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전환과 에너지 전환

GS칼텍스 -

유럽연합(EU)은 올해 원자재법(Critical Raw Material Act) 재정을 예고했다. 지난해 미국 IRA(Inflation Reduction Act)*[efn_note]Inflation Reduction Act, Weekly 에너지정보 44호 참조[/efn_note]에 큰 홍역을 치룬 국내 산업계는 또 다시 긴장 속에 이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To achieve the green and digital transitions”*[efn_note]https://ec.europa.eu/info/law/better-regulation/have-your-say/initiatives/13597-European-Critical-Raw-Materials-Act_en[/efn_note]
EU가 밝힌 입법취지의 첫 문장이다. 녹색전환은 곧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고 재생에너지 비중을 높이는 에너지 전환을 의미할 것이다. 그런데 이 에너지 전환을 빠르게 달성하기 위해서는 디지털 전환이 반드시 필요하다. 아마도 이것이 입법 취지문 가장 첫 문장에 두 가지 전환이 함께 언급된 이유일 것이다. 이번 칼럼에서는 EU 원자재법의 첫 목표인 디지털 전환과 에너지 전환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디지털 전환

사람들에게 디지털 전환이라는 단어는 이제 상당히 친숙할 것이다. 하지만 막상 이것이 무엇인지 설명하려면 그 개념이 모호하게 느껴질 것이다. 이러한 모호함은 대부분 용어의 사용이 명확하지 않을 때 발생하는데 본 글에서 사용된 “전환”이라는 단어 역시 그렇다.

인터넷에 있는 정보의 홍수 속 많은 글에서 Digital Transition과 Digital Transformation이 모두 디지털 ‘전환’으로 변역되곤 한다. 엄밀히 말하면 이 두 단어는 사실 조금 다르다. 먼저, Digital transition은 단순히 아날로그형태를 디지털형태로 전환하는 (Digitization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개념을 지칭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예를 들어 병원 원무과에서 출력된 서류로 관리하던 환자의 병력 차트를 컴퓨터로 관리할 수 있도록 전산화한 것, 전자 정부가 도입되어 공문을 전자 문서 형태로 처리하게 된 것, 우편 팩스 중심의 업무처리를 대체하기 위해 이메일을 도입한 것 등이 의 영역에 포함된다. 반면, Digital Transformation은 Digital Transition을 통해 변환된 디지털 자료와 플랫폼을 바탕으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창출하거나, 제품의 기능을 혁신하거나, 최적운영 모델을 도출해 비용을 절감하고 사고를 예방하는 활동을 의미한다. Digital Transition과 transformation의 의미 차이를 설명했지만, 이 구분은 여전히 모호하다 예를 들어, 기업의 이메일 시스템 도입은 ‘Transition’ 영역에 가깝지만 -이메일 시스템 도입을 통해 회사의 생산성 향상과 비용절감의 효과가 발생했다면 이는 ‘Transformation’의 성격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설상가상으로, 최근에는 Digital Transition이라는 단어가 여러 종류의 Digital Transformation 활동을 포함하는 거대한 혁신의 흐름을 지칭하기도 하는 데, 이 때문에 모호함은 더 커지고 있다. 때문에 ‘디지털 전환’이라는 용어는 기존의 의미를 정확히 기억하는 동시에 단어가 사용된 문맥에 따라서 포괄적으로 의미를 이해하고 접근해야 할 필요가 있다.

사례로 보는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

Digital Transition의 개념은 상대적으로 간단하기 때문에 앞서 소개한 몇 가지 간단한 예시만으로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Digital Transformation은 회사의 특징이나 개선 유형에 따라 그 방법이 서로 상이하기 때문에 이것이 “Digital Transformation이다!”라고 한마디로 정의하기 쉽지 않다. 실제로 학계와 업계에서 정의하는 Digital Transformation도 저마다 각기 다르다. (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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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모호함을 줄이고 이해를 돕기 위해서 Digital Transformation을 아래의 3가지 유형으로 구분하여 설명해 보고자 한다. Digital Transformation은 회사의 특성에 따라 아래의 3가지 유형 중 한 가지, 또는 몇 가지가 조합된 형태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① 비즈니스 모델 전환 ② 제품혁신 ③ 최적화를 통한 생산성 효율성 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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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왼쪽 Netflix의 DVD 우편, 그림 오른쪽 3D 프린팅기술로 구현된 열교환기⠀*출처: 왼쪽 NSIDER(2016), 오른쪽All3DP.pro

