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며
오로지 신재생 에너지로만 운영되는 도시는 기후 변화에 위기 의식을 가지고 탄소 중립 실현에 앞장서는 유럽 국가들에서나 존재할 것 같은 모습이다. 하지만 이러한 친환경 도시가 세계 최대 산유국 사우디아라비아에 건설될 계획이다. 사우디아라비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오일 머니로 무장한 부자 국가일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석유 부국에서 화석 연료가 아닌 신재생 에너지로 도시의 모든 활동이 이루어진다니 다소 아이러니한 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사우디아라비아가 구상 중인 서쪽 타부크(Tabuk)주에 위치한 친환경 네옴 시티(Neom City) 프로젝트의 핵심 비전이다. 네옴 시티 프로젝트는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인 무함마드 살만이 포스트 오일 시대를 대비하여 경제 다각화를 핵심 목표로 추진 중인 사우디 비전 2030의 핵심 계획 중 하나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지난 2016년 포스트 오일 시대를 대비하여 경제 다각화를 추진하기 위한 계획으로 비전 2030(Vision 2030)을 발표, 현재 적극적으로 추진 중이다. 이는 사우디아라비아 스스로 탈석유에 나서야 할 필요성을 인식하고 이를 위해 정치, 사회, 경제를 포괄하는 통합적 개혁에 나선 것이다. 비전 2030의 실현을 통해 석유 산업 외의 다른 분야에서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것이 주요 목표이다. 특히, 4차 산업 혁명 시대를 대비하여 IT, 신재생 에너지, 인공 지능 등의 첨단 과학 기술 육성에 나서는 것이 비전 2030의 핵심 전략이다.*[efn_note]임성수 손원호, 중동을 보면 미래 경제가 보인다, 2022년[/efn_note] 이러한 사우디 정부의 사활을 건 프로젝트 중에 신재생 에너지로 움직이는 도시 계획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은 세계적인 탄소 중립 움직임에 동참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또한, 탄소 중립 실현은 세계 최대 원유 생산국 중 하나인 사우디 정부에게도 피할 수 없는 과제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렇게 사우디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탈석유 및 저탄소 경제를 위한 움직임은 더 이상 유럽이나 미국에서만 볼 수 있는 현상이 아니다. 석유 자원이 경제 구조를 절대적으로 지배하는 중동 산유 국가들도 이러한 탄소 중립 실현을 위한 대열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나서고 있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주요 중동 산유국들의 신재생 에너지 개발을 위한 노력과 이것이 지니는 의미에 대해 중점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2. 왜 신재생 에너지 개발에 나서는가?
실제로 지난 10년간 미국의 셰일 자원 붐으로 인한 미국의 석유 수출 개시 및 수출량 증가와, 전 세계적인 신재생 에너지 개발 노력의 확대와 함께 중동 산유국들의 원유 수출량은 큰 증가세를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국제 석유 시장의 변화 속에서 지난 2014년에는 유가가 50% 이상 하락하여 50달러 선을 기록하는 등, 지나친 유가 변동의 폭도 중동 산유국들에게 충격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실제로 이로 인해 2014년에서 2015년 사우디아라비아는 대규모 재정적자를 기록하며 경제적 위기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위기를 겪은 중동 산유국들은 석유 수출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경제 구조의 취약성을 깨닫게 되었다. 중동의 석유 부국들도 시시각각 변화하는 세계 경제의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새로운 돌파구를 찾고 탈석유 시대를 준비하는 세계적인 흐름에 동참해야 하는 것이 숙명이 된 것이다. 또한, 최근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또 다시 석유 수요 감소로 인한 유가 하락으로 경제가 타격을 입으면서 경제 다각화 및 석유 수입 의존도 감소의 필요성을 재인식하게 되었다. 정치적인 측면에서도 미국의 셰일 혁명으로 인한 석유 수출량 증가 등으로 중동이 미국 외교 정책에 있어서 차지하는 중요성이 감소하고 있다. 그동안 세계 에너지 안보 유지를 이유로 중동 산유국들의 안보와 권위적인 지도자들의 안위를 미국으로부터 암묵적으로 보장받던 시기도 끝이 나고 있다. 따라서, 중동 산유국들은 더 이상 석유 자원을 빌미로 하여 국제사회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시대가 저물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또한, 기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탄소 중립 노력은 중동 산유국들에게도 예외는 아니다. 전문가들은 중동 국가들도 기후 변화로 인해 극심한 폭염 및 물 부족 등을 겪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중동 국가들의 생존을 위해서라도 신재생 에너지 개발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3. 중동 산유국 각국의 신재생 에너지 개발 노력
