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강화되는 환경규제
가. 기후변화 대응과 에너지 시장에 관한 관심 고조
기후변화에 대한 국제적인 대응과 이에 따른 환경규제의 강화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고조되고 있다. 특히 ‘탄소’ 배출 관련 규제들은 에너지 시장을 넘어, 전 경제주체들의 생활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환경규제와 에너지 시장에 대한 시장의 관심이 고조된 계기 중 하나는, 새로운 기후 체제의 출범이었다. 2020년을 기점으로 기존 국제사회의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 근거였던 교토의정서가 만료되었다. 그리고 2021년부터 파리협정이 이를 대체하고 있다. 과거 동조 현상을 보여왔던, 친환경/신재생 에너지 기업들의 기업가치가 유가와 뚜렷한 차별화를 보이기 시작한 시점이 2020년이고 다수의 국가가 탄소중립을 선언한 시기도 2019~2020년이라는 점은 결코 우연은 아니다.
나. 상향되는 목표와 더욱 강력해지는 규제
시장에는 파리협정이 에너지 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존재했던 것도 사실이다. 이는 파리기후 협약이 교토의정서와 비교할 때 강제성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당시 미국 트럼프 정부가 파리기후협약에서, 탈퇴한 상태였다는 점에서, 새로운 기후 체제의 영향력에 대한 의심은 당연한 것이었다.
하지만 파리기후협약의 높은 자율성은 결코 규제의 약화로 이어지지 않았다. 선진국을 중심으로 한 개별 국가들이 자발적으로 탄소중립 목표를 선언하면서, 적극적인 참여와 호응에 나섰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환경문제에 적극적인 유럽의 주요 국가들은, 2050년까지의 탄소중립을 선언했을 뿐 아니라, 2030년까지의 구체적인 온실가스 감축 목표와 실행계획도 제시한 상태이다. 파리기후협약에서 탈퇴했었던 미국도 바이든 대통령 취임과 함께 파리협정에 복귀했으며,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탄소를 배출하는 중국까지 2060년까지 탄소중립을 선언한 상태이다. 교토의정서보다 참여 대상 국가가 확대되고, 만료 시점에 관한 규정이 없다는 파리협약의 특성이, 개별 국가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합쳐지면서, 오히려 과거보다 더욱 강력하고 지속 가능한 변화가 시작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국제사회의 기후변화에 대한 목표 역시 상향되고 있다. 기존 파리협약의 장기 목표는 산업화 이전 시대와 비교해서 지구의 평균 기온 상승을 2℃보다 상당히 낮은 수준으로 유지하고, 1.5℃ 이하로 제한하기 위한 노력을 추구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국제사회는 파리협약이‘추구’했던 1.5℃를 새로운‘목표’로 인식하고 있다. 실제로, 최근 G20은 정상들은 지구 평균 기온 상승 폭을 산업화 이전 대비 1.5℃ 이내로 억제하는 원칙에 합의했고, 뒤이어 열린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자국총회(COP26)에서 협약 당사국들은 내년에 2030년 온실가스감축목표(NDC)를 1.5℃ 목표에 맞춰 다시 제출하기로 한 상태이다.
다. 탄소의 비용화
목표의 상향은 자연스럽게, 관련된 환경규제가 강화됨을 의미한다. 그리고 강화된 규제는 결국 경제 주체들에게는 비용이다. 그리고 이러한 비용의 상승은 다시 개별 경제주체들의 자발적인 탄소 감축 노력을 유도하게 된다. 해당 관점에서, 1)탄소배출권 거래제 활성화와 2)탄소국경세 이슈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해당 제도들은 탄소의 비용화를 앞당기는 촉매제가 될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먼저 배출권 거래제도는 온실가스 배출에 대한 비용을 배출 주체에 부담하도록 하는 탄소 가격제의 일종이다. 탄소배출권 거래는 도입 이후 꾸준히 도입 지역이 확대되고, 적용되는 규제의 강도도 강화되는 추세이다. 참고로 2005년 EU의 탄소배출권 거래 시장이 도입된 이래, 현재는 약 40개 이상의 국가에서 탄소배출권 거래가 운영 중이다. 탄소배출권 거래제도 활성화는 궁극적으로 탄소의‘가치’를 수치화하는 것이 용이해짐을 의미한다. 기업과 투자자들은 기업의 탄소 비용을 측정하는 것이 가능해질 것이다.
