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세계는 기업에게 무엇을 요구하는가?
최근 국제사회나 어느 국가, 기업이나 개인을 둘러싸고 있는 다양한 환경 변화들이 결코 예측하기 어려운 불확실성이 상존하고 있다는 것에 주목한다. 가히 지정학적 변동과 지경학적 재편이 동시 진행되는 불확실성의 복합위기 시대라 할만하다. 예컨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새로운 규범에 기반한 국제질서 강화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무기화되어가는 자원과 에너지 전쟁 속에 글로벌 협력체제 구축의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민주주의 위기는 안보경제 정책협력의 강화를, 전쟁 및 전염병 위기는 세계 시민사회의 각성과 역할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 30년 자원과 생산요소의 흐름, 산업구조의 최적화를 통해 이룩한 세계화는 당분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자국중심주의화 되는 국제경제 상황을 경제안보시대라 칭할 만하다. 정보기술강국인 미국은 중국의 기술진보를 막기 위한 다양한 조치들을 취하며 반도체 전쟁을 주도하고 있다. 중국은 ‘중국夢’을 통해 세계 최고의 경제력과 기술 수준, 군사력을 갖기로 천명한다. 이미 중국제조 2025는 고도의 생산성 향상을 이끌었고 하이테크산업을 육성하였다. 그동안 기초과학과 인재 양성에 대한 막대한 투자는 비교될 만하다. 일본은 여전히 소재·부품·장비의 강대국이고 독일도 Industry 4.0을 주도하며 상당한 ICT 인프라 확충에 성공했다. 이미 독일로의 제조업 리쇼어링이 진행되고 있다.
세계는 최근의 제반 변화와 코로나 상황을 거치면서 기업들의 효율적 경험의 폭을 넓혀 사회혁신의 틀을 만들어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기업이 만들어내는 경제적 가치가 더 큰 사회적 가치로 확산 기여되기를, 기후변화나 질병퇴치 등 인류 공통적인 문제 해결에 더욱 적극적으로 관여하고 일자리 창출 등 다양한 사회적 문제 해결에 주도권을 발휘해 줄 것을 기대하는 것이다.
대한민국 발전의 동력은 기업, 기업환경의 변화는 새로운 리더십을 필요로
6·25 전쟁 직후 맥아더 장군은 “이 나라에는 희망이 없다. 복구하는 데 최소 100년은 걸릴 것이다.”라고 이야기했다. 더불어 당시 유엔 한국재건단 의장인 벤가릴 메논은 “어떻게 쓰레기 더미에서 장미가 피어나겠는가?”라고 했다. 그렇게 천시받던 대한민국이 최근 USNWR발표에 따르면 당당히 세계 6위의 강력한 국가가 되었다. 전쟁 이후 제한된 자원을 집중적으로 분배하며 성장정책을 구사해 온 정부와 호흡을 같이 한 뛰어난 기업가정신으로 인재·기술을 중심으로 사업보국(事業報國)을 일으킨 걸출한 기업가들이 있었다. 우리 모두가 아는 우리들의 성공스토리는 뒤로 하고 단순한 질문을 던져본다. 우리의 성공전략은 경쟁이었나? Fast Follower로서 단순한 추격전략이었는가? 아니면 새로운 가치창출이었을까? 또한, 그동안 우리를 성공으로 이끌었던 전략은 세상의 변화무쌍한 환경 속에서도 계속 지속 가능할 것인가에 대한 물음을 갖게 된다.
시장의 판이 빠른 속도로 바뀌고 있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다시 메타버스로의 초연결 사회를 목도하고 있다. 인간과 기계의 융합, 현실과 가상의 융합을 넘어 공학적, 생물학적 영역의 융합이나 조직과 비조직의 융합을 예상한다. 융합의 재융합도 그려진다. 불확실성이 뉴노멀이 되고 자원과 제품공급의 위기로 신 보호주의와 고물가 시대를 경험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과 경제안보 싸움 속에 환경규제와 에너지 이슈가 커지고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지정학적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급격한 변화 속에서 우리 기업을 지탱해 왔던 과거의 지역적 리더십의 변화도 요구된다. 유교문화 속에서 획일적 방향과 하나로 된 조직을 바탕으로 빠른 성장을 구가했던 시기의 지시적/전제적/가부장적 리더십은 많은 도전을 받고 있다. 권위주의적 명령체계를 지탱해 왔던 집합주의적 위계질서와 목표 지향적인 남성리더십은 수직적 산업이나 수직적 시장구조에서 그 힘을 발휘했다. 그러나 이미 우리에게 다가온 세계화적 미래 리더십은 상대적으로 참여적/민주적/인간관계 중심의 리더십으로 표현된다. 세계시장 변화와 기회 창출에 대한 통찰력을 키우고 다른 문화를 수용하는 도전적이고 탐험가적인 리더십을 요구한다. 균형감각과 인성의 성숙함이나 도덕성을 기초로 한 비전이 미래 불확실성에 대한 대처능력을 키우는 것이다. 수평적 산업과 시장구조에서 요구되는 리더십이라 할 수 있겠다.
