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에게 에너지자원은 무엇을 의미할까?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 흔들려 꽃이 좋아지고 열매가 많아진다.” 이는 용비어천가에 나오는 구절이다. 한 국가를 지탱해주는 뿌리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에너지자원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국가와 사회가 생존하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에너지자원의 확보가 필수적이며 이는 인류의 역사가 증명해주고 있다.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역사를 돌아보면 다양한 형태의 에너지원이 활용되어왔고 산업의 발전에 따라 지속적으로 변화해왔다.
증기기관으로 대표되는 1차 산업혁명 시대를 기점으로 1950년대 이후 대량의 에너지가 필요하게 되면서 석탄, 석유, 가스와 같은 화석연료가 전 세계 에너지 공급의 80% 이상을 담당하게 되었다. 화석연료에 대한 지나친 의존으로 인한 환경오염과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태양광이나 풍력과 같은 재생에너지원 확보를 위한 에너지전환 노력이 전 세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지만 2050년이 되어도 여전히 석탄, 석유, 가스와 같은 화석연료에 대한 의존도는 70%가량 유지될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다. 특히, 화석연료 중 석탄을 제외한 석유와 가스의 사용량은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즉, 앞으로 화석연료에 대한 의존도는 낮아지겠지만 상대적으로 에너지 사용량이 적은 중국과 인도를 중심으로 한 아시아지역 개발도상국의 인구 증가와 산업 발전에 따라 세계 전체 에너지 수요는 지속해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화석연료의 사용량 증가와 중요성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1. 에너지의 탈탄소화는 무엇을 의미하나?
‘탄소 중립, 그린뉴딜, 수소 시대’ 최근 신문 방송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고 있는 단어들이다. 출발점은 모두 하나에서 시작된다. 바로 에너지원에 대한 것이다. 18세기 영국에서 시작한 1차 산업혁명 이후 200년 가까이 우리 사회를 이끈 산업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 탄소 기반의 에너지를 바탕으로 발전하였고 그것이 바로 석탄, 석유, 천연가스로 대표되는 화석연료이다.
탄소 기반의 화석연료는 연소 시 태생적으로 이산화탄소를 발생시킨다. 급격한 인구증가와 산업 발전으로 인류의 에너지 소비는 늘어나 이로 인한 다량의 이산화탄소 방출은 지구가 자생적으로 흡수할 수 있는 양을 넘어서고 말았다. 대기 중에 누적 되고 있는 이산화탄소는 지구온난화를 심화 시켜 전 세계적으로 기후변화를 야기하고 미세먼지, 홍수, 태풍, 무더위, 혹한 등 많은 자연재해를 초래하고 있다. 이런 기후변화는 이제 겨우 시작이라는 것이 과학자들의 공통된 의견이고 국제사회에서도 급격한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지구의 기온 상승을 섭씨 1.5도 이내로 유지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누구나 예상하듯이 해결 방법은 간단하다. 화석연료를 사용하지 않으면 된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이산화탄소 방출량도 따라서 줄어들게 된다. 한국 정부에서 2050년까지 순탄소 배출을 Zero로 만들겠다는 야심찬 계획이 탄소 중립 선언이다. 즉, 탄소를 배출하지 않거나 혹은 배출된 탄소는 모두 포집하여 대기 중으로 내보내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석탄 발전이 에너지원에서 사라져야 하고 신재생에너지 위주의 에너지 정책이 강력하게 추진되어야 가능하다. 즉, 에너지전환 정책이 계획대로 추진되어야 가능하다. 2050년이 30년 뒤라고 먼 훗날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지난 정부에서 국제적으로 약속했던 것을 지키지 못했던 사실과 그때보다 현재의 탄소 방출량이 훨씬 증가한 현재의 시점을 고려하면 이번 역시 구호에 그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의구심이 든다. 실천 가능한 목표와 실행계획이 뒤따르지 않는 계획은 그야말로 공염불이 될 공산이 크다. 탈탄소화 사회로 가기 위해서는 우리의 산업구조와 이에 따른 에너지원 구성이 획기적으로 개선되어야 한다. 이는 에너지원에 대한 국민적 설득과 합의가 전제되어야 성공할 수 있다.
