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원유 소비량, 누구 말이 맞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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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카콜라는 자본주의와 미국을 상징하는 기업이다. 코카콜라가 진출하지 못한 나라는 북한과 쿠바뿐이라고 할 정도로 전 세계에서 사업을 하며, 오랫동안 순이익과 고배당을 유지해온 미국적인 기업이다. 그러나 코카콜라보다 더 미국적인 기업은 엑슨모빌이었다. 둘은 공통적으로 검은빛의 액체를 사업 대상으로 하면서, 하나는 자본주의의 맛과 느낌을, 다른 하나는 미국의 부와 힘을 상징해왔다. 엑슨모빌은 코카콜라를 압도하는 거대자본으로 전 세계에서 사업을 하며 매년 수백억 달러의 이익을 냈다. 2012년 애플에게 시가총액 1위 자리를 내주기 전까지 기업가치 면에서도 장기간 최정상을 유지했다. 미국을 대표하는 기업답게 이 회사의 최고경영자(CEO)를 10년간 역임한 렉스 틸러슨은 트럼프 행정부의 첫 번째 국무장관으로 지명되기도 했다.

그랬던 엑슨모빌이 유가 하락으로 최근 2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했고 다우존스 산업지수에서 제외되는 굴욕을 당했다. 일각에서는 엑슨모빌이 시대의 변화를 놓치고 추락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지금과 같이 코로나 19로 인해 유가가 지속적으로 낮게 유지된다면 버틸 석유 기업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상당수 석유 기업이 새로운 에너지 분야로 진출하거나 사업을 다각화하려 한다. 그러나 엑슨모빌은 지금까지 하던 대로 하겠다는 입장이다. 즉, 석유 수요가 회복된다는 전망을 토대로 미래에도 석유 사업에 집중하는 전략을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유럽 최대 석유 기업 BP는 2030년까지 석유 가스 생산을 40% 감축하고, 신재생에너지 사업 투자를 확대하겠다고 선언했다. BP의 CEO 버나드 루니는 석유 시대의 종말을 언급하며, BP는 석유 기업이 아닌 종합에너지기업으로 변모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두 회사의 전략이 이렇게 극명한 차이를 보이는 주된 이유는 미래 석유 수요에 대한 시각차가 크기 때문이다. 엑슨 모빌은 2040년 기준 석유 소비량의 20% 증가를, BP는 같은 시기 30% 이상 감소를 이야기한다. 왜 이런 차이가 생겼고, 누구 말이 맞는 걸까?

흔들리지 않는 소비량 vs 흔들리는 유가

석유 소비량은 국제유가와의 상호 연관성에도 불구하고 매우 다른 모습으로 움직인다. 개념과 약속으로만 존재하는 유가는 가볍고 크게 움직인다. 급등과 급락을 반복하는 것은 물론이고, 시장 참여자의 의도에 따라 왜곡되거나 거품이 발생하기도 한다. 반면, 실물로 존재하는 석유 소비량은 급증과 급감 없이 안정적으로 움직여왔다. 아래의 1999년부터 2019년까지 석유 소비량 그래프는 일부시기를 제외하고 안정적으로 우상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같은 시기 유가가 심하게 요동치는 모습을 보이는 것과 뚜렷하게 대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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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년간 석유 소비량은 약 30% 증가했는데 그 추세가 일정한 편이어서 매년 평균 1.2%씩 증가하면서 완만하게 우상향했다. 연 평균 유가가 전년 대비 20% 이상 상승하며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했던 2011년에도, 전년 대비 20% 이상 하락하며 40달러대로 추락했던 2016년에도 석유 소비량은 크게 줄 거나 늘지 않았다. 인구 증가율과 비슷한 수준의 증가세를 유지했을 뿐이다. 이렇게 가격에 대해 석유 소비량이 비탄력적으로 움직인 것은 석유가 인류의 일상과 산업의 필수재이기 때문이다. 석유는 가격에 따라 쉽게 소비를 줄이거나 늘릴 수 있는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바로 이것이 엑슨모빌의 장기 전략의 배경이 되고 있다. 전략의 기반은 흔들리지 않는 요소여야 하는데, 인구 변화와 석유 수요 변화, 그리고 이 둘의 상관관계는 수십 년간 흐름이 일정한 변수였다. 엑슨모빌의 CEO 대런 우즈(Darren Woods)는 올해 언론과의 인터뷰 등을 통해 2040년까지 인구 증가, 특히 중산층 증가로 에너지 수요는 20% 증가할 것이며 이 수요는 석유와 가스에 의해 충족될 것이라고 주장했다.*[efn_note]Oilnow(2020).“ExxonMobil sees future demand for oil and gas increasing by 20% – Darren Woods”, May 03.[/efn_note] 엑슨모빌은 위와 같은‘인구 증가에 따른 석유 수요 증가’를 올해 연례 보고서에서도 명시하며 장기 전략의 근거로 삼고 있다.*[efn_note]엑슨모빌은 연례 보고서에서 인구 증가 외에 현재 지구상에서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지역에 사는 인구가 약 10억명에 달한다는 점도 향후 에너지 수요에 중요한 암시를 준다고 주장한다.[/efn_note]

