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혼재의 중동 질서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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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시대 중동 정책의 특징과 한계 : 이란 핵 합의 복원, 역내 민주주의 강조, 이스라엘-아랍 데탕트 지지

1. 바이든 시대 중동 정책의 특징과 한계 : 이란 핵 합의 복원, 역내 민주주의 강조, 이스라엘-아랍 데탕트 지지

2021년 1월 출범한 미국 바이든(Joe Biden) 행정부는 트럼프(Donald Trump) 대통령이 파기한 이란 핵 합의(Joint Comprehensive Plan of Action) 복원을 중동 정책의 핵심으로 삼을 것이다. 2015년 7월 주요 6개국(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과 독일)과 이란이 오바마(Barack Obama) 행정부 주도로 어렵게 다자 핵 협정을 체결하였으나, 2018년 5월 트럼프 대통령은 핵 협정에서 일방적으로 탈퇴했고 고강도 이란 제재를 부활 시켰다. 기존 핵 합의가 이란의 핵 개발뿐만 아니라 탄도미사일 개발과 역내 테러조직 지원을 막지 못한다는 이유에서였다. 국제사회의 반대가 거셌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국내 지지층 결속을 노리며 대통령 개인의 의지를 밀어붙였다.

그러나 바이든 행정부의 이란 핵 합의 복원 과정이 순조롭게 진행되지는 않을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대이란 최대 압박 정책으로 인해 이란 내부 권력 구도에서 미국과의 핵 합의를 지지한 온건 개혁파의 입지는 현저히 줄어들었고 강경 보수파의 장악력이 더욱 강고해졌기 때문이다. 이란 강경파의 이해관계는 제재 완화를 통한 이란의 정상 국가화가 아닌 반미 구호를 앞세운 이슬람 혁명의 역내 수출, 팽창주의 전략 확대와 연동되어 있다. 강경파의 이러한 이해관계 하에 이란 성직자 체제의 핵심 군부 혁명수비대는 레바논의 헤즈볼라, 이라크의 카타이브 헤즈볼라, 시리아의 친이란 시아파 민병대, 예멘의 후티 반군, 가자지구의 하마스를 역내 대리 조직으로 육성 지원하고 있다.

특히 2020년 1월 미국이 솔레이마니(Qasem Soleimani) 이란 혁명수비대 사령관을 이라크 바그다드 공항에서 드론으로 살해한 후 이란 내에선 강경 급진파가 득세했다. 당시 민생고 시위대 유혈 진압으로 인해 여론은 강경파에 불리하게 형성되고 있었으나 미국의 솔레이마니 제거 작전 이후 강경파의 상징인 솔레이마니 동정론이 부상했다. 이후 내부 권력투쟁에서 보혁갈등은 사라졌고 대신 혁명수비대 계열의 강경파와 성직자 중심의 원리주의파 간 보수권 경쟁이 자리 잡았다. 같은 해 2월 총선에서 군부 강경파가 성직자 그룹에 승리했고 혁명수비대는 내부 숙청작업을 끝낸 후 대미 강경 대응의 전열을 갖췄다.

