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란의 대결과 2019년 중동 정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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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5월 트럼프(Donald Trump) 미 행정부는 2015년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과 독일이 어렵게 합의한 이란 핵협정(Joint Comprehensive Plan of Action)에서 일방적으로 탈퇴했다. 이어 8월 이란 제재를 복원했고 고강도 압박을 선언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전 세계를 상대로 이란산 원유 수입의 중단을 요구했고 이란에 진출해있던 여러 유럽 회사들은 철수했다. 이란 경제는 최악으로 치닫기 시작했다. 중동 지역의 고조되고 있는 긴장 상태를 시작으로 2019년 중동 정세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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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매파-이란 강경파의 갈등과 중동 내 긴장 고조

2018년 5월 트럼프(Donald Trump) 미 행정부는 2015년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과 독일이 어렵게 합의한 이란 핵협정(Joint Comprehensive Plan of Action)에서 일방적으로 탈퇴했다. 이어 8월 이란 제재를 복원했고 고강도 압박을 선언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전 세계를 상대로 이란산 원유 수입의 중단을 요구했고 이란에 진출해있던 여러 유럽 회사들은 철수했다. 이란 경제는 최악으로 치닫기 시작했다.

이란 성직자 체제의 핵심 군사조직 혁명수비대는 미국에 거세게 항의하며 호르무즈 해협 봉쇄와 무력 응징을 선포했다. 8월 혁명수비대는 페르시아만과 오만해 일대에서 대규모 해상 훈련을 벌이며 신형 단거리 탄도 미사일을 시험 발사했다. 새로운 전투기의 공개도 예고했다. 미국의 우방 아랍 산유 왕정들은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야만 원유를 수출할 수 있다. 이미 한 달 전 예멘 내전에서 이란이 지원하는 후티 반군이 홍해 근처 해협을 지나는 사우디아라비아 유조선을 미사일로 공격한 바 있다.

미국의 매파도 격하게 맞섰다. 2019년 4월 트럼프 행정부는 이란 혁명수비대를 테러조직으로 공식 지정했다. 이란 역시 미 중부 사령부를 테러조직으로 맞불 지정하면서 미국 매파와 이란 강경파 간 대결은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으로 악화됐다. 5월 9일 미국은 이란발 위협 징후를 포착했다며 에이브러햄 링컨 항모, B-52 폭격기, 샌안토니오급 수송 상륙함, 패트리어트 지대공 미사일 포대를 걸프 지역에 배치했다. 3일 후 호르무즈 해협에서 사우디, 아랍에미리트(UAE), 노르웨이 선적 유조선 4척이 공격을 받았다.
미국과 이란의 대립은 미국 우방국과 이란 프록시(Proxy, 대리인) 간 충돌로 확산되며 긴장이 더욱 고조됐다. 5월 14일 예멘 후티 반군이 사우디 내륙을 관통하는 아람코의 송유 시설을 무인정찰기 7대로 공격했다. 20일 사우디는 메카와 제다로 발사된 탄도미사일 2발의 요격을 발표했고 후티 반군은 사우디 남부의 나지란 공항을 공습했다. 이어 후티 반군은 사우디와 UAE 핵심시설 300여 곳의 추가 공격을 경고했다. 한편 19일에는 이라크 주재 미 대사관 근처의 그린존에 로켓포가 떨어졌고 이란 혁명수비대가 지원하는 급진 시아파 민병대의 소행으로 알려졌다.

같은 달 24일 미 국방부는 이란의 잠재적 위협에 맞서기 위해 중부 사령부 추가 파병안을 검토했고 1500명 파병을 결정했다. 같은 날 트럼프 대통령은 사우디, UAE, 요르단에 무기 판매를 강행하기 위해 의회의 승인 없이 긴급 면제 조항을 발동했다. 30일 사우디는 이란의 잇단 무력 공세에 따른 역내 사태를 논의하기 위해 긴급 아랍 정상 회의를 메카에서 개최했다. 2017년 사우디가 단교와 국경 폐쇄 조치를 내린 카타르의 총리도 참석했다. 사우디와 UAE는 이집트의 이슬람 원리주의 정당 무슬림형제단을 후원하고 터키, 이란과 점차 가까워지는 카타르에 대해 단교와 봉쇄 결정을 내렸다.

