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염병은 ‘언택트’ 수혜-피해산업 간의 격차를 격화시켰다. 하지만 코로나의 영향을 대면-비대면으로만 인식해서는 안된다. 팬데믹 기간에도 크게 성장한 전통적 영역의 월마트나 스타벅스의 성공은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 것인가? 바로 ‘트렌드 대응능력’이다. 필자가 속한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는 15년째 발간하고 있는 <트렌드코리아 2022>를 통해 내년 트렌드 키워드 두운을 “TIGER OR CAT”으로 선정했다. 팬데믹 이후 상황 변화에 얼마나 잘 대처하느냐, 기업보다 진화의 속도가 더 빠른 소비자들의 트렌드를 어떻게 맞출 것인가의 갈림길 앞에 서 있다는 의미다. 그 변화의 주축이 될 열 가지 트렌드를 하나씩 살펴보자.
소비트렌드 1 ㅡ 나노 사회
한국 사회가 파편화하고 있다. 공동체가 개인으로 조각조각 부스러져 모래알처럼 흩어진다. 이 현상은 산업화 이후 꾸준히 제기돼 온 문제이기는 하지만, 최근 그 경향성이 강력해졌을 뿐만 아니라 다른 트렌드를 추동하는 동인이 되고 있다는 이유에서 더 주목해야 한다. 나노 사회는 쪼개지고 뭉치고 공명하는 양상을 띠며, 사회적 갈등을 증폭시키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공감 능력을 키우고, 우연적 경험의 폭을 넓히며, 공동체적 휴머니즘을 발휘해야 한다.
소비트렌드 2 ㅡ 머니 러쉬
돈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수입의 파이프라인을 확보하고자 하는 머니 러쉬는 두 가지 이상의 일을 하는 ‘투잡’과 레버리지를 이용해서라도 자산을 늘리는 ‘투자’로 양분된다. 소비지출에 대한 기대는 크게 높아졌는데 경제환경은 더 나빠지고 있기 때문이다. SNS를 통한 소비의 준거점이 올라가면서 소비에 대한 욕망은 커졌는데, 은퇴 후 대비를 위한 여건은 팍팍하기만 하다. 각자도생의 시대에, 내 힘으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월급 외에 부가적인 파이프라인이 반드시 필요해졌다.
소비트렌드 3 ㅡ득템력
값비싼 브랜드가 아니라, 갖기 어려운 아이템을 누가 얻는가가 과시와 차별화의 요소가 되고 있다. 경제적 지불능력만으로는 얻을 수 없는, 희소한 상품을 얻을 수 있는 소비자의 능력을 ‘득템력’이다. 득템력에는 세 가지 전략이 있다. 우선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줄 서고 기다리는 것이다. 다음으로 ‘운’으로 쟁취하는 전략이다. 마지막 전략은 득템하고 싶다는 간절함을 증명하는 것이다. 이렇듯 득템력이 중요해진 이유로는 사치의 대중화로 높은 가격보다 구하기 어려운 아이템이 차별화의 기호가 됐기 때문이다.
소비트렌드 4 ㅡ 러스틱 라이프
‘촌’스러움이 ‘힙’해지고 있다. 일상마저 버거운 도시인에게 촌은 따분함을 넘어서는 여유로움과 불편함을 무릅쓰는 날 것의 경험이 매력적인 공간으로 다가온다. 러스틱 라이프는 도시와 단절되는 ‘이도향촌’(離都向村)이라기보다는 일주일에 5일 정도는 도시에 머무르는 ‘오도이촌’(五都二村)하는 삶을 실천하며 소박한 ‘촌’스러움을 삶에 더하는 새로운 지향을 의미한다.
소비트렌드 5 ㅡ 헬시 플레저
건강관리가 힙해지고 있다. 건강이 중요하지 않았던 때가 없었지만, 전 세계를 휩쓴 역병의 시대에 건강과 면역은 모두의 화두다. 특히 젊은 세대가 건강에 관심을 두기 시작하면서 과정과 결과가 모두 즐겁고 지속가능한 건강관리가 대세가 되고 있다. 힘들고․어렵고․엄격했던 건강관리가 쉽고․재미있고․실천가능한 건강관리로 변모하고 있다. 헬시 플레저의 등장은 뿔뿔이 흩어진 나노 사회 속 “내 건강은 내가 지킨다”는 흐름과 맥을 같이한다.
