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천억 원이 넘는 자금을 대정비 작업에 투입하기까지'
원유를 증류장치에서 가공하면 ‘끓는점(boiling point)’ 차이로 휘발유, 등유, 경유, LPG 같은 석유제품이 생산됩니다. 액체를 끓여 생성된 기체를 다시 액화시키는 증류(蒸溜)가 석유제품의 기본 생산 원리이니 언뜻 보면 술을 빚는 것과 비슷해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정유·화학 공정은 수많은 장치와 파이프라인이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고 휘발·인화성이 높은 제품을 취급하는 고도화된 작업입니다.
국내 최초의 민간 정유사인 GS칼텍스는 2023년 올해, 1분기 영업이익 보다 많은 3,158억 원의 예산과 연인원 15만 8,000명이 동원된, 59일간의 ‘대정비작업(TA, Turn around)’을 마무리했습니다. 역대 최대 예산을 투입하여 진행된 턴어라운드(TA)는 어떤 배경에서 준비되었고, 어떤 의미와 성과를 얻게 되었는지 찬찬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에너지 자립·수출 등 정유·화학이 갖는 무게감 만큼 안전 운전은 필수
지난 1967년, 여수공장의 첫 삽을 뜨며 기공식을 가진 GS칼텍스는 올해로 만 56세가 되었습니다. ‘지천명(知天命)’을 훌쩍 넘는 세월 동안 GS칼텍스는 하루 80만 배럴의 정제능력을 갖추며 단일정제공장 기준 세계 4위 규모로 성장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정유·석유화학·윤활유 부문에서 지난해 총 58조 5,320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는데, 이중 72%에 해당되는 42조 4,912억 원이 수출로 달성될 만큼 대한민국 무역수지에 한 축을 담당하는 국가 주력 산업체로서의 입지도 굳건히 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에너지자원 빈국인 탓에 불가피하게 원유는 수입할 수밖에 없는데, 다만 석유 완제품은 직접 만들어 사용한다는 ‘소비지 정제주의(消費地 精製主義)’*[efn_note]‘소비지 정제주의’는 산유국에서 수입한 원유를 자국에서 필요로 하는 석유제품으로 정제, 생산해 소비하는 정책을 말한다.
[/efn_note] 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국내 정유사들은 정부 정책에 적극 호응하며 소비지 정제주의 실현을 위한 막대한 투자와 설비 증설에 노력해 석유 자급이라는 에너지 안보를 이뤄냈고, 생산한 석유제품의 절반 이상을 해외에 수출하는 탁월한 경제적 성과도 거두고 있습니다.
가장 강력한 대정비 작업으로 건강하고 효율적인 설비로 개선
사람의 몸이 노화 과정을 거치면서 주기적으로 건강을 검진하고 병을 예방하며 발견된 위험인자를 약이나 수술 등의 방식으로 제거하는 것처럼 정유·화학 설비도 주기적인 점검과 유지 보수 과정을 거쳐 노후화되는 속도를 늦추고 효율을 개선하려는 끊임없는 노력이 이뤄집니다. 다만 사람은 자신의 선택으로 검진이나 치료 등을 받지않을 수도 있지만 정유·화학 설비 유지 보수는 선택의 영역이 아닌 의무라는 점에서 더 강력할 것입니다. 국내 최초 민간 정유사인 GS칼텍스가 올해 들어 3,000억 원이 넘는 비용을 투입해 대대적인 TA에 나선 데는 그 의무를 보다 엄격하게 이행하겠다는 강한 의지 덕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글로벌 석유 시황을 다룬 최근의 일부 언론 기사 내용입니다. 설비를 안전하게 통제, 관리하고 위험물을 위험하지 않게 생산하기 위해 세계 정유·화학 회사들은 주기적으로 정기 보수 작업을 실시하는데 그 과정에서의 일시적인 셧다운(shut down)은 석유 수급이나 유가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파급력이 큽니다. 정유·석유화학 기업 입장에서도 유지 보수에 막대한 비용이 투입되고 셧다운에 따른 생산 손실을 감수해야 하겠지만, 그렇더라도 ‘안전하고 효율적인 운전’이라는 가치를 뛰어넘을 수 없으니, 지금도 전 세계 정유·석유화학 기업들은 정기적인 유지 보수 작업에 나서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국가 경제와 에너지 안보 측면에서도 정유·화학 공정의 TA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TA는 정유·화학공장에서 진행하는 정기보수를 의미하는데 통상적으로 정상 운전 과정에서 진단이나 보수가 어려운 영역에 대해, 기한을 정해 일괄 점검하고 잠재적 위험 요소 등을 진단하고 조치하는 작업을 말합니다. 연속 공정으로 이뤄지는 정유·화학공장의 특성상 일부 설비의 문제만으로 모든 공정이 중단될 수 있어 전체 설비 상태를 최적의 상황으로 되돌려 놓는 TA의 중요성은 매우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정부도 국가 기간산업으로 지정 관리하고 있고 법으로 각 공정 시설의 연한과 교체 주기 등을 엄격하게 규제할 만큼 정유·화학 플랜트의 안정적인 운영을 중요한 가치로 삼고 있으며, 대한민국에서 정유·화학산업이 차지하는 의미에 부응하기 위해 GS칼텍스는 TA를 전담하는 별도의 팀을 조직·운영하고 있고 올해는 역대 최고 수준의 대정비를 진행하게 된 것입니다.