2021년 1월 이란 강경파는 솔레이마니 사령관 사망 1주기에 맞춰 포르도 농축시설에서 20% 농도 우라늄 농축 재개를 선언했다. 이어 혁명수비대는 호르무즈 해협에서 환경오염을 이유로 한국 선박을 나포해 미국의 대이란 제재에 따른 한국의 원유 수출 대금 동결을 비난하며 한-이란 관계를 경색시켰다. 강경파는 이미 미국의 핵 합의 파기와 고강도 제재로 인한 이란의 금전적 피해 보상을 주장하고 나섰다. 바이든 행정부와의 핵 합의 복원 협상 테이블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한 강경파의 선제적 기 싸움이 이어지고 있다. 오바마 행정부 시기 이란에는 온건 개혁파 출신 대통령, 외교부 장관, 대도시 국회의원과 이들을 지지한 중산층 및 젊은 세대 유권자가 존재했지만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이란 권력층은 강경파 일색이다.
바인든 행정부 외교정책의 중점 지역, 인도-태평양
바이든 행정부의 이란 핵 합의 복원이 순조롭지 않을 것으로 전망되는 또 다른 이유는 신정부 외교정책의 중점 지역이 중동이 아닌 인도-태평양이기 때문이다. 바이든 행정부가 밑그림으로 삼는 오바마 행정부의 중동 정책 역시 ‘역외 균형(offshore balancing)’ 기조와 ‘뒤에서 이끄는(leading from behind)’ 방식을 택했고 대신 아시아 중시 전략에 집중했다. 이란 이슬람 공화국의 강경 보수파를 견제하기 위해 이란 핵 합의를 성사 시켜 온건 개혁파에 힘을 실어준 다음 나아가 역내 힘의 균형까지 이끌어낸다는 계산이었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쟁 참여로 인한 피로감과 여론 악화, 셰일 에너지 개발에 따른 중동 의존도 감소로 인해 중국 견제의 이해관계가 우선순위로 급부상했기 때문이다. 바이든 행정부 역시 중국 견제를 앞세운 인도-태평양 전략에 집중할 것이다. 따라서 새로운 미 행정부는 중동 내 미국의 적극적 역할을 지양할 것이고 이란과의 협상에 전력을 쏟지 못할 수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중동에서 발 빼기’를 선언하며 이란 핵 협정의 독단적 탈퇴, 급작스런 미군 철수와 우방 쿠르드 배신, 편파적 친이스라엘 행보, 대NATO 방위분담금 증액의 일방적 요구를 강행했다면 바이든 행정부는 대안을 제시해가며 단계적으로 ‘중동 떠나기’를 실행할 것이다.

다음으로 바이든 시대 중동 정책은 민주주의와 인권, 동맹 가치를 강조할 것이다. 터키와 이집트에 민주주의 퇴행 문제를 제기하고 사우디아라비아에 인권 개선과 예멘 내전 종식을 압박할 수 있다. 코로나 19 확산으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민주주의 약화가 진행되는 가운데 중동에서도 팬데믹의 혼란을 이용한 권위주의 강화 현상이 나타났다. 터키, 이집트, 이란의 권위주의 정권은 바이러스 확산 금지의 명목 아래 집회를 금지했고 긴급사태를 선포했으며 정적을 잡아들이고 언론사를 폐쇄했다. 2019년 알제리, 수단, 이라크, 이란, 레바논에서 거세게 일어났던 대규모 반정부 시위도 팬데믹 시기에 동력을 잃었다.

특히 터키의 민주주의 퇴행은 에르도안(Recep Tayyip Erdoğan) 대통령의 일인체제와 철권통치 강화로 인해 심각했다. 전 세계 민주주의 수준을 측정하는 프리덤 하우스(Freedom House)의 2020년 보고서에 따르면 터키의 민주주의 지수는 중동의 대표적 독재 국가인 알제리보다 낮았다. 한편 사우디는 바이든 정부에 최근 진행되는 사회 개방과 여권 신장 정책을 강조하고 예멘 내전에서 이란 지원의 후티 반군이 사우디 본토 미사일 공격을 멈추는 조건 하에 즉각적인 휴전 수락의 입장을 밝힐 수 있다.
2021년 혼재의 중동 질서 전망 | 20210218 01 03
감염병의 공포와 혼란이 지나간 포스트 코로나 19 시기 중동 권위주의 국가에서는 경제 위기로 인한 민생고와 불평등이 심화될 터이지만 정권에 사회 불만을 해소할 자원은 턱없이 부족할 것이다. 이때 최악의 시나리오는 사회 저항과 정권 탄압의 악순환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가의 실패를 틈타 ISIS와 같은 극단주의 테러조직이 공공 서비스를 제공하며 부활하는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폭력적 극단주의가 부활할 경우 동맹국과 함께 연합전선을 조직해 단호히 대응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오바마 행정부 시기와 비슷하게 역내 내전과 분쟁 개입은 자제하되 극단주의 테러에 대해서는 NATO 회원국, 중동 동맹·우방국과 함께 공동으로 격퇴전을 조직한다는 것이다.

