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유 도입·생산계획부터 공정 최적화·예지 정비·에너지 관리까지, 정유공장 의사결정 전반으로 확산되는 AI
- 글로벌 컨설팅사 BCG가 제시한 ‘AI-First Refiner’와 배럴당 마진 개선 전망
- 사무실의 생성형 AI ‘AiU’부터 여수공장 운영과 대정비 현장까지, 동시에 확장되는 GS칼텍스의 DAX
AI를 도입하는 산업은 이제 셀 수 없이 많습니다. 스스로 판단하고 일을 처리하는 에이전트 AI까지 등장했지만, 제조 현장에서 AI의 가치는 결국 성과로 증명돼야 합니다. 같은 설비로 더 많은 제품을 만들고, 설비가 멈추는 시간을 줄이고, 사고 없이 공장을 운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정유공장은 그 성과가 숫자로 분명하게 드러나는 곳입니다. 원유 가격과 제품 가격은 국제 시장에서 정해지기 때문에 정유사가 통제하기 어렵습니다. 대신 같은 원유로 휘발유·경유 같은 고부가 제품을 얼마나 더 얻는지, 에너지를 얼마나 아끼는지, 설비를 얼마나 멈춤 없이 돌리는지는 정유사가 직접 개선할 수 있는 영역입니다. 처리하는 원유의 양이 워낙 많아, 원유 1배럴(약 159리터)당 몇 센트의 개선도 큰 차이를 만듭니다. 하루 80만 배럴을 처리하는 공장이라면 배럴당 10센트 차이만으로 1년에 약 2,900만 달러가 달라집니다.
이 차이를 만드는 것은 결국 판단입니다. 어떤 원유를 언제 들여올지, 공정을 어떤 조건으로 돌릴지, 설비를 언제 정비할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집니다. 그동안 이러한 의사결정은 숙련 인력의 경험과 직관 또는 현장에서의 감각에 크게 의존해 왔습니다. 여러 부서 담당자가 각자 자료를 모아 취합·분석했고, 상황이 바뀔 때마다 계획을 다시 세우는 데 많은 시간과 인력이 들었습니다. 설비 역시 정기 점검과 현장 경험으로 꼼꼼히 관리해 왔지만, 수십만 개에 이르는 설비의 이상을 사전에 모두 잡아내기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글로벌 컨설팅사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은 올해 4월 보고서 ‘The AI-First Refiner’에서 AI가 이 문제를 해결해 정유공장에 가져올 가치를 구체적인 숫자로 제시했습니다.
AI-First Refiner, AI와 함께 판단하는 정유공장
‘AI-First Refiner’는 말 그대로 AI를 운영의 중심에 둔 정유사를 뜻합니다. BCG 보고서의 핵심은 AI를 몇몇 업무에 보조 도구로 붙이는 것이 아니라, 공장 운영의 판단 방식 자체를 데이터와 AI 중심으로 바꾸는 데 있습니다.
BCG는 이런 전환으로 2030년까지 중간 규모 정유사가 원유 1배럴당 0.5~1.2달러의 이익을 더 낼 수 있다고 내다봤습니다. 배럴당 수치인 만큼, 처리량이 많은 대형 정유공장일수록 그 효과는 더 커집니다. 실제로 중남미의 한 대형 정유사는 원료와 운영 여건이 바뀔 때마다 늦게 대응하던 문제를 AI로 해결해 약 8,000만 달러를 절감했습니다.
원유 도입부터 설비 관리까지, AI가 하는 일