Covid-19를 겪으면서 그동안 안전하고 효율적이며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통해 기업의 이익을 도모했던 과정이 이후 시장이나 사회를 주도하지 않으면 장기적 관점에서 기업의 존속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위기감을 갖게 된다. 어떤 의미에서 생산성과 효율성, 재무안전성을 추구했던 과거의 기업형태가 창의력을 기반으로 한 가치 지향적 선도력을 보여야 할 만큼 기업의 목적에 대한 재정의가 필요한 시기가 도래한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도 기업목표의 변화와 미래 자본주의의 방향성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시기이다. 국부론의 저자 아담 스미스는 시장의 완전경쟁을 전제로 기업의 목표가 이익극대화라고 주장하고 로스 차일드는 생존이 중요한 기업의 목표라고 이야기한다. 그 외에도 판매 극대화나 성장을 목표로 주장하는 과정도 있었으나 최근 허버트 사이먼 교수의 다중목표 만족화가 새로운 기업 목표로 제시되기도 한다. 사회적 경제를 추구하고 있는 독일을 보더라도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다양한 구성원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의 몫으로 최선을 다하고 그것을 서로 인정해 주는 사회적 가치의 최적화를 이루고자 한다. 과거 경제적 가치를 추구하고 주주를 위한 재무적 성과만을 강조했던 기업모델이 이해관계자의 이익을 최적화하고 사회적 가치를 늘리는 쪽으로 변화하고 있는 모습이 Covid-19이후 가속화됨을 느끼게 된다.
2019년 가을, 미국을 대표하는 200개 기업 중 181개 기업이 모여 소위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을 갖고 기업과 이해관계자가 공동으로 발전할 수 있는 선언문을 채택하게 된다. 즉 기업의 목적은 이해관계자와 공동 발전을 추구한다고 천명하면서 이후 고객을 위한 가치창출, 직원을 위한 투자, 협력사와의 공정한 윤리거래, 사회공동체에 대한 지원 그리고 마지막으로 주주를 위한 장기적인 가치창출을 약속하게 된다. 이러한 목적을 생각하는 기업들이 기업을 통한 사회혁신을 도모하고 궁극적으로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일자리를 만들어 내며 사회를 구성하는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안전과 행복을 도모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ESG에 대한 소고(小考)
지면 관계상 ESG의 의미와 경영에 대한 효과 등은 생략한다. 다만 지속가능한 미래를 표방하며 법제화/규범화/의무화의 과정을 거치는 ESG는 우리 기업들에게 새로운 전략으로 인식되고 있을까? 아니면 선진국들이 후발도상국들을 견제하기 위한 진입장벽으로 이해가 되는가? 이러한 ESG는 우리에게 새로운 기회로 작용될 수도 있는가? 에 대한 고민을 진지하게 해 볼 필요가 있다. 필자는 글로벌 기업에서의 40년 사업경험을 토대로 ESG는 새로운 경영 메커니즘이 아니라 인류사회가 추구하는 보편적인 가치와 철학이 우리들 일상생활에 상식적으로 적용될 수 있도록 하는 실천적 대안이라고 믿는다. 얼마 전 2조 4천억원에 달하는 자신의 기업을 지구환경문제의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방법을 모색하기 위한 기금으로 내놓은 파타고니아의 이본 쉬나드 회장의 기사를 접하면서 경제적 이익을 창출하며 사회발전에 기여해 온 우리 기업인들이 한 단계 더 사유(思惟)의 폭을 넓혀 우리 사회에 선(善)한 의지를 펼쳤으면 하는 마음이다. 굳이 기부행위를 통해서가 아니라 미래를 선도할 가치지향적 리더십으로 사회에 영향력을 갖는 것이다.