소비트렌드 6 ㅡ 엑스틴 이즈 백
소비의 양적 규모나 질적 파급력으로 볼 때 한국 소비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세대는 1965-79년생, X세대다. 엑스틴은 70년대 생으로, 경제적·문화적으로 풍요로운 10대 시절을 보내면서 형성된 자유롭고 개인주의적인 성향을 간직하고, 10대 자녀와의 라이프스타일을 공유하는 세대라는 의미를 포괄한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넘어가는 문명사적 대전환기 정치․경제․사회․문화적 변화를 만들어낸 주역이기도 하다. 하지만 엑스틴이 조직에서 맞닥뜨린 현실은 녹녹치 않다. 기성세대의 관행을 충실히 이행하며 중간관리자로 성장했지만, 신구 세대갈등을 온몸으로 받아내는 ‘낀세대’다.
소비트렌드 7 ㅡ 바른생활 루틴이
자기 주도적으로 일생을 살아가고자 하는 신인류가 나타났다. 루틴은 매일 수행하는 습관이나 절차를 의미하는데, 루틴을 통해 스스로 자기 일상을 지키고자 노력하는 요즘 사람들을 ‘바른생활 루틴이’라 한다. 기업은 루틴이 소비자들의 성실한 하루를 지원하는 마케팅과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인사․조직관리에서도 루틴이들의 업무 자율성을 보장하는 한편, 이들이 최대한의 성과를 낼 수 있도록 독려하는 피드백 기반의 상시적 평가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소비트렌드 8 ㅡ 실재감 테크
시공간의 물리적 한계를 극복하고 실재감을 느낄 수 있게 만드는 기술, ‘실재감 테크’가 소비자와의 관계를 만드는 핵심적인 기술로 대두하고 있다. 현실과 가상의 연속성을 구현하는 일련의 기술들을 아우르는 실재감 테크는 가상공간을 창조하고, 다양한 감각을 자극하며, 디지털 데이터와 아날로그 방식을 혼합하는 등 인간 생활의 스펙트럼을 확장시킨다. 실재감 테크는 단지 기술적 완성도의 문제가 아니라, 수용자들이 얼마나 몰입하고 그 기술이 제공하는 혜택 속에 실제처럼 존재한다고 인지 하느냐의 문제다. 실재감 테크는 우리의 감각과 시공간을 초월할 수 있게 한다.
소비트렌드 9 ㅡ 라이크 커머스
제조자가 생산해 유통업자가 판매하면 소비자가 구매하는, 오랜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다. 소비자가 독자적으로 상품의 기획․제작․판매를 아우르는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낸다. 이러한 소비자 주도 유통과정을 동료 소비자들의 ‘좋아요’에서 출발한다는 의미에서 ‘라이크 커머스’라 한다. 초기 인플루언서들이 기성 제품의 ‘판매’에만 집중하던 형태에서 진화해, 기획―제조―마케팅―영업―물류의 가치사슬을 포괄한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의 영향으로 일자리는 줄어들고 비대면은 필수가 되면서, 라이크 커머스가 많은 사람들의 경력 대안이 되고 있다.
소비트렌드 10 ㅡ 내러티브 자본
서사는 힘이 세다. 강력한 서사(敍事), 즉 내러티브를 갖추는 순간, 당장은 매출이 보잘것없는 회사의 주식도 천정부지로 값이 오를 수 있다. 브랜딩이나 정치의 영역에서도 자기만의 서사를 내놓을 때 담박 대중의 강력한 주목을 받는다. 소비자가 공감할 수 있는 내러티브를 만들기 위해서는 일관된 가치를 소구하며, 감정에 어필하는 ‘뮈토스’를 발휘하고, 고객 공동체와 함께 만들어가는 세계관적 접근이 필요하다. 2022년을 새로운 도약의 원년으로 삼고자 하는 기업이라면, 반드시 스스로에게 물어야 할 것이다. “우리만의 내러티브는 무엇인가?“
한층 더 빨라지는 변화의 속도 속에서 많은 것을 준비해야 하는 2022년이 될 것이다. 위기를 잘 넘기고 피보팅에 성공한 기업들이 경영난에 빠진 경쟁사를 인수 합병하면서, 승자독식이 격심해질 것이다. 잡아먹느냐, 잡아 먹히느냐의 치열한 전장(戰場)이 될 2022년, 우리의 함성이 호랑이처럼 표효하느냐 고양이 울음에 그칠 것인가는 이러한 코로나 이후의 트렌드 변화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수진 - 서울대학교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
서울대학교 소비자학 학사.석사.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동 대학에서 소비문화 과목을 강의하고 있다. 경제 흐름을 분석했던 실무와 소비사회 종단 연구를 기반으로 소비문화를 거시적으로 조망하며, 글로벌 소비문화를 비교론적 관점으로 분석하는 것에 관심이 많다. 현재 현대, 삼성 등 다수의 기업들과 소비트렌드 기반 미래 전략 발굴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저서로는 「트렌드 코리아」 시리즈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