정유공장의 일은 원유를 들여오고, 제품을 만들고, 설비를 관리하는 과정으로 이어집니다. AI는 이 흐름의 네 지점에서 앞서 말한 문제를 풀고 있습니다.
- 원유 도입과 생산계획: 어떤 원유를 들여와 어떤 제품을 얼마나 생산할지 정합니다. 유조선 도착이 늦어지는 등 변수가 생기면 AI가 원유 투입 일정과 공정별 생산량, 제품 재고와 출하 일정을 한꺼번에 다시 계산합니다. 스프레드시트로 짜던 이 일정을 AI로 바꾼 한 글로벌 정유사는 배럴당 마진을 0.15~0.30달러 끌어올렸습니다.
- 공정 최적화: 원유를 가열하고 성분별로 나누는 공정에서는 온도와 압력을 어떻게 맞추느냐에 따라 휘발유·경유 같은 제품을 얼마나 얻을지가 달라집니다. AI는 실시간 데이터를 보고 가장 효율적인 운영 조건을 제안합니다.
- 예지 정비: 고장을 미리 예측해 정비하는 방식입니다. 펌프나 압축기가 갑자기 멈추면 공정 전체가 영향을 받습니다. AI는 진동과 온도 변화에서 이상 징후를 미리 찾아내고, 데이터 패턴을 분석해 베어링 마모 같은 원인까지 추정합니다. 고장이 나기 전에 정비 시점을 잡을 수 있어 갑작스러운 설비 정지와 사고에 도움을 줍니다.
- 에너지 효율: 정유공장은 원유를 고온으로 가열하는 데 많은 에너지를 씁니다. AI는 설비별 에너지 사용량을 살피고 가장 효율적인 운영 방법을 찾아 비용과 탄소 배출을 함께 줄입니다.
네 영역의 공통점은 흩어져 있던 데이터를 하나로 잇는다는 것입니다. 계획과 운영, 설비 관리가 같은 데이터를 보며 움직일 때 AI의 효과도 커집니다.
GS칼텍스 여수공장, AI와 함께 일하다
GS칼텍스는 여의도 면적의 약 2배에 이르는 여수공장을 중심으로 디지털·AI 전환(DAX, Digital·AI Transformation)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먼저 공장 설비 80만여 개의 정보를 데이터로 전환해 AI가 읽을 수 있는 기반을 만들고, 이를 바탕으로 생산계획부터 공정 운영, 설비 관리까지 AI를 접목하고 있습니다.
- 생산계획: 엑셀로 하던 시장 분석에 AI를 적용해 여러 시장 데이터를 한데 모아 시각화하고, 분석 시간을 크게 줄였습니다.
- 공정 최적화: 공정 데이터를 바탕으로 운영을 최적화하는 플랫폼 ‘OP’를 활용합니다.
- 예지 정비: 설비 관리 통합 플랫폼 ‘Asset Plus’가 AI 진동 분석으로 설비 이상을 조기에 감지합니다.

이런 역량은 올해 여수공장 대정비 현장에서도 빛을 발했습니다. 대정비는 공정 가동을 멈추고 설비를 점검·보수하는 작업으로, 이번에는 약 60일간 9개 공정을 대상으로 진행됐습니다. 약 2,000억 원이 투입되고 하루 평균 3,000명이 현장에 들어가는 대규모 작업인 만큼, 짧은 기간 안에 작업을 끝내면서 안전을 지키는 것이 관건이었습니다.
GS칼텍스는 가열로 내부 튜브를 청소하는 로봇으로 작업 속도를 높이고, 3D 지도 기반 앱으로 수많은 밸브의 위치를 빠르게 찾았습니다. 보호구 착용과 중장비 접근을 실시간으로 살피는 AI CCTV는 많은 인원이 동시에 움직이는 현장의 안전을 지켰습니다.
AI는 현장 전문가만의 도구도 아닙니다. 2025년 7월 도입한 사내 생성형 AI 플랫폼 ‘AiU’는 AI와 기름 유(油)를 합친 이름으로, 코딩을 잘 몰라도 임직원이 직접 AI 에이전트(특정 업무를 맡아 처리하는 AI 프로그램)를 만들 수 있습니다. 전문 개발자가 한 달 걸려 만들던 업무용 앱을 일주일 안에 구현할 수 있고, 회사 데이터를 외부 AI 서비스에 올리지 않고도 업무에 활용할 수 있습니다. 2025년 10월 기준 임직원의 85%가 AiU를 거의 매일 사용하고 있습니다.
더 큰 그림도 그리고 있습니다. GS칼텍스는 산업통상자원부 과제로 선정된 ‘AI 자율제조 플랫폼’을 2028년 말까지 구축할 예정입니다. 자율제조는 AI가 공정 데이터를 분석해 최적의 운영 방향을 스스로 제시하는 제조 방식입니다. 원료 투입량과 제품 품질, 생산량, 탄소 배출의 관계를 AI로 분석해 수익성과 탄소 감축을 함께 고려한 운영 전략을 세우는 것이 목표입니다.
허세홍 당시 사장(현 부회장)은 2025년 10월 사내 행사 ‘DT Day’에서 “AI는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우리의 사고방식과 일하는 방식을 바꾸는 새로운 동료”라고 말했습니다. 그로부터 1년, AI는 사무실의 시장 분석부터 여수공장의 공정 운영과 대정비 현장까지 실제 업무를 함께하는 동료로 자리 잡았습니다. 허 부회장도 올해 대정비를 두고 현장의 경험과 디지털·AI 기술이 결합해 효율과 안전을 함께 높인 사례라고 평가했습니다.

정유 경쟁력의 새로운 기준, 데이터
그동안 정유사의 경쟁력은 주로 설비 규모로 설명됐습니다. 이제는 같은 설비로도 데이터를 얼마나 빠르고 정교하게 활용하느냐가 수익을 가르는 기준이 되고 있습니다.
GS칼텍스는 여수공장에 쌓아 온 현장 경험과 데이터 위에 AI를 더하며 정유 경쟁력을 한 단계 끌어올리고 있습니다. 2028년 말 구축 예정인 AI 자율제조 플랫폼으로 이어질 GS칼텍스의 다음 행보를 기대해봅니다.
참고: BCG(202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