6월에도 긴장 구도는 이어졌다. 6월 9일 후티 반군은 예멘 국경과 가까운 사우디 지잔 공항을 무인정찰기로 공격했고 14, 16, 23일 사우디 남부 아브하 공항을 무인정찰기와 크루즈 미사일로 공격했다. 13일에는 호르무즈 해협 근처 오만해에서 노르웨이와 일본 선적의 유조선 2척이 공격을 받았고 미국은 이란을 배후로 지목했다. 미국에 따르면 지난 두 달간 이란은 6척의 선박을 공격했다. 이란은 미국과 이스라엘의 자작극이라며 부인했다.

20일에는 이란이 오만해에서 미국 무인정찰기를 격추했다. 미국 항공사들은 이란 영공을 지나는 노선 운항을 일제히 중단했다. 바로 다음날 트럼프 대통령은 미 공군에게 이란 공격을 명령했다가 10분 전에 갑자기 취소했다고 밝혔다. 대신 이틀 후 트럼프 행정부는 이란 이슬람 공화국의 최고 지도자 아야톨라 하메네이(Ali Khamenei), 혁명수비대 사령관 8명, 자리프(Mohammad Javad Zarif) 외무장관을 제재 대상 명단에 추가했다. 이란은 나라 전체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라며 더 이상의 협상 가능성은 없다고 선포했다. 25일 유엔 안보리는 양국 간의 대화를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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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비자유주의 질서의 부상과 미국-유럽의 분열

미국 매파와 이란 강경파 사이의 대결 심화는 트럼프 행정부의 이란 핵 합의 파기와 뒤이은 고강도 제재 압박에서 출발했다. 그런데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2017년 말 수니파 극단주의 테러조직 이슬람 국가(Islamic State in Iraq and Syria, ISIS)가 격퇴된 이후 중동 내에서 부상하기 시작한 이란 주도의 비자유주의 질서에 있다. 2011년 시리아 내전이 시작되면서 정부군과 반군을 사이에 두고 여러 나라들이 대치했다. 그러나 2017년 중반 내전의 대치국들은 공동의 적 ISIS 격퇴에 힘을 모았다. 이후 ISIS가 패퇴하자 시리아 아사드(Bashar Assad) 정권의 내구성이 높아졌다. 8년여간 자국민을 상대로 200여 차례 화학무기 공격을 감행한 아사드 세습독재 정권은 내전 승리와 정상 국가 복귀를 선언했다.

아사드 독재 정권을 적극 지원해 온 이란과 러시아의 영향력도 덩달아 올라갔다. 특히 전투 현장에서 시리아 정부군을 도왔던 이란 혁명수비대는 시리아를 발판으로 레바논, 이라크, 예멘, 가자지구로 진출해 역내 시아파 헤게모니 장악에 주력했다. 러시아는 전후 협상을 주도하며 피스메이커로 변신했다. 유엔 주도 협상과 달리 푸틴 (Vladimir Putin)이 이끈 협상은 이란과 터키의 적극적인 참여로 진전을 보였다. 이란과 러시아 주도의 비자유주의 질서가 역내에서 자리를 잡아가자 과거 친서방 블록에 속했던 터키와 카타르도 새로운 질서에 편입하고 있다. 에르도안(Recep Tayyip Erdoğan) 터키 대통령은 자국의 민주주의 퇴행과 1인 체제 강화를 지적하는 미국, 유럽과 충돌해왔던 터였다. 카타르는 최근 아랍 산유 왕정 형제국과 함께 추구해온 친서구 노선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대외정책을 천명했고 이란, 터키와 밀착 행보를 보여 왔다.

미국의 이란 핵협정 탈퇴와 미중 무역전쟁 이후 이란-러시아-중국-터키-카타르 연합은 점차 강화되는 반면 미국과 유럽은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로 인해 자주 충돌하기 시작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일방적인 이란 제재 복원 직후 유엔은 회원국에게 이란 핵협정의 지속적 지지를 당부했다. 무엇보다 이란 내 인도적 피해에 대한 우려를 강조했다. 미국의 2단계 제재가 시작된 2018년 11월 국제원자력기구 (IAEA)는 이란의 핵협정 준수를 재차 확인했다. 영국, 프랑스, 독일, EU는 유럽 중소기업의 이란 거래를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유럽의 대기업은 미국 제재의 세컨더리 보이콧 조항을 우려해 이란 사업을 대부분 거두었다.