Covid-19를 거치면서 막연하고 포괄적이던 ESG의 주요 과제가 더욱 구체화되면서 ESG경영 트렌드가 가속화를 보이고 있다. 순환경제, 신재생에너지,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과 기업지배구조 공시확대 등을 포함한다. 이미 국내 대기업들은 적절한 대응책을 갖고 있으나 개별 대기업과 관련되는 중견기업이나 중소기업들의 공동대응에 대하여는 상당한 염려가 앞선다. 예컨대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를 이어 독일도 올해부터 공급망 실사법을 적용하기로 했으니 정부와 대기업/동반기업들의 빠른 대응책이 필요하다.
세계경제포럼(WEF)은 ‘The Great Reset’을 발표하면서 상호의존성과 복잡성의 새로운 세계의 특성을 갈파하고 증폭되는 불평등과 사회불안을 염려한다. 민족주의 고립주의 확산에 대비할 글로벌 거버넌스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ESG의 실천을 강조한다. 포용적이고 평등하며 대자연을 존중하는 세계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가치지향적 리더십이 글로벌 경쟁력이다
100년, 200년 지속적인 기업 성장을 이끌어 온 글로벌 기업들은 어떤 차별적 리더십을 보여주고 있을까? 미래를 예측하기는 어렵지만, 입체적 전략적 사고로 창의적 능력을 키우는 노력을 기울인다. 창조는 시장과 고객에 대한 작은 관심과 관찰 그리고 무한한 상상에서 시작된다. 그래야 변화에 적응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를 주도하는 리더십을 갖게 된다. 고객의 내재적 욕구와 삶의 가치 추구에 대한 끊임없는 탐색으로 최적화된 개인화를 이룩해 가는 과정이 필요할 뿐이다. 건전하고 투명한 지배구조로 시장과 소비자에 대한 의무를 다하면서 이해당사자들을 통합하여 높은 신뢰사회로 이끌 수 있어야 한다. 기업조직도 철학과 가치를 공유하는 관계 중심으로 정서적 유대감을 확산시켜야 한다. 외적으로는 고객의 가치지향점과 기업이 추구하는 브랜드 포지셔닝의 일체화를 이루고 고객의 경험을 참여로 바꾸는 고객 가치를 구현해야 한다.
MZ세대는 Position Power를 인정하지 않는 대신 특정인의 가치와 삶의 궤적을 보면서 그 리더십을 배우고자 한다. 즉 Knowledge Power를 인정한다. 최고의 젊은 인재들은 내적 가치를 중시하고 개인적 발전과 사회에 봉사할 기회를 찾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미래 자본주의는 정신적, 도덕적 가치가 중요하여 동시대 사회와 함께 호흡하는 철학과 가치를 추구하는 기업만이 존속하게 될 것이다.
개인들은 자유시장 경제체제의 적응 능력을 배양하고 젊고 유연한 사고로 세계시민적 개인 가치를 증대시켜야 한다. 기업에게는 지식과 가치를 기반으로 국제적 경영 환경 변화에 보다 더 능동적이고 유연한 대처가 요구된다.
일찍이 세계적인 역사학자 폴 케네디는 한국인이 가지고 있는 높은 사회적 도덕심과 Spiritual Culture, 공고한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기반으로 우리 대한민국이 21세기 중심국가가 될 것이라 예견했는데 필자는 그렇게 믿는다. 경제적 부(富)를 창출하는 기본 단위인 기업들이 만들어 내는 경제적 가치를 더 큰 의미의 사회적 가치로 확산하는 것은 선도적 사유(思惟)를 통한 우리 기업인들의 몫이다.
김효준 | BMW Group Korea 前 대표이사 회장
김효준박사는 독일 BMW Group의 고위임원으로 철저하게 시장과 고객중심경영으로 한국 자동차시장을 국제화하는데 일조했다. 조선일보 아침논단이나 매경춘추의 고정필진으로 많은 사회적 화두를 던진 대표적 글로벌경영인이다. 한국의 경영구루 5위에 선정된 바 있다. 10여개 대학의 석좌교수/겸임교수를 역임했다. 현재 BMW Korea 고문으로 있으며 연세대학교 경영대학 특임교수로 국제경영전략을 강의하고 있다. 더불어 독일상공회의소 명예회장과 2만여명의 독일동문들과 함께 하는 사단법인 한국독일동문네트워크(ADeKo)의 이사장이며 서울국제포럼의 보드멤버로도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