탄소국경세도 탄소의 비용화를 가속화시키는 요인이다. 경제 규모가 큰 국가가 탄소 국경세를 도입할 경우, 이는 더 이상 개별 국가의 문제가 아니다. 해당 시장에 제품을 판매하는 기업들은 결국은 탄소 국경세를 도입한 지역의 기준을 충족해야 하기 때문이다. 탄소 국경세는 궁극적으로 파편화되어 있는 탄소배출권 시장의 기준을 일원화하고 통합하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올해 6월 EU에서 승인된 기후 기본법과 7월에 발표한 입법 패키지(Fit for 55)에는, 탄소국경조정세(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 CBAM)가 포함되어 있다. 해당 방안에 따르면, 탄소국경세는 2026년 적용되며, 역외 수입 물품에 대해서는 탄소 배출량만큼 CBAM certificates를 구매하며, 배출량 검증이 어려울 경우 EU 집행위에서 정하는 default value를 적용하게 된다. 여기에 미국 역시 현재 탄소국경세의 도입을 고려하는 중이다.
라. 최근 환경규제 강화가 지속가능한 이유
지구 온난화와 같은 환경 관련 이슈들은 사실 과거에도 존재해 왔다 (에너지 전환이라는 용어도 최초 등장한 시기는 1980년대). 기후변화의 심각성과 환경 보호에 대한 당위성도 새롭지 않다. 특히 과거 금융시장에는 ‘환경’테마가 여러 차례 부상했었지만, 대부분은 일시적인 유행에 그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장은 과거 어느 때보다 진지하게, 기후변화 대응과 규제 강화를 바라보고 있다. 이는 국제사회의 기후변화 대응을, 지구의 환경을 보전하려는 일종의 선의(善意) 외에도, 정치 경제적 관점에서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첫 번째로 일부 선진국들은 에너지 전환 자체를 신규로 고용을 창출할 수 있는 새로운 산업으로 접근하고 있다. IRENA(국제재생에너지기구)에 따르면 파리협정 이행과 적극적인 에너지 전환을 가정한 시나리오 하에서는, 2050년까지 전 세계적으로 총 110조 달러의 투자가 예상된다(이 중 재생에너지를 이용한 발전설비에만 22.6조 달러, 에너지 효율 개선에 37조 달러, 전력망 업그레이드와 유연성을 위한 조치에 13조 달러 이상의 투자가 필요하다). 그리고 성숙단계에 진입한 화석연료와 비교하면, 아직 효율성에서 뒤처지는 신재생 에너지는 더 많은 인력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즉, 동일한 자금을 투자했을 때 고용효과가 더 클 수밖에 없다.
EU는 지난 2019년 12월 새로운 성장 전략으로 그린 딜(Green Deal) 전략을 채택한 바 있다. 그린 딜은 2050년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한 EU 정책 패키지로, 온실가스 감축목표 상향, 유럽연합 배출권 거래제도(EU-ETS) 강화 및 확대, 그리고 건물 부분의 온실가스 저감을 위한 개보수(레노베이션 웨이브) 계획 등을 담고 있다. 역설적이지만, COVID-19도 유럽의 환경정책을 지지하고 가속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COVID-19 극복을 위한 부양책의 대상 중 하나가 환경산업이기 때문이다. 2020년 5월에는 EU 집행위원회는 COVID-19 극복을 위한‘유럽 회복계획(Recovery plan for Europe)’의 초안을 발표했다. 해당 계획의 핵심은 녹색 전환과 디지털 전환이다. 이후 7월에는 유럽연합회원국 정상들이 COVID-19 극복을 위한 경제회복기금 조성에 합의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해당 기금의 지원 조건에는 ‘기후변화 대응’이 포함될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도 환경을 일자리 창출에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직후 파리기후협약 복귀를 위한 행정명령에 서명했으며, 2030년까지 신재생 에너지원을 활용해 화석연료로 인한 대기오염을 2005년 대비 50% 감축하겠다고 선언한 상태이다. 미국 정부의 계획은 화석연료에 대한 투자를 감축하는 만큼, 신재생 에너지에 대한 투자 확대를 통해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것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바이든 행정부는 향후 4년간 2조 달러를 신재생 에너지 확대 등 그린 뉴딜 투자에 쏟기로 했다.
