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IT·가전 박람회 CES(Consumer Electronics Show)는 한 해를 관통할 최신 기술을 한눈에 확인하고, 미래를 선도할 흐름을 예측할 수 있는 자리입니다.
올해 CES 2026는 규모가 더 커졌습니다. CES Innovation Awards에 3,600개 이상의 제품이 출품됐고, AI 부문은 전년 대비 29%, 로보틱스와 드론은 각각 32% 증가했습니다. EdTech, Enterprise Tech, Supply & Logistics, Travel & Tourism 등 신규 카테고리도 추가됐습니다.
하지만 이번 전시의 핵심은 규모가 아닙니다. 올해는 기술의 ‘가능성’보다, 실제 산업 전반에서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지 선보이는 무대로 구성됐습니다. CES 2026이 무엇을 전시하기 시작했고, 그 기준이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봅니다.
기술의 가능성에서, 기술의 운영 조건으로

과거 CES가 던지던 질문은 명확했습니다. “이 기술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더 빠른 프로세서, 더 선명한 디스플레이, 더 정교한 센서 등이 기술 경쟁력을 상징했습니다. 하지만 CES 2026에서 중심이 되는 질문은 다릅니다. 기술이 어떤 환경에서, 얼마나 오래, 중단 없이 작동할 수 있는가를 이야기합니다.
최근 산업 전반에서 자주 언급되는 ‘보이지 않는 컴퓨터(invisible computer)’라는 표현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기술이 눈에 띄지 않는다는 것은, 기술이 그만큼 일상과 산업 현장에 깊숙이 스며들며 향상 작동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 단계에 이르면 기술의 가치를 평가하는 기준도 달라집니다. 성능이나 가능성보다, 운영 안정성이 중요해지는 것이죠.
기업 간 경쟁을 넘어, 생태계 경쟁으로

1월 6일, 레노버(Lenovo)는 라스베이거스의 상징적인 공간인 Sphere에서 Tech World 키노트를 개최합니다. 레노버가 지난 10년간 독립 행사로 운영해온 Tech World를 CES 공식 일정으로 진행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i] 무대 역시 상징적입니다. 높이 112미터의 구형 구조물 내부를 16K LED 스크린이 감싸는 Sphere는 8,000명 이상에게 압도적인 몰입형 경험을 제공하는 공간으로, 지난해에는 델타항공이 CES 최초로 키노트를 연 장소이기도 합니다.
레노버는 이번 Sphere 키노트에서 기술과 비전을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Sphere Studios의 공식 기술 파트너로서, 레노버의 고성능 워크스테이션과 인프라 플랫폼을 콘텐츠 제작과 프로덕션 전반에 직접 통합해 몰입형 콘텐츠 제작을 실질적으로 구동하고 있습니다.[ii] 이번 행사는 퍼블릭·엔터프라이즈·퍼스널 AI를 유기적으로 결합한 하이브리드 AI 리더십을 통해 창의성, 생산성, 연결성을 확장하는 레노버의 엔드 투 엔드 역량을 입증하는 자리입니다. 클라우드에서 구동되는 AI 모델과 데이터센터의 워크스테이션, 현장 디바이스가 실시간으로 연결돼 16K 몰입형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과정이 현장에서 그대로 구현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여기서 또 하나 주목할 대목은 무대에 함께 오르는 사람들입니다. 젠슨 황(NVIDIA CEO), 립부 탄(Intel CEO), 리사 수(AMD CEO)가 레노버 CEO 양위안칭과 함께 무대에 섭니다. PC와 서버, AI 칩 시장에서 경쟁 관계에 있는 기업들의 CEO가 한자리에 서는 장면은 매우 이례적입니다.
이들이 함께 무대에 서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AI 인프라는 더 이상 한 기업의 기술만으로 완성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클라우드에서 데이터센터, 공장 현장, 개인 디바이스까지 AI가 끊김 없이 작동하려면, 서로 다른 칩과 시스템이 유기적으로 연결돼야 합니다. NVIDIA GPU, Intel CPU, AMD 프로세서를 각 환경에 맞게 배치하고, 이들이 하나의 시스템처럼 작동하도록 통합하는 역량이 기술의 핵심입니다.
경쟁의 기준 역시 변화하고 있습니다. 개별 칩의 성능을 겨루던 경쟁에서, 다양한 파트너의 기술을 유기적으로 결합해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운영이 가능한 시스템을 만드는 역량으로 경쟁의 무대가 이동하고 있습니다.
CES의 카테고리가 말해주는 변화
CES Innovation Awards의 변화 역시 같은 흐름을 반영합니다. 기존에는 소비자 가전과 개인 기기를 중심으로 카테고리가 구성됐지만, CES 2026부터는 산업 단위로 구분이 재편됐습니다.
CES Innovation Awards 2026에서는 EdTech, Enterprise Tech, Supply & Logistics, Travel & Tourism 등 새로운 카테고리가 추가됐으며,[iii] 이제 구분의 기준은 제품의 성능이나 형태가 아니라, 어떤 산업에서 어떻게 활용·운영되는 기술인지가 중요해졌습니다. CES가 실험적인 기술 쇼케이스를 넘어, 산업 적용의 현실성을 검증하는 무대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첨단 기술이 동시에 묻는 세가지 현실

