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9년 8월 27일 미국 펜실베니아 타이터스빌 스핀들탑에서의 시추 성공으로 근대 석유산업이 태동한 지 160여 년의 석유 역사 이래로 올해 2020년처럼 충격적이고 극적이며 절망과 엄청난 도전에 휩싸였던 해가 또 있었을까? 2008년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으로 촉발된 세계 금융위기로 인하여 배럴당 $100를 넘는 엄청난 유가 변동성이 나타난 바 있는 석유 시장에서는 12년 만에 코로나 19 팬데믹으로 인해 그 모습이 재현되었다.
이제까지 석유 위기라 하면 중동지역 특히 호르무즈해협에서 발생하는 긴장으로 세계 석유공급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형태로 발생하였으나, 2020년은 코로나 19로 인해 수요가 대폭 줄어들면서 석유가 넘쳐나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나타났고 그만큼 고통도 컸으며, 이제 겨우 기나긴 어둠의 터널을 지나고 있는 듯하다.
또한, 석유는 현재도, 중장기적으로도 여전히 제1의 에너지원으로서 위치를 굳건히 할 것이라는 전망에도 불구하고 코로나 19로 인한 석유산업의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풍력, 태양광, 수소 등 신재생에너지로 대표되는 에너지 전환이라는 거센 도전에 직면해 있다.
이하에서는 한순간에 인류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엄청난 광풍에 휩싸였던,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극적인 유가 상황을 보여주었던 다사다난한 2020년의 석유 시장을 뒤돌아보고 2021년을 조망해보도록 하겠다.
1. 이제껏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석유 시장
가. 코로나 팬데믹이 몰고 온 WTI -$37.63/B
지난 2020년 3월 12일 WHO의 Pandemic 다시 말해 “전염병의 대유행” 선언과 함께 세계 경기는 급속히 위축되고 이에 따라 석유 수요 또한 급감하면서 국제유가는 곤두박질치게 되었다. 이후 세계 주요산유국 OPEC+는 3월과 4월 두 차례에 걸친 총회를 개최하고 감산을 통한 유가 부양을 모색하였다.
지난 4월 OPEC+ 총회에서 기준생산량 43.85백만b/d 대비 ’20년 6월까지 9.7백만b/d를, 7월~12월까지 7.7백만b/d를 감산하기로 합의하였으나, 시장은 감산 합의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을 것이라는 차가운 반응을 나타냈다. 과잉공급 상태는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서 마침내 4월20일에는 WTI 가격이 -$37.63/B라는 이제껏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초유의 사태까지 발생하게 되었다.
비록 실물거래가 아닌 선물시장의 특성상 발생한 가격이라고 하더라도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가격이었다. 2020년 WTI는 최고가 $63.27/B(1.6일)를 고려하면 가격 차이가 무려 $100/B에 달한 셈이다. WTI -$37.63/B라는 가격은 코로나 19 팬데믹이 몰고 온 유례없는 기록이 되지 않을까 한다.
나.전혀 다른 석유위기 : 수요 급감
코로나 19가 석유 시장에 몰고 온 또 다른 광풍은 바로 수요 급감에 따른 석유 위기이다. 이제껏 석유 위기는 중동 특히 호르무즈해협에서 발생하는 갈등과 분쟁에 따른 석유공급 불안 우려, 혹은 리비아 내전에 따른 공급 우려, 베네수엘라의 국내 사정에 따른 생산 급감,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인한 석유제품 부족, 최근에는 사우디 생산시설에 대한 드론 공격으로 인한 생산 차질 등 주로 공급 문제로 발생하는 유형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2020년 발생한 석유 위기는 코로나 19로 인한 지구촌의 셧다운이 진행되면서 세계경기가 급속도로 위축되고 석유 수요가 급감하면서 석유가 넘쳐나게 된 새로운 형태의 위기였다.