두 번째로, 강화되는 환경규제는, 선진국 내 제조업체들과 신흥국가 내 후발 기업들 사이에 기술적 진입 장벽을 만들어주는 효과도 존재한다. 환경규제는 새로운 기술적 표준이 제시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새로운 기술적 표준에 가장 빠르게 적응하고, 더 나아가 새로운 표준을 주도할 수 있는 업체들은 결국 기존의 강자들일 것이다. 선진국 내 업체들이 유리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엔진 배기가스 규제는, 자동차, 농기계, 건설장비 등의 다양한 분야에서 우수한 기술력을 보유한 선진업체들에게 점유율 유지의 기회가 되고 있다.
세 번째로, 재생에너지 생산 확대는 국가 안보와 전략 차원에서도 부수적인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국가의 입장에서, 신재생 에너지 확대는 에너지 수입 지역을 다변화하거나, 아예 일부 에너지를 스스로 생산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는 에너지 안보에 도움이 될 뿐 아니라, 기존 자원 보유국에 견제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현재 에너지 시장은 유류 자원의 48%가 매장되어 있는 중동지역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2. 에너지 산업의 선택은 결국, 에너지 전환과 저감 기술
가. 에너지 산업이 가장 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
에너지 산업은 탄소배출과 기후변화에 가장 민감할 수밖에 없다. 이는 전 세계 탄소배출의 약 70%가 에너지의 생산과 사용에서 발생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당연한 결과이다. 에너지 산업의 탄소배출관리가 사회적 전반으로 볼 때, 가장 궁극적이면서 효율적인 대응 전략이기 때문이다. 에너지 산업에 대한 변화의 요구는 거셀 수밖에 없다.
탄소 감축을 위한 에너지 업계의 대응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장기적으로는 이른바 ‘에너지 전환’을 추진하는 것이다. 에너지 전환은 화석연료를 지속 가능한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 것이며, 이는 에너지 산업이 탄소배출을 줄일 수 있는 궁극의 대안이다. 그리고 동시에 기존 에너지 체계에서 탄소배출 저감 노력도 병행될 수밖에 없다. 에너지 전환이 완성되기 전의 단기적인 대안들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화석연료 중심의 기존의 에너지 체계를 재생에너지로 바꾸는 것에는 시간이 소요되는 반면, 탄소의 비용화는 당면한 과제라는 점을 고려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 궁극의 해결책은 에너지 전환
에너지 전환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에너지원 자체를 바꾸는 근본적인 해결책이다. 글로벌 에너지 산업의 장기적인 사업구조도 에너지 전환에 맞추어 변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에너지 전환을 가정하면, 향후 신재생 에너지와 수소 에너지에 대한 투자 증가가 예상된다.
신재생 에너지 성장에는 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대부분의 전망 기관이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다. EIA의 전망에 따르면 전 세계 신재생 에너지 소비는 2020~2050년에 연평균성장률(CAGR)은 3.3%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유류의 1.0% 성장과 석탄의 0.4% 성장과는 대비되는 수치이다. 세계적인 에너지 기업인 BP의 전망은 신재생 에너지에 대한 더욱 선명한 전망을 담고 있다. 동사는 에너지 시장 장기 전망에 대해 세 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이 중 탄소배출과 관련한 가장 보수적인 전망을 인용해도 2018~2050년 신재생 에너지의 성장률(CAGR)은 8.2%이다(반대로 유류는 -0.0%, 석탄 -0.5% 감소 전망). 원유 생산자들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는 OPEC도 신재생 에너지의 비중(원자력 제외)이 2020년 15.1%에서 2045년에는 23.9%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신재생에너지는 화석연료와 비교할 때, 1)전력 생산 외에는 사용범위가 제한적이고, 2)아직 경제성에서 약점이 있으며, 3)저장과 원거리 운송이 쉽지 않다는 기술적인 한계가 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러한 약점들도 각종 정책적인 도움과 적극적인 투자 확대를 통해 해소되고 있는 추세이다.
