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해협 봉쇄와 석유수급 위기 대응

석유와에너지 -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이란 핵합의 파기와 제재복원으로 촉발된 미국과 이란의 갈등이 또 다시 세계경제에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후보시절부터 이란 핵합의를 최악의 거래 중 하나(one of the worst deals I have ever seen)로 비난하였다. 당선 전부터 예고했던 대로, 지난 5월 8일 핵합의를 탈퇴함과 동시에 이란에 대한 제재 재개에 착수하였고, 이란은 미국의 제재 재개에 강력히 반발, 또 다시 호르무즈 해협 봉쇄 카드를 꺼내들었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 : Energy Information Administration)자료에 따르면 호르무즈 해협은 중동의 산유국에서 생산된 원가 수출되는 주요 수송로로서 일평균 물동량이 1,850만 배럴에 달하며 글로벌 원유 해상물량의 3분의 1이 지나가는 세계 1위의 해상원유수송로이다. 중동의 산유국이 해상으로 원유를 수출하려면 반드시 이곳을 지나야만 하는 만큼 에너지 안보 상 지정학적으로 중요하고 민감한 지역이다. 그렇다면 이란은 실제로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할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만약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었을 경우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과 우리는 어떤 태세를 갖추고 있을까?
먼저, 이란은 과거에도 국제사회의 제재가 있을 때마다 봉쇄카드를 사용하였다. 이번 핵합의 폐기 이후에도 이란 혁명수비대 사령관은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당신이 전쟁을 시작할 진 몰라도 끝내는 건 우리가 될 것이다’고 경고했으며, 곧바로 해군과 공군의 합동군사훈련을 실시하였다. 국제사회에서는 해협 봉쇄가 실현된 적이 없으며 이번에도 가능성이 낮다는 분석이 다수를 이루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와 석유수급 위기 대응 | GSC IL MH iran hormuz strait blockade 2018 11 20181126 01 1 1
국제법상 이란은 1958년에 제정된 무해통항권(Innocent Passage)에 가입하고 있어 타국의 상선이 평화와 안전에 문제가 없는 한 자국의 영해를 통과하는 항해를 자유를 보장하도록 되어 있다. 대외관계 면에서는 이란 무역의 90%는 해상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란산 원유의 85%가 아시아로 향하여, 봉쇄시 아시아 국가들의 반발을 우려해야 하는 상황이다. 국내 정치면에서도 국내 실업률과 인플레이션이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교역위축은 최고지도자 카메네이(Khamenei)를 비롯한 보수세력의 정치적 입지의 약화를 불러올 수 있다. 또한 미 5함대 사령부가 페르시아만의 바레인에 위치, 이란 해군전력의 3배 이상의 우위를 점하고 있어 군사적인 힘의 우위를 고려하면, 해협 봉쇄 실현 가능성은 더욱 낮게 점쳐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르무즈 해협봉쇄는 언급 그 자체만으로도 국제석유시장의 불안요소로 작용하고 있으며, 중동산 원유 의존도가 높은 우리로서는 사태의 추이를 낙관할 수만은 없다.
중국을 비롯한 우방의 적극적인 지지가 없고 이란내 온건파로 분류되는 로하니(Rouhani) 대통령의 입지가 좁아져 혁명수비대 등 강경파의 목소리가 커지면 해협봉쇄라는 극단적인 카드를 꺼낼 수도 있다. 이란이 현재 미국의 제재에 맞서 선택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공세적 카드’ 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 뿐이라는 점 역시 상황을 예단하기 힘들 게 하고 있다. 실제로 이란은 이미 해협 중간의 섬 3곳에 해상공격용 대포와 미사일을 배치하였으며, 봉쇄시 공격대상은 군함이 아닌 일반유조선이라고 한다. 중동 산유국 중 우회가능한 인프라를 갖춘 국가가 사우디와 UAE가 유일한 상황에서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원유의 약 80%를 차지하는 아시아 국가들은 해협봉쇄로 가장 먼저 타격을 입게 될 것이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와 석유수급 위기 대응 | GSC IL MH iran hormuz strait blockade 2018 11 20181126 02 1
안전한 원유수송로 확보의 일환으로 중국은 중동, 유럽과 아프리카를 연결하는 ‘일대일로(一帶一路)’ 정책을 통해 아시아 각국의 항만개발에 참여하고 있으며, 미국의 해양봉쇄가능성에 대비하여 인도양 주변의 국가를 연결하는 ‘진주목걸이’ 전략으로 진출 거점을 확보하고 있다. 일본 역시 공적개발원조(ODA)를 통해 캄보디아, 스리랑카 등의 항만개발을 지원하며 중동산 원유와 유럽을 오가는 컨테이너선의 안전한 수송로를 확보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중동산 원유수입 비중이 80%에 육박하는데, 이 중 99%를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공급받고 있으며 사우디와 UAE가 보유하고 있는 우회 송유관을 통해 홍해와 지중해를 경유하는 대체 수송로를 활용한다고 하더라도 호르무즈 해협 물동량의 21%에 불과하다. 운임 측면에서도 해협 봉쇄시 현재 운임보다 10~15% 상승할 것으로 전망되며, 우회항로로 유조선이 몰릴 경우 항만 체선이 불가피하여 공급차질을 근본적으로 해소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우리로서는 해협 봉쇄는 국가차원의 석유안보 위기로서 전면적인 대응이 요구되며, 위기의 전개양상과 지속기간에 따라 다각적인 방안이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 공급측면에서는 비축유의 방출을 통해 일시적인 가격폭등을 막고 수요측면에서는 국가적인 석유소비 제한과 사재기 근절, 수출 감축 등을 시행하여 비축유 방출에 따른 가격안정 효과를 높이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와 함께 석유공사가 외국의 석유트레이딩 회사 및 산유국의 국영석유회사로부터 유치하여 비축하고 있는 국제공동비축 물량과 해외보유 광구에서 생산된 원유에 대한 우선구매권을 행사하는 방안을 병행 추진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가장 직접적이고 효과적인 대응방안은 비축유의 방출이라 할 수 있다. 무작정 가격을 통제하고 소비를 억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비축유 방출을 통해 공급충격에 의한 단기간의 가격폭등을 막고 시장의 불안 심리를 잠재울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 사업법’에 따라 비상시 석유수급 안정과 IEA 권고에 따른 90일분의 비축유 확보를 위해 정부가 60일분을, 민간이 30일분의 비축유를 확보토록 하고 있다. 먼저 70년대 두 차례의 오일쇼크 이후 우리 정부는 ‘80년부터 대내외 석유수급 불안에 대비한 전략석유비축을 추진해 왔으며 4차에 걸친 정부석유비축계획 사업에 따라 총 9,580만 배럴의 전략비축유를 보유하게 되었다. 이 물량은 우리나라 전체 일평균소비량인 257만 배럴 대비 34일 동안 사용가능한 물량이며, 국제에너지기구(IEA) 권고기준에 따른 일순수입량 기준을 적용할 경우에는 94일까지 사용할 수 있는 물량이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와 석유수급 위기 대응 | GSC IL MH iran hormuz strait blockade 2018 11 20181126 03 1
이란 미국, 호르무즈 해협, 호르무즈 해협 봉쇄, 석유 수송이와 함께 정부의 전략비축유와는 별개로 ’93년 도입된 민간비축의무제도에 따라 민간의 석유정제업자, LPG 수출업자 및 판매업자로 하여금 연간일평균내수판매량의 15일에서 40일에 해당하는 비축유를 의무적으로 보유하도록 하고 있다. 현재 민간부문에서 보유하고 있는 비축량은 총 1억 6,000만 배럴로 의무비축량 3,380만 배럴의 5배에 해당하며, 국제에너지기구(IEA) 권고기준으로는 92일분에 해당하는 물량이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가 석유수급 위기 대응을 위해 보유하고 있는 비축유는 정부와 민간을 합해 총 2억 340만 배럴에 달하며, 이는 우리나라 전체 소비량 기준으로는 70일, 국제에너지기구(IEA) 권고기준으로는 186일, 약 6개월에 해당하는 물량을 보유하고 있는 셈이다.