석유 수요를 결정하는 가장 큰 요인 : 세계 인구 변화

실제로 지난 20여 년간 석유 소비량이 우상향한 가장 큰 이유는 인구가 증가하고, 이로 인해 경제 규모가 커졌기 때문이다. 비단 석유 수요뿐만 아니라, 경제 관련 장기 예측을 할 때 가장 중요한 요소는 인구이다. 현대 경영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피터 드러커는 “인구 통계 변화는 정확한 미래 예측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 할 정도로 인구의 영향을 강조했다. 특히 석유 수요는 식량을 제외한다면, 다른 어떤 상품 수요보다 인구와 상관관계가 높다. 따라서 인구는 석유 수요 예측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UN의 ‘2019년 세계인구전망’ 에 따르면 세계 인구는 2019년 기준 약 77억 명 이며, 2040년에 92억 명에 이르고 2057년에 100억 명을 돌파한다. 이러한 인구 증가는 필연적으로 에너지 소비를 증가시킨다. 인구 증가와 함께 자연스럽게 시장이 커지고 경제 규모가 커질 것이다. 이동하는 사람의 수와 물자의 양도 늘어날 것이다. 무엇보다 늘어난 사람만큼 더 많은 식량과 주택이 필요하고 더 많은 생필품이 소비될 것이다. 인구가 석유 수요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펀더멘탈적 요소라는 것을 논박하기는 어렵다.

과거 20년간의 추세도 이를 뒷받침한다. 2000년 기준 약 61억 명이었던 세계 인구는 2019년에 약 77억 명으로 25.6% 증가했다. 같은 기간 석유 수요는 하루 약 7,700만 배럴에서 약 1억 배럴로 28.5% 증가했다. 최근 20년간은 석유 수요가 인구보다 약간 더 크게 증가한 것이다. UN은 현재 77억 명인 세계 인구가 2040년에는 92억 명이 되어 현재 대비 약 19% 증가할 것으로 전망한다. 과거 20년간의 흐름을 반복한다면 2040년의 석유 수요는 19%보다 약간 더 크게 증가할 것이다. 엑슨모빌의 CEO 대런 우즈는 2020년 인터뷰에서 19%보다 1%포인트가 큰 20%의 수요 증가를 주장했다. 세계 인구가 감소하지 않는 한 석유 수요는 완만하게 증가할 것이라는 것은 타당한 생각이다. 이러한 이유로 석유 수요 전망은 각 기관마다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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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수요 전망을 하는 기관 중 언론과 일반에서 가장 많이 관심을 갖는 곳으로 국제에너지기구 (IEA), 석유수출국기구(OPEC) 그리고 영국의 메이 저 석유 회사 British Petroleum(BP)을 들 수 있다. BP는 사기업이지만, 매년 에너지 전망 보고서와 에너지 관련 통계를 일반에 공개한다. BP의 전망과 통계도 에너지 관련 국제기구가 발표하는 자료와 함께 공신력 있는 자료로 활용된다. 대체로 IEA, OPEC, BP 3개 기관의 에너지 수요 전망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래 표에서 보듯 2019년까지 3개 기관은 공통적으로 2040년 석유 수요량을 하루 1.1억 배럴 내외로 예측하며, 2018년 대비 약 10% 정도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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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생에너지,‘추가’이지 ‘대체’가 아니다.

