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S2023은 글로벌 위기에 대한 해결 방법을 보여주는 무대다. 기술 기반 혁신과 협업으로 위기를 타개할 수 있다고 본다.”
존 켈리(John T. Kelley) CES 부사장 겸 쇼 디렉터
존디어, 비료량 60% 줄이는 장치 선봬… 로봇 기술 주목
실제로 지난 1월 5~8일(현지시각) 열린 세계 최대 IT쇼 ‘CES2023’ 현장에서는 이런 주제의식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개막 첫날인 5일 첫 번째 기조연설을 세계 1위 농기계업체 ‘존디어’의 존 메이 최고경영자(CEO)가 맡은 게 대표적인 예다.
메이 CEO는 논밭에 스스로 비료를 뿌리는 로봇 비료살포기 ‘이그잭트샷(ExactShot)’을 선보였는데, 이 장비는 장착된 센서를 활용해 스스로 움직이며 비료를 뿌리는 로봇이다. 식량 부족 등 인간 안보 문제를 해결할 가장 중요한 기술 중 하나로 로봇 분야를 강조한 셈이다.
이그잭트샷을 활용하면 비료량의 60%를 줄일 수 있다. 남은 비료가 잡초 성장을 촉진하거나 수로로 흘러가는 위험을 막을 수 있게 된다. 존 메이 회장은 “사람의 눈을 통해 정확히 비료 살포를 한다면 6000명의 사람이 필요한 일을 이그잭트샷이 해낼 수 있다”며 “이그잭트샷을 대형 트랙터 1대에 24개 연결할 경우 1초에 720개의 옥수수 씨앗을 심을 수 있다”고 했다.
이그잭트샷은 탄소 감축에도 도움이 된다. 온실가스 배출에 영향을 미치는 비료 사용을 줄임으로써 5300만톤에 달하는 탄소를 감축할 수 있다는 게 존디어 측의 설명이다.
28개 분야에 걸쳐 총 2100개 이상 제품이 출품돼 역대 최대 경쟁률을 기록한 CES 최고혁신상 ‘베스트 오브 이노베이션(Best of Innovation)’에 오른 제품 중에서도 ‘로봇(Robotics)·스마트시티(Smart Cities)·사이버 시큐리티(Cybersecurity & Personal Privacy) 등 지속가능성 및 인간 안보 관련 제품이 많았다.
코로나19 팬데믹 영향으로 발생한 공급망 대란은 유연한 노동력을 제공해 줄 로봇 기술의 발전을 가속했다. 로봇을 이용하면 전염, 질병과 상관없이 공장, 대규모 농장을 운영할 수 있고, 적절히 활용할 경우 생산성 측면에서도 큰 개선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인식이 널리 퍼졌다.
자연재해 현장 등 위험한 작업에 이간 대신 투입될 수 있으며 AI(인공지능), 기계학습(ML)을 두뇌로 접목할 경우 엄청난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점에서 향후 로봇 기술의 발전은 더 빠르고 광범위하게 진행될 것이란 게 기술 업계의 관측이다.
지속 가능성이 미래다… 스마트시티·사이버 시큐리티
지속 가능성(Sustainablitiy) 확보를 위한 스마트시티 기술 역시 주목을 받았다. 최고혁신상을 받은 ‘클린 워터 패스파인더(Clean Water Pathfinder)’가 대표적인 예다. 이 제품은 프랑스 기업 ‘아쿠아 로보틱스(ACWA Robotics)’가 개발한 제품으로 상수도관 내에서 급수를 중지하지 않은 상태에서 자율주행하며 데이터를 수집해 디지털 트윈(현실의 사물과 똑같은 디지털 쌍둥이)을 만들 수 있도록 돕는 로봇이다.
최고혁신상 세부 카테고리는 스마트시티로 분류됐지만, 로봇 및 휴먼 시큐리티와 밀접하게 관련된 제품이라고 할 수 있다. 열악한 상수도 시설을 개선하는 것만으로도 물 부족 문제를 상당 부분 해결할 수 있다는 게 ACWA 측의 설명이다.
스마트시티 분야에서 최고혁신상을 받은 ‘전자식 자가 세정 유리(DFG) 기반 AI 감시 카메라’ 역시 비슷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이 제품은 삼성전자의 벤처기업 육성 및 투자 프로그램 ‘C랩’ 출신인 마이크로시스템이 개발한 제품으로 낮은 전력으로 센서 표면의 다양한 오염 물질을 신속하게 제거할 수 있는 카메라다. 비가 올 때도 항상 선명한 카메라 이미지를 보장할 수 있어 스마트시티 구현에 꼭 필요한 제품이라는 호평을 받고 있다. 마이크로시스템의 전자식 자가 세정 유리는 자율주행차량용 센서에도 활용되고 있다.