공급 문제는 수요가 뒷받침되는 한 빠른 시일 내에 균형을 찾아가지만, 수요위기는 전혀 다른 문제였다. 공급을 대폭 줄이거나 생산된 석유를 대거 사들여야만 균형 달성이 가능해진다. 최종 소비자가 사들이지 못한다면 탱크에 보관해야 하는데 지상 탱크가 한계를 드러내자 유조선이 탱크의 역할을 대신하기도 하였다. 넘쳐나는 물량으로 더 이상 버티기 힘든 석유 업계는 정부에 도움을 요청할 수밖에 없었다. 비록 실행되지는 못하였지만, 미국도 전략 비축유 목적으로 국내 생산원유 매입을 시도하였고, 우리 정유사들도 정부에게 긴급히 SOS를 타전했다. 즉, 한순간에 수요처를 잃어버린 석유제품을 비축유로 구입해 달라고 요청했던 것이다.
이후 정부는 석유 위기는 공급 애로뿐만 아니라 수요 급감으로 인해 찾아올 수도 있다는 사실을 절감하면서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근 20년 동안 석유 시장과 함께 숨을 쉬어 온 필자의 경험에 따르면 수급에 문제가 발생하면 단시간에 해결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해결책은 비축이 최고라고 감히 자신한다. 비축유를 풀어서 석유 부족 사태를 해결할 수도 있고, 넘쳐나는 석유를 거두어들여 시장을 안정시킬 수 있는 것 또한 비축이다. 이번의 석유 위기는 최후의 보루로서 공공부문이 그 역할을 다 하여야 한다는 당위성을 다시 한번 인식시키는 계기가 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다.거센 도전 : 에너지 전환
코로나 19가 몰고 온 또 다른 변화 이슈는 에너지 전환이다. 유가 급락으로 수익성을 보장받지 못한 석유 업계는 다른 대안을 찾아 나섰다. 다시 말해 석유생산업계는 수익성이 극도로 악화되고 특히 북미에 비해 석유매장량이 충분하지 못해 역내로 석유를 수입하고 있는 유럽의 메이저를 중심으로 에너지 전환이라는 명제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오랫동안 기술력을 축적해 온 유럽의 풍력 업체와 석유 메이저는 파리협약 준수와 탄소 중립 목표 달성이라는 강력한 명분을 등에 업고 기존의 석유에서 풍력, 수소, 태양광 등으로 그 중심을 옮겨가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덴마크의 오스테드, 노르웨이 Eqinor, 프랑스의 Total 그리고 영국의 BP가 그 주역들이다. 또한 최근 어느 투자은행의 에너지포럼에서는 2021년은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투자가 석유개발 분야에 대한 투자를 앞지르는 첫해가 될 것이라고 전망하였다. 그리고 신재생 에너지 투자의 대부분은 수소에 집중될 것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에너지 전환을 위해서는 막대한 투자가 불가피한데 국가 재정 지원 없이는 거의 불가능한 실정이다. 코로나 19로 인한 경기침체를 벗어나고자 각국은 예외 없이 막대한 재정을 쏟아붓고 있는데, 엄청난 재원 조달에 대한 설명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향후 몇 년간 수조 달러, 수조 유로를 투자할 계획이라는 내용만 발표하고 있다. 막대한 재원 조달 계획은 거의 보이지 않는 가운데 이미 상당한 국가들이 2050년에 탄소 중립을 달성할 것이라는 야심찬 계획을 발표하였다. 우리나라도 향후 13조 원을 투자하여 그린뉴딜을 추진함으로써 2050년에 탄소 중립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여기에는 수소가 상당한 역할을 담당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현실적인 여건상 우리나라는 화석연료에서 수소를 추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며, 이 과정에서 탄소 발생은 필연적이다. 이 탄소를 모으는 즉, 탄소 포집(CCS, Carbon Capture Storage)이 뒷받침되어야만 탄소 중립이 가능한데, 탄소 포집의 최적지는 바다속 고갈 저류층(depleted reservoir)이다. 즉, 고갈 해상 유․가스전에 탄소를 집어넣는 것이다. 결국은 국내 대륙붕을 잘 탐사하고 개발하면 해상 유․가스전 발견뿐만 아니라 탄소 포집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국내 대륙붕 개발은 비단 석유와 가스개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미래 청정에너지 개발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국가적 사업임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었다고 하겠다.
2. 2021년 전망
2021년 세계 경제는 코로나 19의 충격에서 완전히 해소되기에는 다소 무리가 따르겠지만 대부분의 전망기관들은 전년에 비해서는 확실히 회복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IMF 또한 지난 4월 대비 다소 하향 조정하긴 했지만 2021년 세계경제성장률을 5.2%로 전망(10.12일)하고 있다.