탈탄소 사회란 결국 고탄소 에너지로부터 저탄소 에너지를 거쳐 궁극적으로 무탄소 에너지로의 전환을 의미할 수 있다. 석탄, 석유, 천연가스와 같은 화석연료는 탄소와 수소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탄화수소 에너지원이라고 부른다. 화석연료를 연소하여 에너지를 만들 때는 반드시 이산화탄소가 방출될 수밖에 없다. 탄소를 많이 포함할수록 이산화탄소 방출량이 많아지는데 석탄의 이산화탄소 방출량을 100이라고 하면 석유는 80, 천연가스 60 정도를 방출하기 때문에 동일한 화석연료 중에서도 석탄사용을 줄이고 이를 천연가스로 대체하면 이산화탄소 방출을 줄일 수 있는 저탄소 정책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많은 전문가들이 당분간은 천연가스가 에너지전환을 위한 가교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2. 탈탄소의 종착역은 수소에너지인가?
에너지를 생산할 때 이산화탄소를 방출하지 않는 무탄소 에너지원은 무엇이 있을까? 현재 상태에서는 원자력, 재생에너지, 수소에너지가 이 범주에 해당된다. 이런 유형의 에너지원은 저탄소를 넘어 전혀 이산화탄소 방출이 없어 기후변화시대에 적합한 에너지원이다. 그러나 원자력 발전은 에너지 생산 후 발생되는 핵폐기물을 보관하고 처리하는데 적합한 장소도 부족하고, 또한 오랜 시간이 걸려 후손들에게 대대로 큰 부담을 준다는 점과 지진과 같은 자연재해 발생 시 원자력 발전소의 안전성 문제로 각 나라마다 에너지원 확보 현황에 따라 호불호가 분명하게 나누어진다.
결국, 기후환경 문제와 안전 문제가 없는 태양광, 풍력과 같은 재생에너지와 수소에너지가 바람직한 미래 에너지원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그러나 재생에너지는 에너지 밀도가 낮아 넓은 생산설비 면적이 필요하고 기후에 따라 일정 기간과 하루 중에도 일정 시간에만 에너지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에너지를 저장하여 필요할 때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저장장치가 함께 연계되어야 한다. 전기를 많이 만든다고 해도 사용하지 않고 남는 전기는 저장하지 않으면 사라지기 때문이다.
한국의 에너지전환의 가능성과 현실을 알아보려면 에너지원의 구성을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 2019년 말 기준으로 석유 43%, 석탄 28%, 가스 16%, 원자력 11%, 재생에너지 2%로 구성되어 있다. 화석연료가 전체 에너지원의 87%를 차지하고 있고 아직도 재생에너지 사용량은 미미하다. 전력생산에 사용되는 발전원은 석탄 40%, 천연가스 26%, 원자력 25%, 신재생 5%이다. 현재는 전력생산의 70% 가까이를 화석연료로부터 얻고 있고 현 정부의 탈원전과 탈석탄 기조를 반영하면 65%의 전력 생산량이 우리의 에너지믹스에서 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에너지원 구성을 고려하면 현실적으로 이산화탄소를 줄이는 방법은 석유, 석탄, 가스의 소비량을 줄이고 재생에너지를 늘리는 길밖에 없다. 이렇게 간단한 해결책이 있는데 왜 이산화탄소 배출은 지속적으로 늘어날까? 이유는 간단하다. 경제성 때문이다. 에너지원별로 생산가격이 다르기 때문이다. 2018년 기준으로 킬로와트(kWh)당 발전비용은 원자력 60원, 석탄 85원, LNG 120원, 신재생 170원 정도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가격이 싼 원자력과 석탄 발전의 비중이 높을 수밖에 없다. 악화되고 있는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경제성만 고려한 발전비용을 기후변화와 환경 비용을 추가한 환경 급전(給電)으로 변경해야 에너지원의 구성이 바뀌고 이에 따라 이산화탄소 배출이 줄어들 수 있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에너지가 어디에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를 알면 에너지전환이 얼마나 효과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을지 가늠할 수 있다. 