사이버시큐리티(cybersecurity)는 시스템, 네트워크 및 프로그램을 디지털 공격에서 보호하는 방법을 일컫는다. 해킹 등 사이버 공격이 빈번해지면서 민감한 개인 정보 유출 혹은 금전 갈취 등 사기 범죄 피해가 급증했으며 사이버 공격으로 기업의 정상적인 경영 활동에 지장을 초래하는 일도 많아 사이버시큐리티의 중요성은 점점 커지는 형국이다.
사이버시큐리티 역시 휴먼 시큐리티라는 큰 범주 안에 포함될 수 있는 영역이기도 하다. 인터넷, 클라우드, 5G로 모두가 더 빠르고 강하게 연결되는 추세라는 점 역시 이 분야 기술 개발이 중요한 이유 중 하나다.
사이버시큐리티 분야에서 최고혁신상으로 선정된 대표적 제품은 삼성전자의 보안칩 ‘S3B512C’다. 이 칩은 지문 센서, 보안 요소(SE) 및 보안 프로세서(SP)를 단일 칩에 통합, 삼성 고유의 지문 인증 알고리즘 및 스푸핑(Spoofing, 승인받은 사용자인 것처럼 속여 접근 제어를 우회하는 공격 행위) 방지 기술을 통해 향상된 보안 기능을 제공한다. 지문인식 센서를 통해 생체정보를 읽어 암호화된 데이터를 위변조 방지 방식으로 저장 및 인증하고 데이터를 안전하게 분석 및 처리하는 세계 최초의 일체형 보안칩이다.
이 칩을 활용하면 안전한 생체 인식 카드를 제작할 수 있다. 예컨대 지문인식 기술을 기반으로 신용카드가 도난당한 경우 제삼자의 사용을 원천 봉쇄할 수 있으며 키패드에 비밀번호를 입력하는 번거로움, 비밀번호 유출 위험도 줄일 수 있다. 생체 정보 자체가 본인 인증 역할을 하기 때문에 비밀번호를 입력하는 이중 보안이 필요 없는 것이다.
전장·배터리가 모빌리티 성패 좌우… 소니의 도전
CES가 세계 최대 글로벌 오토쇼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는 사실은 전 세계 산업계가 인정하는 사실이다. 올해도 BMW가 기조연설을 맡아 현실과 가상 세계의 장점을 결합한 모빌리티의 새로운 미래에 대해 발표했고, 2022년 새롭게 건설된 라스베이거스 컨벤션 센터(LVCC) 웨스트홀 내외부를 300여 개 자동차 기업이 가득 채웠다.
특히 전자·엔터테인먼트 분야 강자인 ‘소니(Sony)’의 새로운 시도가 큰 주목을 받았다. 4일 진행된 프레스 컨퍼런스에서 소니는 일본의 완성차 회사 혼다와 합작한 전기차 회사 소니혼다모빌리티(SHM)의 첫 양산차량 브랜드 ‘아필라(AFEELA)’를 공개했다. 2025년 생산에 돌입해 2026년 북미 시장에 선보일 양산 전기차의 내부와 외부 모습을 처음으로 소개한 것이다.
야스히데 미즈노 소니혼다모빌리티 최고경영자(CEO)는 무대에 올라 “운전자 경험에 중요한 부분은 ‘느낌’이다. 차량 내에서 사람들과 상호작용하는데 초점을 맞출 것”이라고 강조했다. 소니는 에픽게임즈 등 게임회사와 제휴, 차량을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닌 ‘인포테인먼트 기기(Infotainment device)’로 정의했다.
실제로 5일 개막한 전시장에서는 ‘아필라’를 보기 위해 소니 부스에 몰려든 인파로 북새통을 이뤘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크게 변한 기업 경영 환경, 친환경 제품, 엔터테인먼트 경험을 선호하는 소비자 트렌드에 맞춰 새로운 전기차 브랜드를 선보인 소니의 전략이 관심을 모은 것이다.
SK온의 SF 배터리(Super Fast Battery) 역시 최고혁신상을 받으며 업계의 이목을 끌었다. 국내 배터리 업체가 CES에서 최고혁신상을 수상한 건 이번이 최초다.
SF 배터리는 니켈 함량이 83%에 달하는 하이니켈 배터리로 한번 충전에 400km 이상 주행이 가능하다. SF 배터리는 현재 시장에서 판매되는 전기차 배터리 중 가장 빠른 충전 속도를 갖춘 것으로 알려진다. SK온의 특수 코팅 기술이 적용돼 통상 20~30분대 수준인 경쟁 제품과 달리 단 18분 만에 80%까지 급속충전이 가능하다. 각종 글로벌 평가 기관에서 ‘올해의 차’로 선정한 현대 아이오닉5, 기아 EV6에 탑재된 제품이다.
경기 침체, 공급망 붕괴, 환경 오염, 식량 및 물 부족, 에너지 위기 등은 인간 안보뿐 아니라 기업의 생존을 위협하는 거대한 문제다. CES에서 주목을 받은 기업, 제품은 모두 이런 시대적 요구에 적절히 응답한 기업, 제품이었다.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기 위한 핵심 기술 개발과 유연한 대응,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