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가장 혁신적인 기업이라고 말하는 구글 최고위 임원은 “빨리 시도하고 빨리 망하라”라고 주문한다. 심사숙고가 빠른 판단보다 더 좋은 판단이거나 실패를 줄인다는 근거는 없다. 그러니 우선 빠르게 판단하여 시도하고, 잘 안되면 착오를 분석하여 수정해서 또다시 시도하면 된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잘할 수 있는 것이다. 11년 전 인시아드 글로벌 리더십 센터 설립자이자 세계적 리더십의 구루인 맨프레드 케츠 드 브리스는 실패가 두려워 주저하는 리더들에게 말한다. 처음 실험적 시도(experiment)는 제대로 된 결과를 내기 어렵다. 그러나 그런 시행착오의 경험 (experience)을 통해서 개선해 나가면 전문가(expert)가 된다고.
실패의 경험이 뼈아프다 보니 사람들은 실패를 줄이는 데에 많은 시간과 정성을 들인다. 하지만 인생에 아주 중요한 사실 중 하나는 실패 없는 성장은 없다는 것이다. 서구 선진국이라는 사회에서 아이들 교육의 핵심은 실수나 실패를 극복하여 계속하여 성장해 나가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다. 좋은 놀이터는 안전한 놀이터가 아니다. 치명적인 사고만 안 일어날 정도만 갖춘 곳이 좋은 놀이터이다. 아이들이 부딪혀서 아프고, 때론 상처도 나 봐야 놀이터가 아닌 세상에서 놀이터 정도의 안전성을 가늠하고 놀다가 치명적인 사고를 당하지 않게 된다. 학원 스포츠를 통해서 패배를 배우고, 패배를 다시 성공으로 만드는 훈련을 시킨다.
실패를 성공의 과정으로 정의할 때, 이 불확실성 시대에 혁신을 통한 비약적 가치 창출이 가능해진다. 우리 인류는 이렇게 잘 살아본 적이 없다. 그러다 보니 무엇이 옳고 그른가를 따지기가 어렵다. 코로나19에 대한 세계 대응도 마찬가지이다. 초기 방역을 성공한 듯 보인 국가들과 그렇지 않았던 국가들의 뒤바뀐 듯한 현 상황이 그것을 말해준다. 시도하고, 실패하고,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배우고, 그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서 수정해서 시도하거나 또 다른 돌파구를 빠르게 모색하는 것이 게임을 성공으로 끝맺는 길이다. 실수 자체가 실수가 아닌 경우도 있다. 전통적인 혁신 기업 3M은 오전에 아이디어가 나오면 저녁에 시제품이 나올 정도이다. 얼마나 많은 제품들이 이 과정에서 사라졌을까 짐작이 간다. 실패라고 바로 폐기처분하지 않는다. 포스트-잇은 접착제를 만들다 실패한 결과물을 몇 년 뒤 다시 들여다보면서 성공한 케이스이다. 접착력이 좋지 않았던 실패작이 붙였다 떼었다 할 수 있는 제품이 되어 히트작품이 되었다. 이런 과정은 모두 실패를 ‘결론’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과정으로 보는 시각, 또 다른 가능성을 보는 유연한 시각 때문에 가능하다.
구글은 2018년 2년에 걸쳐 내부적으로 진행해 온 팀에 관한 연구 결과를 발표한다. 180여 개 팀을 면밀히 연구해 본 결과 고(高)성과 팀에는 있고, 저(低)성과 팀에는 없는 특성을 발견한다. 바로 심리적 안전감(Psychological safety)이다. 이는 업무와 관련된 어떤 발언을 하더라도 처벌받거나 보복 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는 업무 환경을 말한다. 실패나 실수를 해도 비난받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는 환경을 말한다. 즉, 자신이 한 말의 결과가 부정적으로 이어질까, 혹은 자신에 대한 부정적 평가로 이어질까 두려워 자신의 의견이나 아이디어를 말하지 못하는 남 탓 문화(blame culture)와 반대 개념이 된다. 순수한 의도로 내놓은 의견이나 새로운 시도가 성공으로 끝을 맺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을 실패라고 낙인 찍거나 그것을 비난하거나 처벌하지 않는 조직이 고성과 조직이 되었다. 인류는 한 번도 이렇게 잘 살아본 적이 없다. 새로운 세상, 새로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모든 시도는 검증된 것이 아니다. 따라서 다양한 의견과 시도만이 새로운 시대의 돌파구가 되는 셈이다.