① 비즈니스 모델 전환

비즈니스 모델 전환 유형의 대표적 사례로는 우리에게 친숙한 넷플릭스가 있다. 1997년 캘리포니아에서 창업한 넷플릭스는 본래 DVD 대여점이었다. 90년대 우리나라에도 많이 있었던 ‘으뜸과 버금’이나 ‘영화마을’ 같은 비디오대여점과 비슷한 회사였다. 다만 기존의 DVD 대여점과는 차별점이 있었는데, 이는 창업자인 리드 헤이스팅스의 작은 경험에서 출발한다. 헤이스팅스는 1997년 당시 미국 최대 대여점이던 DVD ‘블록버스터’에서 “아폴로 13”이라는 영화 DVD를 빌렸다. 그리고, 우리가 그 시절 으레 그러했듯 반납을 깜빡해 연체료를 $40 물었다. 그는 이 경험을 교훈 삼아새로운 형태의 DVD 대여 사업을 구상했다고 한다. Net(인터넷) + flix(영화)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인터넷을 이용한 DVD 예약/반납 서비스가 사업의 핵심이다. 고객이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보고 싶은 DVD를 예약하면 우편으로 배송해주고 우편으로 다시 회수하는 형식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넷플릭스‘는 ‘오징어게임’을 제작한 OTT 회사로 알려져 있지만, 미국인들에게는 여전히 ‘빨간 편지 봉투’ 이미지가 익숙하다고 한다. (그림1 왼쪽)

그의 DVD 우편 대여 서비스는 2002년 70만 명의 가입자가 2005년 260만 명까지 증가하면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2000년 전•후 초고속 인터넷망의 보급으로 ‘헤이스팅스의 DVD 우편 대여’라는 혁신적인 사업도 옛것이 되어 사양길에 접어들었다. 넷플릭스의 우편 서비스를 통해 사람들은 DVD 대여점까지 직접 가지 않아도 되었고, 원하는 영화가 이미 대여 중이어서 헛걸음하는 일을 줄일 수 있었으며, 반납을 깜빡해 발생하는 연체료를 내지 않게 됐지만, 초고속 인터넷의 보급은 DVD가 우편으로 배달되는 시간조차 불필요하다고 느끼도록 만들었다. 이러한 흐름에 따라, 2007년 넷플릭스는 우편 대여 사업에서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로 주력 사업을 과감히 바꾸었다. 이 부분이 넷플릭스의 Digital Transformation이라고 볼 수 있다. 넷플릭스는 초고속 인터넷망을 이용해 사람들에게 실시간 영화 스트리밍 서비스를 제공했다. 당시에, 일반적이던 영화 1건당 과금 방침과 광고시청을 모두 배제하고 오로지 월정액 서비스만을 제공하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가격 정책도 선보였다. 이 전환은 미국시장에서 매우 성공적이었다. 2000년 전∙후의 인터넷망 보급만큼이나 혁신적이고 급진적인 변화가 2000년 후반에 시작됐다. 바로, 스마트폰의 등장이다. 넷플릭스는 2007년 아이폰 공개 이후 스마트폰이 대중화되자, 2010년부터 모바일 기기 대상 스트리밍 서비스를 개시했다. 이후 다양한 자체제작 콘텐츠와 빅데이터 기반 사용자 추천 서비스를 바탕으로 OTT업계의 리더가 됐다. 반면, 넷플릭스의 창업 계기였던 미국 1위 DVD 대여점 ‘블록버스터’는 2010년 최종 파산하며 사라졌다. 넷플릭스는 기존 대여점에 DVD 우편배달 서비스를 더 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했다. 그리고 2000년대 초반 초고속 인터넷망이 보급될 때는 스트리밍 서비스로 주력사업을 전환하여 DVD 대여점이 줄도산하던 시기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② 제품 혁신 유형
제품 혁신형 Digital Transformation의 대표사례로는 3D 프린팅 기술을 꼽을 수 있다. 이 분야에서 가장 선도적인 위치에 있는 회사는 스트라타시스인데, 이 회사의 창업자인 크럼프 부부는 1988년 딸을 위한 개구리 장난감을 만들기 위해 재료를 한 층 한 층(Stratum) 나누어 모양을 만들고 이를 여러 층(Strata)으로 쌓아 원하는 모양을 만드는 3D 프린팅 개념을 생각했다고 한다. 최근 3D 프린팅 기술 적용이 가장 활발한 분야는 의료, 자동차, 기계부품 분야이다. 이 분야에서 3D 프린팅 제품이 기존 제품 대비 경쟁력을 가지는 이유는 정밀성과 유연성 그리고 내구성이다.

