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만의 대전환: 포스트-코로나 경영 패러다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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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만의 대전환: 포스트-코로나 경영 패러다임 | 20220224 01 00 F

최근 환경변화의 특수성

실천학문인 경영학 전공자로서 필자는 다양한 기업들에 자문을 제공해왔는데, 이 과정에서 각 기업에 제시한 조언은 서로 다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기업마다 사업과 핵심 기술의 성격, 그리고 당면한 환경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최근 필자는 모든 산업에 속한 모든 기업이 공통으로 시급하게 추구해야 할 근본적 변화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현재 진행 중인 환경변화가 전 세계 모든 기업과 산업들에 영향을 미치는 특별한 변화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혁신기법 채택이나 6시그마 등을 통한 효율성 개선으로는 결코 대응할 수 없고 기업경영의 펀더멘털 자체를 완전히 새롭게 바꾸는 패러다임 전환이 꼭 필요한 특수한 시기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정도의 규모와 범위로 경영환경이 바뀐 것은 100여 년 전 대량생산 혁명이었습니다. 현재 진행 중인 패러다임 전환의 원천이 바로 코로나 팬데믹과 4차 산업혁명의 결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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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팬데믹과 4차 산업혁명의 결합과 초경쟁환경의 도래

19세기 후반, 전화와 전보, 철도 등 새로운 연결 기술들의 등장으로 광범위한 지역에 걸친 연결조정이 가능해지면서 분산되어 있던 시장과 생산설비의 효율적 통합을 통해 규모의 경제와 범위의 경제를 추구하는 완전히 새로운 방식의 기업경영이 등장하였는데 바로 대량생산입니다. 이때 탄생한 Ford, GM, GE, Kodak 등의 신생 기업들이 대량생산 중심의 현대 산업사회를 만들어냈던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또 다른 패러다임 전환이 코로나 팬데믹과 함께 급속히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과 4차 산업혁명이 결합한 초경쟁(Hyper-Competition) 환경입니다.

코로나 팬데믹의 핵심은 연결의 양면성입니다. 중국 우한에서 발생한 코로나19가 발생 후 불과 2~3달 만에 전 세계로 빠르게 퍼져 팬데믹이 된 것은 중국이 세계 각 지역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중국뿐 아니라 1990년대부터 전 세계를 경계 없는 하나의 완전경쟁시장으로 만들기 위해 지속해서 시도되어온 세계화의 결과 200개에 가까운 모든 나라 간 경계를 넘어서는 연결이 최근 급증했기 때문에 코로나19가 역사상 최악의 팬데믹 중 하나로 악화한 것입니다. 그러나 팬데믹 극복을 위해 글로벌 연결구조를 해체할 수는 없는데, 현재 인류가 누리고 있는 전대미문의 풍요와 발전의 대부분이 세계화를 통한 경계를 넘어서는 연결 덕분에 성취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연결구조의 해체와 반세계화는 빈곤과 고립, 그리고 지역 간 갈등의 시대로의 회귀를 초래할 것입니다. 따라서 해결책은 세계화와 연결구조의 장점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앞으로 더 자주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팬데믹과 같은 연결의 위험을 예방하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기업들이 코로나 팬데믹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발견한 것이 바로 2010년경부터 본격적으로 발전되어온 4차 산업혁명과의 만남입니다. 코로나 팬데믹이 본격화되자 전 세계 대부분의 기업은 불가피하게 화상회의 등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비대면 경영에 의존하게 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예상과 달리 비대면 경영이 매우 효율적이면서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이메일이나 전자결제, 전자상거래 등 일부 영역에만 부분적으로 적용되어 오던 4차 산업혁명이 갑자기 가속화되면서 총체적 패러다임 전환으로 연결되게 된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세계경제포럼(WEF)의 슈밥(K. Schwab) 의장은 2020년에 출간된 저서 에서 “코로나19로 가속화된 4차 산업혁명이 기존 질서를 붕괴시키고 세상을 더 바람직한 방향으로 재창조할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4차 산업혁명으로 인간 지능의 한계를 훨씬 넘어선 초지능, 모든 것이 모든 것과 실시간으로 연결되는 초연결, 사이버 세계와 물리적 세계가 융·복합되는 사이버-물리시스템 등이 가능해졌습니다. 그 결과 이제는 모든 기업이 이 새로운 기술적 가능성을 활용하여 현재 사업 분야에서 기존 경쟁우위를 지키기보다는 끊임없이 경계를 넘어서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경쟁우위를 남보다 먼저 만들어내는 무경계 상시 창조적 혁신 경쟁을 벌이는 초경쟁 환경이 도래했습니다. 모든 기업들이 무경계 상시 창조적 혁신 경쟁을 벌이면서 이제는 환경 자체가 예측 못 한 방향으로 계속 바뀌는 극도의 불확실성과 불안정성, 그리고 모든 경계가 파괴되고 융복합화되는 무경계성의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그렇다면 포스트-코로나 초경쟁환경의 무경계 상시 창조적 혁신 경쟁에서 경쟁우위를 가지기 위해서는 어떤 경영방식이 필요할까요? 민첩성, 모듈형 조직, 그리고 고객중심성 등 세 가지가 핵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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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첩성(Agile) 경영

