 수는 오늘날과 비슷한 수준으로 유지된다는 것이다. IEA는 전기차의 증가보다 에너지 효율 개선으로 인한 석유 소비량 감소가 더 클 것으로 전망했다.
골드만삭스는 2020년 7월에 낸 석유 수요 전망 보고서에서 석유 수요를 결정하는 요소로 경제 성장률, 에너지 효율성 개선, 전기차 확대 등을 들었다. 그리고 이 요소들이 모두 석유 수요를 억제하는 방향으로 나타날 때 비로소 석유 수요는 감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즉, 세계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을 하면서 전기차는 확대되고, 에너지 효율 기술은 개선되는 상황에서만 석유 수요가 감소할 것으로 본 것이다. 이런 시나리오는 가능하지 않다는 점에서 사실상 석유 수요는 향후 20년간 증가할 것이라고 본 것이다. 골드만삭스의 기본 시나리오는 10% 석유 수요 증가를 예상한 IEA의 전망과 유사하다.
인구 증가를 주도하는 나라들이 주로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산유국이라는 점도 석유 수요 증가 쪽에 무게를 더한다. UN은 향후 인구 증가율이 높은 나라로 인도, 나이지리아, 인도네시아, 콩고, 이집트 등을 지목한다. 아프리카의 최대 산유국인 나이지리아의 인구는 현재 2억 명에서 2067년에 5억 명으로 증가하고, 또 다른 산유국 콩고도 같은 기간 0.9억 명에서 2.6억 명으로 증가한다. 아시아의 주요 산유국 인도네시아도 2.7억 명에서 3.4억 명으로 증가한다. 중동의 이라크도 같은 기간 인구가 2배 이상으로 늘고, 사우디와 이란의 인구도 큰 폭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국가들은 석유 경제를 포기할 수 없는 나라들이다. 그들에게 석유를 포기하거나 감산하라는 것은 국가 경제를 포기하라는 것과 같다.
앞서 언급했듯이 위와 같은 점들 때문에 업계와 에너지 관련 기구 사이에서는 적어도 2040년까지는 석유 수요가 증가한다는 것이 공통적인 시각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컨센서스가 2020년 BP 보고서에 의해 깨진다. 2019년과 달리 2020년 발표된 3개 기관 전망에서 BP만 매우 다른 예측치를 내놓은 것이다.
‘BP 2020년 에너지 전망’의 의도
BP는 이러한 전망을 정당화하기 위해 향후 신재생에너지가 크게 증가하고, 에너지 효율 기술도 획기적으로 발전할 것이라고 설명한다. 신재생에너지는 Rapid 시나리오*[efn_note]Rapid 시나리오는 3개 시나리오 중 중위값으로 모든 분석에서 대체로 가장 먼저 제시된다.[/efn_note] 기준에서 2040년 전체 에너지원별 비중의 33%에 이른다. IEA의 전망치 약 20.7%에 비해 10%포인트 이상 높다. 전기차 보급에 대해서는 더욱 과감한 전망을 내놓았는데, Rapid 기준에서 2040년에 전기차 비율은 50%에 이른다. IEA는 같은 시기의 전기차 비율을 약 16%로 보았다.
BP의 전망은 여러 면에서 비판을 받았는데, 가장 크게 지적할 부분은 인구 증가에도 불구하고 에너지 총수요는 크게 증가하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B P는 ‘UN 2019년 세계인구 전망’을 그대로 인용해서 2050년까지 인구가 약 20억 명 증가하여 97억 명에 이른다고 했다. 또한 GDP는 연평균 2.6%씩 성장하여, 2018년 129조 달러에서 2050년에 297조 달러에 이른다고 보았다. 이것은 3개 시나리오 공통의 전제이다. 인구가 20억 명 증가하고 GDP는 2배 이상으로 증가하는 상황이라면 에너지 사용량도 어느 정도 비례해 늘어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러나 BP는 중간치 시나리오인 Rapid에서 세계 에너지 수요량이 2018년 576EJ*[efn_note]EJ : Exa Joule(엑사줄), 에너지 소비단위[/efn_note]에서 2050년 625EJ로, 30여 년간 불과 8.5% 증가한다고 전망했다. 인구와 경제의 규모가 대폭 커진다는 가정하에서 이와 같은 낮은 증가율은 모순적이다. 특히 2030년 이후부터는 인구 증가와 경제 성장에도 불구하고 무려 20년간 에너지 수요량 곡선이 수평을 유지 하는데 이는 비현실적인 느낌을 준다. 20년간 매년 증가하는 에너지 수요가 매년 개선되는 에너지 효율에 의해 상쇄되어 증가율이 정확히 제로가 된다는 것은 너무 작위적이다. 또한, 그것이 지금이 아닌 10년 후부터 나타난다는 것도 이성보다는 희망이 앞선 전망이라는 느낌을 준다.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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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웅 과장 - 한국석유공사 에너지정보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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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콘텐츠는 2020년 11월 4일 한국석유공사에서 발행한 주간해설을 발췌하여 재구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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