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가 시작된 지 20년이 넘은 지금 사회, 경제, 문화, 정치를 포함하는 모든 분야의 글로벌 트렌드를 변화시킨 가장 중요한 사건은 2020년 시작된 코로나19 팬데믹이다. 약 3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대부분 국가에서 일상을 회복하고 있지만, 여러 분야에서 코로나19 이전과 다른 새로운 패러다임이 나타나고 있다.
우리가 일상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재로 인식하는 에너지 부문이 새로운 패러다임이 구축되고 있는 대표적인 분야인데, 코로나19 이후 나타난 주요 변화는 글로벌 에너지 시장의 불확실성 고조와 탄소중립의 메가트렌드화로 요약할 수 있다. 코로나19 팬데믹과 탄소중립 정책 강화는 석유 및 가스와 같은 전통에너지에 대한 글로벌 공급능력을 위축시켰다. 반면 2020년 상반기 급격하게 감소한 에너지 수요가 경제활동 재개로 빠르게 회복되면서, 2021년 이후 에너지 가격이 상승하고 변동성이 확대되는 모습을 보였다.
또한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글로벌 에너지 시장의 불확실성을 더욱 고조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면서, 2022년 글로벌 시장에서 석유, 천연가스, 석탄의 가격은 각각 40%, 150%, 160% 상승했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를 포함한 대부분의 국가에서 에너지 가격이 큰 폭으로 인상되는 결과가 나타났다.
이와 같은 글로벌 에너지 위기와 가격의 급격한 상승 현상에 대하여 주요국들은 단기적으로 가격 인상 억제 및 보조금 지급 정책을 추진하면서, 중장기적으로는 에너지 안보역량 제고 및 수요관리 강화와 같은 정책을 통해 대응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에너지수입 의존도는 약 93% 수준을 기록하고 있으며, 에너지 가격이 급격하게 상승한 2022년 총 수입액에서 에너지 수입이 차지하는 비중이 약 26%까지 상승했다. 에너지 수입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원유와 천연가스는 사실상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으며, 특히 중동지역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높다는 특징을 보인다. 또한 남북이 분단된 상황에서 에너지 수입을 해상운송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지정학적인 위험에 항상 노출되어 있다. 이러한 요인들은 우리나라 에너지 안보에 대한 전통적인 위험 요인으로 평가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전통적인 위험 요인에 더하여 최근에는 미국과 EU를 중심으로 러시아에 대한 무역제재가 강화되면서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이 재편되고 있으며, 이러한 상황은 우리나라 에너지 안보에 추가적인 위험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EU 국가들이 러시아에 대한 에너지 의존도를 낮추는 과정에서 글로벌 에너지 시장에서 원유 및 가스 확보 경쟁이 심화되고, 에너지 가격수준이 전반적으로 높아지는 것은 우리나라 에너지 안보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대내외 에너지 부문의 상황은 우리나라의 에너지 위기를 고조시키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우리도 에너지 위기를 지혜롭게 극복하기 위한 대응 방안에 대해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우리나라가 에너지 위기 극복을 위한 대응전략을 마련함에 있어서 다양한 방법들이 논의될 수 있지만, 핵심적인 방향성은 에너지 안보의 강화와 에너지 수요관리 강화이다.
우선 에너지 안보 역량 강화를 위해 우리나라의 에너지 자립도 제고와 해외 에너지 공급망 확보에 주력해야 한다. 우리나라 에너지 자립도 제고를 위해서는 전통적인 에너지와 다르게 국내에서 생산이 가능한 청정에너지(재생에너지, 수소 등) 생산 비중을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 해외 에너지 공급망 확보에 대해서는 전통적인 에너지 공급망을 강화하는 것과 더불어 수소와 같은 새로운 에너지 공급망 확보와 에너지와 관련된 핵심 광물(리튬, 니켈, 구리 등)의 안정적 공급망 확보 노력이 병행되어야 한다.
우리나라의 에너지 수요관리 강화를 위해서는 에너지 가격 합리화를 통한 수요관리 강화와 에너지 절약 및 효율 개선이라는 두 가지 정책에 집중해야 한다. 효과적인 에너지 수요관리를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글로벌 에너지 가격을 적절하게 반영하는 국내 에너지 가격체계가 확립되고, 이를 통해 사회 전체적으로 합리적인 에너지 소비를 유도할 필요가 있다. 지속적으로 국내 에너지 가격을 국제 가격보다 낮은 수준으로 유지하는 경우, 에너지 절약 및 효율 개선과 같은 수요관리 정책의 효과가 제한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에너지 가격 합리화를 추진하는 경우 에너지 구입 비용에 대한 부담이 가중되는 취약계층에 대해서는 사회적인 지원을 반드시 확대해야 할 것이다.
에너지 가격의 합리화를 기반으로 효과적인 에너지 수요관리를 추진하기 위해서는 에너지 절약 및 효율 개선 정책이 병행되어야 한다. 최근 최악의 에너지 위기를 겪고 있는 EU 국가들은 강력한 에너지 절약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데, 에너지 절약은 단기적인 측면만이 아니라 장기적으로도 효과가 있는 정책이다. 우리나라도 에너지 절약에 대한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우리나라의 에너지 시장 및 소비구조 등에 적합한 제도를 구축하는 방안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에너지 효율 향상 정책은 장기적으로 효과가 나타날 수 있는 정책으로 EERS(Energy Efficiency Resource Standard) 사업, 노후 주택의 그린 리모델링 사업, 전력효율 향상사업, 친환경보일러 보급 지원사업 등과 같은 정책을 꾸준하게 추진하는 것이 중요하다.
글로벌 에너지 위기 상황에서 우리나라도 어려운 겨울철을 보내고 있다. 최근에는 가정용 에너지 비용 부담이 증가하면서 사회적인 문제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에너지 가격이 상승하는 과정에서 취약계층은 에너지 비용 지출 증가로 생계유지가 곤란하게 되는 경우가 나타날 수 있다. 물론 정부도 사회적 취약계층에 대하여 다양한 방식으로 에너지 비용 부담을 경감하는 지원 정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에너지 복지를 강화하는 것이 사회 전체를 건강하게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정부와 함께 민간부문에서도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최근 GS칼텍스가 저소득 가정의 난방비 및 에너지 효율화 지원을 위해 100억 원을 후원하기로 한 것은 에너지 복지를 강화하기 위한 민간부문 노력의 좋은 사례로 평가되며, 앞으로 민간부문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에너지 복지를 강화하는 노력이 진행될 것을 기대한다.
※ 본 글은 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GS칼텍스의 공식입장은 아닙니다.
정준환 - 에너지경제연구원 에너지산업연구본부장
정준환 에너지경제연구원 에너지산업연구본부장은 미국 미주리대에서 경제학 박사를 마치고, 2010년부터 에너지경제연구원에서 근무하면서 국제 석유 및 가스시장, 국내 석유산업 정책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현재는 에너지경제연구원 에너지산업연구본부장으로 재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