한편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 행정부의 유산이지만 역내 갈등 해소에 기여한 2020년도 이스라엘-아랍 데탕트 성과를 지지할 것이다. 2020년 8월 이스라엘과 아랍에미리트(UAE)가 미국 중재로 아브라함 협정을 맺어 국교 정상화를 이뤘고 이후 바레인, 수단, 모로코도 이스라엘과 수교에 합의했다. 이스라엘과 UAE는 정보와 첨단기술, 코로나 19 백신 개발 등에 협력하기로 했고 이스라엘은 국제법상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인 요르단강 서안지구 합병 중단을 밝혔다. 아브라함 협정은 이스라엘-아랍 갈등의 핵심인 팔레스타인 문제를 우선 과제로 다루지 않지만, 역내 갈등 일변도의 오랜 관성을 깨는 외교적 성과로 평가된다.

10년 전 아랍의 봄 민주화 혁명이 도미노 현상을 일으키며 역내로 빠르게 확산됐을 때 UAE를 비롯한 걸프 산유왕정은 복지와 순응의 맞교환을 통해 민주화 요구를 회유했고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았다. 그런 산유왕정이 최근 여성 인재 등용, 보조금 폐지, 첨단산업 육성으로 석유 의존과 보수 이슬람 탈피 개혁을 실시해왔다. 코로나 19 팬데믹 시기 UAE와 걸프 산유왕정은 권위주의 시스템을 활용해 격리와 봉쇄를 일사불란하게 집행했고 대규모 추적 검사를 실시했으며 감염 관련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했다. 또 서남아 출신 이주 노동자에도 무료 검사를 실시하고 의료용품을 나눠주면서 높은 국가 역량에 기반한 방역 성공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이들 왕정은 나아가 외교 분야에서도 구시대적 민족주의에서 벗어나 이스라엘과 국교 정상화에 합의한 것이다. 지금껏 아랍 국가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에서 같은 민족이자 이스라엘에 비해 약자인 팔레스타인을 지지해왔고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시민사회 탄압과 원조금 횡령을 묵인해왔다. 가장 개방적인 UAE에 이미 이스라엘 스타트업 회사가 다수 진출해 있고 사우디의 대표적 개혁개방 프로젝트 ‘비전 2030’에는 이스라엘 출신 자문단이 깊이 간여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스라엘, UAE, 사우디는 시아파 종주국 이란이라는 공동의 적을 갖고 있기도 하다.

바이든 행정부는 이스라엘과 걸프 산유왕정 간의 전략적 연합을 지지하면서 트럼프 행정부 시기 예루살렘으로 옮긴 미국 대사관을 그대로 유지할 것이다. 대신 트럼프 행정부가 강행한 다른 이스라엘 편향 정책을 되돌려 놓으려 할 것이다. 2018년 폐쇄한 워싱턴 주재 팔레스타인해방기구 대표부, 같은 해 중단한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구호기구 지원, 2019년 폐쇄한 팔레스타인 업무 담당 동예루살렘 주재 미국 영사관을 재개할 수 있다.
중동 지역 질서의 혼재와 역내 외 주요국의 이합집산

2. 중동 지역 질서의 혼재와 역내 외 주요국의 이합집산

2021년 중동에서는 미국과 유럽이 주도한 기존 자유주의 질서가 흔들리고 최근 역내 입지를 다진 러시아 주도의 새로운 질서가 부상하면서 두 질서가 혼재하는 상황이 뚜렷해질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자국 우선주의, 신고립주의, 거래식 동맹관을 내세워 미국의 신뢰도가 추락하자 역내 미 동맹·우방국의 불안감은 높아졌고 주요국의 이합집산이 이어졌다. 미 대통령이 국내 정치적 이해관계와 지지 세력 결집을 위해 포퓰리즘을 선동하고 대외정책을 결정하자 분쟁 취약지역 중동이 더욱 불안하게 흔들린 것이다.

