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학’이란, 개인이나 조직이 설정한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을 때 그 원인과 배경을 분석해서 새로운 성공법칙을 발견하는 학문입니다. 따라서 실패학이란 성공을 목표로 실패를 연구하는 학문인 셈입니다.
경영의 실패는 외부환경과의 소통부재 때문
제일 먼저 실패 요인에 대한 철저한 분석이 선행돼야 합니다. 국내외 대표적인 실패분석 연구들을 살펴보면 공통적으로 4가지 범주의 실패 요인이 도출됩니다.
첫 번째는 사회나 경영환경은 개인이나 조직에게 변화를 요구하고 있는데, 기존사업을 고수하면서 변화에 저항하는 경우입니다. 이스트먼 코닥(Eastman Kodak)은 1981년도에 디지털카메라가 100년 전통의 필름, 종이, 화학약품사업에 심각한 위협이 될 것을 알고 있었지만, 변화에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기존사업 확대에 디지털기술을 역이용할 수 있다는 판단에 기존사업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단행했죠. 이는 필름을 이용하는 디지털카메라를 생산하는 전략으로 이어졌고, 2012년 1월 파산보호를 신청하기에 이릅니다.
두 번째는 M&A나 신규사업 등 무리한 확장전략을 추구하는 경우입니다. 이는 일시적으로 성공을 거둔 개인이나 기업에서 흔히 나타나는 현상으로 역량을 넘어서는 전략적 자원배치로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무리한 인수합병의 사례로 1989년 소니(Sony)의 컬럼비아픽처스(Columbia Pictures) 인수를 들 수 있습니다.
베타맥스(Betamax) VCR과 컴팩트 디스크(compack disk) 실패사례를 경험한 소니는 소프트웨어가 하드웨어 성공에 핵심이라는 것을 뒤늦게 인식합니다. 하지만 컬럼비아픽처스는 시장을 지배할 만큼의 지배적인 소프트웨어도 아니었고, 전혀 다른 산업 진출로 인한 경영관리상의 어려움을 겪게 되죠. 결국, 소니는 32억 달러의 손실회수불능을 공표하는 것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세 번째는 성공한 기술이나 혁신을 맹신하는 기술기업에서 자주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특정 기술이나 기존의 핵심경쟁력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려는 편협한 전략이 실패를 초래하는 경우인데요. 가장 큰 기술전략의 실패는 모토로라(Motorola)가 시작한 이리듐 위성전화 사업입니다.
위성을 통해 전 세계 어디에서나 통화할 수 있다는 당시로써는 획기적인 아이디어는 1998년에 구현됐습니다. 개발비만 무려 50억 달러가 투입됐지만, 서비스를 시작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부도가 났습니다. 지상파 휴대전화의 기술발전과 확산속도를 예상하지 못한 우를 범한 것이 문제였습니다. 이리듐의 사례는 기술에 정통한 기업마저도 신기술의 가능성을 평가할 때 엄청난 실수를 저지를 수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교훈을 제공합니다.
마지막 실패 요인은 경쟁자나 소비자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입니다. 마케팅적 요인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복잡한 경영환경으로 인해 경쟁자나 소비자가 변화했거나 잠재돼 있어 예측하지 못하는 때를 말합니다. 경쟁사를 잘못 분석해서 큰 피해를 입은 기업으로는 1980년대 제너럴모터스(General Motors)를 들 수 있습니다.