우리는 고성장기에 선진국들이 먼저 시행착오를 통해서 찾아낸 해법을 그대로 실행해서 급속한 성장을 이루어냈다. 학습능력이 뛰어나고, 똑똑하고 부지런한 우리 국민들은 선진국들의 해법을 더욱 가치 있게 실현해 내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늘 정답을 찾는다. 정답이 아니라고 판단된 의견은 바로 사장이 되거나 비난을 받는다. 문화 자체도 실수나 실패에 대한 관용이 없는 편이다. 정답을 찾고 만점을 맞는 것이 인생의 최고의 가치라고 학교에서 주입받으며 자란 우리에게 실수를 용인한다는 것은 사실 그렇게 쉽지 않다. 철저한 자기 검열과 다른 사람에 대한 판단이 오히려 익숙하다. 그러나 이젠 그런 정답을 찾을 곳이 없을 만큼 우리는 성장했다. 정답을 만들어내야 할 만큼 국가적 위치가 상승했다. 따라서 우리가 스스로 새로운 아이디어, 시도, 그리고 시행착오를 통해서 새로운 세상을 열어야 한다. 여기서 실패는 당연한 것이다. 그리고 좋은 아이디어는 한 번에 나오지 않는다. 100개의 영양가 없는 아이디어가 입 밖으로 나올 때, 한 개의 엄청난 아이디어가 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조직 문화가 형성이 될 때, 서로에 대해서 반대 의견도 편하게 내고, 정반합을 이루어 새로운 돌파구를 모색할 수도 있게 된다.
따라서 실수나 실패가 용인되는 이러한 심리적 안전감 높은 업무 환경을 만드는 것이 조직과 리더의 책임이 되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그저 의견을 자유롭게 내라고 말하는 것으로는 결코 충분하지 않다. 방청객들의 호응이 중요한 공개 방송이나 공연을 시작하기 전에는 중요한 사전 절차가 있다. 사전 MC라는 사람들이 나와서 관객들의 경계를 풀고, 자유롭게 그들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든다. 낯선 환경, 낯선 사람들 그리고 카메라까지 돌아가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웃겨도 웃음을 참게 된다. 그러면 애써 준비한 공연에 냉담한 듯한 반응을 보이고, 그것은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사람들을 위축되게 하여 공연도 성공하기 어렵다. 조직과 리더가 그런 사전 MC의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관련된 연구와 학자들이 끊임없이 강조하는 것은 리더의 낮은 자세, 즉 취약성을 드러내는 태도이다. 기존 리더들은 전문성이 높아서 구성원에게 가르침을 주고, 그들을 평가하는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리더십에서 전문성을 이야기하는 것은 구시대의 이야기이다. 어제의 해법이 오늘의 성장에 걸림돌이 되는 시대이다. 기술 연한이 비교할 수 없을 수준으로 짧아진 상황에서 예전의 일하는 방식을 무의식적으로라도 고수하는 것은 아주 쉽게 사업을 도태시키게 된다. 따라서 이제는 리더의 전문성과 잘남을 드러내는 리더십은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다. 게다가 고성과자였던 리더가 “내가 정답이다”하는 식의 태도를 보인다면 그 정답을 맞히는 데에 온 조직이 열을 올리게 된다. 정작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정답이 아니라고 하여 사장되거나, 입 밖으로 나와보지 못하는 상황이 된다. 그런데 그 정답이 진짜 정답이 아닌 경우가 많다. 직원들이 사기가 떨어지는 것은 덤이다. 따라서 리더는 다양한 의견을 편안하게 이야기할 수 있게끔 자신이 틀릴 수 있는 사람이며, 부족함이 많은 인간이라는 것을 드러내야 한다. 혹은 완전히 다른 방향의 이야기에 대해서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더라도 상처를 받지 않을 정도로 평소에 좋은 관계를 쌓아 놓아야 한다. 리더는 일의 본질을 정의하고, 비전을 제시하고 그 안에서는 자유롭게 의견을 제시하고, 시도를 할 수 있는 울타리를 제공하는 존재여야 한다. 그리고 실수에는 관대하게 반응해야 한다. 무서운 리더와 말 한마디 한마디가 조심스러운 분위기는 저성과 조직의 특성이 된다. 리더는 권위를 유지하되 약간의 ‘편함’ 또는 ‘만만함’을 장착해야 한다. 이를 리어왕에 등장하는 ‘현명한 광대(wise fool)’에 비유하기도 한다.