2018년 5월 트럼프 대통령은 주요 6개국과 이란 간의 핵 합의를 파기한 데 이어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골란고원을 이스라엘 영토로 인정했다. 유엔 안보리 결의안 242호와 497호의 위반이었으나 국내 지지 세력은 환호했다. 2020년 1월 미국의 솔레이마니 이란 혁명수비대 사령관 제거 작전 역시 미국과 미 동맹·우방국의 국가이익에 득보다 실이 많은 결정이었다. 트럼프 행정부가 뚜렷한 대안 없이 시아파 종주국을 자극한 후 레바논, 이라크, 시리아, 예멘, 가자지구 내 친이란 대리 조직이 미군 시설과 역내 미 동맹·우방국을 향한 보복 공격 수위를 높였다. 이란 내에서도 강경 급진파가 힘을 얻으면서 온건 개혁파에 미국의 제재 복원에 대한 책임을 강하게 추궁했다. 이어 이란 강경파는 대미 복수의 구호 아래 핵 협정에서 제한한 원심분리기를 가동하고 핵 개발 재개를 선언했다.

유럽마저 난민 문제 앞에서 보편 가치와 국제규범을 외면했다. 2016년 유럽연합은 유럽 행을 희망하는 시리아 난민 관리를 권위주의 국가 터키에 맡기고 파격적 지원금과 유럽연합 가입의 빠른 추진을 약속했다. 헝가리, 폴란드, 체코, 슬로바키아의 국경 차단으로 그리스에 발이 묶인 4만여 시리아 난민 문제가 시급했기 때문이다. 독일과 프랑스가 인도주의 원칙에 입각한 포괄적 난민 수용 정책을 실시하려 했지만, 동유럽과 남유럽 국가의 강한 반발에 부딪혔다. 유럽연합은 터키와 난민 협정을 체결한 후 그리스에 머물던 시리아 난민을 터키에 보내고 터키 정부에 난민 선별과정을 일임했다. 유엔과 일부 유럽 국가가 터키의 열악한 민주주의 수준을 지적하며 난민 인권침해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으나 난민 송환은 전격적으로 진행됐다.

결국 유럽연합이 터키에 건넨 난민 처우개선 지원금은 터키의 국경지대 강화를 위한 군사비로 쓰였다는 폭로가 이어졌다. 이어 터키는 2019년 10월 시리아 쿠르드계 자치지역에 군사 작전을 감행해 러시아와 함께 안전지대를 설치하더니 국내 시리아 난민을 강제 이주시키겠다고 발표했다. 터키에 난민 관리를 맡긴 책임론이 유럽연합을 향해 빗발쳤지만, 유럽은 터키에 단호히 대응하지 못했다. 2020년 3월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유럽의 추가 지원이 없을 시 유럽 행을 원하는 난민에게 문을 활짝 열겠다며 으름장을 놨기 때문이다. 프랑스는 그리스·키프로스와 동지중해 영유권 분쟁을 벌이는 터키를 향해 강경한 반대 목소리를 내고 터키가 참여하는 NATO 지중해 작전 불참을 선언했다. 반면 독일은 유럽 내 반이민 여론을 의식해 날 선 비판을 자제했다.
2021년 혼재의 중동 질서 전망 | 20210218 01 05
미국의 신뢰도가 추락하고 유럽이 분열하자 러시아가 그 틈새를 공략해 중동 내 영향력을 높였다. 러시아는 역내 후원국 시리아의 정상 국가 복귀를 위해 노력해왔다. 푸틴(Vladimir Putin) 러시아 대통령은 유엔의 시리아 평화협상에 맞서 아스타나·소치 종전 협상을 주도해 시리아 아사드(Bashar Assad) 대통령의 거취 논의를 종식시키고 시리아의 전후 재건에 초점을 맞추는 데 성공했다. 2020년 7월에는 이란과 터키 대통령을 6차 종전 협상에 초대해 코로나 19 확산으로 인한 비대면 화상회의를 진행했다. 2011년 시리아 내전이 시작된 이래 대량 살상 무기로 자국 민간인을 학살한 시리아 정부에 대해 유엔 안보리 결의안이 13건 상정됐지만 러시아는 13건 모두, 중국은 7건을 반대하면서 무산됐다. 러시아는 종전 협상 중에도 시리아 정부군을 도와 반군의 최후 거점지인 이들립에서 병원, 학교, 난민 수용소를 무차별 공습했다. 한편 중국은 일대일로 정책의 종착지 아프리카 진출을 위해 시리아 전후 재건 사업을 포함한 중동 내 대규모 인프라 구축 사업을 진행해왔다.

