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020년 국제유가 동향
2020년 코로나 19 바이러스 확산과 함께, 석유 시장은 이전에 경험해 보지 못했던 드라마틱한 한 해를 보냈다. 전염력이 강한 코로나 19 바이러스의 급속한 확산에 따른 사회적 거리 두기로 재택근무와 온라인 학습이 일상화되는 등 생활방식에 큰 변화가 생겼다. 전 세계적으로 이동이 제한됨에 따라 운송용 연료 수요가 급감하였으며, 각국의 경제 및 산업활동 침체로 산업용 연료 수요 역시 감소하였다.
이에 따라 유가가 2020년 초부터 급락세를 보이고, 시장의 예상과 달리 3월 OPEC+ 산유국의 감산 합의가 결렬된 이후 오히려 사우디와 러시아 양국의 증산을 통한 유가 전쟁 양상으로 번지며 유가 하락세는 더욱 심화되었다. 석유 수요 급감과 산유국의 증산으로 인해 남아도는 석유 재고를 저장할 공간이 부족해지면서 5월물 WTI유 가격은 만기를 하루 앞두고 급기야 배럴당 -37달러라는 사상 초유의 마이너스 유가를 기록하였으며, 두바이유도 4월 말 배럴당 10달러 초반대까지 하락(4.22일, $13.52/bbl)하였다.
이후 OPEC+는 4월 중순 970만 b/d 규모의 역대급 감산 합의에 도달하였고, 미국 원유 생산량도 저유가 영향으로 4월 이후 감소세로 전환되었다. 중국을 중심으로 세계 각국에서 봉쇄를 완화하는 조치를 취함에 따라 원유 수요증가 기대감 등으로 유가는 4월 말 이후 상승하여 6월경 배럴당 40달러 초반대를 회복하였다. 하지만 하반기 코로나 19 재확산 우려에 따른 원유 수요회복 불확실성 등으로 배럴당 40달러 초반 수준에서 몇 달간 보합세를 유지하다가, 가을에 2차 확산이 현실화되면서 배럴당 40달러 선이 재차 붕괴되며 하락했다.
하반기 유럽, 미국 등지에서의 코로나 19 재확산세와 봉쇄조치에도 불구하고, 2020년 11월 중순 이후 화이자, 모더나 등 글로벌 제약회사들의 코로나 19 백신 개발 성공과 긴급 사용승인 및 접종 개시 소식에 따라 원유 수요 회복 기대감이 확대되고 있다. 더불어 12월 말 미국의 9,000억 달러에 달하는 경기 부양책 합의로 인해 더욱 풍부해진 유동성과 최근 미국 원유재고가 4주 연속 감소세를 보이는 등 10월 말 이후 유가는 상승세를 지속하고 있다. 2020년 두바이유 기준 평균 유가는 배럴당 42.21달러를 기록하였고, 2021년 1월 중순 현재 유가는 배럴당 50달러 중반대를 기록하고 있다.
2020년 유가는 코로나 19로 인해 다른 어떤 해보다도 수요와 공급이라는 펀더멘탈 요인에 의해 좌우된 한 해였다. 백신 개발 및 접종 개시에도 불구하고 코로나 19의 확산 지속세와 변종 바이러스 출현 등으로 원유 수요 회복에 대한 불확실성이 여전히 남아있어 2021년 유가도 수급 요인에 의해 가장 큰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바이든 행정부 출범으로 예상되는 정책 변화, 즉 친환경에너지 정책 추진, 대이란 제재 완화와 미·중갈등 향방 등이 글로벌 석유 시장 경쟁 구도와 유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2021년 유가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인들을 수요와 공급을 중심으로 살펴보고, 2021년 유가 향방에 대해 전망해보고자 한다.
