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0월 문재인 대통령의 “2050년 탄소 중립 선언” 이후, 12월 정부는 “적응적(Adaptive) 감축”에서 “능동적(Proactive) 대응”으로 전환을 통해 탄소중립, 경제성장, 삶의 질 향상을 동시에 달성한다는 “2050 탄소중립을 위한 추진전략”을 발표하였다. 해당 전략에서 수송 부문 중 2017년 기준 96%인 도로의 탄소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수소·전기차 생산 및 보급 확대, 기술개발 및 인프라 확충 등을 통해 휘발유·경유차에서 수소·전기차로의 전환을 가속화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천명하였다.
같은 맥락에서 대통령 직속 ‘미세먼지 문제 해결을 위한 국가기후환경 회의’도 지난 11월 수송 부문의 미세먼지와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해 2035년 또는 2040년부터 내연기관차 신차 판매중단과 수소·전기차,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차만, 혹은 수소·전기차 신차 판매를 허용해야 한다고 제안하였다. 이보다 앞서 2019년 6월 확정된 제3차 에너지기본계획을 통해 정부는 2040년까지 수소차 290만대, 전기차 830만대 총 1,200만대 수소·전기차 보급 등을 통해 석유 수요를 BAU(Business As Usual) 대비 31.1% 감축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한 바 있다.
이러한 일련의 조치들은 향후 사실상 석유류 중심에서 수소·전기 등으로 수송 연료의 완전한 전환을 달성하겠다는 정부의 강력한 의지로 해석되며, 당면한 수송 연료 시장 정책환경의 급격한 변화를 의미한다. 이 글은 향후 급변이 예견된 수송 연료 시장의 지각변동을 가늠하는 차원에서 특히 제3차 에너지기본계획을 통해 표명된 수소·전기차로의 전환 추진이 향후 국내 석유 수요에 미치게 될 영향에 대해 보다 자세히 알아보고자 한다.
1. 2040년까지 국내 석유수요 전망
국내 석유 소비가 향후 어떻게 변화할지, 특히 정부의 수소·전기차로의 전환 추진이 향후 석유 수요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지를 가늠하기 위해, 본고는 「2019 장기 에너지 전망」 내 석유 수요 전망 자료를 활용하고자 한다. 「2019 장기 에너지 전망」은 2019년 6월 확정된 “제3차 에너지기본계획”이 발표된 이후 시행된 첫 장기 에너지 수급 전망으로, “기준 시나리오”와 함께“제3차 에너지기본계획”의 목표를 달성할 경우 예상되는 에너지 수급 경로를 전망한 “목표 시나리오”를 별도로 제시하고 있다.
이때 기준 시나리오는 경제 및 인구에 대한 예측과 함께 현재에 알려진 기술이 추세적 발전을 지속하고, 전망 시점을 기준으로 시행되고 있는 에너지 관련 정책 및 수단들이 일몰 시점을 포함하여 전망 기간에도 지속된다는 가정하에 예상되는 미래의 에너지 수급구조이다. 그래서 “제3차 에너지기본계획”이 제시하고 있는 최종 소비 목표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제안한 정책수단들이 구체적으로 입법화되거나 정부 정책으로 추진되기 이전이기 때문에 반영하지 않은 관계로 일종의 BAU 시나리오라 할 수 있다.
반면, 목표 시나리오는 ‘제3차 에너지기본계획’이 제시하는 에너지 수요 저감 목표에 도달하는 과정을 전망한 시나리오이다. 그래서 기준 시나리오 상황에서 최종 에너지 소비의 목표 수준을 달성하기 위해 에너지기본계획에서 제시하는 기본 방향과 주요 정책 수단들을 반영할 경우의 결과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우선 BAU에 해당하는 기준 시나리오를 기준으로 2040년까지 석유 수요는 2030년경 이후 수송 부문에서의 감소 등으로 연평균 0.3% 증가에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산업부문 석유 소비는 석유화학업의 원료용 소비의 지속적인 증가로 연평균 0.7% 증가, 2018년부터 2040년까지 약 12백만 toe 증가할 것으로 보이는데, 이 중 석유화학에서 원료용으로 사용하는 납사 수요가 9백만 toe 증가함으로써 약 75%를 차지하여 산업용 석유 수요를 넘어 전체 석유 수요 증가를 견인할 것으로 전망된다.
