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일쇼크가 대한민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

GS칼텍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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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일쇼크가 대한민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

안녕하세요. 팀내에서 투덜이로 불리는 강태화 차장입니다. 오늘은 언론에서 이야기하는 오일쇼크에 대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오일쇼크가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어느 정도이기에 오일쇼크에 대해 언론에서 겁을 내고 있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지난 2010년 10월(1,694.21원)이후 거침없는 상승세를 이어가던 주유소가격이 지난 3월 첫째주 1900원선을 돌파하여 1916.52원을 기록하더니 3월 5째주에는 1,967.16원으로 주간단위로 25주 연속 상승세를 이어가는 등 기름값 고공행진이 지속되었습니다. 정말 자동차 타기 무섭다는 말이 피부로 다가옵니다. 특히 올해 1월 재스민혁명이라고 불리는 중동지역의 민주화, 일본대지진 등으로 인해 석유제품 가격상은은 상당기간 지속될 것이라는 말이 들려옵니다. 이러다가 제3차 오일쇼크가 일어나는 것이 아니냐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유가가 급등할 때마다 언급되고 있는 오일쇼크. 그렇다면 오일쇼크가 경제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기에 이렇게 걱정하고 있는지 기존 1, 2차 오일쇼크를 되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제1차 오일쇼크(197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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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10월 6일

이집트와 시리아가 일제히 이스라엘에 선제공격을 가함으로써 제4차 중동전쟁이 발발하게 됩니다. 하지만 미국을 등에 업고 있던 이스라엘은 아랍권 8개국의 지원받던 이집트와 시리아를 격퇴시킵니다. 전쟁에서 패한 아랍국가들은 이스라엘을 지원했던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들에게 석유수출 금지조치를 취하게 되고 추가적으로 석유생산량 감축, 석유가격 인상조치로 보복합니다.

이 보복조치로 인해 전세계는 제1차 오일쇼크에 빠지게 되죠.

1973년 10월 3달러 수준이었던 국제원유가격은 3개월 후인 1974년 1월에는 4배 가까이 상승하여 12달러 선까지 올라가게 되고 이로 인해 전세계는 경기침체와 인플레이션에 허덕이게 됩니다. 당시 주요선진국과 세계 대다수 국가들이 오일쇼크로 인해 성장률이 급감했으며 몇몇 국가는 마이너스 성장율을 기록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정말 어마어마하죠.
한국의 상황은 어땠을까요?
우리나라는 제3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하면서 1972년 유신헌법 발표 이후 급락했던 경제성장률을 수출증대를 통해 끌어올리던 때였습니다. 1973년 14.8%라는 놀라운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던 순간이었으나 경제성장률은 맥없이 곤두박질치면서 1974년에는 9.8%, 1975년에는 7%대까지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정부는 석유파동 직후부터 다음해 말까지 네 차례에 걸쳐 국내 석유제품가격을 4배 가까이 인상하는 한편 석유소비절약운동을 벌이면서 물량배급제를 실시하게 됩니다.

또한 원유확보에 비상이 걸립니다. 대한석유공사(현 SK이노베이션)는 70%, 경인에너지(현재 SK인천공장)은 58%대의 가동율만 보였습니다. 호남정유(현 GS칼텍스)만이 94%대의 가동율을 보였죠. 이는 각 사의 원유공급을 맡고 있었던 해외 합작선과 연관되어 있었습니다.

실제로 원유확보에 비상이 걸렸던 대한석유공사는 GS칼텍스를 통해 두 차례에 걸쳐 170만 배럴의 원유를 공급받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 같은 공로로 1973년 11월 23일 박정희 대통령이 당시 GS칼텍스 회장에서 감사와 격려의 편지를 보냈다는 사실은 회사 내에서 유명한 일화 중 하나죠.

제1차 오일쇼크를 통해 전세계는 석유의 영향력이 얼마나 막강한지 뼈저리게 실감하게 되었고 미국은 친중동정책을 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로 인해 자원의 무기화, 자원민족주의 등 석유와 천연자원에 대한 인식을 전환시키게 되는 큰 분수령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1차 오일쇼크는 2차 오일쇼크에 비하면 견딜만한 수준이었습니다.