이처럼 사우디아라비아는 국가적 차원에서 포괄적으로 신재생 에너지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계획을 바탕으로 미래 친환경 도시 네옴 시티 프로젝트 추진 계획을 발표하고 투자 유치에 나서고 있다. 사우디 정부는 네옴 시티에 사우디아라비아 전력 기업인 ACWA파워를 주축으로 하여 그린 수소 생산설비 건설 계획을 발표하였다. 사우디 ACWA파워와 미국의 에어프로덕츠(Air Products & Chemicals)는 태양광 및 풍력으로 만든 4GW 규모의 전력을 통해서 2025년까지 하루 650톤의 그린 수소에너지 생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러한 정부의 노력과 함께 사우디 국영석유회사인 아람코(Aramco)도 탄소 감축 노력에 동참하고 있다. 세계 최대 에너지 기업으로서 이러한 세계적인 중대 과제에 선도적인 역할을 하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있다. 2019년 아람코사와 미국의 에어프로덕츠 는 다흐란 테크노밸리 사이언스 파크에 첫 수소 충전소를 건립하였다. 또한, 2020년 9월에는 아람코와 일본의 에너지경제연구원(Institute of Energy Economics)이 공동으로 사우디 SABIC 기업과 파트너십을 맺고 사우디로부터 일본으로 수소 운반 매개체인 블루 암모니아를 수출하는 데 성공하였다. 또한, 탄소 배출 감축 노력의 일환으로 아람코는 2015년부터 하위야(Hawiyah) 가스 생산 설비에 연간 80만 톤의 이산화탄소 포집 능력을 갖춘 탄소 포집 및 저장(CCS: Carbon Capture and Storage) 시설을 설치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UAE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추진하는 네옴 시티의 롤모델이라고도 할 수 있는 친환경 마스다르 시티(Masdar City)를 2008년 개발을 시작하여 완성 중에 있다. 마스다르 시티는 UAE 토후국 중 하나인 아부다비 도심으로부터 17km 떨어진 사막에 지어지고 있는 신도시로 설계 초기부터‘탄소 배출, 폐기물 배출, 내연기관 차량이 없는’ 3무를 지향하며 도시 에너지 사용량 전부를 재생에너지로 공급받도록 설계하였다. 이러한 탄소 제로 도시 명성에 걸맞게 마스다르 시티 내에 국가 재생에너지 기구(IRENA: The International Renewable Energy Agency,) 본부가 위치하고 있다. 그리고 도시 내에는 이미 10메가와트급의 태양열 발전소(Solar PV Plant)와 자연 바람을 이용해 주변 건물들의 냉방에 도움이 되는 바람 타워(Wind tower)가 상징적으로 존재하고 있다. 마스다르 시티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내연기관이 아닌 개인 궤도 자동차(PRT: Personal Rapid Transit)나 전기버스를 타고 다녀야 한다.
아부다비뿐만 아니라 두바이도 탄소 중립을 위한 노력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있다. 두바이는 2012년 무함마드 빈 라쉬드 알 마크툼 솔라파크 사업 계획을 발표하였으며, 이 사업을 통해 1단계 13MW, 2단계 200MW, 3단계 800MW, 4단계 950MW 규모의 태양광 및 집광형 태양열 발전소(CSP: Concentrated Solar Power) 건설이 진행되고 있다. 두바이가 많은 일조량, 긴 일광 시간, 적은 강수량, 넓은 사막 등 태양에너지 활용에 유리한 자연 조건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큰 강점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러한 정부 차원의 노력과 함께 UAE 석유회사들도 신재생 에너지 개발에 적극 나서고 있다. 2021년 12월 아부다비 국영석유회사(ADNOC)는 아부다비 국영 에너지 회사(TAQA), 무바달라(Mubadala) 투자 회사와 공동으로 마스다르(Masdar)라는 아부다비 미래 에너지 회사를 설립하여 신재생 에너지 및 그린 수소 개발에 집중하기로 했다. 마스다르 기업은 2030년까지 신재생 에너지 생산량 100GW를 달성을 목표로 한다. 이를 통해, 마스다르 기업은 세계 최대 규모의 청정에너지 회사로 거듭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4. 전망 및 시사점
이처럼 세계 최대 산유국 중 하나인 중동의 산유국들도 탄소 중립 노력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특히, UAE의 마스다르 시티, 사우디의 네옴 시티와 같이 신재생 에너지로만 움직인다는 신개념의 도시 프로젝트는 매우 매력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중동 산유국들의 신재생 에너지 계획과 프로젝트들이 과연 성공적으로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지에는 의문도 존재한다.