위기발생시 정부비축유 방출은 위기단계별 계획에 따라 결정되며, 전국 9개 석유비축기지를 통해 인근 정유사와 송유관으로 방출된다.
우리나라는 크게 네 차례에 걸쳐 총 1,229만 배럴의 전략비축유 방출을 시행한 바 있다. ‘91년 걸프전 당시 유가급등에 대비할 목적으로 정부지시에 따라 총 494만 배럴의 비축유를 방출한 것이 첫 비축유 방출이었다. 2차 방출은 ’05년 미국 허리케인 카트리나에 따른 수급차질 대비를 위해 IEA 공조차원에서 총 292만 배럴의 비축유를 방출하였다. 이후 같은 해 등유파동에 따른 민생안정을 위해 등유 98만 배럴을 방출하였으며, 가장 최근에는 ’11년 리비아사태에 따른 수급차질에 대비코자 347만 배럴의 비축유 방출을 실시하였다. 이 중 걸프전과 허리케인 카트리나 당시 국가간 공조에 의한 비축유 방출은 국제 석유시장가격 안정에 실제로 기여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총 3,750만 배럴의 비축유가 방출된 걸프전 당시에는 서부텍사스유(WTI) 가격이 방출 발표 3개월 후 31% 하락하였으며, 4,800만 배럴의 비축유를 방출한 미국 카트리나 피해 당시에는 방출 발표 3개월 후 17% 넘게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행스럽게도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는 실현된다고 하더라도 단기간에 그칠 것으로 전망되고 있으며, 일찍이 석유 위기를 경험한 우리나라는 비축부분에서 앞서나가 안정적 대응체계를 구축하여 정부와 민간이 보유하고 있는 비축유와 재고량으로 단기적인 공급차질에는 충분히 대비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중국, 일본 등 이웃 국가들과 협력을 통해 공급차질에 대한 위기를 기대하기 어려운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단순히 IEA 기준을 넘어 비축 관련 자원과 시설을 극대화할 필요가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대외전략과 이란 지도부의 대응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예측이 어려운 현 상황에서 우리나라의 석유공급 위기는 현재 지금 이 순간임을 인식하고 지속적이고 일관된 석유공급 확보체계를 구축하여야 할 것이다.
※본 콘텐츠는 대한석유협회보 <석유와 에너지>에 기고된 글에서 발췌하여 재구성한 것입니다.
※본 콘텐츠의 IP/콘텐츠 소유권은 대한석유협회에 있으며 Reproduction을 제한합니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와 석유수급 위기 대응 | profile 노용

노용 - 한국석유공사 비축관리팀 팀장

호르무즈 해협 봉쇄와 석유수급 위기 대응 | img ccl

GS칼텍스에 의해 작성된 본 콘텐츠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4.0 국제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으며, 대한석유협회의 저작물에 기반합니다.

GS칼텍스 뉴스레터 구독신청

에너지 산업 이슈, 석유 관련 기초 지식 등 다양한 콘텐츠를 보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