2. 2021년 석유시장 전망
가. 수요
IMF는 2020년 세계 경제성장률이 전년 대비 4.4% 하락하고, 2021년은 2020년 대비 5.2% 상승할 것으로 전망하였다(발표 시기:2020년 10월). 경제성장 회복과 함께 석유 수요도 큰 폭으로 증가할 전망이다. 2020년 원유 수요는 코로나 19 확산에 따른 글로벌 경제활동 중단의 영향으로 역사적으로 가장 큰 폭의 하락률을 기록하여 전년 대비 880만 b/d가 감소한 것으로 추정된다(IEA). 2021년 석유 수요는 코로나 19 백신 접종 기대감과 2020년 기저효과 등으로 큰 폭으로 증가할 것으로 기대되며, IEA는 전년대비 약 570만 b/d가 증가할 것으로 전망하였다.
2020년 하반기 세계 석유 수요의 회복은 전적으로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 그 외 신흥국, 선진국에서도 사회적 거리 두기의 완화, 경제·산업활동 재개 등으로 휘발유, 경유 등을 중심으로 석유 수요가 점차 회복할 것으로 기대되나 아직까지 뚜렷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지는 않다. 특히 백신 접종이 널리 보급되기 전까지는 국가 간 이동봉쇄와 해외여행 제한이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아 항공유 수요의 회복세는 더딜 전망이다. 다만 미국 바이든 대통령 당선자가 코로나 19 회복을 위한 9천억 달러의 기존 경기부양책에 이어 20일 취임 이후 1인당 2천 달러(기존 600달러) 현금 지급 등을 주장해 왔고, 미국 상·하원을 모두 장악하는 ‘블루웨이브’ 실현으로 추가적인 경기 부양 예산편성 가능성이 더욱 높아진 점은 석유 수요 회복세를 기대하게 하는 요인이다.
석유 수요 회복세는 기본적으로 코로나 19 백신이 효과가 있고 접종이 널리 확산되어, 집단면역체계를 구축함에 따라 코로나 19 이전의 일상으로 복귀한다는 전제하에서 가능하다. 하지만 코로나 19 백신은 여전히 효능에 대한 검증이 더 필요하고 공급물량이나 부작용 등에 있어서도 불확실성이 남아있다. 또한 백신 접종 개시에도 불구하고 예상보다 접종 속도가 더디고, 집단면역체계가 이루어지기까지는 몇 개월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 전염력이 더 강한 변종 바이러스가 영국, 남아공, 호주 등지에서 발견되는 등 사회적 거리 두기가 당분간은 더 지속되어야 할 것으로 예상되는바 아직 석유수요 회복에 대해 낙관하기만은 이르다.
현재 세계 석유 수요의 회복세를 견인하고 있는 중국은 정부의 강력한 경기 부양 정책에 따라 올해에도 견고한 경기 회복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나, 작년 유가 폭락 당시 대량의 재고가 증가하여 올해 원유수입 증가 폭이 둔화될 가능성이 존재한다. 중국 내 전기자동차 시장의 성장세가 가속화되고 있다는 점도 석유 수요 회복세 둔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중국은 작년 11월 중순 국무원 상무 회의에서 자동차 구매 보조금을 확정하였는데, 전기자동차 보조금이 2022년까지 연장되어 당분간 전기자동차 판매 증가세가 이어질 전망이다.
