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유에는 양모, 비단, 면 같은 천연섬유와 폴리에스테르, 나일론, 아크릴 등의 함성섬유가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유기고분자로 우리들이 주위에서 쉽게 찾을 수 있으며, 의복의 옷감을 제공하는데요.
그러나 이들 외에도 유리섬유, 강철섬유, 아스베스토스섬유와 탄소섬유 등 산업용 섬유가 있으며, 이들은 모두 무기섬유에 속합니다. 방향족 폴리아미드에 속하는 케블라도 산업섬유로 중요한 합성 유기 섬유인데요. 이번 글에서는 ‘꿈의 신소재’로 불리는 탄소섬유를 들여다보겠습니다.
탄소섬유의 정체는?
‘탄소’하면 우리는 흔히 시커먼 가루를 연상합니다. 예부터 사용해온 숯도 탄소가 주성분이데, 탄소섬유는 종종 흑연(graphite)섬유라고도 칭합니다. 연필심이 흑연으로 되어 있는데 같은 재료로 어떻게 섬유를 만든다는 말일까요? 또 어떤 특징을 지녔기에 우리나라에서도 여러 회사들이 이 섬유의 개발과 생산에 뛰어들고 있을까요?
탄소섬유 필라멘트는 직경이 보통 5-8㎛(1㎛=1/1000㎜=10-6m)이며, 화학구조는 흑연과 동일하게 육각형을 이루고 있는 판상탄소로 되어 있습니다. 단일 흑연층으로 된 박막을 흔히 그래핀(graphene)이라 부르며 미래 신소재로서 세계적으로 많은 연구가 진행 중입니다.
대략적으로 탄소 섬유는 강철의 20%, 알루미늄의 70% 정도로 가볍지만, 강도는 강철의 10배나 되기 때문에 자동차, 조선, 우주, 스포츠레저 산업에서 경량화 소재로 이목을 끌고 있습니다. 특히 복합재료 제작에 필수적인 보강재로 각광을 받고 있는데요. 이런 탄소섬유의 역사에는 놀라운 사실이 숨겨져 있습니다. 바로 약 100여 년 전 토마스 에디슨이 만든 대나무 섬유를 탄화(공기를 차단하고 가열 분해시킴)시켜 탄소섬유 전구 필라멘트를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탄소섬유의 제조법
탄소섬유의 미세화학구조는 그 제조법에 따라 달라집니다. 탄소섬유는 흑연가루를 출발물질로 해서는 만들 수 없습니다. 가장 흔히 사용하는 방법은 폴리아크릴로니트릴(PAN) 섬유를 탄화하거나, 석유피치로부터 제조합니다. PAN은 아크릴섬유를 만들 때 사용하는 합성 고분자입니다.
미리 고분자 사슬의 배향을 조절한 PAN 필라멘트를 우선 공기 중에서 약 300℃로 가열하면 수소원소가 꽤 많이 제거된 산화 PAN 섬유가 됩니다. 이를 아르곤 같은 비활성기체 속에서 약 2,000℃까지 가열하면 흑연화 화학반응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PAN으로부터 얻는 탄소섬유는 완전한 흑연구조를 지니지 못하며, 소위 터보스트래틱(turbostratic) 탄소섬유가 얻어집니다. 이 탄소섬유에는 일부 흑연구조면이 층을 이루고 있는 규칙구조에서 벗어나 불규칙 구조를 지닙니다.
또 한 가지 방법에서는 석유정유 시 찌꺼기에 해당하는 석유피치를 여러 단계를 거친 탄화반응을 통해 탄소섬유를 얻습니다. 이 공정에 의존할 때는 피치가 액정상태를 거치는 단계에서 분자배열을 정밀하게 조절해야 최종 탄소섬유의 특성이 좋아집니다.
이렇게 생산된 탄소섬유를 2,500~3,000℃에서 추가적인 열처리를 거친 뒤 고배향, 고순도의 특수 흑연섬유를 제조합니다. PAN계 탄소섬유는 기계적 강도가 우수한 반면, 피치계는 탄성율과 높은 열·전기 전도성 등 기능성이 뛰어납니다. 이런 차이는 이 두 탄소섬유의 미세화학구조의 차이에 기인합니다.
