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월이면 스위스 알프스의 작은 휴양도시 다보스는 세계를 움직이는 리더들의 발걸음으로 분주해집니다. 해발 1,560m의 유럽에서 가장 높은 도시에서 열리는 세계경제포럼 연차총회, 일명 ‘다보스포럼’은 단순한 국제회의를 넘어 전 지구적 도전과제에 대한 해법을 모색하는 글로벌 브레인스토밍의 장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올해 다보스포럼은 1월 20일부터 24일(현지 시간)까지 진행될 예정인데요. ‘지능형 시대를 위한 협업(Collaboration for the Intelligent Age)’이라는 주제로 진행될 글로벌 행사에 앞서 다보스포럼의 역사적 성과들과 2025년에 논의될 핵심 주제들을 정리해 봤습니다.
글로벌 리더들이 유럽의 가장 높은 도시 ‘다보스’로 모이는 이유
다보스포럼이란 이름으로 우리에게 더욱 친숙한 세계경제포럼 연차총회(World Economic Forum Annual Meeting)는 경제, 정치, 사회 등 다방면에 걸친 세계 각국 유력 인사들이 한자리에 모여 전 세계가 당면한 위기의 해결 방안과 더 나은 기회의 가능성을 논하는 자리입니다.
이 자리의 진정한 가치는 일회성 회의를 넘어, 지속 가능한 변화를 위한 글로벌 의제를 주도하는 플랫폼 역할을 한다는 데 있는데요. 예를 들어, 최근 몇 년 동안 다보스포럼이 주목한 의제에는 글로벌 위기 상황에서의 공존, 팬데믹 대비, 기후 위기 대응, 글로벌 불평등 해결, 4차 산업혁명 대응 문제 등이 있었습니다.
다보스포럼이 다루는 의제들은 변하는 세계정세에 맞춰 인류가 지속적으로 개선해야 할 문제들에 가깝습니다. 때문에 회의에 참여한 이들은 모두에게 일괄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정답’을 찾는 게 아니라 함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기준’을 찾고, 인류의 미래를 지속하기 위해 서로가 지켜야 할 ‘가이드라인’을 세우기 위해 매년 수백 개의 세션에서 수많은 대화와 협의의 시간을 갖고 있는 것이죠.
다보스포럼에 대해 현실에서 동떨어진 엘리트들의 모임이라는 비판도 존재합니다. 하지만 다보스포럼은 현안에 대해 다양한 관점의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하는 열린 토론의 장을 만들기 위해 2001년부터는 비정부기구 인사를 초청하기 시작했습니다. 현재는 글로벌 기업 CEO뿐만 아니라, 학자, 사회활동가, 청소년과 시민 리더 등 다양한 계층의 오피니언 리더들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다보스포럼에서 시작된 세계백신면역연합을 통해 10억 명이 넘는 어린이가 예방 접종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청정대기연합(ACA)을 형성해 오염 물질을 감소시키기 위한 노력을 촉진하거나, 생물 다양성 보존을 위해 60여 개국과 나무 심기 협약을 맺어 전 세계에 2030년까지 1조 그루의 나무를 심겠다는 목표를 설정했고, 현재까지 36억 그루 이상의 나무를 심는 등 실질적인 성과도 꾸준히 이루고 있습니다.
세계 평화와 경제 협력의 산실, 다보스포럼의 역사적 순간들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지속된 다보스포럼은 국제 민간 회의 가운데 가장 영향력이 큰 행사이지만, 시작부터 지금처럼 대단한 회의는 아니었습니다. 1971년 1월, 제네바 대학 교수 클라우스 슈밥이 주요 경제 현안에 대한 유럽 국가들의 공동 대응책을 마련하기 위해 유럽 주요 기업인들을 다보스로 초청해 제1회 유럽경영심포지엄을 개최했는데요. 이 행사의 수익금으로 유럽경영포럼 재단을 만든 것이 세계경제포럼의 시초가 되었습니다.
16년이 지난 1987년에는 재단 명칭을 세계경제포럼 재단으로 바꾸고, 행사도 세계경제포럼 연차총회로 변경하며 규모를 확대했습니다. 이후 지금까지 다보스포럼은 세계사의 주요 사건들과 함께하며 최신 경제 트렌드와 글로벌 전망에 대해 논의하는 세계적 포럼으로 성장하게 되죠.