석유 수요 측면에서는, 최근 IEA는 코로나 19 백신 출시와 관련된 불확실성으로 인해 단기적으로 석유 수요 약세가 유지될 것으로 전망하고, 2020년과 2021년에 대한 석유 수요 전망치를 전월 대비 다소 낮게 조정하였다. 2020년 91.4백만b/d(전년 대비 8.8백만b/d↓), 2021년 97.1백만b/d(전년 대비 5.7백만b/d↑)를 전망하고 있다.
공급 측면을 살펴보자면, 지난 12월 초 OPEC+ 총회에서 기준생산량 42.1백만b/d 대비 7.7백만b/d 감산에서 내년 1월부터 매월 50만b/d를 증산하기로 하되 매월 시장감시위원회를 개최하여 감산 규모를 결정하겠다고 합의하였다. 시장은 어느 정도 긍정적으로 반응하고 있으나 앞으로 얼마나 잘 준수할 수 있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
한편 미국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 또한 트럼프의 대중국 압박 기조를 이어갈 것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바이든이 지난 오바마 행정부 시절 중국을 너무 느슨하게 제대로 견제하지 못하였다고 자백한 것은 향후 대중국 정책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잘 보여주고 있다 하겠다. 내년에도 미국과 중국의 분쟁은 완화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 기관들은 내년에는 석유 수요가 상당히 회복될 것으로 보고 있으며 심지어는 팬데믹 이전의 수준까지 회복될 수 있다는 전망도 발표하고 있다. 그러나 유가 강세요인과 아울러 불안한 요소 또한 여전하므로 내년 Brent 유가는 현행 유가 수준과 비슷한 $50/B 내외가 될 것으로 조심스럽게 예상해 본다. 다만, 신속한 백신 접종으로 코로나 19가 예상보다 빠르게 진정된다면 $60/B도 혹은 팬데믹 이전의 유가 수준으로 회복 가능하다는 의견도 전혀 불가능한 전망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3. 맺음말
2020년은 근대 석유산업이 태동한 이래 그 유래를 찾을 수 없었던 특이한 한 해였다. 석유 수급에 의한 것도 아니고 정치적인 분쟁도 아닌 오직 단 하나 코로나 19라는 바이러스 요인은 그 모든 것을 순식간에 바꾸어 버렸다. 인류 역사상 이처럼 극적이고 충격적일 때가 있었던가? 비단 에너지산업뿐만 아니라 배터리, 바이오 등 새로운 산업의 돌풍, 삶의 방식 변화, 심지어는 인류의 생존마저 위협받는 상황에까지 도달하고 있다. 백신 등장으로 바이러스에 대한 “인류의 반격”이란 용어까지 등장하고 있으니 말이다.
코로나 19가 몰고 온 광풍은 석유산업을 다시 생각하고 대비하게끔 만들었다. 각국의 폐쇄조치로 국제분업이 무너지고 자국 안보가 새롭게 조명받았다. 국가 생존을 위해서는 어떠한 분야이든 비록 효율성이 떨어지고 비용이 많이 든다고 하더라도 어느 정도는 자국 땅에 생산기반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너무도 엄청난 희생을 치르면서 깨닫게 되었다. 세계 최강대국 미국 땅에 러시아의 수송기가 마스크를 싣고 오리라고 그 누가 상상이라도 했겠는가? 수요 급감으로 인한 석유 위기는 더욱더 큰 고통으로 다가왔고, 마땅한 해결책을 찾는 것도 더욱 힘들었다.
다만, 석유 위기에 대한 개념을 재조명하고 비축을 확대 강화해야 할 필요성과 탄소 중립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도 국내 대륙붕 개발은 필연적이라는 인식을 마련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은 2020년 석유 시장이 던진 하나의 의미 있는 화두로 볼 수 있겠다. 모쪼록 신축년 소의 해를 맞이하여 희망에 찬(bullish) 경기회복을 바탕으로 석유 시장 또한 안정과 균형을 찾을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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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화 팀장 - 한국석유공사 석유동향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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