문제는 잘못된 가설, 즉 사람을 기계로 대체하면 일본기업을 물리칠 수 있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도요타(Toyota)를 포함한 일본 자동차 회사들의 생산체계의 경쟁력은 낭비 없고 간결한 제조기술이었습니다. 저비용 생산의 핵심적인 성공 요인을 파악하지 못한 제너럴모터스는 자동화를 위해 450억 달러를 투자했으나 생산성은 오히려 뒤처지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이러한 4가지 실패 요인에서 우리는 기업이 외부환경과의 소통이나 교류 없이 시야를 내부로 향할 때 실패를 경험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변화에 저항하거나 변화를 제대로 읽지 못해서 특정부분에 집중하거나 잘못된 전략을 추구하면 조직이나 개인이 어려움을 겪고 궁극적으로 파국에 이를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유의해야 할 점도 있습니다. 이러한 4가지 실패요인이 반드시 실패로 직결된다는 말은 아닙니다. 적합한 환경과 적절한 조직이 결합되면 상당한 성공을 이루기도 합니다. 실패와 성공은 종이 한 장 차이라는 말이 있듯이 말이죠. 하지만 다양한 실패연구에서 지적하고 있는 것은 이런 요인들이 모두 위험지대에 놓여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러한 요인을 발견한다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다시금 살펴보고 파국에 이르기 전에 준비태세를 사전에 갖춰야 합니다.
조직차원의 실패경영 틀이 필요
이러한 실패 요인들을 극복하고, 실패를 자산화해서 올바르게 경영하기 위해서는 개인차원을 넘어 조직차원의 실패경영을 시작해야 합니다. 실패경영은 실패를 발견하고, 용인하고, 자산화하며, 극복하기 위해 조직의 개방성, 문화, 시스템과 역량을 보유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실패경영을 위해서는 먼저 열린 조직을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실패를 용인하는 조직문화가 구축돼야 실패를 가장 빠른 시간 안에 발견해서 조직이나 개인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패를 발견했을 때,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개방적인 문화나 시스템을 지닌 열린 조직이 되어야 합니다.
다음으로는 실패를 자산화할 수 있는 내부시스템을 구축해야 합니다. 이러한 내부시스템은 ‘실패재발방지시스템’이라고 칭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실패를 빨리 발견하고 이를 분석하여 다른 부서에까지 파급시킬 수 있는 실패매뉴얼이 포함돼야 합니다. 나아가 실패데이터베이스 구축을 통해 언제 어디서나 실패의 교훈을 참고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실패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때문에 자발적으로 매뉴얼이나 데이터베이스가 전파되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따라서 실패공모전이나 시상식 등 실패를 노출시킬 수 있는 이벤트의 정기적인 개최가 뒤따라야 할 것입니다. 자산화된 실패사례를 조직 내에 잘 전파하기 위해서는 스토리텔링 기법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실패를 자산화해서 궁극적으로 성공에 이른 사례를 이야기로 만들어 전파해 봅시다. 구성원들은 객관적이고 딱딱한 사실보다는 감성을 담은 이야기에 훨씬 더 적극적인 반응을 보일 것입니다.
실패에 대한 인식을 바꾸어 줄 스토리텔링으로 조직 구성원들의 실패에 대한 생각을 바꾸어 주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마지막으로는 실패를 극복할 수 있는 조직의 역량을 갖추는 것이 중요합니다. 실패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기업의 회복역량(resilient competence)이 확보되어야 하는데 불확실성이 높고 위기가 일상화된 현대 경영환경에서는 이 회복역량의 확보가 기업의 생존에 가장 중요한 요소로 부각되고 있습니다. 단순한 기능적 차원에서 접근해서는 안 되며 전사 차원에서 부각시키고 육성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실패학의 연구대상인 실패는 상당히 흔한 현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쉽게 드러나지 않는 이유는 실패를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고통스럽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잠시의 고통을 잊기 위해 진통제를 계속 복용할 수는 없듯이 이제는 막연한 성공의 진통제를 과감히 끊고 실패를 극복할 수 있는 제대로 된 처방을 통해 확실한 성공에 한 발짝 더 다가서야 할 것입니다.
※ 본 글은 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GS칼텍스의 공식입장은 아닙니다.
심형석 - 영산대학교 부동산금융학과 부교수
연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헬싱키 경제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MBA) 학위를 받았다. 연구소, 벤처기업, 협회에서 근무하다 현재 영산대학교 부동산금융학과 부교수로 재직중이다. 실패학의 창시자인 일본의 하타무라 요타로 교수의 방한 세미나에서 충격과 감명을 받아 평생의 연구과업으로 실패학을 선택했고, 현재 실패경영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