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유럽이 재생에너지 확대에 전력하는 속셈
프랑스*[efn_note]제시된 유럽국가 중 프랑스를 제외하고, 모두 발전량에서 재생에너지가 40% 내외의 비중을 보인다. 오직 프랑스의 재생에너지 비중만 21.3%로 상대적으로 낮다. 그러나 상대적 비중이 작을 뿐, 재생에너지 발전량의 절대량을 따지면 영국과 비슷하고, 이탈리아보다 약간 많다. 이는 프랑스가 항공, 방산, 자동차 등 중공업이 발달해 있어 타 유럽국보다 절대적인 전력 소비량이 많기 때문이다.
전력 소비가 많은 탓에 프랑스는 1970년대 이후 원자력 발전에 집중해왔고, 2019년에 69.4%의 전기를 원자력으로 충당했다. 프랑스는 사실상 원자력(69.4%), 신재생(21.3%), 가스(6.8%)의 조합만으로 전력을 생산하고 있다. 석탄 발전 비중은 1%에 불과하다. 프랑스는 프랑스만의 방식으로 저탄소를 실현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EU의 주축인 프랑스가 탄소중립 기조에 동조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파리 기후협약은 프랑스에서 체결되었다.) 프랑스의 메이저 석유회사 Total도 탄소중립 관련 사업으로 성장성을 확보하려는 대표적 회사 중 하나이다.[/efn_note] 이탈리아*[efn_note]프랑스와 대조적으로 이탈리아에는 원자력 발전소가 없다. 1986년 체르노빌 원전 사고 이후 모든 원전 운영이 중단되었고, 2008년 이후 원전 건설을 검토하였으나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백지화되었다. 대신 이탈리아는 재생에너지(40.6%)와 가스 비중(48.6%)이 매우 높다. 또한 이탈리아는 EU 내에서 가장 많이 전기를 수입하는 나라인데, 주로 접경하고 있는 프랑스와 스위스에서 전기를 들여와서 부족분을 충당하고 있다.[/efn_note]
20세기 최대 교역상품은 석유였다. 국제 무역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것은 석유였고, 세계 경제는 석유를 동력으로 움직였다. 한국의 수입 품목 중 단연 1위도 원유이다. 석유를 확보한 나라는 가장 큰 부와 힘을 가질 수 있었다. 유럽 석유회사들은 20세기 초반 중동에 가장 먼저 진출해서 석유를 발견하고 개발을 주도했다. 이후 그것을 발판으로 엄청난 부를 창출했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소위 ‘자원 민족주의’의 대두와 산유국의 자체적인 개발 역량 개선에 의해 중동 석유를 지배하던 시절의 영광을 포기해야 했다. 물론 그 이후에도 BP, Shell, Total, Eni 등 유럽의 주요 석유회사는 대형 석유회사로 나름의 입지를 확보했지만, 예전만큼은 아니었다. 1970년대 이후 계약 체계 변경과 개발 권한의 축소 등으로 산유국에서의 이권은 줄어들기 시작했고, 2000년대 이후에는 산유국의 국영석유회사에 주도권을 완전히 내주었다. 게다가 유럽의 텃밭인 북해의 석유 생산량은 지속적으로 감소해서 지금은 1990년대 말의 절반 수준으로 감소했다.
그러나 재생에너지 분야에서는 다른 양상이 펼쳐진다. 특히 풍력 분야는 유럽 업체들이 독주하고 있다. 풍력 분야에서 독일과 스페인 합작사인 Siemens-Gamesa와 덴마크의 Vestas, 두 업체가 세계 시장의 약 70%를 점유하고 있다. 그리고 그 뒤를 중국 업체인 Sewind가 따른다. 미국의 GE(General Electric)도 풍력 분야에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지만, 유럽 업체와는 현격한 점유율 차이를 보이고 있다.
위 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유럽의 풍력 기술은 미국, 일본, 한국 등에 비해 다소 앞서 있다. 그런데 기술력의 차이보다 중요한 것은 유럽 풍력 산업의 자본과 인력 규모 등이 다른 국가를 압도한다는 것이다. 유럽과 다른 나라의 ‘초격차’로 작용할 수 있는 것은 기술력의 차이보다는 저변의 차이다. 유럽에서는 과거 석유 메이저라 불리던 기업들이 대거 재생에너지 산업에 진출하면서 유럽은 질뿐만 아니라 양(Capacity)에서도 앞서 있다. 구체적으로 노르웨이의 국영석유회사였던 에퀴노르는 2035년까지 16GW의 재생에너지 설비를 건설하겠다고 선언했고, 이탈리아의 Eni는 2035년까지 25GW, 프랑스의 토탈은 2025년까지 35GW를 건설하겠다는 목표를 설정했다.*[efn_note]WoodMackenzie(2020), ‘The Edge: The Euro Majors’ big bet on new energy’, 2020.12.3.[/efn_note]
그리고 유럽 최대의 석유회사인 영국의 BP는 2030년까지 석유 가스 생산량은 40% 줄이고, 재생에너지 50GW를 달성하겠다고 선언했다. 물론 이렇게 유럽의 석유 기업이 종합에너지 업체로 변신을 시도하는 이면에는 탄소중립과 기후변화 이슈가 지구촌의 지속적 이슈로 존재하면서 시장을 열어줄 것이라 기대하는 심리가 있다.