물론 인구 외에도 석유 수요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신재생 에너지 확대, 전기차 보급, 에너지 효율 개선 등을 들 수 있다. 특히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기대가 크고, 그것의 확대는 바람직한 미래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에 대한 IEA와 OPEC의 입장은 분명하다. 향후 신재생에너지가 기존 에너지 믹스에 ‘추가’되지만, 그것이 기존 에너지를 ‘대체’ 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하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IEA는 에너지원별 수요에서 현재 14.1% 수준인 신재생에너지*[efn_note]수력, 풍력, 태양광, 바이오매스 등을 모두 포함[/efn_note]의 비율이 2040년에 20.7%로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정도 비중 확대로는 석유 수요 증가세를 ‘ 둔화 ’시킬 수는 있지만 , 증가세 자체를 ‘상쇄’ 할 수 없다. 물론 향후 신재생에너지 확대 추세는 과거보다 뚜렷해질 것이다. 그래서 IEA는 세계 인구가 2040년까지 19% 증가하는 상황에서도 석유 수요는 약 10% 증가하는 수준에서 머문다고 보았다. 신재생에너지의 비중 증가 정도인 6.6%포인트(14.1%→ 20.7%)가 어느 정도 석유 수요 증가세를 완화한다고 본 것이다.

IEA의 전망도 현재 분위기에서는 불투명하다. 현재 에너지 믹스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던 원자력발전과 석탄 화력발전이 감소하는 추세이다. 신재생에너지는 이 감소분을 충당하는 역할을 하는 것만도 쉽지 않을 것이다. 원자력발전에 대해서는 나라마다 입장과 정책이 달라 그 미래를 예측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미세먼지와 온실가스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석탄 화력발전은 파리 기후협약의 이행과 기후 변화 이슈에 의해 가장 먼저 퇴출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에서 석탄 화력발전은 전체 발전량의 약 40%를 담당하고 있고, 전 세계적으로도 약 37%의 비중이다. 신재생에너지로 현재 주력 발전 수단인 석탄 화력발전을 대체하는 것만도 쉽지 않다. 여기에 탈원전 정책까지 더해진다면 향후 20~30년간은 신재생에너지의 확대가 석유 수요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한편, 전기차가 늘어나면 휘발유, 경유 등의 수요가 줄어들기 때문에 석유 수요가 감소할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전기차 확대 정도에 대해서는 기관별로 다르게 예측한다. 2040년 전 세계의 차량 수는 약 20억대로 예상되는데, 이 중 전기차의 수로 IEA는 3.3억 대*[efn_note]IEA(2020), World Energy Outlook 2020, p.180[/efn_note], OPEC은 2.8억대, 블룸버그는 5.6억대를 제시한다. 이 중 가장 많게 예측하는 블룸버그의 예측대로 20억대의 차량 중 5.6억대가 전기차로 채워져도 여전히 14억대 이상이 내연기관차로 남는다. 2020년 현재 전체 차량이 약 14억대 정도다. 전기차가 아무리 늘어도, 내연기관 차량의 수는 오늘날과 비슷한 수준으로 유지된다는 것이다. IEA는 전기차의 증가보다 에너지 효율 개선으로 인한 석유 소비량 감소가 더 클 것으로 전망했다.

