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기시대, 청동기시대, 철기시대를 건너, 지금 우리는 플라스틱 시대에 살고 있다.
학생들에게 물어봤습니다.
“문명사적으로 볼 때 석기시대, 청동기시대, 철기시대를 거쳐 지금은 무슨 시대지?”
학생들의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합니다. 잠시 침묵이 흐른 후 한 학생이 “IT시대요!”하고 답하네요. 옳고 그르다는 말을 하지
않고 또 다른 답을 기다립니다. “교수님, 우주시대요!”, “아니에요. 교수님. 우리는 글로벌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답은 계속 이어지고 강의장은 활기를 더해갑니다.
“허허. 너희 답이 모두 일리가 있지만, 내가 물은 것은 우리 문명사를 재료 면으로 볼 때 현재가 어떤 시대냐는 것이야.
정답은 플라스틱 시대야!.” 강의실이 잠시 조용해지네요.
“지난 1980년대 중반부터 우리 인류가 소비하는 전체 플라스틱의 양이 철재를 능가하기 시작했거든. 지금은 더더욱 그렇고. 더 넓게 얘기하면 고분자 시대라 할 수 있지.”
아침에 이불 속에서 빠져나와 저녁에 다시 잠을 청할 때까지 접촉하고, 보고, 만지고, 사용하는 물건들이 어떤 재료로 만들어져 있는지 생각해보면 ‘우리가 어떤 재료를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는가?’에 대한 답이 쉽게 찾아집니다. 넓게 말하면 고분자, 좁게 말하면 플라스틱 석유화학 제품으로 합성재료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거죠.
여기서 잠깐, 고분자(高分子)란 무엇일까요? 이 우주는 수많은 분자로 이루어져 있는데 분자량이 낮은 화합물은 저분자라 부르며, 분자량이 10,000보다 큰 화합물은 고분자라 부릅니다. 특히 유기 고분자가 플라스틱과 큰 관계가 있습니다.
그럼 플라스틱(plastic)이라는 단어는 어디에서 왔으며,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요? 그렇게 흔한 플라스틱이지만 이 질문에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입을 다뭅니다. 또 요즘 자주 듣는 플라스틱 수술(plastic surgery)과는 어떤 관계일까요?
하나씩 풀어나가 봅시다. 우선 플라스틱(plastic)의 어원을 찾아보면 희랍어 plastikos에서 유래했으며, ‘조형이 가능한’ 또는 ‘금형으로 가공이 가능한’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쉽게 말해 원하는 모양으로 가공이 가능한 물질을 뜻하며, 현재는 필름, 섬유 평판, 병, 튜브, 상자모양으로 쉽게 가공할 수 있는 유기 고분자 재료를 말합니다.
PS, PVC, PE, PP, PET, 나일론 등의 합성고분자가 대량으로 제조 판매되기 전에 어떤 천연고분자가 플라스틱 용도로 많이 쓰였을까요? 오래전에는 계란과 혈액 단백질 등이 플라스틱의 원료로 쓰였으며, 중세 시대는 동물의 뿔을 얇게 해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후에는 카제인 같은 우유 단백질을 잿물로 처리해 뿔과 유사한 재료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우리들이 어렸을 때는 플라스틱 재료를 ‘뿔’이라고 칭하곤 했는데, 예전에 동물의 뿔을 여러 모양으로 변형해 사용해왔던 까닭이죠.
그렇다면 합성 고분자의 본격적 발전의 계기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미국의 찰스 굿이어(Charles Goodyear, 1800-1860)와 벨기에 태생의 미국인 리오 베이클랜드(Leo Hendrik Baekeland, 1863-1944)의 발명에서 찾을 수 있겠습니다. 굿이어는 1839년 천연고무의 가황가공법을 발명해 천연고무의 용도를 획기적으로 확대시켰습니다. 그러나 첫 합성고분자는 베이클랜드가 1907년에 페놀과 포름알데히드를 반응시켜 얻은 베이클라이트(Bakelite)라 칭하는 페놀수지에서 비롯됐습니다.
그 후 20세기 후반 들어 석유화학공업의 눈부신 발전에 힘입어 오늘날과 같은 플라스틱 시대가 도래했죠. 현재 전 세계적으로
2억 7천만 톤의 플라스틱이 생산되고 있으며, 이는 원유생산량의 약 8%에 해당합니다. 우리나라는 플라스틱 생산에 세계에서 4, 5위를 차지하고 있고요.
다시 앞에서 던진 질문으로 되돌아가 봅시다. 플라스틱 수술(plastic surgery)에서 실제로 플라스틱을 사용할까요? 여기에서 쓰이는 플라스틱은 희랍어 plastike에서 유래했으며, 조각한다는 의미를 지닙니다. 미용성형의 의미를 생각하면 그 뜻을 쉽게 이해할 수 있죠.
성형수술의 역사는 BC 800년의 인도로까지 거슬러 갑니다. 그 후 성형기술이 아랍 여러 나라를 거쳐 이탈리아와 유럽으로 확산됐습니다. 로마인들은 다친 귀를 고치기 위해 성형을 했으며, 19세기에 들어서면서 언청이 봉합수술, 코 성형수술이 행해졌습니다. 특히 1, 2차의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전장에서 다친 군인들의 성형수술과 피부이식 및 재생수술이 발달했고요.
우리나라에서는 한국전쟁을 겪고 난 1950년대부터 쌍꺼풀 수술이 성행하게 되었는데, 아마도 전후에 서양인들과 접촉이 활발해지면서 서구적 미모를 따르게 된 영향이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필자는 앞으로 다양한 플라스틱 세계에 얽힌 얘기를 들려 줄 계획입니다. 끝으로 질문 하나 드려볼게요. 우리가 플라스틱이라면 흔히 싸구려 석유화학 제품으로을 떠올리는데요, 그러나 이는 부분적으로만 옳은 생각입니다. 매우 비싼 특수 기능 플라스틱도 우리 주위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데. 과연 어떤 예가 있을까요?
진정일
서울대학교 화학과 학사 및 석사 과정을 마치고
미국 뉴욕시립대학교에서 고분자화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난 40여 년간 고려대학교 화학과에서 후학들을 가르쳐왔고,
액정 고분자의 세계적 권위자로 420여 편의 논문을 세계적 학술지에 발표했으며,
노벨상 추천위원으로 활동하는 등 학문적 성과를 국제적으로 인정받았다.
현재 고려대학교 KU-KIST 융합대학원장과 한국과학문화교육단체연합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