앞으로 모든 경영 프로세스와 행동의 기준이 될 핵심 가치는 애자일(Agile), 즉 민첩성입니다. 민첩성은 지난 100여 년간 현대 산업사회의 핵심 가치였던 효율성을 대체하는 새로운 핵심 가치입니다. 20세기 초에 Ford 등은 효율성 극대화라는 핵심 가치에 따라 컨베이어벨트와 단순반복작업 등 당시로서는 최첨단 경영기법들을 활용하여 동일한 제품을 저원가로 대규모 볼륨으로 생산하여 끊임없이 가격을 낮춤으로써 극도로 효율적인 대량생산 시스템을 완성했습니다. 그 이후 최근까지 현대 기업들은 대량생산 모델을 다양하게 변형시켜가며 효율성 극대화를 기업경영의 가장 중요한 핵심 가치로 추구하였습니다. 그 결과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 산업사회가 탄생한 것입니다.

20세기 산업사회형 대량생산은 환경의 예측 가능성과 안정성, 그리고 산업간 명확한 경계를 전제로 합니다. 그런데 초경쟁 환경은 앞에서 설명했듯이 미래 환경변화를 전혀 예측할 수 없는 극도의 불확실성, 그리고 수시로 예측 못 한 방향으로 환경이 빠르게 변화하는 불안정성, 그리고 산업이나 시장, 기술 분야 간 모든 경계가 수시로 파괴되고 재설정되는 무경계성을 핵심 특성으로 하므로, 대량생산의 전제 자체가 성립되지 않습니다. 초경쟁 환경에 대응하는 유일한 방법은 예측 못한 환경변화가 갑자기 발생하여 빠르게 진행할 때 각 구성원이 우물쭈물하지 않고 자율적으로 신속하게 행동하는 민첩성입니다.

민첩성의 실행에는 네 가지가 필요합니다. 첫째, 전체 기업이 중장기적으로 지향하는 큰 방향성인 명확한 비전을 철저하게 공유해야 예측 못 한 환경변화 앞에서 우왕좌왕하지 않습니다. 둘째, 일일이 최고경영진의 결정을 기다리다 타이밍을 놓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상황을 가장 잘 아는 현장 단위에서 전적인 권한을 가지고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하는 분권화와 임파워먼트가 필요합니다. 셋째, 불확실성 때문에 주저하다가 타이밍을 놓치는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해 구성원 각자가 그 순간에 최선의 선택이라고 판단되는 대안을 신속하게 시도해본 후 그 결과를 빠르게 평가해 필요하다면 계속 수정하는 방식의 행동지향성이 필요합니다. 넷째, 애자일 조직의 구성원들은 각자가 임파워먼트를 기반으로 조직의 환경 대응을 주도하는 존재로서 자발성과 열정에 기반한 내재적 동기부여가 필수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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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듈형 조직(Modular Organization)

포스트-코로나 초경쟁환경이 요구하는 조직구조는 모듈형 조직(Modular Organization)입니다. 20세기 초에 확립된 현대 기업의 전형적 구조는 전사가 긴밀하게 통합된 피라미드형 관료제 조직입니다. 피라미드형 관료제 조직의 설계 원리는 철저한 수직적 계층과 수평적 분업에 기반한 기계적 구조입니다. 현대 조직의 선구자였던 Taylor나 Ford 등은 엔지니어 출신으로 마치 기계를 설계하듯이 조직을 설계하였는데, 상하 간의 철저한 명령-복종 권한 관계와 좌우간의 명확한 분업이 조직설계의 핵심이었습니다. 따라서 사업부나 부서, 팀 등 하위 조직 단위들은 마치 기계의 부품과 같은 역할을 하였습니다. 이런 전통적 구조는 각 조직 단위들이 담당해야 할 과업의 책임과 권한이 사전에 명확히 규정되어 있으므로 미리 정해진 일을 계획대로 수행하는 데는 최고의 효율성을 발휘합니다.

그런데 이런 전통적 조직은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이 높은 환경에서 예측 못 한 환경변화가 갑자기 발생해 빠른 속도로 전개되는 환경에서는 구조적 경직성 때문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전체 조직이 긴밀하게 통합되어 있으므로 한 부분의 문제가 전체 조직을 마비시켜 버릴 위험이 있습니다. 이번 코로나 팬데믹이 바로 그런 사례였습니다. 1990년대에 세계화가 급속히 진행되기 시작한 이래 대부분의 글로벌 선도기업들은 전 세계에 걸쳐 각 기능을 가장 경쟁력 있게 수행할 수 있는 지역 조직 단위에 전담시키고 이를 전 세계적으로 긴밀하게 통합한 ‘글로벌 공급망(Global SCM)’을 구축하여 효율성을 극대화해왔습니다. 그런데 이번 코로나 팬데믹으로 중요성이 그리 높지 않은 단순한 부품을 전담하던 특정 지역의 생산공장이 확진자 발생으로 셧다운되면서 전체 글로벌 생산이 완전히 중단되어 버리는 전혀 예측 못한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즉 전통적인 피라미드형 관료제 조직 구조에 기반한 글로벌 SCM의 심각한 취약성이 드러난 것입니다.