골드만삭스는 2020년 7월에 낸 석유 수요 전망 보고서에서 석유 수요를 결정하는 요소로 경제 성장률, 에너지 효율성 개선, 전기차 확대 등을 들었다. 그리고 이 요소들이 모두 석유 수요를 억제하는 방향으로 나타날 때 비로소 석유 수요는 감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즉, 세계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을 하면서 전기차는 확대되고, 에너지 효율 기술은 개선되는 상황에서만 석유 수요가 감소할 것으로 본 것이다. 이런 시나리오는 가능하지 않다는 점에서 사실상 석유 수요는 향후 20년간 증가할 것이라고 본 것이다. 골드만삭스의 기본 시나리오는 10% 석유 수요 증가를 예상한 IEA의 전망과 유사하다.

인구 증가를 주도하는 나라들이 주로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산유국이라는 점도 석유 수요 증가 쪽에 무게를 더한다. UN은 향후 인구 증가율이 높은 나라로 인도, 나이지리아, 인도네시아, 콩고, 이집트 등을 지목한다. 아프리카의 최대 산유국인 나이지리아의 인구는 현재 2억 명에서 2067년에 5억 명으로 증가하고, 또 다른 산유국 콩고도 같은 기간 0.9억 명에서 2.6억 명으로 증가한다. 아시아의 주요 산유국 인도네시아도 2.7억 명에서 3.4억 명으로 증가한다. 중동의 이라크도 같은 기간 인구가 2배 이상으로 늘고, 사우디와 이란의 인구도 큰 폭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국가들은 석유 경제를 포기할 수 없는 나라들이다. 그들에게 석유를 포기하거나 감산하라는 것은 국가 경제를 포기하라는 것과 같다.

앞서 언급했듯이 위와 같은 점들 때문에 업계와 에너지 관련 기구 사이에서는 적어도 2040년까지는 석유 수요가 증가한다는 것이 공통적인 시각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컨센서스가 2020년 BP 보고서에 의해 깨진다. 2019년과 달리 2020년 발표된 3개 기관 전망에서 BP만 매우 다른 예측치를 내놓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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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P 2020년 에너지 전망’의 의도

2020년 9월, BP는 연례 에너지 전망 보고서를 통해 2020년 이후 석유 수요는 증가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2019년에 인류는 석유 수요의 최고점을 찍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는 일반적 의견과 다를 뿐 아니라, BP의 직전 연도 의견과도 다른 것이었다. BP의 전망은 발표 직후, 통념과 상충되어서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석유 수요 피크가 지났다는 BP의 주장은 한국 언론도 크게 다루었는데, 당시 “석유 시대의 종말”이라는 제목의 기사들이 포털 사이트의 메인을 장식하기도 했다.

BP는 3개 시나리오로 나누어 예측했는데, 석유 수요가 가장 크게 감소하는 Net zero 시나리오에서는 2040년에 석유 수요가 2019년 대비 50% 가까이 감소한다. 가장 적게 감소하는 Business- as-usual(현상 유지) 시나리오에서도 2040년까지 약 4% 감소할 것으로 봤는데, 이것도 전년의 약 10% 증가 전망에 비하면 큰 변화를 준 것이다. 그리고 앞의 두 시나리오의 중간치인 Rapid 시나리오에서는 약 31% 감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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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P는 이러한 전망을 정당화하기 위해 향후 신재생에너지가 크게 증가하고, 에너지 효율 기술도 획기적으로 발전할 것이라고 설명한다. 신재생에너지는 Rapid 시나리오*[efn_note]Rapid 시나리오는 3개 시나리오 중 중위값으로 모든 분석에서 대체로 가장 먼저 제시된다.[/efn_note] 기준에서 2040년 전체 에너지원별 비중의 33%에 이른다. IEA의 전망치 약 20.7%에 비해 10%포인트 이상 높다. 전기차 보급에 대해서는 더욱 과감한 전망을 내놓았는데, Rapid 기준에서 2040년에 전기차 비율은 50%에 이른다. IEA는 같은 시기의 전기차 비율을 약 16%로 보았다.

