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고 때맞춰 익히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子曰: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동양최고의 인생교과서인 <논어>는 첫 장을 배움의 기쁨으로 시작합니다. <논어>는 공자와 제자들의 대화를 기록해놓은 책이지요. 저는 공자의 매력이 ‘공부하는 인간’이라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많이 아는 사람이 아니라 많이 알려고 평생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이지요. 흙숟가락로 태어난 15살에 학문에 뜻을 둬 70세에 마침내 ‘마음대로 하고싶은 것을 행해도 규율에 벗어나지 않았다‘고 돌이켜보는 공자를 보면 평생학습의 절정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그가 말하는 공부의 기쁨, 방법, 태도는 어떤 걸까요? 과연 그것이 2500년이 지나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학습의 기쁨: 밥 먹는 것도, 고기 맛도 잊고 몰입할 일 갖고 계신지요
여러분은 자기소개서를 한 줄로 요약한다면 어떻게 표현하시겠습니까? 공자는 ‘어떤 일에 열중하면 먹는 것도 잊고 즐거워하여 걱정거리를 잊어버리며, 늙음이 다가오는 것도 알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어떤 사람이 공자의 제자인 자로에게 공자가 어떤 사람이냐고 물었는데 선뜻 대답을 하지 못했다는 말을 듣고 공자가 단칼에 이렇게 스스로를 압축해 말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공자는 제나라에서 음악을 배울 때, 3달 동안이나 고기 맛을 잊을 정도로 몰두했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하거나 배우면서 이처럼 먹는 것을 잊을 정도로 몰입한 적이 있는지요. 저는 몰입과 관련된 아픈 추억이 있습니다. 대학시절, 한 선배가 있었습니다. 그 선배는 도서관에서 공부할 때, 시간가는 줄 모르고 예습과 복습을 했고, 심지어 지하철 막차 시간도 까먹고 열중하더군요. 그 때 ‘저런 사람과 경쟁하면 백전백패겠다’는 생각을 하고 박사진학을 포기했었습니다. 말하자면 미하일 칙센트미하이교수가 말한 <몰입>의 지경이었다고나 할까요?
몰입을 영어로는 flow라고 합니다. 단어 뜻 그대로 1시간이 지났는지 6시간이 지났는지 잘 모를 정도로 시간의 흐름을 못느끼는 경지, 이 때 우리는 삶이 충만하다고 느끼지요. 미하일 칙센트미하이는 ‘진정한 행복은 휴식보다도 이런 집중과 몰입의 순간에 있다’고 말합니다. 공자는 ‘나보다 잘난 사람은 얼마든지 많지만, 나만큼 배우길 좋아하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라고 자신있게 말하는데요. 여러분은 배움에서 이런 강렬한 몰입과 진화의 기분을 느껴본 적 있으신지요. 몰입, 어디만큼 느껴보았는지 그것이 인생 행복을 좌우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배움의 전제: 자신을 아는 것이 먼저다
모든 배움은 자신을 아는 것이 먼저입니다. 공자는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 이것이 아는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나자신의 상태를 알아야한다는 것인데 말처럼 쉽진 않지요. 세계적인 대문호 마크 트웨인은 ‘인간이 곤경에 빠지는 건 뭔가를 몰라서가 아니라 뭔가를 안다는 자기중심착각 때문이다’라고 말한 적 있지요. 최상위 우등생 1%와 그렇지 않은 학생들의 차이는 메타인지라고 합니다. 즉, 자신이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구별할 줄 아는 것인데요. 바로 공자의 말과 통합니다.
자신을 안다는 것,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요. 생김새는 거울을 보고 알 수 있지만 진정한 자신을 알긴 힘듭니다. 피터 드러커는 자신의 역할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이라 말합니다. 즉, 000회사 00부서 부장이라는 지위는 자신의 포장이지 본질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다른 관리자들이 올바른 결정을 내리는데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나의 일입니다’, ‘고객들이 장차 필요로 하게 될 제품을 찾아내는 것이 내 책임입니다’등 권한보다 공헌과 역할에 맞춰 자신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인식과 피드백은 자신의 강점, 그 자신을 어떻게 개선해야 할지를 알게 합니다. 잘하는 것, 하지 말아야 할 것, 더 노력해야 할 것, 무엇을 배우고 바꿔야 하는지 성찰하게 하지요. 자신을 모르는 채 공부하는 것은 거울을 보지 않고서 화장하는 것과 같습니다. 에릭슨 교수는 ‘1만시간의 법칙을 이야기하지만 피드백과 그에 따른 의도적 노력을 하지 않은 채 1만시간을 학습해봤자 성과는 없다’고 단언한 바 있습니다. 자기인식이 먼저입니다. 노력이 배신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인식 없는 노력이 배신하는 것이지요.