치과치료를 예를 들어보자. 사람마다 뼈의 형태가 모두 다르기 때문에 미세한 차이에도 환자가 느끼는 불편함은 크게 나타난다. 이때, 3D 프린팅 기술을 이용하면 개별 환자의 뼈 모양에 맞추어 빠르게 맞춤 제작할 수 있다. 특히, 임플란트 치료가 그러한데 기존에는 보철물을 만들기 위해 본을 뜨고 치아 성형물을 만든 뒤 개인 특성에 맞게 절삭하고 가공해야 했다. 이를, 3D 프린팅으로 대체하면 각 환자에게 맞도록 개별 맞춤 제작하는 데 필요한 생산 시간을 대폭 줄일 수 있어 인공치아가 완성될 때까지 환자가 아픔을 참고 견뎌야 하는 기간을 단축할 수 있다. 또한, 치아 모형을 절삭할 때 발생할 수 있는 미세 균열 을 줄여 내구성 면에서도 유리하다. 치과 분야의 프린팅 기술은 임플란트 이외 3D에도 치열 교정, 턱관절 교정 등 다양한 분야로 확산되는 중이다. 또 다른 분야는 자동차나 컴퓨터에 들어가는 부품이다. 3D 프린팅 기술은 기존 금형기술 대비 복잡한 구조를 만드는 데 더욱 특화되어 있는데 넓은 표면적이 필요한 열교환기나 쿨러 같은 제품들에 프린팅 CPU 3D 기술이 적용되어 혁신을 가져왔다. (그림 1 오른쪽) 기존 금형기술로 이러한 복잡한 구조를 만들기 위해서는 초정밀 절삭 기술이 필요하고 비용과 시간 소요가 많았으며, 재료의 손실이 많이 발생했다. 반면, 3D 프린터로 열교환기를 제작하면 보다 복잡하고 표면적이 극대화된 제품을 빠르게 만들 수 있다. AM Research는 3D 프린팅 제품은 기존 제품 대비 열 교환 효율이 50% 향상된다고 평가한다.
③ 최적화를 통한 생산성 효율성 향상
마지막으로 최적화를 통한 생산성, 효율성 향상이다. 앞서 언급한 열 교환기가 제품의 효율성 향상이라면, 이번 효율 향상은 공정 효율 향상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보통 최적화를 통한 효율성 향상은 제조업에 국한된 과제로 생각하기 쉽지만, 패션산업에서도 이러한 혁신의 성공사례로 꼽히는 기업이 있다. 바로 스페인의 자라다. 자라가 추진한 Digital Transformation의 핵심은 ‘패스트 패션’이다. 패스트푸드처럼 트렌드를 빠르게 반영해 매우 짧은 생산주기로 소비자에게 신제품을 출시한다는 뜻에서 ‘패스트 패션’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자라는 기존 봄-여름-가을-겨울, 또는 SS-FW로 나뉘었던 신상품 출시 주기를 1~2주 단위로 파격적으로 단축했다. 이 전략의 장점은 소비자들의 소비심리를 즉각적으로 반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유명 연예인이 인터넷이나 방송에서 착용해 인기를 끈 제품이 늦어도 2주 안에 유사한 디자인으로 자라 매장에 전시된다. 그리고 다시 2주 뒤에는 새로운 옷이 진열되는데, 이러한 빠른 상품 회전은 제품에 나름의 희소성을 부여해 상품가치를 높이는 역할도 한다.

물론 이 전략에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패스트 패션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소량의 다양한 제품을 생산해야 하고 1~2주 안에 판매해야 하는데, 이 경우 생산관리와 재고관리가 쉽지 않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위해 자라는 도요타 자동차로부터 린 생산방식(Just In Time) 방식을 이전받으며 생산공정 혁신 역량을 습득했고, MIT 대학교와의 협업을 통해 재고관리를 위한 빅데이터 분석 알고리즘을 개발했다. 이를 통해, 2007년 이후부터 축적된 자사의 판매 데이터를 분석하여 매우 짧은 패션 트렌드 변화를 반영한 판매 전략을 수립할 수 있게 됐다. 현재도 자라는 생산주기 단축과 효율적인 재고관리로 SPA 패션 업계를 선도하고 있다.

