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 나면 달라지는 AI 기술에 현기증을 느낀다는 기업이 많다.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는 자본주의는 ‘변화 그 자체’로 정의한 바 있다. 우리는 AI 자본주의를 보고 있고, 자본주의는 시장과 에너지를 양대 축으로 진화해 왔다. 챗 GPT 개발사인 미국 오픈 AI의 샘 올트먼 최고경영자가 세계경제포럼(WEF)에서 “글로벌 현안 두 가지는 AI와 에너지”라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시장조사기관 가트너는 신기술 하이프 사이클을 통해 비전(vision) AI 기술이 ‘생산성의 언덕 위’로 가고 있는 데 반해, 초거대 언어 모델 및 생성형 AI는 ‘기대의 최정점’에 있음을 보여준 바 있다. AI의 판이 분석형 AI에서 생성형 AI로 급속히 옮겨가고 있다. 역사적으로 특정 기술이 ‘수평적으로’ 번져 나갈 때 혁명이라고 했고, 그 기술은 GPT(General Purpose Technology)로 불렸다. 미국 특허청에서 오픈 AI의 독점 사용을 거절했다는 GPT(Generative Pre-trained Transformer)가 새로운 GPT로 부상했다.
인도에서는 문맹 농부들이 대규모 언어 모델 덕을 보고 있고, 케냐 학생들은 AI 챗봇으로 숙제하고 있으며, 브라질 연구원들은 훈련이 부족한 1차 의료기관 종사자들의 환자 치료를 도와주는 의료 AI를 시험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초거대•생성형 AI가 멀티 모달 가속화와 로봇과의 결합으로 ‘모두를 위한 AI’를 더욱 체감하게 해줄 전망이다.
흥미로운 것은 초거대•생성형 AI를 주도하는 미국 빅 테크들이 기술을 숨기는 ‘폐쇄형(closed) 진영’과 기술을 공유하는 ‘개방형(open) 진영’으로 갈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오픈 AI는 그 이름과 달리 폐쇄형으로 돌아서고, 메타는 개방형 LLAMA로 가고 있다. 구글은 GEMINI로 오픈 AI의 GPT4에, GEMMA로 메타의 LLAMA에 대응하고 있다. 미국이 주도하는 초거대•생성형 AI에 중국이 맞짱을 뜨는 가운데, 한국,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걸프국들, 프랑스, 인도 등이 잇달아 출사표를 던지고 있다. 초거대•생성형 AI의 독점화보다 빅테크 간 경쟁이, 폐쇄형보다 오픈소스 개방형의 선전이 후발자에게 유리할 것이다.
승부는 초거대•생성형 AI의 활용에서 판가름 날 것이다. 사실 초거대•생성형 AI의 파운데이션 모델은 ‘규모의 법칙’이 적용되는 데다, 기술 장벽보다 자본 장벽이 더 높다. 여기서 경쟁을 벌이기보다 파운데이션 모델을 전략적으로 이용하면서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전략이 후발자의 새로운 돌파구가 될 수 있다.
제조 등 산업 포트폴리오가 상대적으로 잘 짜인 한국 입장에서는 ‘산업 AI’가 최후의 승부처나 다름없다. 인구감소까지 고려하면 초거대•생성형 AI를 활용해 생산성을 얼마나 끌어올릴지가 산업의 운명을 가를 공산이 크다. 글로벌 제조업체들은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문서 작성과 요약, 정보 수집은 물론이고 R&D, 디자인, 설계, 재료 개발에서 제조, 품질관리, 유지보수, 유통, 마케팅까지 거의 모든 업무에 초거대•생성형 AI가 전사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AI가 저절로 생산성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는 것은 ‘AI 생산성 역설’이 말해주는 바다. 생산성 측정이나 시차(time lag)의 문제도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어떤 문제를 해결할지에 대한 식별과 필요한 데이터의 가용 여부다. 초거대•생성형 AI 시대에 누가 살아남고 누가 사라질 것인가. 망한 기업을 모아 통계적으로 분석한 논문들이 단점보다 장점에 주목하는 이유가 있다. 장점으로 믿어온 ‘핵심 역량(core competency)’이 ‘핵심 경직성(core rigidity)’으로 돌변한 줄 모르고 앉아서 죽는 기업이 많다는 것이다.
에너지 기업도 예외가 아니다. ‘초거대•생성형 AI 없는 그린(에너지) 전환’과 ‘그린(에너지) 전환 없는 초거대•생성형 AI’로는 경쟁할 수 없는 시대다. AI와 ESG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초거대•생성형 AI의 모델은 선택할 수 있지만,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 식별과 데이터 기업으로의 무장은 스스로 하지 않으면 누구도 해결해 주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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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현실 - 서울대 객원교수(기술경영•산업정책) 과실연 상임대표 권한대행
안현실 교수는 서울대 경제학과와 KAIST 경영과학 석·박사 출신으로, 산업기술정책연구소 수석연구원, 생산기술연구원 미국(워싱턴)사무소장, 한국경제신문 AI경제연구소장·논설위원 등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