배움의 방법: 일공부가 가장 큰 공부다
공자는 ‘배우기만 하면서 생각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없다. 생각하기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라고 합니다. 저는 이 말이 절묘하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각종 지식과 정보가 쏟아집니다. 해야 할 일도 많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일머리를 생각하며 배우고 일하지 않으면 본인에게 남는 것이 없지요. 탈진, 번아웃이란 말이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일 것입니다. 반대로 늘 궁리하고 생각하지만 실행으로 옮기지 않으면 모래성이 되기 십상입니다. 즉, 사고력과 실행력이 함께 하는 것이 진정한 배움입니다. 공자의 말은 일과 공부가 따로 노는 것이 아니라 일공부가 가장 큰 공부라고도 해석해 볼 수 있습니다.
점과 점이 이어져있는 것을 선으로 만들고, 면으로, 입체로 만들 수 있는 것이 진정한 배움입니다. 지난 평창 올림픽 행사 진두지휘를 맡았던 송승환씨를 만났을 때, 무언극 <난타>구상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었습니다. 그가 한참 사업 아이디어에 골몰할 때 누군가 식사자리에서 ‘유럽에 가서 무언극을 보고 왔는데 재미있었다’고 이야기를 하더란 것이지요. 그걸 듣자마자 머리에 불꽃이 튀며 ‘유레카’를 외치고는 무언극을 개발하게 됐다고 합니다. 공부는 꼭 책이나 학원에 가서 별도의 시간을 통해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또 연령에 따라 시한이 있는 것도 아니고요. 매일 하는 일, 동료와 나누는 대화, 거기에서 일의 원리와 머리를 발견해 성장할 수 있으면 공부지요.
요즘 워라밸을 넘어 ‘워라인(work and life integration:일과 삶의 통합)’이란 말이 유행이라고 하지요. 학교 밖 공부는 지식을 넘어 사람, 일 모두를 통해 이뤄집니다. 학교에서 공부가 점이었다면 그 이후는 선을 잇고 면을 만들고 면을 입체화하는 것이지요. 일하느라 공부할 시간이 없다고요? 일의 체계화, 일공부야말로 가장 가성비 높은 공부입니다.
배움의 태도: 불치하문, 아랫사람에게 묻길 부끄러워하지 말라.
‘배우는데 늘 민첩했고,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敏而好學 不恥下問)’ 공자가 당대의 인물 공문자란 사람을 평하면서 한 말입니다. 공문자는 개인적 인품에서 문제가 많았던 사람인데요. 그런데도 죽은 후 붙이는 시호에 문(文)이 들어갔습니다. 제자들이 불만섞인 의문을 제기했을 때 충분히 받을 자격이 있다고 하며 해준 대답입니다. 배움의 자세를 얼마나 중시했는지 알 수 있지요.
말뿐 아니라 공자 본인도 실행했습니다. 공자는 어려서부터 예절에 밝았고 여기저기 자문, 요즘 말로 컨설팅을 하러 다녔습니다. 태묘(중국 주나라 정치가 주공을 모시고 제사 지내던 사당)에 제사 자문을 하러 갔을 때 일입니다. 매사를 현장 실무담당자에게 물었습니다. 기본예의와 절차에 해당하는 것까지도요. 그걸 보고 몇몇 사람이 ‘뭐, 저런 것도 몰라서 일일이 물어보냐? 저 사람(공자)이 예절을 잘 안다고 소문난 것은 과대포장된 것이로구나’하고 뒷담화를 했지요. 이걸 들은 제자들이 이 말을 일러바치자 공자는 화를 내긴커녕 ‘현장담당자에게 물어보는게 예이다’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뒤에 사가들은 이렇게 현장담당자에게 물어보며 배우려 한 자세의 이득을 3가지로 말합니다. 첫째는 현장 실무자들의 자존심을 세워준 것이고, 둘째는 제사예절은 각각이기 때문에 중앙과 지방이 다를 수 있어 물어봐 확인한 것, 셋째는 주변에 모르지만 물어보지 못한 사람들을 대신해 물어봐 잘 알도록 도와준 것이란 것이지요.