코로나 19 확산 이전부터 중국뿐 아니라 이미 전 세계적으로 에너지 전환 움직임이 있었으며, 코로나 19로 인한 저유가 환경에서 경쟁력이 약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전기차 등 친환경에너지에 대한 수요와 투자 증가세가 지속되는 점도 석유 수요 증가를 제한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특히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인 바이든이 당선됨에 따라 미국도 전 세계적인 에너지 전환 움직임에 적극 동참하게 되어 그 움직임이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에너지‧환경 정책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상반된 親환경 정책을 표방하며, 환경과 기후변화에 우선순위를 두고 경제, 인프라, 수송, 외교 등의 결정을 내릴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 당선자는 에너지를 환경과 결부 시켜 ‘청정에너지혁명(Clean Energy Revolution)’을 에너지 분야 정책 비전으로 제시하였는데, 2035년까지 수송 분야의 탄소배출 제로 달성 등을 주요 내용으로 삼고 있다. 또한 ‘파리기후협약’에 재가입하고, 다른 국가에 탄소배출의 추가적 저감을 독려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한 바 있다.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집행 장치를 마련하고 청정에너지 R&D 투자 및 친환경 에너지 세제 혜택을 확대하는 한편, 향후 4년간 청정에너지 인프라에 총 2조 달러를 투자한다는 방침이다. 이에 따라 재생 에너지와 전기차 등 친환경 산업은 성장하겠지만 향후 석유 수요 전망에는 긍정적이지 않다. 물론 전기차 수요 확대를 위한 인프라 확충 등에 오랜 시간이 소요되어 2021년 운송용 석유 수요에 당장 큰 영향을 주지는 않겠지만 중장기적인 영향력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나. 공급
OPEC+ 산유국은 작년 4월 감산 회의에서 2020년 5~7월까지 970만 b/d, 8~12월까지 770만 b/d를 감산하고, 2021년 1월부터 감산 규모를 580만 b/d로 축소하기로 합의하였다. 하지만 지난 12월 회의에서 감산 규모를 매월 50만 b/d 이내에서 축소하기로 하였고, 올해 1월 초 개최된 OPEC+ 회의에서는 난항을 거친 끝에 2월분 원유 생산을 현재 대비 소폭 증산하는 데에 합의하였다. 즉, 감산에 반대하던 러시아와 카자흐스탄의 7.5만 b/d 증산으로 감산 규모는 1월 720만 b/d에서 2월 712.5만 b/d, 3월 705만 b/d로 축소되었다.
거의 동결과 다름없는 감산합의 직후 사우디는 2~3월 두 달간 총 100만 b/d 생산량을 감축하겠다는 발표를 하며 유가 급등을 초래하였다. 사우디의 자발적인 감산은 영국의 3차 봉쇄 재개를 비롯하여 독일, 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이 봉쇄 기간 연장 및 강화를 검토하고 있는 등 아직까지 세계 석유 수요 회복의 불확실성이 잔존하고 있음을 반영한 조치로 해석된다. 향후에도 사우디 등 OPEC+는 석유 시장의 수급 균형을 위해 시장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감산 정책을 운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미국은 유가 급락의 영향으로 2020년 석유·가스 시추기 수가 급감하여 2009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하고, 손익분기 유가 수준이 높은 셰일 생산 지역을 중심으로 원유 생산량도 크게 감소하여 2020년 초 1,310만 b/d를 기록했던 원유 생산량은 하반기 1,000만 b/d 선이 붕괴되기도 하였다. 10월 말 이후의 유가 상승 영향으로 석유 시추기 수 및 원유 생산량이 소폭 상승으로 전환되었으나, 최근 몇 년간에 비해 여전히 낮은 수준에 있다.
2020년 하반기 중국 중심의 수요회복과 함께 OPEC+의 감산 실행, 미국 등 비OPEC 국가의 원유 생산량 감소 등에 힘입어 2020년 3분기 이후 글로벌 석유 시장은 수요 초과로 전환되었다. 다만 리비아가 2020년 1월 내전 상황 악화로 인해 생산량이 2019년 12월 114만 b/d에서 2020년 9월 14만 b/d로 급감하였다가 정정 불안이 완화되면서 하반기 원유 생산량이 빠르게 회복되어 2021년 초에는 100만 b/d 수준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고, 미국 원유생산량도 증가세로 전환되고 있어 2021년 2분기경 국제 석유 시장은 점차 수급 균형에 접근할 것으로 전망된다(IEA).