반면 수송 부문 석유 수요는 자동차 보급 및 교통 수요 증가 등으로 2030년경까지는 증가하겠지만, 이후로는 내연기관 자동차 보급 축소 등으로 감소하면서 전망 기간 전체로는 연평균 0.1% 증가로 정체할 것으로 전망된다. 수송 부문 석유 수요의 중심인 휘발유와 경유 수요는 굳이 정부의 적극적인 수소·전기차로의 전환 정책이 아니더라도 내연기관차 보급이 2030년경 이후 감소로 전환하면서 휘발유는 연평균 0.1% 증가하지만, 경유는 0.6%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2. 수소·전기차로의 전환이 국내 석유수요에 미칠 영향
‘제3차 에너지기본계획’을 통해 정부의 수소·전기차로의 전환 추진이 반영된 목표 시나리오상의 석유 수요는 2020년 947.2백만 배럴에서 2025년 956.9백만 배럴까지는 증가하지만, 이후 2040년까지 연평균 0.4% 감소하여 2040년 869백만 배럴까지 축소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로 인해 BAU에 해당하는 기준 시나리오와 비교해서 2030년 8%(75.백만 배럴), 2035년에는 11.9%(107.9백만 배럴), 나아가 2040년에는 15.6%(135.6백만 배럴) 정도 석유 수요가 감소될 것으로 전망되었다. 다시 말해 수소·전기차로의 전환 추진 등 ‘제3차 에너지기본계획’에 따른 석유 수요 저감조치들이 실행될 경우, 2040년까지 석유제품 내수 시장이 적어도 15% 이상 축소될 것으로 보인다.
제품별로는 2040년까지 BAU에 해당하는 기준 시나리오와 비교해서 등유가 41%로 가장 높은 수요 저감율을 보이지만, 이는 기저효과에 기인한 것으로 보이며, 실제 물량 기준으로는 수송용 에너지인 경유와 휘발유 그리고 부탄 순으로 수요 규모가 큰 것으로 보인다. 우선 가장 수요가 많이 축소될 것으로 보이는 경유는 BAU에 해당하는 기준 시나리오와 비교해서 2030년 29.5백만 배럴(18.3%)에서 2035년 42.5백만 배럴(27.8%), 2040년에는 54.7백만 배럴(37.7%)이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휘발유도 BAU에 해당하는 기준 시나리오와 비교해서 2030년 16.8백만 배럴(19%)에서 2035년 24.6백만 배럴(28.5%), 2040년에는 31백만 배럴(37.7%)까지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부탄 역시 2030년 8백만 배럴(18%), 2035년 12.4백만 배럴(27.9%) 그리고 2040년 15.9백만 배럴(36.7%) 축소될 것으로 전망된다.
결국 ‘제3차 에너지기본계획’에 따른 석유 수요 저감조치들이 실행될 경우, 주로 경유와 휘발유 등 수송용 석유 수요 감소가 두드러질 것으로 보이며, 이는 ‘제3차 에너지기본계획’에 반영된 석유 수요 저감조치가 연비규제 등과 함께 내연기관차(특히 경유차) 축소와 수소·전기차로의 전환 추진이 주된 수단이기 때문이다. 이는 용도별 수요 중 수송용 석유 수요만을 따로 분석했을 경우, 2040년까지 BAU에 해당하는 기준 시나리오와 비교해서 줄어드는 경향이 경유, 휘발유, 부탄 등에서 큰 폭으로 나타난다는 사실을 통해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
이 중 가장 큰 축소가 예상되는 수송용 경유 수요는 BAU에 해당하는 기준 시나리오와 비교해서 2030년 27.1백만 배럴(19.1%)에서 2035년 40.5백만 배럴(30%), 2040년에는 52.97백만 배럴(41.4%)이 줄어들면서 전체 경유 수요 축소분에서 2030년 92%, 2035년 95.2%, 2040년에는 96.9%를 차지할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수송용 휘발유의 경우도 유사한데, BAU에 해당하는 기준 시나리오와 비교해서 2030년 16.7백만 배럴(19.4%)에서 2035년 24.6백만 배럴(28.9%), 2040년에는 30.1백만 배럴(38.2%)이 줄어들면서 전체 휘발유 수요 축소분에서 99% 이상을 차지할 것으로 나타났다. 이로 인해 ‘제3차 에너지기본계획’에 따른 석유 수요 저감 조치 실행은 석유제품 수요의 구조에도 변화를 줄 수밖에 없다.