이에 따라 글로벌 선도기업들은 신속하게 조직구조의 설계방식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꾸기 시작했는데 그 대표적 대안이 바로 모듈형 조직입니다. 모듈형 조직은 각 조직 단위가 한 가지 특정 기능에만 전문화하지 않고 상황변화에 따라 유연하게 다양한 복수의 기능들을 수행할 수 있는 독립적 조직단위인 모듈들의 집합체입니다. 그런데 모듈들간 관계는 서로 긴밀하게 연결된 것이 아니라 느슨하게 연계되어 있어서 환경변화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유연하고 신속하게 서로 ‘헤쳐모여’ 할 수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따라서 어떤 특정 기능을 담당하던 모듈이 코로나 팬데믹과 같은 예상 못 한 환경변화로 셧다운되면 신속하게 다른 모듈들이 기능을 전환하여 대체하거나 다른 모듈들로 연결경로를 변경할 수 있기 때문에 전체 글로벌 SCM은 중단없이 작동할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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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중심성(Customer Centricity)

전략적 관점에서 포스트-코로나 초경쟁 환경에서 가장 중요한 변화는 생산자 중심성(Producer Centricity)에서 고객중심성(Customer Centricity)으로의 전환입니다. 고객 중심성은 AI나 빅데이터 등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들이 개별 고객 각자의 수요 전체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을 가능하게 만들면서 2010년대 초중반에 등장한 개념입니다. 과거 생산자 중심성 전략에서는 기업이 가장 많은 소비자가 좋아할 것으로 예측하는 특정 상품을 대량으로 생산하여 판매하였습니다. 반면 고객 중심성에서는 동일한 상품을 모든 소비자에게 무차별적으로 제공하던 대량생산 방식에서 탈피하여 4차 산업혁명 기술을 활용해 각 고객 개인에게 초점을 맞추어 각자가 원하는 서로 다른 모든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고객 중심성은 Amazon, Netflix, Google 등의 서비스를 사용해보면 금방 이해할 수 있는데 3~4번만 구매를 해보면 AI가 고객의 소비 취향과 선호도를 정확히 파악하여 각자가 원하는 것을 알아서 추천합니다. Amazon의 창업자 제프 베조스(J. Bezos)는 자신의 묘비에 고객 중심성을 전파한 사람으로 새겨 달라고 했을 정도입니다. 전통적 제조업체 중에서도 Nike는 코로나 발생 직전인 2019년에 “Digitally Enabled, Customer-Centric”이라는 새로운 비전을 선언하고 Nike Digital 플랫폼을 중심으로 공격적으로 고객 중심성을 실행했습니다. 그 직후 코로나 팬데믹이 발생하자 경쟁사인 Adidas나 Under Armour는 심각한 생존 위기에 빠졌으나 Nike는 오히려 더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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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본적 전환의 시급성

그렇다면 패러다임 전환의 과정은 어떻게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할까요? 광범위하고 근본적인 조직변화는 장기적 관점에서 치밀한 계획에 기반하여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신중하게 실행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현재 환경변화의 성격은 정반대로 최대한 신속한 패러다임 전환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번 코로나 사태에서 경험했듯이 환경변화의 속도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빠르기 때문에 기업들의 조직변화도 최대한 신속해야 합니다. Nike는 신임 CEO인 Donahoe가 2019년에 취임하자마자 ‘Digitally Enabled, Customer Centric’의 패러다임 전환을 선언하며 이 60년 된 거대 글로벌 기업을 단 1년 만에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런데 우연히도 패러다임 전환 직후 코로나 팬데믹이 발생했는데 이미 고객 중심적 4차 산업혁명을 완료한 Nike는 심각한 타격을 입은 경쟁자들과 달리 오히려 더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종업원 수가 40만 명에 가까운 세계 최대의 자동차기업인 Toyota입니다. Toyota는 2020년 초에 제조업을 탈피하여 ‘이동(Mobility)’에 초점을 맞춘 디지털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근본적으로 변신하겠다는 비전을 선언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거대한 중공업체가 근본적 전환을 완수하는 시기를 2022년 말까지로 발표한 것이었습니다.

이런 Nike나 Toyota의 최근 사례는 현재 진행 중인 환경변화의 시급성을 잘 보여줍니다. 신중함에 대한 집착은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빛의 속도로 변화하는 전환기 환경에는 오히려 위험만 가중하는 고정관념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산업을 막론하고 기업경영의 핵심은 조직 내부가 아니라 외부 환경에 대한 대응입니다. 역사적 전환기에서 자기 자신의 전통이나 기존 강점 등 내부에 집착하는 자폐증적 기업은 결코 생존할 수 없다는 사실을 항상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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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엽 - 연세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연세대학교 경영학 학사·석사를, 예일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영학 박사를 졸업했다. 이후 연세대학교 경영학과 부교수, 유럽경영대학원 객원교수 등을 거쳐 1997년 연세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로 부임했다. 연세대학교 우수강의상, 매경이코노미 한국의 경영대가 4위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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