석유 기업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

2000년대 초반 초고속 인터넷망의 빠른 보급과 2000년대 후반 스마트폰의 등장은 소비자들의 소비패턴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고 새로운 기업과 사업들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2010년대 중반부터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분석 기법들이 상업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기업들은 Digital Transformation이라는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석유기업들 역시 Digital Transformation의 흐름에서 예외일 수 없다. 석유 산업의 경우 탐사에서 생산에 이르기까지 탄성파 신호, 압력, 방사선량 등 다양한 수치를 측정하는 센서들이 많이 사용되어 왔기 때문에 Digital Transformation을 받아들이기에 유리한 환경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실제로 석유 업계의 Digital Transformation은 빠르게 진행되지 못했다. 지난 2020년, 애플, 테슬라, 페이스북과 같은 디지털 빅테크 기업들의 주가가 상종가를 달리고 있을 때, 엑손모빌이 다우존스지수에서 퇴출됐던 사건은 석유 기업들이 Digital Transformation을 빠르게 받아들이지 못했다는 방증일 것이다.

석유기업들이 Digital Transformation을 빠르게 도입하지 못하고 망설였던 가장 큰 이유는 자본집약적이라는 산업특징과 2010년 중반부터 이어졌던 저유가 기조에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Digital Transformation의 정의는 매우 다양하다. 이는 곧 관련 기술의 종류와 성숙도가 표준화되지 못하고 천차만별이라는 의미이다. 그 때문에 Digital Transformation을 도입하는 회사들은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그들의 전략을 수정한다. 하지만, 자본집약적 산업인 석유업계에는 이러한 시행착오를 감수하면서 자본을 투자하는 기업이 많지 않다. 또한, Digital Transformation의 파도가 확산되던 2010년대 중반에는 지속적인 저유가 기조가 계속됐다. 이 시기 석유기업들은 새로운 생산광구 개발에 투자하기를 꺼렸고, 신규 투자가 축소되다 보니 전 세계 유전 시설의 평균적인 노후화가 발생했다. 2017년 기준 전 세계 생산광구의 40%는 생산이 시작된 지 25년이 넘은 상태였고, 100년이 지난 유전도 175곳이나 됐다.*[efn_note]Rystad Energy, UCube Database[/efn_note] 25년이 넘은 노후 차량에 최신 자율주행 장치를 설치할 수 있을까? 또는, 노후 주택에 중앙 집진 설비나 기술을 구현 사물인터넷(IoT) 할 수 있을까? 불가능한 것은 아니겠지만 새 차를 사거나 새 집을 짓는 것이 현명한 결정일 것이다. 결론적으로, 저유가 기조와 표준화되지 못한 기술 로드맵은 자본 조달 여력이 충분한 메이저 석유회사들 위주로 Digital Transformation을 시도하게 했고, 신규유전 개발보다는 상대적으로 젊은 기존 생산광구의 생산성 증대, 유지보수 및 운영 최적화에 역량을 집중하는 결과를 낳았다.

다행히 투자가 이루어진 분야에서는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다. Digital Oil Field(이하DOF)가 대표적이다. DOF는 생산 중인 유전에 다양한 종류의 센서를 설치해 데이터를 취득하고 인공지능을 적용해 분석함으로써 생산량을 최적화하고 예방적 유지보수를 수행하는 개념이다. 최근에는 드론이나 로봇을 도입해 원격 유지보수를 수행하기도 하며 가상공간에 지하의 저류층을 그대로 구현하여 유∙가스의 거동을 보다 입체적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이 분야에서 가장 선도적인 회사는 메이저 석유기업인 BP를 꼽을 수 있다. BP는 2000년대 후반부터 DOF에 대한 연구를 수행해 왔다. 2007년 DOF 적용성 연구를 시작으로 2008년에는 자사 운영광구의 주요 시추공 700개를 온라인으로 연결해 실시간 모니터링이 가능하도록 했다. 2015 년에는 GE사와 협력하여 전 세계에 6,000여 개의 생산정을 온라인으로 연결하고 이를 관리할 수 있는 지능형 시스템인 POA(Plant Operations Advisor)를 개발했다. BP는 이를 통해 전 세계 시추공으로부터 실시간으로 정보를 수집/분석하며 불필요한 운영 중 단시간을 줄이고 생산성을 개선할 수 있었다.*[efn_note]한국석유공사 스마트데이터센터(2019), E&P업계의 디지털전환, 그 변화의 흐름과 방향[/efn_n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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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석유회사들의 사명변경