이런 점에서 공자는 정말 ‘배운 사람 같지‘ 않았지요. 자신보다 직급이나, 나이가 어린 사람에게 배우고자 물어보는 것은 부끄러운게 아니라 자신감의 표현이지요. 요즘 밀레니얼 세대와의 소통이 문제가 되는데요. 잘하는 리더, 조직은 대부분 리버스(逆) 멘토링을 택하고 있는 점은 시사적이지요. 일본 메이난 제작소의 하세가와 가스지 회장은 ‘아랫사람에게 가르침 받을 용기가 있는가, 없는가 이것이 리더의 수준을 결정한다. 라이벌보다 후배에게 배우고자 하는 것이 더 힘들다. 내가 데리고 있는 사람 내가 먹여 살리는 사람에게까지 고개를 숙이고 가르침을 청한다는 것은 여간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리더의 야망과 대담한 성품을 보여주는 증거다’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리더가 배움의 자세를 보여줄 때 구성원들은 진정으로 따른다는 이야기와 통합니다.
배움의 자세를 갖게 하려면: 깨기보다 깨우치라
공자는 제자 3천명을 모두 인재로 육성했습니다. 하지만 공자의 제자들은 자원이 좋지 않았습니다. 귀족자제도 있었지만 서민들이 대부분이었고 연령, 출신이 다양하기 그지없었습니다. 그런데도 모두 제 몫을 하게끔 한 것은 공자가 배움의 자세를 가지게끔 해서입니다. 즉, 요즘 말로 하자면 공자는 꼰대스럽지 않았습니다.
공자는 자신의 학습 전수법을 이렇게 말합니다. ‘분발하지 않으면 계발해주지 않으며, 표현하지 못해 답답해 할 정도가 되지 않으면 가르쳐주지 않는다. 한 모퉁이를 가르쳐주었는데 나머지 세 모퉁이를 알지 못해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어떤 문제에 대해 골똘히 집중해 생각하려고 하지만 알 수가 없어 이를 분하게 여겨서 꿰뚫고자 하는 성의가 충만할 때까지, 입에선 말하고자 해서 혀를 뱅글뱅글 맴도나 말이 채 안 나올 때까지, 사물에는 네 모서리가 있다면 그 한 모서리만 들어 보여주면 다른 세 모서리는 스스로 알아 시시콜콜 다 가르쳐주지 않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즉, 코칭적 소통법, 여백을 두고 채우길 기다려 가르쳤다는 뜻입니다. 혹시 여러분은 간섭하느라 각성의 순간을 놓치시진 않으셨는지요.
에필로그. 공부의 함정에 빠지지 말자
‘배운 사람 답지 않다’라는 말은 알다시피 겸손한 사람을 가리키는 칭찬의 말입니다. 공부를 안해서 걱정이기도 하지만, 공부를 너무 해서도 걱정인 게 배움의 이중성입니다. 공부하는 사람은 이기적이거나, 오만하거나 세상물정 모르는 채 잘난 척만 해서 배타시 되기도 합니다. 공자가 말하는 진정한 배움은 글공부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현실에서 유리되는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세상을 공부하는 것, 사람을 공부하는 것, 이 모든 걸 뜻하지요. 오히려 책공부는 나중입니다. 겸손이 없는 공부는 독이 되기 십상이지요.
공자는 ‘옛날사람들은 스스로를 위한 공부를 했는데, 요즘 사람들은 남에게 보이기 위한 공부를 한다’고 질타한 바 있습니다. 즉, 남보다 잘나기 위해서가 아닌 어제의 나보다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한 수양과 수련이 진정한 공부란 뜻이지요. 공부는 성숙하고 성장하기 위한 것이지, 성공을 향한 것만은 아닙니다.
※ 본 글은 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GS칼텍스의 공식입장은 아닙니다.
김성회 - CEO리더십 연구소장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및 동대학원에서 한문학을 공부했다. 졸업 후, 세계일보 인터뷰 전문기자로 각 분야 리더를 1000명 인터뷰해왔다. 저서로 <성공하는 CEO의 습관>을 비롯해 한자 어원을 통해 리더십을 탐구한 <리더를 위한 한자인문학>, <용인술>등 다수가 있다. 동양고전과 현대 경영을 접목, 리더십과 소통강의, 저술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