CES 2026에서는 양자 컴퓨팅과 피지컬(Physical) AI를 비롯해, 엣지 AI 등 산업 현장 적용 기술이 주요 화두로 다뤄지고 있습니다.[iv][v]
양자 컴퓨팅은 기존 컴퓨터로는 처리하기 어려운 복잡한 연산을 수행하는 차세대 컴퓨팅 기술입니다. AI 개발에 필수인 방대한 데이터 처리, 신약 개발, 기상 예측 등에서 혁신을 가져올 것으로 기대됩니다.
피지컬 AI는 AI가 디지털 환경을 넘어 실제 물리 세계에서 작동하는 기술입니다. 로봇이 현실 환경을 인식하고 판단해서 물건을 집고, 움직이고, 작업을 수행하는 것이죠. 공장, 물류센터, 병원 같은 현장에서 사람을 대신하거나 돕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엣지 AI는 클라우드 서버가 아니라 현장 기기에서 직접 판단을 수행해, 지연 없이 즉각적인 의사 결정을 가능하게 합니다.
얼핏 보면 서로 다른 영역의 기술 같지만, 사람들이 공통으로 던지는 질문은 단순합니다.
- 전력은 감당 가능한가
- 유지보수가 가능한가
- 중단 없이 계속 운영할 수 있는가
AMD가 클라우드 데이터센터뿐 아니라, 엣지와 디바이스 환경으로 AI 적용 범위를 확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vi] 클라우드는 높은 성능을 제공하지만, 네트워크 환경에 따라 제약이 생길 수 있습니다. 공장이나 병원 같은 현장에서는 최고 성능보다, 중단 없이 계속 작동하는지가 더 중요한 기준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AI 기술은 점점 성능보다 운영 안정성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CES 2026, 정유·에너지 산업에겐 새롭지 않은 기준

사실 이러한 논의들은 정유·에너지 산업에서는 익숙합니다. 정유 플랜트는 24시간 365일 멈추지 않고 돌아갑니다. 전력 효율이 조금만 떨어져도 비용으로 직결되고, 안전은 절대 타협할 수 없는 영역입니다.
정유 산업에서 기술을 도입의 기준은 언제나 같습니다. 실제 현장에서 안정적으로, 장기간, 비용을 통제하면서 운영할 수 있는가입니다.
GS칼텍스가 추진하고 있는 AI 기반 공정 최적화, 설비 고장을 사전에 감지하는 예지보전, 에너지 효율 개선 역시 같은 맥락에 있습니다. 클라우드가 아니라 현장에서 직접 판단하는 엣지 AI가 필요한 이유도 분명합니다. 플랜트는 멈출 수 없고, 판단은 즉시 이뤄져야 하기 때문이죠.
CES 2026를 보는 하나의 관점
CES 2026은 새로운 기술과 성능을 자랑하는 무대라기보다, 기술이 실제 산업 환경에서 얼마나 안정적으로, 장기간 작동할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경쟁사 CEO들이 함께 무대에 서는 이유는, 한 회사의 기술만으로 안정적인 시스템을 만들 수 없기 때문입니다. 카테고리가 제품이 아니라 산업으로 나뉜 이유는, 기술이 실험실을 벗어나 24시간 돌아가는 현장에 들어섰기 때문입니다. 양자 컴퓨팅, 피지컬 AI, 엣지 AI가 공통으로 전력과 안정성을 묻는 이유는, 성능 경쟁이 끝나고 운영 경쟁이 시작됐기 때문입니다.
1월 6일부터 9일까지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CES 2026은, 산업 전반이 ‘무엇을 만들 수 있는가’에서 ‘무엇을 계속 운영할 수 있는가’로 기준을 옮기고 있음을 보여주는 분기점이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i] Lenovo press release (Lenovo brings its global Tech World to CES 2026 at Sphere) https://news.lenovo.com/pressroom/press-releases/lenovo-announces-techworld-ces/
[ii] CTA press release (Lenovo Chairman and CEO Yuanqing Yang to keynote CES 2026 at Sphere) https://www.ces.tech/press-releases/lenovo-chairman-and-ceo-yuanqing-yang-to-keynote-ces-2026-at-sphere
[iii] CTA press release (CES Innovation Awards® 2026 new categories: EdTech, Enterprise Tech, Filmmaking & Distribution, Supply & Logistics, Travel & Tourism)
https://www.ces.tech/press-releases/cta-announces-ces-innovation-awards-2026-honorees
[iv] CTA article (CES Foundry programming highlights AI and Quantum technologies focused on real-world implementation at CES 2026)
https://www.ces.tech/articles/ces-foundry-where-ai-and-quantum-take-center-stage-at-ces-2026/
[v] CTA press release (CES Foundry features Physical AI sessions including “Physical AI and the Big Bang of General Robotics” at CES 2026)
https://www.ces.tech/press-releases/ces-foundry-brings-together-innovators-for-programming-demos-and-networking
[vi] Business Insider article (AMD CTO on AI inference moving from data centers to edge devices) https://www.businessinsider.com/ai-workloads-transition-inference-amd-mark-papermaster-edge-devices-202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