먼저 활용범위의 제약은 전세계 그리고 전 산업에서 진행되는 전기화(Electrification)로 극복되고 있다. 이미 신재생 에너지는 전세계 전력 생산의 28%를 차지할 정도로, 발전시장에서의 위치가 안정적이다. 특히 운송용 에너지 시장의 변화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운송용 에너지는 전체 에너지 소비의 24%를 차지하는 큰 시장이다. 그리고 운송용 시장의 94%는 유류가 지배하고 있다. 운송 수단 대부분이 내연기관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기차의 등장으로, 이제는 신재생 에너지도 운송용 에너지 시장에서 영역을 확대하는 것이 가능하다. 특히 소비재 성격을 지닌 자동차의 교체 주기가 길지 않고, 각국 정부가 내연기관 자동차의 판매 금지를 추진 중이라는 점에서, 전기 에너지의 운송시장 영향력 확대는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될 수 있다.
경제성 측면에서도 개선의 조짐이 보인다. 아무래도 기존에 모든 인프라가 확보된 화석연료와 비교하면, 신재생 에너지는 비용상의 열위에 처할 수밖에 없다. 이는 반대로 이야기하면, 신재생 에너지로의 투자 확대와 인프라 구축으로 비용상의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한때 보조금이 없이는 경제성 확보가 어려웠던, 태양광과 풍력이 꾸준한 투자와 기술적 성숙으로 화석연료와 대등한 가격 경쟁력(균등화 발전비용인 LCOE 기준)을 확보한 것이 좋은 예이다.
신재생 에너지로의 투자환경은 지속해서 개선되고 있다. 먼저 제도적으로, 각국 정부가 적극적인 탄소 절감 목표와 에너지 전환 정책을 추진함에 따라 상당한 자금이 친환경 에너지로 배분되고 있다. 여기에 각종 탄소세와 배출권 거래제도로 인해, 화석연료에 대한 비용이 상승하면서 상대적으로 신재생 에너지의 경제성도 확보되고 있는 상황이다. 각국 정부의 에너지 정책이 변화에 더불어, ESG 투자의 대유행으로, 민간의 투자자금 역시 신재생 에너지로 유입될 가능성이 커졌다.
특히 ESG 투자 확대는, 환경 이슈가 실제 기업의 자금조달에도 영향을 미치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ESG 채권 중 하나이면서 친환경 프로젝트에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발행되는 그린본드는 아직 규모가 전체 채권 시장의(누적 발행액 기준) 1%에 불과하지만, 그 성장 속도는 매우 빠르다. 국제기후채권기구(Climate Bonds Initiative)에 따르면, 그린본드 발행액은 2007년 8억 달러에서, 2014년 368억 달러, 2018년에는 1,712억 달러에 이르렀다. 그리고 다시 2019년에는 2,589억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51% 성장하여 역사상 최고 기록을 갱신했으며, 2020년에도 COVID-19 상황에서도 소폭이나마 증가한 상태이다. 여기에 민간 에너지 시장을 대변하는, 오일 메이저들의 전략적 방향이 수정되고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특히 유럽계 오일 메이저인 BP, Dutch Shell, Total, ENI 등은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추진할 계획이다. BP의 경우는 탄소 중립을 위한 구체적인 실행 계획도 공개한 상태이다.
운송과 저장에 대한 문제도 수소의 등장으로 해결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화석연료는 비교적 입지 조건의 제약 없이 수요처 근처에 발전소 건설이 가능하다. 화석에너지는 선박을 이용한 대륙 간의 장거리 이동도 가능하다. 유조선, 가스 운반선, 그리고 벌크선을 이용한 유류, 가스, 석탄의 장거리 수송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는 화석에너지 생산과 소비가 국제적인 분업 속에 이루어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반면, 전기로 전환되어야 하는 신재생 에너지는 현재 장거리 운송 수단이 마땅치 않은 상태이다. 대륙 간 이동은 고사하고, 태양광, 풍력, 수력 등의 에너지원은 수요처의 위치보다 자연적 입지 조건에 의해 생산시설의 위치가 결정된다. 결론적으로 신재생 에너지가 화석연료 대비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저장과 운송에 대한 문제 해결이 선행될 필요가 있다.