IEA에 따르면 2019년 한해에만 전 세계에서 태양광 발전 100GW, 풍력 발전 60GW, 총 160GW의 재생에너지 시설이 추가되었다.*[efn_note]IEA, Global Energy Review 2020: the impact of the COVID-19 crisis on global energy demand and CO2 emissions, 2020, p.35[/efn_note] 2021년 이후로 설치 규모가 더 커질 것으로 보이는데, 에너지정보업체 우드맥킨지는 2020년부터 향후 10년간 매년 250GW의 재생에너지 설비용량이 신규로 건설되리라 예측했다.*[efn_note]WoodMackenzie(2020), ‘The Edge: The Euro Majors’ big bet on new energy’, 2020.12.3.[/efn_note] 현재 석탄, 원자력, 재생에너지 등을 모두 포함한 한국의 총 발전설비 용량이 약 125GW이다. 우드맥의 전망은 매년 한국의 2배 수준의 전력 설비가 재생에너지로만 추가된다는 것이다. BP의 에너지 전망 보고서는 한발 더 나아가 2025년부터 2030년까지 매년 300GW의 재생에너지 발전 시설이 설치되고, 2030년 이후에는 매년 500GW가 설치된다고 했다.*[efn_note]BP의 시나리오 중 중위값이 Rapid 기준이며, Net-zero 시나리오에서는 2025년 이후부터 매년 500GW씩 추가되고, 이후에는 900GW씩 추가된다고 가정했다.[/efn_note]
BP는 바로 이러한 예측 하에서 종합에너지 기업으로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이미 유럽 시장은 재생에너지 설비가 각국 발전량에서 30~40%의 비율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유럽만을 무대로 이와 같은 계획을 할 수는 없다. 그들은 미주와 아시아에서 새로운 시장이 열릴 것을 기대한다. 이미 에퀴노르, BP, Total 등은 한국 등 아시아에 진출해서 사업을 추진 중이다.
우드맥킨지의 예측대로 매년 250GW의 재생에너지 설비가 추가된다면 매년 수백조 원의 자본투자가 이루어져야 한다. 설령 예측치의 절반만 이루어진다고 해도 엄청난 산업이 열리는 것이다. 이러한 재생에너지 시장을 두고 유럽, 중국, 미국이 치열한 경쟁을 펼칠 것이다.
2. 바이든 정부가 그린뉴딜을 외치는 이유
3. 한국의 도전
한국 정부는 2020년 12월 발표된 ‘제5차 신재생에너지 기본계획’을 통해 태양광과 풍력을 크게 늘리는 계획을 발표했다. 현재 1.3GW인 풍력발전 설비는 2034년까지 24.9GW로 약 19배로 늘어날 예정이다.*[efn_note]산업통상자원부, ‘제5차 신재생에너지 기본계획’, 2020.12. p.49[/efn_note] 현재 전국에 약 560여 기의 풍력 발전기가 설치되어 있다. 단순 산술 계산으로 19배를 늘리기 위해서는 현재 설치된 560기의 풍력 발전기가 19배인 약 10,600기로 늘어나야 한다. 한국의 대표적 풍력 시설인 대관령 풍력단지에 53기의 풍력 발전기가 설치되어 있는데, 그러한 풍력 단지가 약 190개 더 생겨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10,600기의 풍력 발전기는 거대하지만 이미 외국에서는 실현된 숫자이다. 앞서 언급한 영국은 2020년 기준 10,930기의 풍력 발전기를 운용하고 있다.(발전 용량 기준으로 24.1GW이며 이를 통해 자국 발전량의 약 20%를 충당한다.) 미국 바이든 정부는 대선 캠페인 당시 약 60,000여 기의 풍력 발전기를 새로 설치하겠다고 했다.