먼저 2030년에는 휘발유와 경유 수요가 전체 석유제품 수요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9% 줄어든 반면, 납사 비중이 3.9% 증가한다. 2040년에는 이러한 구조변화 양상이 심화되어 휘발유와 경유 수요 비중이 6.4% 감소하는 대신 납사 수요가 7.3% 증가하게 된다. 결국 전체 석유 수요에서 납사가 차지하는 비중이 기준 시나리오의 52.5%에서 59.8%로 확대되어 납사 편중도가 보다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2019년 기준 전체 석유 수요에서 납사가 차지하는 비중이 약 절반(47%) 정도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제3차 에너지기본계획’에 반영된 수소·전기차로의 전환 추진은 국내 석유제품 내수 시장에서 휘발유, 경유 등 수송용 연료 수요를 위축시킴으로써 국내 정유산업이 산업용 납사 수요에 대한 의존도를 60%까지 증가시키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3. 수소·전기차로의 전환에 대한 국내 정유산업 대응전략 마련 필요성
국내 정유 산업은 현재 세계 5위의 정제 설비를 보유하고 있으며 최고 수준의 정제 효율성을 바탕으로 품질, 효율 및 가격 등 측면에서 국제 경쟁력을 확보하면서 반도체, 자동차, 조선, 석유화학 등과 함께 경제 성장을 견인하는 주요 수출산업으로서 지위를 누리고 있다. 참고로 2019년 기준 정유 산업(석유제품)의 GDP 기여율은 2.01%로 조선(0.35%), 철강(1.11%)보다 크며, 반도체(3.23%)와 더불어 국민경제에 중요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한편 2019년 기준으로 납사가 국내에서 소비되는 석유제품 중 약 47% 정도 차지하지만, 실제 국내 정유사들이 납사를 생산하는 비중은 25% 정도에 그치고 있다. 비슷하게 LPG도 전체 소비 비중은 13.2%이지만, 생산 비중은 2.6% 수준에 불과하다. 대신 휘발유나 경유, 항공유 등은 반대로 소비 비중에서 비해 생산 비중이 각각 8.9%, 18.4%, 4.2%이지만, 생산 비중은 이보다 높은 13.5%, 29.3%, 13.7%를 차지한다. 다시 말해 납사나 LPG 등은 국내 초과수요 상태이지만, 휘발유, 경유나 항공유 등 수송용 연료는 초과공급 상태에 있다.
따라서 석유제품의 수출도 현재 초과공급 상태인 휘발유, 경유나 항공유 등 수송용 연료가 수출 주력 상품이다. 가령 2019년 기준으로 경유가 전체 석유 제품 수출량의 39.5%인 190.2백만 배럴이 수출되었으며, 다음으로 94.4백만 배럴(19.6%)을 수출한 항공유와 86.2백만 배럴(17.9%)을 수출한 휘발유가 그 뒤를 따른다. 그리고 이러한 세 가지 제품 수출 비중을 합산할 경우 전체 수출량의 77% 수준으로, 사실상 우리나라 석유제품 수출은 수송용 연료 수출이라고 봐도 무방하며, 국내 정유산업 입장에서는 수출 효자 상품이라 할 수 있다.