세계경제포럼이라는 명칭을 처음으로 사용한 1987년, 다보스포럼은 글로벌 커뮤니티의 역할을 강조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서독의 외무 장관 한스-디트리히 겐셔는 서방 국가들과 소련의 협업을 호소하는 연설을 진행했고, 이 연설은 일부 역사가들에게 냉전 종식의 시작을 알리는 중요 표식으로 평가됐습니다. 이듬해인 1988년에는 그리스와 튀르키예가 다보스 선언을 통해 극적으로 전쟁을 피할 수 있었는데요. 당시 튀르키예 총리 투르구트 외잘은 2년전 다보스포럼에서 그리스 총리를 만나지 않았다면 전쟁을 피할 수 없었을 것이라 말했습니다.
1992년에는 남아프리카공화국 변화의 핵심 인사인 넬슨 만델라, 프레데리크 빌럼 데 클레르크, 망고수투 부텔레지가 만델라의 석방 2년 후 처음으로 남아프리카공화국 외부에서 다보스포럼에 함께 참석했습니다. 이들의 참여는 서로의 견해 차이에도 불구하고,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민주주의로 이끌겠다는 의지를 공유한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특히 만델라와 클레르크의 악수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유색인종 차별 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 종식을 상징했습니다.
2002년, 다보스포럼은 9/11테러 이후 미국과 뉴욕 시민들과의 단결을 보여주기 위해 다보스 밖에서 유일한 연차총회를 개최했고, 2016년 포럼에서 의제로 선정된 4차 산업혁명은 이후 글로벌 리더들이 반드시 이해해야만 하는 주요 개념으로 자리 잡기도 했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에 대응하기 위해 2021년에는 사상 최초로 온라인 포럼이 개최되었으며, 이후 팬데믹에 대응하기 위한 40개 이상의 ‘이니셔티브’가 시작되었습니다. 또한, 디지털 격차를 해소하고 디지털 경제에 대한 공평한 접근성을 보장하는 에디슨 얼라이언스(EDISON Alliance)를 설립했는데요. 에디슨 얼라이언스의 도입으로 2억 8천만 명의 디지털 소외 계층에게 디지털 금융 서비스를 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2023년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에너지와 식량 가격이 급등하며 이어진 인플레이션이 세계적 위기를 야기하는 연쇄적 다중 위기 시기였는데요. ‘분열된 세상에서의 협력’을 주제로 진행된 다보스포럼에서 미국은 새로운 개발 기금 프로그램을 발표했고, 회의에 참석한 글로벌 CEO들은 아프리카에서 자유 무역 협정을 지원하는 계획을 뒷받침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올해 다보스포럼에서 논의될 다섯 가지 우선 과제
세계경제포럼 창립자이자 이사회 의장인 클라우스 슈밥은 이미 2016년 제4차 산업 혁명이란 용어를 통해 물리적, 디지털, 생물학적 현실이 융합되어 산업과 사회를 포함한 우리 삶의 모든 측면을 근본적으로 바꿀 잠재력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지능형 시대를 위한 협업’이라는 올해 다보스포럼 주제는 “융합 기술이 세계를 빠르게 재편하고 있으며, 우리를 변곡점으로 밀어붙이고 있다.”는 그의 발언이 드디어 우리 현실로 다가왔음을 보여줍니다. 실제로 인공지능, 블록체인 양자컴퓨팅 등 첨단기술의 급속한 발전은 산업 전반의 급격한 변화를 야기하고 있으며, 지금도 실시간으로 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2025년 다보스포럼은 융합 기술과 초지능 시대의 잠재력을 포착해 모든 인류에게 이익이 되는 세상을 건설하기 위한 협업 과제로 5가지 소주제를 선정해 총 300여 개 세션을 구성했습니다.
① 성장의 재발견 (Reimagining Growth)
디지털 전환이 세계 경제를 재편하며 디지털 경제가 새로운 성장 원천으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디지털 경제는 이미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약 15.5%를 차지하고 있으며, 향후 10년 동안 세계 경제에서 창출되는 모든 새로운 가치의 최대 70%를 위한 기반을 형성할 것으로 전망되는데요. 이런 잠재력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은 여전히 도전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특히 재정적 여력이 제한된 상황에서 정책 입안자들은 경제 회복과 안정적인 성장을 위한 혁신적 돌파구를 모색해야 하죠.