BP의 전망은 여러 면에서 비판을 받았는데, 가장 크게 지적할 부분은 인구 증가에도 불구하고 에너지 총수요는 크게 증가하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B P는 ‘UN 2019년 세계인구 전망’을 그대로 인용해서 2050년까지 인구가 약 20억 명 증가하여 97억 명에 이른다고 했다. 또한 GDP는 연평균 2.6%씩 성장하여, 2018년 129조 달러에서 2050년에 297조 달러에 이른다고 보았다. 이것은 3개 시나리오 공통의 전제이다. 인구가 20억 명 증가하고 GDP는 2배 이상으로 증가하는 상황이라면 에너지 사용량도 어느 정도 비례해 늘어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러나 BP는 중간치 시나리오인 Rapid에서 세계 에너지 수요량이 2018년 576EJ*[efn_note]EJ : Exa Joule(엑사줄), 에너지 소비단위[/efn_note]에서 2050년 625EJ로, 30여 년간 불과 8.5% 증가한다고 전망했다. 인구와 경제의 규모가 대폭 커진다는 가정하에서 이와 같은 낮은 증가율은 모순적이다. 특히 2030년 이후부터는 인구 증가와 경제 성장에도 불구하고 무려 20년간 에너지 수요량 곡선이 수평을 유지 하는데 이는 비현실적인 느낌을 준다. 20년간 매년 증가하는 에너지 수요가 매년 개선되는 에너지 효율에 의해 상쇄되어 증가율이 정확히 제로가 된다는 것은 너무 작위적이다. 또한, 그것이 지금이 아닌 10년 후부터 나타난다는 것도 이성보다는 희망이 앞선 전망이라는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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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P는 향후 석유 수요 감소의 주요한 원인으로 에너지 효율 개선 외에 신재생 에너지의 확대를 이야기한다. 그러나 인구 증가를 주도하는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산유국, 그리고 그 외 개발도상국이 유럽처럼 신재생에너지를 확대할 자본과 기술을 향후 10~20년 내 확보할 수 있을지는 매우 불확실하다. BP는 앞으로 5년 안에 세계 신재생에너지 투자 규모가 석유 가스 투자 이상으로 증가할 것이라고 주장했는데, 구체적으로 Rapid 기준에서 2018년 2,820억 달러에서 2025년 4,630억 달러로 64% 증가한다는 것이다. 이는 2020년 기준 석유 가스 투자 규모인 약 3,000억 달러 (추정)에 대비해서 50% 이상 많은 금액이다.

그러나 현실은 여전히 많은 에너지 기업이 석유·가스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BP처럼 혁신을 추구하는 일부의 서구 메이저 석유회사와 석유 매장량이 풍부한 산유국의 국영석유회사들은 입장도 다르고, 정부와 투자자의 요구도 다르다. 더구나 중동 산유국은 유가 하락으로 극심한 재정난을 겪고 있어 신규사업 진출이 어려운 상황이다. 또한 다른 대륙에서도 유럽만큼 강한 환경규제를 실시하지 않고 있어 위와 같은 투자 확대는 쉽지 않아 보인다.