에너지 전환과 디지털 전환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대중화는 많은 새로운 사업을 만들었고 사람들의 삶을 바꾸어 놓았다. 하지만, 석유기업의 사업형태는 스마트폰 등장 전후로 크게 변화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최근 기후위기 이슈가 석유기업들에게 인터넷이나 스마트폰보다 더 큰 변화를 강제할 가능성이 높다.

석유기업들이 그동안 땅속에서 대기로 꺼내 놓은 화석연료가 대기 중 CO₂ 증가로 이어져 기후위기를 촉진했고, 그 기후위기가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사람들은 기후위기를 인터넷 등장과 같은 생활양식의 변화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죽느냐 사느냐의 생존문제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만큼 석유기업에 대한 변화 요구는 거세다. 이미 많은 석유기업들이 자신의 이름에서 석유의 정체성을 희석하기 위해 노력 중일 정도다. Total은 TotalEnergies로 이름을 바꾸었고, BP는 자신들이 더 이상 British Petroleum이 아닌 Beyond Petroleum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Statoil, Qatar Petroleum도 사명에서 화석연료의 이미지를 지우려 각각 Equinor, Qatar Energy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림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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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3. 주요 석유기업들의 신에너지 투자 목표 *출처: Wood Mackenzie, Majors and NOCs Energy Transition strategies,2022.06 한국석유공사 스마트데이터센터, 선도기업 신에너지 전략벤치마킹 (20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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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4. 주요 석유기업들의 전력 벨류체인 투자 *출처: Wood Mackenzie, Corporate Strategies: Key trends indecarbonisation , 2021. 5 한국석유공사 스마트데이터센터, 선도기업 신에너지 전략벤치마킹 (2022.12)
위 사례들을 살펴보면 회사명에서 Oil (또는 Petroleum)이라는 단어가 Energy로 치환된 것을 볼 수 있다. 국제사회의 변화 요구에 대응하여 석유기업이 취하는 태도는 에너지기업으로의 탈바꿈이다. 여기서 ‘에너지’란 탄소가 발생하지 않는 청정에너지를 포함한다. 즉, 과거의 석유회사들이 원유를 채굴해 발전소나 정유소에 판매해 수익을 올렸다면, 이제는 해상풍력이나 태양광발전을 통해 직접 전기를 생산하고 판매하는 방식을 비즈니스 모델에 추가한다는 의미다. (그림 3 및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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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c)와 (d)는 각각 사진 (a)와 (b)의 상황을 컴퓨터로 모델링 한 것이며, 이때 (c)와 (d)는 바람의 속력은 같고 방향만 약 14˚다르게 불고 있다. 약간의 풍향 차이지만 (c)의 발전효율은 (d)의 약 60%밖에 되지 않는다. *출처: Wind-Turbine and Wind-Farm Flows: A review(2020), F. Porte-Agel et al.
석유기업들이 추구하는 전기 생산은 과거처럼 물을 끓여 터빈을 돌리는 것이 아니다. 바람이나 태양광을 직접 이용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 방법은 연료를 태워 물을 끓이는 것보다 통제하기가 훨씬 까다롭다. 풍량, 풍향, 일조량, 계절변화에 따라 발전량이 실시간으로 변화하고 발전량에 영향을 끼치는 변수들이 많기 때문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Digital Transformation 역량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해상풍력의 경우 풍량과 풍향에 따라 발전량이 달라지고, 해상에 위치해 유지보수 비용이 증가한다는 특징이 있다. 이때 해상풍력발전의 효율상향과 비용절감 요소는 크게 세 가지 지점에서 발생한다.