이번 다보스포럼에서는 디지털 경제가 지닌 성장 가능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기업, 정부, 시민사회가 협력하여 신성장 동력을 발굴하고,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공동 전략을 논의합니다. 세계경제포럼은 공공과 민간의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다수의 센터를 통해 통합적인 접근법을 제시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보다 강력하고 회복력 있는 경제를 구축하고자 합니다. 이러한 협력과 혁신을 통해 ‘침체된 2020년대(Tepid Twenties)’로 불리는 저성장 시대를 극복하고, 지속가능한 경제 성장을 위한 길을 모색할 계획입니다.
② 지능시대의 산업 (Industries in the Intelligent Age)
AI, 양자컴퓨터, 바이오, 로봇 등 첨단기술의 발전은 다양한 산업에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고 있는데요. 하지만 동시에 급격한 에너지 수요의 증가라는 문제도 마주했습니다. 세계경제포럼에 따르면 기술 산업의 전력 소비는 현재 약 460TWh에서 2026년까지 1,000TWh에 이를 것으로 전망됩니다.
포럼에서는 첨단 기술이 가져올 산업 생태계의 변화와 대응 전략을 중점적으로 다룰 예정입니다. 특히, 기업들이 단기적 성과를 유지하면서도 장기적인 지속 가능성을 보장하기 위해 어떻게 균형을 잡을 수 있을지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③ 사람에 대한 투자 (Investing in People)
AI 시대의 도래로 일자리의 지형이 크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약 40%의 일자리가 AI의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이는 완전 자동화보다는 기존 업무를 강화하고 보완하는 형태로 나타날 가능성이 큽니다. 특히 디지털 및 서비스 경제에서 강력한 일자리 창출이 이미 진행 중이며, 신흥 산업과 첨단 기술 분야에서 요구되는 고부가가치 일자리의 창출이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재교육(Reskilling)과 역량 강화(Upskilling)를 통해 미래 경제의 요구에 부응할 수 있는 인재 육성이 필수적입니다.
따라서 공공 및 민간 부문의 협력을 통해 현대적이고 회복력 있는 사회를 구축하기 위한 교육 시스템 혁신과 인재 투자 전략이 논의될 예정입니다. 세계경제포럼은 공공-민간 협력을 통합해 기술 혁신의 성과를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전환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④ 지구 보호 (Safeguarding the Planet)
기후 변화 대응은 이미 국제 협력의 중심 의제로 자리 잡았으며, 신기술과 정책의 통합이 가속화될 것입니다. 특히 ‘에너지 트릴레마(Trilemma·3개 딜레마)’로 불리는 에너지안보, 탄소중립, 에너지빈곤 문제의 해결이 시급한 상황인데요. 이를 위한 핵심 열쇠로 소형모듈원전(SMR)과 해상풍력 등 청정 기술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이번 포럼에서는 이러한 혁신기술을 통한 구체적인 해결방안이 모색될 예정입니다.
때문에 혁신적인 협력 모델과 자금 조달 방안도 올해 논의될 것입니다. 공공과 민간 부문, 시민사회가 함께 참여하는 공동 솔루션을 통해 탈탄소화와 자연 친화적 전환을 가속화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⑤ 신뢰 재건 (Rebuilding Trust)
세계는 강대국 간 경쟁 심화와 보호무역주의 확산으로 국제 협력이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이는 무역과 투자에 제약을 가하고, 사회적 갈등을 심화시키는 주요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디지털 경제는 이러한 위기를 극복할 새로운 기회를 제공합니다. 세계무역기구(WTO)에 따르면 디지털 서비스의 가치는 지난 20년 동안 4배 증가하며 무역 활성화의 중요한 동력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따라서 올해 세계 각국의 글로벌 리더들과 디지털 경제를 활용해 사회적 갈등을 완화하고, 포용적 성장을 위한 협력 방안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기업, 정부, 시민사회는 신뢰를 회복하고 글로벌 협력을 재건하기 위해 새로운 협력 모델을 설계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세계경제포럼은 공공-민간 협력을 통해 무역과 투자 활성화를 지원하며, 실질적인 변화를 이끄는 데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2025년 다보스포럼은 인공지능과 첨단기술이 가져올 변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5가지 핵심 과제를 중심으로 각국의 정책 입안자들과 기업인들이 어떤 협력 방안을 도출하고,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제시할지 주목됩니다. 이번 다보스포럼에서 도출될 주요 논의 내용과 그 결과도 함께 지켜보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