경영학 교과서의 단골 등장 기업인 사우스 웨스트 에어라인의 허브 켈러허 회장은 이러한 역할을 하는 리더이다. 이 회사는 동종업계 다른 회사보다 급여가 20-30%가 낮음에도 불구하고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낮은 자발적 퇴사율을 가진 회사이다. 이 회사에서 한 번은 새로운 광고 문구를 내었다. 그런데 그것이 다른 업체 광고 문구의 저작권을 침해하였다고 고발이 되었다. 이에 허브 켈러허 회장은 대상 업체에 제안을 한다. CEO끼리 권투 시합을 해서 지는 회사가 깨끗이 승복하자고 말이다. 상대 업체의 CEO는 30대이고, 그는 60이 넘은 나이였다. 그는 열심히 권투 연습을 하고, 시합 당일에는 ‘록키’ 주제가 속에 비장하게 등장한다. 이례적으로 이 이벤트는 전국 뉴스에 등장했다. 당연히 켈러허 회장이 졌다. 그는 그 자리에서 광고 문구를 포기하고 소송 비용에 돈을 더 얹어 기부하는 것으로 이벤트를 끝냈다. 송사는 마무리되었고 막대한 광고 효과까지 보았다. 이 해프닝에서 관련 업계 광고 문구를 확인도 안 하고 새로운 프로모션을 진행한 부서 사람들은 어땠을까? 회사에 막대한 피해까지 줄 수 있는 큰 실수를 한 상황이지만, 리더는 그들을 비난하거나 징계하지 않고 이렇게 문제를 해결했다. 충성심은 높아지고 비난 없이도 실수나 실패에 대한 경각심도 높아지고, 덕분에 얻어진 홍보 효과 덕도 보았다. 직원들의 실수나 실패가 신의 한 수가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유쾌한 분위기는 심리적 안전감에 언제나 옳다.
이는 새로운 세대의 인력들이 선호하는 조직이기도 하다. 우리는 가족 같은 조직을 지향한다. 그런데, 이 가족에 대한 모습이 세대마다 다르다. 보통 40대 이상 연배들에게 가족이라 함은 엄한 아버지와 위계가 확실한 가족을 생각한다. 하지만 밀레니얼 세대들에게 가족이란 부모와 거의 수평적 관계일 뿐 아니라 돌봄과 사랑을 주는 존재이며, 그들이 필요한 것을 채워주는 곳이다. 그들은 은연중에 그런 조직을 기대한다. 마음 편하게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고 인정받고, 혹여 실패를 하더라도 따듯한 위로와 격려 그리고 그 과정에서의 노력을 인정하는 말을 들을 수 있는 조직 말이다. 그래야 더 좋은 인력을 유치하고 유지할 수 있게 된다.
실패는 실패가 아니다. 실패는 과정이다. 실패나 실수를 끝으로 보지 않고, 그것을 결국 성공으로 이끌어 내는 조직의 힘을 기를 때, 그런 조직이 이 시대를 이겨나갈 수 있을 것이다.
김현정 교수 - 숭실대 혁신코팅컨설팅학과
현 숭실대 혁신코칭컨설팅학과 겸임교수, 리더십 코칭 네트워크 ECS 대표. 콜럼비아 대학 조직과 리더십 박사, 미네소타 대학 상담심리학 석사. 전)삼성전자 리더십 개발 센터, INSEAD 글로벌 리더십 센터 초빙 연구원, 연세대 상담코칭지원센터 책임교수, 아주대 협상코칭연구센터 센터장. 심리학과 경영학 등 다양한 접근을 통하여 리더와 조직의 성장을 돕는다. 저서로는 <최고의 팀을 만드는 심리적 안전감>, <90년생이 사무실에 들어오셨습니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