2020년 유가 급락 및 저유가는 손익분기 유가 수준이 높은 미국 셰일 기업들의 수익성 악화와 신용등급 하락으로 이어져 북미지역 E&P 파산기업 수가 2016년 이후 최대치를 기록하였다. 배럴당 50달러 미만의 저유가가 지속될 경우 셰일 기업의 파산과 합병이 더욱 증가할 수 있다. 더불어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의 취임 이후 셰일 산업에 대한 규제 강화에 따라 생산비용 증가가 예상되며 이로 인해 미국 셰일 산업이 더욱 위축되고, 구조조정 가속화로 석유공급이 감소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2020년 석유·가스 상류 부문의 투자는 유가 급락으로 인해 크게 축소되었다. IEA에 의하면 2020년 세계 석유·가스 상류 부문 투자가 전년 대비 3분의 1 정도 감소한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지난 10년간 석유공급 증가분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미국 셰일오일 부문의 투자액도 2020년 450억 달러로 2018~2019년 투자액 1,000억 달러의 절반을 밑도는 수준이며, 2030년까지 연간 미국 셰일오일 산업의 투자액은 850억 달러로 코로나 19 이전 수준을 밑돌 전망이다(IEA). 셰일 부문 뿐 아니라 전통 석유·가스 상류 부문의 누적된 투자 감축으로 인해 향후 석유 수요가 코로나 19 이전 수준으로 회복될 경우 구조적인 공급 부족 상황에 놓이게 되고 잠재적인 유가 급등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세계 석유 공급은 최근 리비아의 빠른 원유 생산량 회복세와 함께 바이든 행정부의 이란, 베네수엘라에 대한 경제제재 완화 시 양국에서 약 250만 b/d 상당의 원유공급 증가가 가능한바, 이러한 풍부한 공급 여력이 OPEC+의 감산 노력을 무력화시킬 가능성도 제기된다. 현재 이란과 베네수엘라는 미국의 경제제재 영향으로 원유 생산량이 큰 폭으로 감소한 상황이다. 바이든 당선자는 취임 이후 이란이 핵 협정을 준수하는 조건으로 핵 협상을 재개하고, 트럼프 대통령이 탈퇴했던 포괄적 공동행동계획(JCPOA: Joint Comprehensive Plan of Action)을 복원할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제재를 해제한다 하더라도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에 가한 제재들을 해제하는 과정에서 다소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어 2021년 당장 이란의 석유 수출이 정상화되기는 어려울 수 있다. 베네수엘라에 대해서는 현 집권 세력의 와해 시까지 경제 제재를 유지한다는 공화당의 입장과 유사할 것으로 보이나,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제재 완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하고 석유 수출을 부분적으로 허용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물론 제재 완화에도 불구하고 정권교체나 국영 석유 기업 PDVSA의 부채탕감, 해외기업의 투자 없이 베네수엘라의 경제난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아 석유 수출 증가 폭은 제한될 전망이다.
3. 2021년 유가 전망
2021년 유가는 코로나 19 백신 접종, 각국의 경기부양책 등에 따른 석유 수요 증가 기대감과 2020년 기저효과 등으로 전년 대비 상승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전년 대비 OPEC+ 감산 규모 축소와 이란, 베네수엘라 등의 잠재 공급 여력 등이 유가 상승폭을 제한할 가능성도 상존한다. 또한 OECD 상업용 원유재고가 2020년 7월 이후 지속적인 감소세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예년 대비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도 유가 상승을 제약하는 요인이다.
유럽, 미국 등지에서 코로나 19 백신에 대한 긴급 승인과 접종을 개시했지만, 백신의 일반적 보급 시기는 올해 하반기경이 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석유 수요 회복이 상반기보다 하반기에 강하게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해외 유가 전망기관들도 2021년 유가(브렌트유 기준)가 대체로 상반기보다 하반기에 높아지는 점진적인 우상향을 예상하고 있으며, 2020년 평균 유가 대비 배럴당 2.5달러에서 많게는 12달러 이상 상승한 45~56달러 범위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사우디 등 OPEC+가 시장 상황에 따라 공급량을 탄력적으로 조절할 것으로 예상되나 미국 셰일오일 생산이 정상화될 수 있는 배럴당 60달러 이상의 유가는 희망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으며 주로 코로나 19 확산세에 따른 수요 전망에 대응하여 공급량을 조절하고 수급 균형을 맞추는 데에 주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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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동원 선임연구원 -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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