물론 한국은 국토 면적이나 풍력 자원 면에서 앞서 언급한 나라들과는 다르다. 그래서 어느 정도 조절할 필요도 있다. 그렇다고 해도 한국이 목표한 풍력 설비 용량 24.9GW와 이와 상응하는 10,000기라는 숫자는 터무니없는 숫자가 아니라 감당해야 하는 숫자가 되어가고 있다. 다행인 점은 지금껏 설치된 풍력 발전 터빈은 대부분 2MW 이하였지만, 앞으로 4~8MW급도 많이 사용될 것이라는 점이다. 터빈 용량이 커지면 단위면적당 발전량이 많아진다. 두산중공업은 2022년까지 8MW급 터빈 개발을 완료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efn_note]‘5차 신재생에너지 기본계획’에 따르면 정부는 2030년 12~20MW의 터빈 개발이 가능하도록 R&D 지원을 강화할 계획이다. 따라서 훨씬 적은 수의 터빈으로 목표한 발전 용량이 가능할 수도 있다.[/efn_note] 따라서 10,000기가 아닌 그 절반 이하의 숫자로 목표한 풍력 발전 설비가 가능할 수도 있다.
4. 에너지 역사의 데자뷔
불가피하게 해외업체가 한국의 풍력 자원을 개발해야 하는 상황인데 이 모습은 과거 산유국이 자국의 석유 자원 개발을 서구에 위탁했던 것과 다르지 않다. 다만 ‘석유 자원’이 ‘풍력 자원’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물론 해외업체가 우위에 있는 역량을 가지고, 더 적은 비용으로 더 신속하게 목적을 이루게 해준다면 양쪽에게 win-win이 된다. 그것이 국가 간에 무역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에너지는 일반적인 상품이 아니라, 국가의 생존과 안보와 관련된 분야이다. 따라서 이 분야의 자주적 역량은 경제성과 별개로 확보해나갈 필요가 있다.
또한, 해외업체가 프로젝트를 진행하더라도 국내 업체와 상생하며 고용을 창출하고 관련 기술과 경험을 공유하면 좋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의 이익대로 움직일 것이다. 덴마크의 에너지기업 오스테드는 2020년 11월 인천 연안에 대규모 풍력단지 조성을 발표하는 기자 회견에서 두산중공업의 풍력 발전용 터빈을 쓰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 답변을 회피했다. 오히려 한국에서 사업을 하려면 많은 부문을‘현지화’해야 한다는 점을 어려운 점으로 꼽았다.*[efn_note]Money’s(2020), ‘국산화 외친 ’오스테드‘, 두산중공업 터빈 왜 안쓰냐 질문에..’, 2020.11.25.[/efn_note] 석유 사업이 그러하듯 외국 업체가 재생에너지 사업을 하더라도, 그 수익 배분과 국내 업체와 상생 정도는 협상에 달려 있다. 그리고 그 협상력은 한국의 재생에너지 사업 능력에 비례한다. 한국의 기술, 자본, 인력이 유럽의 그것에 근접해서 한국의 선택지가 더 많은 상황에서 유리한 조건을 끌어낼 수 있다. 반대로 자국의 풍력 자원을 개발할 능력을 갖추지 못한다면 판매자가 우위에 있는 사업 환경이 지속될 수밖에 없다.
초기 석유 개발 역사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은 석유 자원의 주인이었던 중동이나 남미 산유국이 아니라, 미국과 유럽의 기업이었다. 이로써 산유국은 자국의 석유 자원을 이용한 사업에서 수익을 서구 기업과 반분하는 계약을 수십 년간 지속했다. 이러한 시스템에서 미국과 유럽의 석유회사들은 급성장할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중동의 석유는 20세기 후반 서구의 성장 동력 역할을 톡톡히 했다. 산유국들은 초기에는 발견된 석유의 소유권마저 서구 기업에 내준 채 일방적으로 로열티만 받는 형태의 계약을 체결했다. 그것이 이후 생산물을 분배하는 방식으로 계약이 변해갔다. 석유 개발 역사 초기에 중동 산유국이 자국의 석유 자원을 스스로 개발하고 판매하지 못했던 것은 그들 스스로 그것을 할 수 있는 기술과 자본, 그리고 인력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5. 중요해진 에너지 기업의 역할
6. 나오며
최지웅 과장 - 한국석유공사 에너지정보팀
GS칼텍스에 의해 작성된 본 콘텐츠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4.0 국제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으며, 한국석유공사의 저작물에 기반합니다.
본 글은 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석유공사의 공식입장은 아닙니다.
본 콘텐츠의 IP/콘텐츠 소유권은 한국석유공사에 있으며 Reproduction을 제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