푸틴 대통령은 2020년 11월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의 갈등 역시 중재하며 외교력을 과시했다. 같은 해 9월부터 두 나라는 아르메니아계 주민이 다수인 아제르바이잔 영토 나고르노-카라바흐 분쟁지역을 둘러싸고 치열한 교전을 벌였으나 러시아가 4차례 휴전 협상을 주도해 결국 합의를 이끌어냈다. 아르메니아는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 대부분을 아제르바이잔에 양도했고 러시아는 5년간 이 지역에 대규모 평화유지군을 파견하기로 했다. 아제르바이잔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한 터키 역시 평화유지군 파견 계획을 밝혔다. 러시아와 터키가 분쟁지역에서 전략적 협력을 다지는 동안 미국과 유럽은 방관했다.

미국은 동맹국 터키와 카타르의 친러, 친이란 밀착 행보를 방관했고 역내 동맹 체제는 느슨해졌다. 트럼프 행정부가 자국 우선주의 구호 아래 동맹 관계를 거래 행위로 여기고 중동을 곧 떠나겠다고 선언하자 터키는 러시아에 밀착했고 패권주의 성향을 드러냈다. 터키에는 NATO 회원국 가운데 두 번째로 큰 규모의 군대, NATO군과 미군이 이용하는 공·해군 기지, NATO의 탄도미사일 방어 레이더 시스템, 미국의 전술 핵 무기 50여 기, 미군 2천여 명이 있다. 그런 터키가 2019년 7월 러시아제 최신 지대공미사일 S-400 시스템을 인도받았다. 미국과 유럽 NATO 회원국이 대터키 무기 금수와 제재를 경고했으나 터키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2020년 10월엔 S-400 시스템의 첫 시험 발사도 마쳤다. 트럼프 대통령은 에르도안 대통령을 ‘터프 가이’ 친구라며 적극 감싸면서 터키의 S-400 시스템 도입에 대한 미 의회의 초당적 제재 요구를 끝내 막았다.

이런 터키에 전통적 친미 국가 카타르마저 공식 지지를 발표했다. 카타르에는 미군 1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미 중부사령부 현지 본부가 있지만 2019년 완성된 칼리드 빈왈리드 터키군 주둔 기지가 점차 더 활발해지고 있다. 현재 새로운 기지에서는 5천여 터키군이 카타르군을 훈련시키고 있다. 터키와 카타르는 미국과 대척점에 있는 이란과도 부쩍 가까워졌다.
2021년 1월 바이든 행정부 출범
2021년 1월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해 미국의 새로운 중동 정책이 실시되겠지만 이미 관성이 붙은 역내 외 주요 국가의 이합집산, 러시아의 영향력 부상, 러시아·이란·중국 주축의 반미 국가 연대 강화의 추세를 되돌리기에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더구나 바이든 행정부의 중동 정책 기조는 오바마 행정부 시기와 비슷하게 중동 내 미국의 역할을 점차 줄여나가는 것이기 때문에 역내 질서 혼재와 이합집산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 적극 나서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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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리비아 휴전 협정의 답보와 석유 시장 불안정의 지속

2020년 10월 리비아 내전에서 대치 중인 서부 이슬람주의 통합 정부와 동부 세속주의 리비아 국민군이 유엔 중재로 휴전 협정에 서명했으나 실질적 후속 조치가 이뤄지지 않아 당분간 답보상태가 이어질 것이다. 리비아 내전은 2011년 카다피(Muammar al-Gaddafi) 독재 정권이 아랍의 봄 민주화 시위대의 퇴진 요구에 흔들리면서 시작됐다. 카다피가 반군에 의해 사살된 후 2012년 첫 총선을 통해 제헌의회가 출범했으나 지역, 부족, 이념으로 분열된 1,700여 무장 정파가 할거하면서 정국 불안정이 심화됐다. 2014년 6월 총선에서 이슬람주의 세력은 크게 패배했으나 민병대를 규합해 수도 트리폴리에 정부를 일방적으로 수립했고 선거에서 이겨 다수 의회를 구성한 세속주의자 세력은 동부 토브루크에 자신의 정부를 세웠다. 유엔과 유럽연합은 동부 세속주의 세력에 대한 지지를 밝혔다. 동부 세속주의 정부는 리비아 국민군을 이끌던 하프타르(Khalifa Haftar)를 총사령관으로 임명했고 이슬람주의와 세속주의 세력 사이의 무력충돌이 이어졌다.