제2차 오일쇼크(198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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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오일쇼크는 더 어마어마합니다. 1976년 OPEC은 단계적으로 원유값 인상에 합의하고 이를 실행에 옮기면서 원유값은 서서히 올라가게 됩니다. 그러던 와중 1979년 당시 세계 석유공급의 15%수준을 점하고 있던 이란에서 ‘이슬람혁명’이 터집니다. 1차에 이어 2차 역시 또 전쟁입니다. 단지 1차는 국가간의 전쟁이었다면 2차는 내전이라는 점만 차이가 나는군요.

이란은 자국 내 혁명으로 국내정치가 불안하자 석유생산량을 크게 줄이는 것은 물론 석유의 전면 수출금지 조치를 취합니다. 역시나 수출금지입니다. 여기에 1차 오일쇼크를 경험했던 투기자본들은 석유에 대한 매점매석은 물론 시장조작까지 횡행하기에 이릅니다. 석유시장의 카오스였지요.

1978년 12달러 수준이었던 원유가격은 2차 오일쇼크로 인해 1980년 8월 30달러를 돌파하였으며 최고 39달러까지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지금 110달러 선에서 원유가격이 거래되고 있으니 39달러면 견딜 수 있는 수준 아니냐라는 의문을 가지시는 분도 계실 겁니다. 하지만 당시 39달러를 현재가치로 환산하면 이야기는 전혀 달라집니다. 삼성경제연구소에 따르면 1980년 당시 36달러였던 원유값을 물가상승 등을 감안하여 현재 유가로 환산하면 151달러에 이른다고 합니다. 정말 어마어마하죠.
이로 인한 한국의 경제여파는 어떠했을까요?
8%대 중반을 보였던 경제성장률이 1979년에 비해 1980년에는 기어이 -1.4%를 기록하게 되었습니다. 무려 9.8%가 수직하강하게 된 것이죠. 쉽게 와 닿지 않을 것 같아 직, 간접경험을 했던 지난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와 비교해 보겠습니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당시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5.1%에서 0.3%로 떨어졌으며 1997년 외환위기 당시에는 5.8%에서 -5.7%로 수직낙하했습니다. 단순히 경제성장률만 비교했을 경우 2차 오일쇼크는 미국발 금융위기의 2배, 외환위기 당시와 맞먹는 수준입니다. 특히 2차 오일쇼크 당시 우리나라는 석유화학, 제철 등 석유 및 천연자원의 소비가 큰 중공업위주의 경제성장 정책을 펼쳤던 시기였기에 그 여파가 더 컸습니다.

2차 오일쇼크 때는 1차 오일쇼크 당시 원유확보의 어려움이라는 뼈저린 경험을 치른 후라 국내 정유사들은 원유도입에 큰 어려움을 겪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원유가격 다원화 현상으로 인해 원유도입 가격은 도입선 및 도입지역에 따라 큰 차이를 보였습니다.

당시 근무했던 선배들의 말을 빌리자면 1차 오일쇼크에 이어 2차 오일쇼크에서도 GS칼텍스의 역할이 국내 석유제품 가격 안정화에 크게 기여했다고 합니다. 당시 국내유가는 정유사가 도입한 평균 원유가격을 기준으로 정부에서 국내제품가격을 결정하던 시기였던 바, 정유사의 원유도입단가는 국내가격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던 시기였습니다.

1979년 GS칼텍스를 제외한 나머지 정유사의 원유도입단가는 배럴당 최저 17.22달러에서 최고 17.48달러였으며 1980년에는 30.76달러~34.25달러, 1981년에는 34.18달러~36.72달러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GS칼텍스는 1979년 16.69달러, 1980년 27.38달러, 1981년에는 32.01달러로 평균 3달러 이상 저렴하게 원유를 도입, 국내가격의 상승폭을 낮추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네요. ^^
아직도 중동지역의 정정불안은 지속되고 있습니다. 다만 최대산유국들인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쿠웨이트 등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상당히 낮은 상황이며 국제에너지기구를 중심으로 원유 비축능력이 석유공급 차질에 대비할 수 있을 정도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라는 점은 매우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미래는 확신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이를 대비할 수 있는 준비를 갖추는 게 중요할 것입니다.

미래의 가장 중요한 에너지는 태양광, 풍력, 연료전지 등이 아닙니다. 바로 절약입니다. 미래를 준비하는 마음으로 지금부터라도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우리나라의 상황을 고려하여 미래에너지인 절약을 생활화하는 것은 어떨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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