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칼럼] 치솟는 가스 가격에 상한제 검토하는 유럽…”미국산 LNG 수입 확대가 정답”

GS칼텍스 -

최근 유럽연합(EU)이 가스 가격 상한제를 고민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2025년 2월 기준으로 가스(TTF) 가격이 메가와트시(MWh)당 58유로로 치솟는 등 2년래 최고 수준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이는 통상 겨울철이 되면 난방용 수요가 오르는 것과 연관된다. 지난 겨울엔 여기에다 다른 문제가 더해졌다. 풍력, 태양광 발전량이 급감하는 둥켈플라우테(Dunkelflaute) 현상으로 인해 화력발전이 더 많이 동원되면서 가스 가격을 밀어올렸다.

가스 가격 치솟기만 하면 “상한제 검토”  

유럽 EU 가스 가격 상한제, 우르술라 폰데어 라이엔 EU 집행위원장, GS칼텍스

EU 당국의 가스 가격 상한제 검토 보도에 업계는 강력히 반발했다. 유럽 에너지 거래소 협회인 유로펙스(EUROPEX) 등 11개 단체는 우르술라 폰데어 라이엔 EU 집행위원장에게 “가격 상한제 조치가 발표되면 유럽 에너지시장 안정성과 대륙 전반의 에너지 안보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에 EU가 지난달 말 내놓은 ‘청정산업딜’에서는 가스 가격 상한제가 결국 제외됐다. EU 정부가 가스 가격 상한제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에너지 위기 때 이미 한 차례 도입한 적이 있다.

당시 EU 당국은 MWh당 180유로로 가스 가격 상한을 설정한 바 있다. 그러나 이는 한 번도 발동되지 않은 채 지난달 말 만료됐다. 유럽 가스 업계는 가스 가격 상한제에 대해 “글로벌 가스 공급자나 금융 투자자들이  EU 외부의 보다 자유로운(가격 상한이 없는) 시장으로 이탈하게 만들고, 결국 가스 가격 벤치마크인 TTF의 위상을 뒤흔들 수 있다”고 우려한다.

에너지 컨설팅 기업 유라시아 그룹의 아문드 비크 선임 고문은 “도매 시장에서 가스 가격 상한제를 설정하는 것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며 “문제의 핵심은 에너지 공급 부족”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유럽이 집중해야 할 것은 자국의 산업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고 유럽 가정의 주머니 사정을 위협하지 않도록 충분한 에너지를 확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답은 공급량 확보…美와 관세 전쟁서 ‘묘책’

폴란드 스비노우지시에 액화천연가스(LNG) 터미널에 도착한 미국산 LNG 운반선, 로이터연합뉴스, GS칼텍스

이런 가운데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재집권은 유럽 가스 업계에 ‘갈림길’이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의 중재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휴전이 성사될 가능성이 커지면서다. 유럽이 전쟁 이전처럼 다시 노르트스트림 파이프라인으로 러시아산 가스를 수입할 것인지, 아니면 선박으로 미국산 액화천연가스(LNG) 수입량을 대폭 늘릴 것인지를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놓인 것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유럽과 영국, 미국의 가스 가격을 동일한 단위(유로/MWh)로 비교해 본 결과 유럽과 영국은 가스 가격 움직임이 비슷해 사실상 하나의 가스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반면 미국의 가스 가격은 유럽 가스 가격의 3분의1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FT는 “이 정도 가격 차이를 고려할 때 유럽은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에 대해 협상할 때 미국산 LNG 구매 확대를 제안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對)유럽 무역 적자를 해소하는 방안 중 하나로 미국산 LNG를 유럽에 더 팔고 싶어 한다. 이때 유럽 측이 미국 가스 가격에 웃돈(프리미엄)을 약간만 얹어 구매량을 늘리겠다고 먼저 제안하면 트럼프 대통령을 만족시키는 협상 카드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

유럽 에너지 기업들도 사활 

GS칼텍스, 한국무역협회, 한국이 수입한 LNG 국가별 비중

유럽 기업들도 나서고 있다. 프랑스 토탈에너지의 패트릭 푸야네 최고경영자(CEO)는 “트럼프 대통령이 유럽에 더 많은 LNG를 팔기를 원하는 이 시점에 토탈에너지는 주요 플레이어가 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미국 에너지 사업의 주요 투자자인 토탈에너지는 미국산 석유가스를 유럽, 아시아 등지로 가장 많이 실어나르는 기업이다.

그는 다만 “유럽 기업들에 더 유리한 수출 허가(라이선스) 체계를 보장하는 협정이 먼저 체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한국 등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나라의 경우 LNG 수출 허가가 장기적(long-term)으로 부여되며 별도의 추가 절차 없이 자동 승인됨에 따라 안정적으로 LNG를 수입할 수 있다는 점을 언급한 것이다.

반면 유럽의 경우 미국 에너지부로부터 받는 수출 허가를 일정 기간마다 갱신해야 하고, 재승인 절차를 거쳐야 한다. 미국 정부의 정책이 바뀌거나 행정부가 교체되면 언제든 유럽향(向) LNG 수출이 제한될 위험이 있다는 의미다. 이는 미국 가스 가격이 상승할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전쟁에서 한국 정부와 민간 기업들도 미국산 LNG 수입 확대를 검토하고 있다. 한국 입장에서도 미국산 LNG의 가장 큰 장점은 중동산 LNG 대비 저렴한 가격이다. 중동산과 미국산 LNG는 가격 산정 방식 자체가 다르다. 미국산 LNG는 통상 천연가스 배관망이 모여 있는 루이지애나주 헨리허브 지역의 현물 시장 가격을 기준으로 수입한다.

중동산 LNG는 유가 연동 방식으로 수입 가격이 정해지기 때문에 유가가 높을 땐 LNG 가격도 같이 오른다. 미국산 LNG는 중동산보다 20% 정도 싼 것으로 평가된다. 최근 국제유가가 배럴당 70~80달러를 오가고, 헨리허브 현물 가격은 MMbtu(미국 가스 열량 단위)당 4달러 수준에서 형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 정부 관계자는 “미국산 LNG는 많이 저렴해서 해상 운임비를 포함해도 중동산과 가격 경쟁력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글 – 김리안 한국경제 기자

※ 본 콘텐츠는 한국경제 김리안 기자의 기고를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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