한국은 2018년 기준으로 살펴보면 제조업 44%, 운송 23%, 주거 16%, 상업 15% 순으로 에너지가 사용되고 있다. 이 중에 운송 분야를 제외하면 대부분 전기에너지를 사용하는 것이 가능하며 사용되는 에너지의 약 40%가 전기의 형태로 사용되고 있다. 에너지의 전력화는 지속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운송 분야는 아직도 석유 기반의 내연기관 자동차가 주류를 이루고 있지만, 전기차와 수소차의 등장으로 운송 분야의 변화가 세계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석유는 현재 내연기관 자동차의 연료로 대부분 사용되고 있으나, 전기차와 수소차의 등장으로 인해 연료로서의 역할이 축소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 탈석유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전기차에 사용되는 전기는 여전히 60% 이상이 화석연료로부터 나오고 있고 또한 수소전지차에 필요한 수소는 94% 이상이 천연가스, 석유, 석탄과 같은 화석연료로부터 생산되고 있다. 생산되는 수소의 90% 이상은 화학 및 정유 분야에서 사용되고 있어 본격적인 수소 시대가 오더라도 수소를 대량 생산하는 친환경 방법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3. 큰 그림에서 수소에너지 바라보기
수소에너지는 에너지원으로서 독특한 특징을 갖고 있다. 가장 큰 장점은 사용 시 이산화탄소 방출이 없다는 점이다. 또 다른 장점은 태양광이나 풍력과 같이 전기를 만들 수도 있고 또한 자동차에 주입하는 휘발유처럼 수소를 연료로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수소를 대량 생산하기 위해서는 화석연료를 사용하기 때문에 이산화탄소가 방출될 수밖에 없다. 물을 전기 분해해서 수소를 생산하는 수전해 방법은 생산되는 수소에너지보다 생산을 위해 주입되는 전기에너지가 많이 필요하다는 한계가 있다. 즉 이산화탄소 배출 없는 수소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값싼 전기가 확보될 때 가능한 이야기다. 생산된 수소는 가스 상태이기 때문에 저장과 운반이 어렵다. 국내에서 생산하면 천연가스처럼 파이프라인을 이용하여 소비지까지 운반할 수 있지만, 해외에서 들여올 때는 부피를 줄이기 위해 섭씨 영하 262도까지 냉각을 해야 하며, 이는 LNG 냉각온도인 영하 162도보다도 훨씬 낮다. 즉, 비용이 많이 든다는 것이다. 운반과 저장을 위해 수소를 다른 물질에 흡착시키거나 다른 물질로 전환하여 저장한 후 필요할 시 다시 수소로 추출하는 다양한 연구들이 시도되고 있다.
수소에너지는 정말 녹색에너지일까? 수소에너지는 어떤 방식으로 수소를 생산하는지에 따라 그 색깔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에너지를 생산할 때 탄소배출이 전혀 없는 수소는 어떻게 생산할까? 수소는 우주의 75%를 차지할 만큼 흔한 원소로 알려져있지만 천연가스처럼 분리되어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대부분 화합물로 존재한다. 이는 수소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물이나 석유, 가스 등 수소를 포함하고 있는 탄화수소와 같은 화합물로부터 분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화합물은 그냥 공짜로 분리되지 않기 때문에 분리하려면 반드시 많은 양의 에너지가 필요하다. 현재 수소 생산의 94% 이상은 화석연료로부터 고온의 수증기를 이용하여 추출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이산화탄소를 방출하게 된다. 이렇게 생산되는 수소를 회색(Grey) 수소라고 부른다. 이때 방출되는 이산화탄소를 포집해서 다시 격리시키는 시스템(CCS, Carbon Capture and Storage)까지 포함하면 이를 청색(Blue) 수소라고 부른다. 한편 물을 전기분해하여 수소를 얻으면 이를 녹색(Green) 수소라고 부르며 수소에너지가 진정한 녹색에너지가 되려면 물을 전기분해하여 얻어야 하는데 문제는 생산 비용이 비싸다는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일부에서는 원자력으로부터 값싼 전력을 생산하고 이를 수소 생산에 활용하자는 의견도 있다.