2019년 1월 영국, 프랑스, 독일은 미국의 이란 제재를 합법적으로 피해 사업을 이어갈 수 있도록 특수목적법인 인스텍스(Instrument in Support of Trade Exchanges)를 세웠다. 트럼프 행정부와 이란의 강경파는 이를 거세게 비난했다. 2월 미국이 바르샤바에서 개최한 중동 평화를 위한 세계 외무장관 회의에 프랑스, 독일, EU는 불참했다. 2018년 12월 미국이 시리아 철군 계획을 발표한 후 유럽 3국은 안보 공백을 메워달라는 미국의 요청을 단호하게 거절했다.

9월 이스라엘 재선거 이후 발표될 예정인 미국의 중동 평화안에 대해서도 유럽 국가들은 이미 반대 입장을 밝혔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 해결을 위한 평화안은 백악관 선임고문이자 트럼프 대통령의 사위 무슈 너(Jared Kushner)가 2년 넘게 준비한 야심작이다. 이번 중동 평화안에는 서안과 가자 지구의 경제발전에 초점을 두고 사우디의 적극적인 역할을 포함한다고 알려져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2018년 5월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인정해 자국 대사관을 옮겼고, 8월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 구호기구에 대한 지원을 전면 중단했으며, 9월 워싱턴 주재 팔레스타인해방기구 대표부를 폐쇄했다. 2019년 3월엔 팔레스타인 영사관을 이스라엘 대사관 산하 팔레스타인부로 강등 이전했고 골란 고원에 대한 이스라엘의 주권을 인정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친이스라엘 행보에 대해 유럽은 일관된 반대 입장을 이어왔다. 이처럼 미국과 유럽 간의 갈등과 분열이 깊어지는 가운데 중동 내 비자유주의 질서는 큰 도전 없이 공고화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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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외 압박에 처한 이란, 취약한 체제의 사우디아라비아

2017년 말 시리아 내전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면서 이란 강경파의 역내 패권 추구 정책은 활성화됐다. 하지만 2018년 중반 위기를 맞기도 했다. 이란 성직자 체제-혁명수비대 지배연합의 국내 핵심 지지층이 민생 파탄에 반발하며 전례 없는 반체제 시위를 조직했기 때문이다. 시위의 근원지 마슈하드는 최고 지도자 하메네이의 고향이자 지배연합의 거점인 동북부 지역에서도 보수 색채가 가장 짙은 도시이다. 이란의 지방 보수층은 물과 전력 부족, 임금체불, 물가폭등의 민생고를 인재로 봤다. 2018년 5월 미국의 제재 부활 이후 이란 경제는 벼랑 끝에 몰렸고 반체제 시위는 더욱 거세졌다. 시위대의 구호는 최고 지도자를 직접 겨냥해 독재자로 칭했다. 미국의 일방적인 핵합의 파기에도 불구하고 여론은 이란 성직자 체제의 부정부패와 무능, 역내 내전 지원을 맹비난했다.

혁명수비대가 시리아 내전, ISIS 격퇴전, 예멘 내전에 개입하고 레바논의 헤즈볼라, 이라크의 급진 시아파 민병대, 예멘의 후티 반군, 가자지구의 하마스를 지원하며 막대한 국고를 탕진했다는 것이다. 강경 보수 지배연합은 이란 내 공공부문 사업 전체를 관장하며 전체 경제의 절반 이상을 실질 적으로 장악한다고 알려져 있다. 암시장까지 고려하면 그 규모는 훨씬 크다.

이란 강경파는 국내 여론의 악화로 역내 헤게모니 추구가 아닌 집안 단속에 집중해야 했다. 제한적이나마 선거가 이뤄지는 이란에서 체제 수호세력은 여론을 무시할 수 없다. 시리아, 레바논, 이라크, 예멘, 가자 지구에서 맹렬히 추진해 온 친 이란 무장세력 지원과 역내 시아파 헤게모니 장악 정책도 유지하기 어려워 보였다.

그러나 같은 해 10월 사우디 반정부 언론인 카슈끄지(Jamal Khashoggi)가 이스탄불 주재 사우디 총영사관에서 자국 정보국 요원들에게 살해되는 사건이 일어나면서 수니-시아의 대결 구도가 흔들렸다. 사우디의 실세 무함마드 빈 살만 (Mohammad bin Salman, MbS) 왕세자 체제의 정당성은 바닥에 떨어졌고 이란 강경파는 덕분에 숨통을 틔울 수 있었다. 자유로운 개혁가 이미지로 우방국에 어필했던 MbS 사우디 왕세자가 국제사회 복귀를 위해 패배나 다름없는 예멘 내전의 휴전안을 수락했기 때문이었다. 시리아 내전에 이은 또 다른 사우디-이란의 대리전인 예멘 내전에서 사우디는 정부군을 지원하며 이란에 대한 설욕을 노려왔다. 사우디발 예멘 휴전 수락은 내부 시위와 미국 제재에 시달리던 이란 강경파에게 실리와 명분 모두를 챙길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이란과 후티 반군 역시 휴전에 합의했고 사우디의 인권 유린을 대대적으로 비난했다.