첫째는 예방적 유지보수이다. 해상이라는 특성상 고장을 인지한 뒤 시설물을 수리하려면 이동시간과 비용이 소요되고, 운영 중단 기간이 증가된다. 이에 대한 해결 방안으로 실시간 모니터링과 자율주행 드론을 이용한 예방적 유지보수 분야가 발전하고 있다. 수많은 센서를 통해 수집되는 신호를 실시간으로 분석해 평소와 다른 이상 수치가 감지될 경우 자율주행 드론이 돌아가는 터빈 블레이드를 피해 스스로 비행하고 점검한다. 사람이 직접 이동하는 시간, 비용, 안전사고 위험을 줄일 수 있고, 발전 중단 시간을 최소화할 수 있다.

다음은 발전량 예측이다. 재생에너지는 물을 끓여 터빈을 돌리는 방법과 달리 인위적으로 발전량을 조절하기 어렵다는 특징이 있다. 발전량 조절의 어려움은 전력 공급망에 불안을 가져오고 심한 경우 정전을 일으킬 수 있다. 때문에, 수년간의 풍력발전 데이터를 인공지능으로 분석해 발전량 패턴을 예측하는 기술이 많이 연구되고 있다. 또한, 발전량 예측을 통해 최적의 전력 판매 시기를 능동적으로 결정할 수 있어 수익성 증대도 동시에 꾀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발전량 극대화다. 풍력발전의 발전량은 같은 바람이 불더라도 발전기들의 배치 형태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인근의 다른 발전기를 통과하며 난류가 발생하는 등 상호 간섭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같은 배치를 갖고 있다 하더라도 바람의 방향이 달라지면 간섭이 다른 형태로 발생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간섭이 발생하면 발전량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림 5)

간섭을 최소화하고 시간당 발전량을 극대화하기 위해 컴퓨터 수치모델을 이용한 최적화 연구들이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 태양의 고도와 계절 변화에 따라 발전량이 달라지는 태양광 발전에서도 동일한 최적화 기법들이 적용된다.

이런 기법들은 석유회사들이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축적했던 디지털 기술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해상 구조물로부터 실시간으로 신호를 수집하는 기술이나, 공기라는 유체(바람)의 거동을 모델링 하는 기술, 해상 구조물을 수리하기 위해 드론을 활용하는 기술들이 그렇다. 실제로 석유회사들은 이름을 에너지회사로 바꾸면서, 즉 실물의 석유를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전기를 직접 판매하는 포트폴리오를 추가하면서 Digital Transformation을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결론

2014년 말부터 시작된 저유가는 역설적이게도 석유기업들의 Digital Transformation을 강제하는 동시에 그 폭을 제한했다. 비슷한 시기 넷플릭스, 자라 등 많은 회사들은 전방위적인 Digital Transformation을 추진하며 각자의 사정에 맞게 비즈니스 모델을 변경하거나, 생산주기를 극적으로 단축하고, 공정을 최적화했으며 제품을 혁신했다. 이러한 변화의 촉발 요인은 대체로 인터넷과 스마트폰 보급 확산, 인공지능 기술과 같은 디지털 기술 혁신이었다. 반면, 석유회사들은 디지털 기술 혁신에 상대적으로 둔감하게 변화했다. 하지만, 기후위기가 체감으로 느껴지면서 국제사회는 석유기업들의 변화를 강요하고 있다. 자신의 사업에서 탄소배출을 줄이고, 청정에너지 비율을 높이는 에너지 전환에 앞장서라는 것이다. 이에 많은 석유기업들이 과거보다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고 최근의 고유가 속에서 얻은 수익들을 재생에너지에 투자하고 있다. 재생에너지 분야에서는 보다 많은 Digital Transformation이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원유를 채굴해 얻는 수익 외에 직접 전기를 생산해 판매하는 비즈니스 모델이 추가되고, 그 비중은 앞으로 점점 증가할 것이기 때문이다. 주요 메이저기업들이 자신의 사명까지 바꾸어가며 에너지전환을 추진하고 있는 만큼, 에너지전환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그 흐름에서 회사의 존폐를 가를 승부처 중 하나로 Digital Transformation이 손꼽힌다. 과거, 같은 DVD 대여 사업을 하던 넷플릭스와 블록버스터가 인터넷 보급에 서로 다른 대응을 한 결과로 희비가 엇갈렸던 것처럼 에너지전환과 Digital Transformation은 많은 석유기업의 희비를 가를지도 모른다.

한국석유공사 에너지정보팀 - 이동석 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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