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산업혁명 동력원으로서의 석유의 등장
메이저의 활약
오일쇼크의 영향
이처럼 석유소비가 급등한 가운데 1970년대는 오일쇼크를 맞이하게 되었다. 1차 오일쇼크는 OPEC의 석유수출 제한조치로 발발하였는데, 1973년 9월 기준으로 배럴 당 3달러였던 국제유가가 같은 해 12월에 11달러로까지 급등하였다. 2차 오일쇼크는 1979년에 발생하였는데, 이로 인해 국제유가는 배럴 당 13달러에서 34달러로 치솟았다. 오일쇼크는 석유시장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킨 계기가 되었다. 오일쇼크 이전에만 하더라도 OPEC과 비OPEC의 석유시장의 점유율이 6:4였지만, 1980년 무렵을 기점으로 약 3:7로 반전되었다. 이는 오일쇼크를 계기로 중동산 석유의 공급의존도를 줄이고자 하는 비OPEC의 노력이 가속화되었기 때문이었으며, 이 과정에서 브렌트유 생산도 이루어졌다. 천연가스의 개발과 원자력 발전의 확대 역시 석유시장에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 오일쇼크를 계기로 에너지원이 이처럼 다변화됨으로써 국제유가는 한동안 배럴당 20~30달러 대에 계속 머물렀다.
셰일가스와 미국의 부상
2000년대 중반에 국제유가는 배럴당 100달러 이상 급상승하게 되는데, 그 이유는 첫째, 밀레니엄 전후로 주요국에서 형성된 저금리 기조가 상품시장 투자를 촉발하여 국제유가의 상승원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둘째로는 BRICS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의 에너지 수요 증대를 들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중국의 페트로차이나, 브라질의 페트로브라스의 국영석유회사는 지속적인 상류부문 개발을 통해 슈퍼메이저와의 경쟁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또한 독립계 회사 역시 각자의 영역에서 특화하여 지속적인 발전을 추구하였는데, 예를 들면 Valero는 미국, 캐나다, 영국, 카리브해에서 전략적 인수를 통해 세계 최대의 독립석유정제회사로 성장하였다.
2000년대 중반의 고유가는 대체에너지원으로서의 비재래식 석유(또는 비전통 석유, Unconventional Oil)로 우선 오일샌드 개발 붐을 일으켰으며, 이후 수평시추 수압파쇄법의 개발로 미국발 셰일가스 혁명을 촉발시켰다. (아래 위성사진 참조) 2010년대 초반부터 본격화된 미국의 셰일가스 개발로 그동안 수십년간 지속되어왔던 WTI, 브렌트유, 두바이유의 국제유가 동조화 현상도 깨어졌다. 미국은 2017년 말 기준으로 일일 석유생산능력이 1천만 배럴을 초과함으로써 러시아와 사우디아라비아를 상회하는 이른 바 세계최대 산유국이 되었다. (미국 일일석유생산량 그래프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