왜 BP는 위와 같이 주류에서 벗어난 무리한 보고서를 냈을까? 이는 BP의 미래 전략 때문으로 보인다. 2020년 2월 취임한 BP의 CEO 버나드루 니 (Bernard Looney)는 취임 직후 BP의 석유·가스 생산량을 향후 10년 내에 40% 감축하고, 신재생에너지 사업에 투자를 확대하겠다고 선언했다. BP의 전략은 메이저 중 가장 먼저 신재생에너지 분야를 선점하여 이 분야의 선두 기업이 되겠다는 것이다. BP의 연례 에너지 전망 보고서는 통상 매년 2월경에 나오나, 2020년에는 9월로 발간이 연기되면서 그해 2월 취임한 신임 CEO의 장기 전략과 경영철학이 대폭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취임 직후, BP를 석유회사에서 종합에너지 회사로 변모시키겠다고 천명하며 175억 달러(한화 약 21조 원)의 석유 가스 자산을 손상 처리했다. 자산손상 처리는 유가 하락으로 동사의 광구나 유전의 가치가 현저하게 떨어졌으므로 이를 재 무제 표에 반영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자산 총액의 6%가 사라졌다. 동시에 신재생에너지 투자액 10배 증대, 2050년까지의 탄소 순 배출 제로 실현 등을 선언하며 강력한 에너지 전환 의지를 보였다. 이러한 전략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추진 동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신재생에너지 사업의 성장성이 매우 우수하고 석유 수요는 감소할 것이라는 전망이 필요하다.

결론

BP는 희망적인 미래를 그린다. 물론 눈에 보이는 계량화된 사실이나 다수 의견에 근거해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세상을 바꾸는 것은 아니었다. 미쳤다는 소리를 들으며 그 시대의 불가능한 목표를 추구한 사람에 의해 변화가 이루어졌다. 한국 반도체 산업의 등장이 그러했고, 스티브 잡스의 혁신이 그러했다.

그러나 역사상 에너지 전환보다 큰 변화는 없었다. 18세기 영국에서 석탄이 처음으로 주에너지원으로 사용되며 산업혁명과 서구가 세계를 지배하는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 이후 석탄이 석유로 대체되면서 현대 기술 문명이 출현했다. 앞으로의 에너지 전환도 ‘문명의 전환’이라 할 정도로 거대한 변혁을 요구한다. 에너지의 생산, 수송, 변환, 저장, 그리고 소비에 이르는 전 과정의 혁신이 필요할 뿐 아니라, 국제 정치와 세계 경제의 변화도 수반할 것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큰 프로젝트로서 세대에 걸친 긴 여정이 될 것이다. 하나의 회사, 한 나라의 정부보다는 전 지구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2019년 인류는 하루 약 1억 배럴의 석유를 소비했다. 전쟁, 기근, 역병이 아니라면, 이 흐름이 유가의 변동처럼 급브레이크를 밟는 듯한 모습으로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가까운 미래에 각국의 정책이나 미국에서 정권의 변화 등으로 인해 석유 수요가 급격히 감소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향후 신재생에너지 분야에서 놀라울 만한 신 기술이 출현하면서 인류는 매우 천천히 석유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빨리 실현되길 바라지만 희망과 현실은 구별되어야 한다. 지금은 관찰할 수 있는 객관적 자료와 석유 수요의 거대한 흐름에서 아래와 같이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인구라는 거시경제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의 변화와 신재생에너지의 제한적 영향, 석탄 화력과 원자력 등 기존 주력 에너지원의 축소, 그리고 석유 경제를 포기할 수 없는 국가들의 인구 증가 등을 고려할 때 적어도 2040년까지는 석유 수요 증가세가 이어질 것으로 예측된다.

결론적으로 석유 시대를 좀 더 준비할 필요가 있다. 장기적으로 석유 수요가 증가함을 염두에 두고, 관련 기관의 역할과 정책을 생각해야 한다. 그 역할과 정책은 석유의 안정적 수급을 위한 노력과 함께, 적정 수준으로 소비하고 깨끗하게 사용하는 노력을 포함한다. 물론 새로운 에너지원을 향한 노력도 함께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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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웅 과장 - 한국석유공사 에너지정보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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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콘텐츠는 2020년 11월 4일 한국석유공사에서 발행한 주간해설을 발췌하여 재구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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