먼저 중동 국가들의 특성상 이러한 대형 프로젝트를 계획된 일정 하에 실현할 수 있을지에 대해 의문이 제기된다. 실제로, 중동 산유국들은 세계적인 기록 내세우기에 경쟁적으로 주력해왔다. 세계에서 가장 큰 빌딩, 쇼핑몰, 모스크 등을 만들겠다는 뉴스들이 연일 보도된다. 이를 통해 자신들의 부를 과시하고 세계적인 명성을 얻겠다는 의도가 숨겨져 있는 것이다. 따라서, 중동 산유국들이 탄소 배출 감축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이를 위해 신재생 에너지 개발에 박차를 가해 탄소 중립의 시대로 나아가겠다는 절박하면서도 진중한 의도가 담겨 있는지부터 의문이 들 수 있다. 청정에너지만으로 움직이는 도시를 만들겠다는 계획 또한 그들의 부를 과시하고 보여주기용 이벤트로 끝날 수도 있다.
또한, 느린 행정 처리, 비효율적인 시스템 등으로 중동 국가들의 비즈니스 환경이 아직도 외국 투자자들에게는 열악하다는 관점에서 신재생 에너지 개발 프로젝트가 원활하게 진행될 것인지에도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사우디아라비아의 경우 사우디 에너지부 산하에 신재생 에너지 개발처(REPDO: Renewable Energy Project Development Office)가 신재생 에너지 개발을 관할하고 있지만 통합적으로 사업을 진행하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평가도 존재한다.*[efn_note]The Energy Transition in the Arab Gulf, Atlantic Council, 2021년[/efn_note] UAE의 경우 다른 나라들에 비해 집중적으로 신재생 에너지 개발 프로젝트에 나서고 있지만 연합 국가라는 특성상 토후국 간의 차이가 발생하여 일관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대부분의 중동 산유국들이 세계적인 탄소 중립 실현 움직임에 동참하기 위해 석유 의존도를 낮추고 신재생 에너지 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에너지 전환의 노력이 단시일 내에 이루어질 수는 없다. 또한, 대규모 신재생 에너지 개발, 친환경 도시 건설 등과 같은 대형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수입원도 석유라는 것은 부정할 수가 없는 사실이다. 따라서, 여전히 중동 산유국들의 주 수입원은 당분간 석유일 수밖에 없다. 이와 함께, 수소에너지 생산에 있어서 석유 및 가스가 주요 원료로 사용된다는 점, 그리고 CCS 저장 기술 개발 과정이 석유 및 가스 개발 기술과 동일하다는 점에서 중동 산유국에게 석유 및 가스 개발은 여전히 중요하다. 실제로 사우디 아람코는 올해 초 석유 생산 증대를 위한 투자를 앞으로 대폭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efn_note]아람코는 2027년까지 ‘최대 원유 생산 능력’을 하루 1300만 배럴로 끌어올릴 것이며, 2030년까지 천연가스 생산량은 50% 이상 늘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efn_note] UAE 아부다비 국영 석유회사 ADNOC도 마찬가지로 석유 생산 능력 증대 계획을 추진 중에 있다.*[efn_note]ADNOC은 2030년까지 석유 생산 능력을 일일 500만 배럴까지 끌어 올릴 계획을 가지고 있다.[/efn_note] 따라서, 탄소 중립 노력과는 별개로 중동 산유국들의 석유 수입에 대한 의존 및 석유 개발에 대한 관심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5. 나가며
※ 본 글은 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석유공사의 공식입장은 아닙니다.
안소연 박사 - 서울대 서아시아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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