신재생 에너지의 이동과 저장 문제는 현재 수소 에너지와의 융합에서 실마리를 모색 중이다. 수소가 신재생 에너지의 최적화된 저장 수단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신재생 에너지의 잉여전력으로 수소를 생산하고, 이를 저장하고 운송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생산된 수소를 다시 수요처에서 수전해 방식을 통해 전기로 전환하는 것이다. 이러한 에너지 생산 방식이 바로 소위 ‘그린수소’이다. 그린수소는 환경 오염물질을 배출하지 않는 가장 이상적인 형태의 수소이다. 과거 신재생 에너지가 2차전지를 이용한 ESS와의 융합되었던 사례를 고려하면, 수소와 신재생 에너지의 융합도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이다.
여기에 수소의 원거리 운송까지 가능해진다면, 신재생 에너지의 가격 경쟁력과 활용범위는 비약적으로 개선될 것이다. 화석연료처럼 생산과정에서 국제적인 분업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입지 조건이 우수한 지역에서 대규모의 전력 생산을 한 뒤, 이를 수요처로 수출하는 것도 가능하다.
전통적인 수소의 운송방식은 압축을 통해 수소 파이프라인이나 튜브트레일러로(수소 운반용 차량) 운반하는 것이다. 이러한 방법은 저장용량의 한계가 있을 뿐 아니라, 대륙 간의 이동도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수소를 이산화탄소와 반응하여 메탄화하여, 기존의 천연가스 망을 이용하는 방법 역시, 대륙 간의 이동에는 적절치 않다. 대륙 간 장거리 이동은 결국 선박을 이용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선박을 통한 수소의 이동은 1)수소를 액상 암모니아 화합물에 저장하여 운송한 뒤 수요처에서 다시 수소를 추출하거나, 2)수소를 액화하여 운반하는 것이다. 특히 액화수소는 수소의 체적을 1/800으로 감소시킴에 따라 기존 운송방식(압축) 대비 약 12배의 수송효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운반선 상용화에 성공한다면, LNG와 같이 수소의 대규모 대륙 간 이동이 가능해질 것이다. 암모니아 운반선은 국내에서는 이미 현대미포조선이 건조한 바 있으며, 액화수소 운반선 역시 현대중공업 그룹이 현대글로비스와 세계 최초로 상업용 액화 운반선 인증을 취득한 바 있다. 일본 역시 해외로부터의 수소 도입 가능성에 대비해, 액화수소 운반선을 개발 중인 실정이다.
다. 전통 에너지 산업의 대응
에너지 전환은 가장 근본적인 해결 방법이지만, 구현에 상당한 시일이 소요된다. 반면, 탄소배출권 거래 활성화와 탄소 국경세로 인해, 환경비용은 빠르게 현실화하고 있다. 기존 에너지 산업 체계에서도 탄소 감축 노력이 필요하다. 최근 이산화탄소 포집, 활용 및 저장 기술(Carbon Capture, Utilization and Storage, 이하 CCUS)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CCUS는 탄소를 대량발생원으로부터 포집한 후 압축 및 수송 과정을 거쳐 지중에 저장하거나, 재사용할 수 있는 물질로 전환하는 과정을 포함하는 기술이다. CCUS 기술의 역사는 생각보다 오래된 편이다. 탄소 포집 및 저장에만 국한한다면, CCUS 기술은 이미 1970년대부터 상업 가동되었다. 다만, 현재까지의 CCUS는 환경보다는 화석연료 사업의 수익성을 위한 기술이었다. 2020년 기준 글로벌 시장에서 대규모 CCUS 상업 설비는 총 28개로, 연간 4,000만 톤의 탄소를 포집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글로벌 포집량의 약 68%는 천연가스 개질 과정에서 생산되는 탄소를 포집하며, CCUS 사업자들은 이를 인근 원유 생산업체들에 판매하여 얻는 수익으로 사업성을 유지한다. 그리고 원유 생산업체들은 공급받은 탄소를 EOR(Enhanced Oil Recovery, 사용 연한이 끝난 유전 지하에 탄소를 공급하여 원유 추가 생산을 이끌어 내는 방식으로, 그 과정에서 주입된 탄소는 지하에서 영구 저장 가능)에 투입하여 추가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 실제 현존 설비 중 약 75%가 EOR 방식과 연계되어 가동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역설적으로 현재 CCUS 기술에서 가장 앞서 있는 주체가, 글로벌 에너지 기업들이라는 점을 시사한다(글로벌 CCS 설비 capacity의 22%를 ExxonMobil이 차지).