현시점에서는 화석연료로부터 수소를 생산하는 것이 가장 저렴하다. 물을 전기 분해해서 수소를 생산할 경우 전기분해에 사용되는 에너지가 생산된 수소로부터 얻는 에너지보다 더 많다는 것이다. 즉, 남아도는 여유 전기를 이용할 때만 수전해에 의한 수소생산이 의미가 있다는 것을 뜻한다. 신재생에너지에서 생산되는 시간과 사용하는 시간이 다르기 때문에 에너지 저장장치가 필수적인데 신재생에너지를 활용해 수소를 생산한다는 것은 에너지 저장장치의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현재와 미래의 신재생에너지 발전량을 고려하면 모든 수소 생산이 녹색 수소로 가능할지는 불확실성이 크다. 당분간은 달성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러기에 최근에는 석유회사들이 석유 가스를 활용하여 수소를 생산하고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를 포집하여 다시 지하 유전에 격리시키는 방법의 청색 수소 생산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한국은 어떤 색깔의 수소로 수소 시대를 준비하고 대비해야 할까? 녹색 수소 생산을 위해서는 충분한 재생에너지가 확보되어야 하는데 협소한 국토에서 가능할지 불확실하다. 청색 수소 생산을 위해서는 충분한 화석연료와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를 저장할 충분한 지하저장 장소 확보가 필요한데 아직은 탐색단계인 상황이다. 가능성이 높은 것은 아마도 회색 수소 생산일 것이다. 그러나 회색 수소조차 석유와 천연가스를 수입해야 하므로 경제성 측면에서 산유국과 비교하면 불리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한국의 에너지 현실을 고려하여 실행 가능한 현명한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4. 나가며
에너지는 인류 생존의 필수적 요소이다. 지속 가능한 사회를 위해서는 지속가능한 에너지원의 확보가 필수적이다. 지속 가능한 에너지원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신재생 및 수소에너지의 확보가 중요할 것이다. 수소에너지가 전체에너지 중에 차지할 수 있는 분야와 비중은 어떻게 될까 생각해보아야 한다. 한국에서 이산화탄소 배출의 60%가량은 주력산업인 철강, 시멘트, 석유화학 분야에서 나오고 있다. 수출로 국가 경제를 지탱하는 우리는 유럽과 북미 선진국의 산업 구조와는 다르다. 탄소 기반의 산업을 저탄소 기반으로 전환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기후환경변화 대응이 실천 가능하도록 값싼 에너지가 아닌 “정의로운 에너지 가격”이 선결되어야 한다.
한국의 에너지전환 정책의 핵심인 탈석탄과 탈원전의 방향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바람직하다. 눈앞에 다가온 기후환경 변화시대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에너지와 특히 화석연료의 사용량을 줄이고 한편으로는 방출되는 이산화탄소를 포집·저장하면서 신재생에너지와 수소에너지를 적극적으로 늘려가는 다양한 방법이 오케스트라처럼 함께 동시다발적으로 실시되어야 한다. 하나의 에너지원이 모든 에너지를 책임질 수 있는 완벽한 에너지원은 아직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기후, 안전, 경제성을 고려한 조화로운 에너지전환이 필요할 뿐이다. 좀 더 완벽한 미래 에너지가 등장할 때까지 시간을 벌어주는 역할이 에너지전환 정책이다.
코로나 방역은 2주 후에 결과가 나오지만 에너지 문제는 20년 후에 정책의 효과가 나타난다. 2050년 탄소 중립은 향후 10년의 탈탄소 정책의 실천 정도에 달려있다.
신현돈 교수 - 인하대학교 에너지자원공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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