더 나아가 경유, 휘발유, 항공유 등 수송용 연료는 국내 정유산업 입장에서는 주요 수입원이기도 하다. 각 제품의 판매단가(매출단가)와 원유 도입단가 간의 차이인 정제 마진은 2019년 기준으로 리터당 경유가 118.8원으로 가장 높으며, 다음은 항공유로서 104.2원, 그리고 휘발유 70.1원 순이었다. 특히 경유는 높은 정제 마진과 함께 판매량도 전체 판매량의 33.9%로 가장 큰 관계로 2019년 전체 정유 산업 영업이익 약 1조 5백억 원 중 절반(50.9%)이 경유 생산 및 판매로부터 발생하였다. 여기에 휘발유까지 포함할 경우 영업이익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약 64.8%로서, 어림잡아 국내 정유 산업은 전체 수익의 2/3를 경유와 휘발유에 의존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이러한 국내 정유산업의 구조 및 수소·전기차로의 전환 추진 등으로 인해 국내 석유 제품 내수 시장에서 휘발유, 경유 등 수송용 연료 수요가 위축될 경우 국내 정유 산업이 받게 될 타격은 상당할 수밖에 없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수소·전기차로의 전환 추진 등 ‘제3차 에너지기본계획’에 따른 석유 수요 저감조치들이 실행될 경우, 2040년까지 석유제품 내수 시장이 적어도 15% 이상 축소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경유와 휘발유 수요에 대한 타격이 심각한데, 경유 수요의 경우 2040년까지 BAU(기준 시나리오) 대비 37.7%(54.7백만 배럴) 휘발유 수요는 37.7%(31백만 배럴)감소할 것으로 보인다. 국내 정유 산업의 전체 수익의 2/3가 경유와 휘발유 판매에서 발생한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수송 에너지 전환 추진으로 인해 발생한 국내 석유 제품 내수 시장에서 휘발유, 경유 등 수송용 연료 수요의 위축은 국내 정유 산업에 상당한 타격이 된다.
대신 수소·전기차로의 전환 추진 등은 석유 제품 수요의 구조도 변화시키는데, 국내 정유 산업은 산업용 납사 수요에 대한 의존도가 60%까지 증가시키게 된다. 이때 석유 제품 공급 측면에서 시장 축소가 일정 정도를 넘어설 경우 다른 제품 생산 및 공급은 포기하는 대신 납사의 생산 및 공급에 집중하는 것이 공급 안정성 등을 감안할 경우 적절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사실상 국내 정유 산업은 단지 석유화학산업의 원료 공급 부문으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며, 그동안의 수출 주력산업으로서의 지위는 당연히 상실할 수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또한 석유 제품의 연산품 특성상 특정 제품의 생산수율 조정을 통한 생산량 증감에 한계가 있어 가동률 조정으로 인한 생산량 감축은 피할 수 없게 된다. 더 나아가 수요가 증대될 납사의 수급에도 영향을 주게 되어 석유화학산업의 산업 및 수출 경쟁력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래서 무엇보다 석유 제품이 연산품임을 고려하여 납사 수율을 최대로 끌어올리는 생산기술 개발과 함께 필연적으로 발생하게 될 부산품(기존 석유제품)의 처리 문제 등에 대해서도 대책 마련이 요구된다.
물론 수소·전기차로의 전환에 대한 대응 전략 마련은 국내 정유산업이 자기 책임 하에 스스로 대응 전략을 마련하기 위한 자구노력과 자기혁신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정유 산업은 일부 정유 대기업들의 전유물이 아닌, 그 영속이 국민 모두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 있는 비유컨대 ‘국민의 공적 자산’이라는 점도 고려되어야 한다. 따라서 정유 산업 자체적인 대응 전략 마련과는 별도로 정부 및 공공부문의 대응 전략 마련을 위한 정책적 관심과 노력도 필요하다.
※ 본 해설은 2020년 에너지경제연구원 기본연구보고서「E-Mobility 성장에 따른 석유산업 대응 전략 연구 (2/4)」의 일부 내용으로 작성된 원고입니다.
김재경 연구위원 - 에너지경제연구원
본 글은 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석유공사의 공식입장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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