CCUS는 크게 네 가지의 장점을 갖고 있다. 첫 번째는 비용 절감이다. CCUS는 단순히 관련 설비를 추가함으로써, 탄소배출을 감축하는 방식이다. 이는 기존 화석연료와 관련한 인프라를 그대로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을 의미한다. 두 번째로는 에너지 산업 이외에도 범용으로 적용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CCUS는 기술적으로 탄소 감축이 어려운 시멘트 소성 공정, 장거리 항공 운송 등에서까지 활용이 가능한 기술이다. 세 번째로는 천연가스 개질을 통한 수소를 생산한 뒤에 발생하는 탄소 포집을 통해 블루 수소를 생산하는 데에 사용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는 Negative carbon을 추구할 수 있는 기술적 토대가 될 수 있다. 기술이 고도화되면 대기에 존재하는 탄소를 직접 포집(DAC; Direct Air Capture) 함으로써, carbon neutral (탄소 순 배출량 제로)을 넘어 negative carbon(탄소 순 배출량 감소)을 추구하는 것도 가능하다.
기존 화석 연료 산업 내에서는, 천연가스의 비중 확대도 예상된다. 물론 어디까지나 천연가스도 화석 연료의 한 종류이고, 천연가스의 주성분인 메탄도 온실가스의 일종이다. 천연가스는 최근 EU 집행위원회가 규정한 녹색산업 분류체계(EU Sustainability Taxonomy, 일명 EU 택소노미) 기준에는 포함되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천연가스 비중 확대를 예상하는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 번째로는 천연가스의 주요 경쟁 상대가 유류가 아닌 석탄이라는 점이다. 천연가스의 주요 사용처는 발전시장이며, 유류는 발전시장의 주력이 아니다. 전 세계 전기 생산에 가장 큰 기여를 하는 연료는 석탄이며 점유율은 35%에 달한다. 반면, 유류는 불과 3%에 불과하다. 청정에너지로서 천연가스의 경쟁력에는 논란이 존재하지만, 적어도 석탄보다는 오염물질 배출이 적다는 것에는 이견이 크지 않다. IPCC와 에너지 경제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천연가스의 단위당 탄소 배출량은 석탄의 57% 수준이다. 석탄을 천연가스로 바꾸는 것으로, 발전시장에서의 탄소배출을 약 40% 감축할 수 있는 것이다. EU는 천연가스 관련 기술을 ‘전환 활동’으로 분류했다. 전환 활동은 EU의 6대 환경목표에 기여하지는 못하지만 온실가스 배출 저감에 일부 기여할 수 있는 활동을 의미한다.
두 번째는 천연가스의 넓은 활용범위이다. 천연가스는 기존의 전통 화석연료 사이에서도 활용범위가 넓은 편이다. 유류와 비교를 하면, 천연가스는 운송용 에너지는 물론 발전용 에너지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이다. 특히 전 세계적으로 진행되는 전기화(electrification) 흐름을 고려하면, 이는 강점이 될 수 있다. 특히 앞서 언급한 전기차의 등장은, 운송용 시장에 천연가스의 영향력이 확대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석탄과 활용범위를 비교하면 천연가스는 전기화를 거치지 않고 선박 운송용, 난방용 연료로 직접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이 강점이다. 또한 천연가스는 미래 대안에너지들(수소, 암모니아, 신재생 에너지 등)과는 달리 석유화학제품의 원료로 사용될 수 있다는 점과 관련 인프라가 이미 충분히 구축되어 있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또한 미래 대안 에너지 후보 중 가장 이상적으로 평가받고 있는 수소의 생산에서도 천연가스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수소는 천연가스를 개질하여 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CCUS 기술의 발전을 가정하면, 천연가스를 통한 수소 추출 방식도 에너지 전환의 과도기에 한동안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한영수 연구위원 - 삼성증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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