2015년 12월 양대 세력은 유엔 중재로 통합 정부(Government of National Accord) 구성에 합의했으나 내각 구성을 둘러싸고 갈등했다. 동부 세속주의 의회는 9개월여간 국가 최고위원회가 제시한 내각안을 2번 불신임했다. 2016년 12월 유엔은 안보리 결의안 2323호를 통해 서부 이슬람주의 세력이 내각 임명을 강행해 구성한 정부를 유일한 합법 정부로 인정했다. 동부 세속주의 리비아 국민군은 반군이 되었고 두 세력 간 교전이 다시 이어졌다. 국제사회의 지지 역시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동서로 나뉘었다. 터키, 이탈리아, 카타르는 서부 이슬람주의 통합정부를, 러시아, 프랑스, 이집트, UAE, 사우디는 동부 세속주의 리비아 국민군을 각각 지원했다. 에너지 자원 확보, 극단주의 테러리즘 억지, 난민 유입을 둘러싸고 서로 다른 편익 계산법이 작동한 것이다.

하프타르가 이끄는 동부 반군은 2017년 말 남부 지역까지 영향력을 넓히더니 2019년 4월 트리폴리 공습 작전을 실시해 영토의 90%가량을 확보했다. 동부 세속주의 리비아 국민군은 ISIS 추종 극단주의 테러조직 격퇴전을 통해 전투 경험을 쌓았고 유전지대 대부분을 장악해 풍부한 자금을 확보했기 때문에 전력에서 우세했다. 수세에 몰린 서부 이슬람주의 통합 정부는 터키에 군사 지원을 요청했다. 2020년 1월 터키가 리비아에 병력을 파견하자 이슬람주의 통합정부군은 반격에 나섰고 5개월 후 트리폴리와 주변 지역 통제권을 완전히 회복했다. 결국 세속주의 리비아 국민군은 트리폴리 지역에서 철수했고 2020년 10월 양대 세력은 유엔 중재 하에 휴전협정에 서명했다.

하지만 양측 대표로 구성된 리비아 정치 대화 포럼은 국가 최고위원회 인선을 둘러싼 의견 대립으로 인해 2021년 12월 예정된 대통령 선거와 총선 준비위원회를 꾸리지 못한 채 한 달 만에 해산했다. 휴전 협정에 따르면 2021년 1월까지 외국군과 용병이 리비아에서 떠나기로 되어있으나 이러한 움직임은 포착되지 않고 있다.

리비아 휴전 협정이 답보상태에 처한 가운데 내전에 개입한 러시아, 터키, 프랑스, 이집트가 중재자를 자처하며 휴전 후속 조치 과정에서 주도권을 잡으려 할 것이다. 이 가운데 러시아가 최근 가까워진 터키와 함께 후속 협상을 이끌어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러시아는 이미 시리아 내전과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분쟁의 평화 협상을 중재하며 역내 입지를 키운 바 있다. 러시아와 터키는 리비아 내전에서 각기 다른 세력을 지원하기 때문에 서로 이해 충돌이 일어날 수 있으나 두 나라 지도자는 자신의 지지기반 강화라는 국내 정치적 이해관계 앞에서 종종 협력해왔다. 시리아 내전과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분쟁에서도 서로 대치하던 두 나라는 결국 전략적으로 협력했다.

따라서 러시아와 터키가 각각 세속주의 리비아 국민군과 이슬람주의 통합정부를 설득해 양측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선에서 교착상태의 출구전략 합의를 주도할 수 있다. 이때 프랑스와 이집트도 자신의 지분을 확보하기 위해 목소리를 높일 것이며 이들 내전 개입국 간의 최종 타협이 이뤄진 후에야 전후 안정화 과정이 실질적으로 진행되면서 세계 9위 석유 매장량을 보유한 리비아 석유시장 역시 정상화 궤도에 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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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향 중동센터장 - 아산정책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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