탄소섬유의 미래
우리나라에서 최근 들어 여러 기업들이 탄소섬유 사업에 뛰어들고 있습니다. GS칼텍스는 피치를 원료로 하는 탄소섬유 생산을 준비하고 있으며, 다른 경쟁사들은 PAN을 사용합니다. 우리나라의 현 탄소섬유 시장은 연 3천 톤에 이르는데 전량 수입에 의존하는데, 세계소비량은 약 4만 5천 톤이나 되며, 이는 20억 달러를 넘는 액수입니다.
당분간 연소비량의 증가율이 약 10~13%로 예상되어 2020년 세계 수요는 13만 톤(50억 달러)을 넘어설 것으로 예측됩니다. 현재 소비가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분야는 우주항공, 풍력발전 및 자동차산업입니다. 현재 탄소섬유 생산은 일본이 가장 앞서 있습니다.
탄소섬유와 경쟁하고 있는 다른 섬유로는 방향족 폴리아미드(아라미드)계열 제품을 꼽습니다. 케블라와 노멕스(미국 듀퐁사의 개발 제품)가 가장 잘 알려져 있으며 케블라는 방탄조끼, 노멕스는 소방복 제조용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들도 복합재료 제조에 주요한 섬유로 사용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개발되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중요한 점을 지적하고 싶은데요. 우수한 탄소섬유를 저렴하게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이 무엇보다 중요하겠으나, 복합재료 제조기술의 뒷받침이 필수적이라는 점입니다. 복합재료는 다양한 바탕재료(플라스틱, 나무, 요업재료, 금속재료)를 사용하게 되므로 각 바탕재료가 요구하는 특성을 보강섬유가 지녀야하는 어려운 기술적인 면이 숨어 있습니다.
따라서 탄소섬유 제조회사는 제품의 다양화 및 특성화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습니다. 바탕재료와 보강섬유간의 접착력 향상, 보강섬유의 효과적 분산 등 많은 노하우 개발이 섬유생산 기술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탄소의 과학과 산업
석탄의 주성분이 탄소이며, 또 숯의 주성분이 탄소임을 생각하면 우리는 예부터 탄소를 땔감으로 주로 사용해왔음에 틀림없습니다. 그 외에도 악취제거, 독극물 및 미생물 흡착, 검은 안료, 잉크, 고체윤활제, 연필심 등에 광범위하게 사용해왔습니다.
이런 탄소에 무정형탄소, 흑연, 다이아몬드만 알아왔으나, 탄소-60 등 구형탄소들과 탄소나노튜브의 발견이 탄소의 새로운 이용가치에 전 세계의 눈을 뜨게 했습니다. 더구나 흑연 단분자막(그래핀)의 전기적, 기계적 특성과 가치가 알려지면서 IT소자에 그의 응용에 관한 연구에 세계적으로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탄소의 다양한 구조가 발견됨에 따라 탄소재료의 이용범위가 더욱 확장되고 있으며, 기술 및 산업적 가치가 계속 증가하고 있습니다. 소화불량 시 숯가루를 조금 먹었던, 그래서 병균을 흡착시켜 배설하게 한 우리 조상들의 슬기는 탄소의 의학적 응용이라는 또 다른 가능성을 말해주고 있는듯합니다. 탄소의 이용은 끝이 보이지 않습니다. 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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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일 - 고려대학교 KU-KIST 융합대학원장
서울대학교 화학과 학사 및 석사 과정을 마치고
미국 뉴욕시립대학교에서 고분자화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난 40여 년간 고려대학교 화학과에서 후학들을 가르쳐왔고,
액정 고분자의 세계적 권위자로 420여 편의 논문을 세계적 학술지에 발표했으며,
노벨상 추천위원으로 활동하는 등 학문적 성과를 국제적으로 인정받았다.
현재 고려대학교 KU-KIST 융합대학원장과 한국과학문화교육단체연합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