2017년 서열 2위로 급작스레 지명된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개혁개방의 아이콘이었다. 적극적인 군사안보, 사회 개방, 여성인재 등용, 산업 다변화, 투명 외교의 개혁을 통해 국제 규범과 가치의 공유를 선언했다. 이란의 패권국 부상과 취약한 국내 지지 기반을 해소하려는 의도였다. 사우디는 잇단 참전과 전사자 속출, 카타르 단교와 아랍 산유 왕정 내분, 미국 셰일 업계의 에너지 시장 장악, 보조금 삭감과 과세 실시의 전례 없는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파격적인 개혁 정책 추진을 위해 1인 체제를 강화했다. 미국과 유럽 우방국들은 개혁 질주 외엔 사우디의 위기 타개가 어렵다고 보고 왕세자 주도의 강압정치를 묵과했다. 하지만 카슈끄지 살해 사건이 일어나자 우방국과 국제사회는 왕세자의 과도한 자신감이 부른 비상식적 결말에 대해 분노했다.
국내적으로도 실세 왕세자의 개혁개방 정책은 실질적 성과를 뚜렷하게 내지 못 하고 있다. 지난 2년 간 자국민 일자리 창출을 위해 외국인 노동자 백만여 명을 해고해 본국으로 돌려보내자 민간부문 효율과 소비자 지출이 급격히 하락했다. 이에 대한 단기 대응책으로 정부 지출을 연이어 높였고 2019년 정부 예산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또한 여성 창업·운전·축구장 입장의 허용과 콘서트 남녀 혼석을 허용해 폐쇄적인 사회 분위기를 혁신하고 여성의 사회 진출을 장려하자 기존 보수 종교계의 반발이 거셌다. 하지만 장기간의 저유가로 인한 재정 위기 때문에 저항 달래기용 보조금 지급이 예전만큼 쉽지도 않은 상황이다. 엔터테인먼트 시장을 빠르게 개방하면서 빈부격차의 현실이 수면 위로 드러나 사회 불만 요소로 이어지고 있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년층과 여성은 보조금 삭감과 납세까지 감수하며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개혁개방 정책을 적극 지지하고 있다. 특히 개혁의 최대 수혜자가 여성인 만큼 이들의 지지는 전폭적이다.

미국-이란 대립을 둘러싼 역내 탐색전의 지속

2019년 5월 8일 이란은 미국의 핵협정 탈퇴와 제재 복원 1주년을 맞아 전략적 인내의 종료와 핵 개발 일부 재개를 선언했다. 저 농축 우라늄의 농도는 유지하되 우라늄 생산 속도를 4배 늘렸고 이를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보고했다. 이어 유럽에게 이란산 원유 수입 재개를 촉구했고 북한처럼 핵확산금지조약(NPT)를 탈퇴할 수 있다고도 했다. 유럽이 미국 제재의 세컨더리 보이콧 규정을 핑계 삼아 對이란 경제관계 정상화를 서두르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6월 28일 미국을 제외한 이란 핵협정 서명 5개국 대표가 빈에서 회담을 가졌지만 별다른 성과는 없었다. 이후 이란은 유럽의 원유 수입이 재개되지 않을 경우 핵 개발 활동 재개 2단계에 들어가겠다고 경고했다.

7월 1일 IAEA는 이란의 저농축 우라늄 저장 한도 초과를 확인했고 자리프 외무 장관도 이를 인정했다. 이란은 미국의 제재 복원에 맞선 정당한 결정이라고 주장하며 또다시 유럽을 향해 핵합의 이행을 강하게 촉구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의 핵합의 파기가 이란의 핵합의 위반의 구실이 될 수 없다며 이란을 맹비난했다. 네타냐후 (Benjamin Netanyahu) 이스라엘 총리는 유럽 국가들의 이란 제재 강화를 촉구했다. 이스라엘과 사우디는 전쟁 대비 착수를 공공연히 알렸다.

하지만 현재 미국과 이란을 둘러싼 대결의 심화는 전쟁으로 치닫고 있는 일촉 즉발의 위기보다는 전쟁을 회피하기 위한 탐색전으로 보인다. 상대방의 한계를 테스트하면서 서로에 대한 정보를 늘리고 불확실성을 줄여나가는 과정에 더욱 가깝다. 미국, 이란, 이스라엘, 사우디, UAE 모두에게 전쟁은 지나치게 큰 부담이다. 민주주의 수준이 높지 않아 선거와 유권자의 압박이 낮은 나라의 지도부에게도 직접적인 무력 충돌이나 전쟁은 치명적인 비용을 동반한다. 전쟁은 권력 유지에 걸림돌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2020년 미 대선 전까지 이란을 향한 강경하고 단호한 이미지를 유지하면서 국내 백인 복음주의자 지지층의 표심을 관리할 것이다. 단 미국 우선주의라는 핵심 기조를 건드리지 않는 한도 내에서다. 중동 내 전쟁은 물론이거니와 유가상승을 불러올 지나친 긴장도 트럼프 대통령의 선호 옵션이 아니다. 미국은 현재 자국 셰일 업계의 국제 원유 시장 장악으로 인해 중동 산유국의 정치적 돌발 행동에서 자유롭다. 미국은 2000년대 들어와 첨단 공법을 이용해 셰일 혁명을 일으 켰고 2019년 사우디를 제치고 세계 최대 원유 생산국이 됐다. 그럼에도 미국 경제는 여전히 세계 시장 전체와 밀접히 연동되어 있다. 게다가 이란은 아직 미국인을 직접 공격하지도 핵무기 개발에 착수하지도 않았다. 현재 이란이 보유한 5% 농축도 우라늄 수준에서 핵무기 개발하기까지는 1년 이상이 소요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내년 대선까지 대이란 강경 노선을 유지하되 전쟁을 피하기 위한 여러 정보를 종합해 이란과의 줄다리기 과정을 관리해나갈 것이다.

이란 역시 민생고에 따른 국내 여론 악화와 반체제 시위 확산 때문에 전쟁 옵션을 쓰기 어렵다. 이란의 지배연합은 여론의 화살이 트럼프 행정부 뿐 만 아니라 무능한 울라마 체제로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비 일관적이고 분열된 태도 때문에 재협상에 대한 기대는 높지 않다. 폼페이오 (Michael Pompeo) 미 국무장관은 이란의 우라늄 농축 금지, 미사일 시험발사 중단, 정치범 석방, 중동 테러조직 지원 중단 등 10가지 이상의 굴욕적인 조건 하의 대화를 제시해오다 갑자기 조건 없는 협상 카드를 내밀기도 했다. 이란의 실세는 내년 미 대선까지 저항 경제의 슬로건 아래 허리띠를 졸라매자고 민심에 호소할 것이다. 이란 당국은 6월 발표된 이란 최고 지도자를 겨냥한 미국의 추가 제재에 격노했지만 사실 이러한 제재는 상징적 차원일뿐 실효성은 낮다. 이미 이란 경제의 85% 이상이 미국 발 제재의 직접 영향력 하에 놓인 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란은 내년 미국의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되기 전까지 ‘최대 압박’의 제재를 조금이나마 완화시키기 위해 유럽이 나서주길 간절히 바란다. 그러나 현재 미국과 유럽 사이의 불신의 골이 매우 깊기 때문에 둘 사이의 대화나 압박이 효과적으로 작동할 가능성은 낮다. 유럽은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 일방적인 이란 제재 복원, 이스라엘 편향의 중동 평화안에 대해 명백한 반대 입장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의 잘못된 상황 판단과 재난에 가까운 결정들이 B팀(Bolton, Bibi, MBS, MBZ) 4명 때문이라고 비난했다. 볼턴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 무함마드 빈 자이드(Mohammed bin Zayed Al Nahyan, MbZ) UAE 아부다비 왕세제를 가리킨다. 그런데 이스라엘, 사우디, UAE도 전쟁을 원치 않는다. 이란 혁명수비대와 혁명수비대의 명령체계 하의 친이란 무장조직은 시리아 내전, ISIS 격퇴전, 예멘 내전 에서 전투력과 화력을 월등히 높였다. 이들 미국 우방국은 이란의 약화를 바라지만 전쟁이 불러올 파장을 감당할 만큼은 아니다. 이들의 공동 이해관계는 탐색전을 통해 서로의 단계별 옵션을 파악한 후 합리적으로 전쟁을 회피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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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향 - 아산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중동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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