일자리 창출 등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기여
정유·화학 공정을 구성하는 설비들은 보통 4년 주기로 정기 보수가 진행됩니다. 모든 공정이 최소한 4년에 한번은 정기 보수를 받는 셈이지만, 다양한 공정을 소화하는 수많은 설비들이 파이프라인으로 촘촘히 이어져 있는 정유·화학 복합체(Complex)로서는 각 공정 파트별로 나눠 TA가 진행되니 매년 정기보수 수요가 발생될 수밖에 없습니다.
GS칼텍스 역시 매년 주요 설비 공정별 TA를 진행 중이며 최근 수년 동안에도 매년 40~60일 동안 2~3,000억 원의 예산을 투입해 정유·화학 공정의 잠재적 위험 요소를 사전에 제거하고 안전 운전과 효율성 개선을 위한 작업을 꾸준히 진행해 왔습니다. GS칼텍스는 올해 대정비 작업에 역대 최대 규모인 3,158억원의 예산을 투입하였는데, 이는 1분기 영업이익인 3,068억원 보다도 더 많은 수준이며, 최근 5년 동안 TA에 투입된 비용은 누적 약 1조 310억원에 달합니다.
올해 TA는 총 32개 공정에서 진행됐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원유가 투입되고 유분을 분리하는 상압증류장치 CDU(Crude Distillation Unit), 값싼 B-C를 수소 첨가 열분해 등을 통해 부가가치가 높은 경질유로 생산하는 중질유 분해설비인 RFCC(Residue Fluid Catalytic Cracking Unit), 방향족화합물(Aromatics)과 파라자일렌(PX) 같은 석유화학제품을 생산하는 설비 등 총 ’32개 공정’에 총 9개 팀이 투입돼 TA를 진행했는데, 최근 수년 동안 진행된 TA가 적게는 13개 공정에서 많아야 19개 공정에 5~7개 팀이 투입된 것을 감안하면 이번 대정비 작업은 2~3배에 달하는 공정에 대한 종합검진과 예방, 치료가 이뤄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난 3월 2일부터 5월 1일까지 총 59일 동안 진행된 TA에는 무려 연인원 158,000명이 동원되었습니다. TA 기간 동안 하루 최대 4,142명, 일 평균 2,464명의 인력이 투입됐는데 지역 경제와 일자리 창출에도 상당한 기여를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TA는 GS칼텍스의 숙련된 전문가들이 주도할 뿐만 아니라, 세부 작업에 많게는 하루 수 천명에 달하는 다양한 외부 제작·시공업체가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TA 주기 늘리고 로봇·AI도 적극 활용, 효율·안전 강화
올해 TA에서는 중질유 부가가치를 높이는 대표 공정인 RFCC의 TA 주기 연장에 상당한 공을 들였습니다. RFCC 공정은 통상적으로 최초 설치 후 2년 주기로 TA를 수행하는데, GS칼텍스는 공정 개선과 취약 구간 중심의 유지 보수 작업을 통해 그 주기를 단계적으로 연장해 현재는 4년마다 실시하고 있습니다. 이에 더해 올해는 이번 TA를 통해 RFCC TA 주기를 5년으로 추가 연장할 수 있는지의 여부를 집중 검토했습니다.
GS칼텍스는 하루 80만 배럴의 정제 능력 중 34.3%에 해당되는 27만 5,000배럴의 고도화 처리 능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하루 평균 27만 5,000배럴에 달하는 값싼 중질유를 부가가치가 높은 경질유와 친환경 고급 휘발유로 전환할 수 있는 RFCC는 ‘지상유전(地上油田)’으로도 불리는데 이 공정에 대한 TA 주기가 연장되면 공정 가동률은 높아지고 수익성은 개선되며 고품질 석유 수출 확대로도 이어지게 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RFCC 공정의 첫 번째 반응기 내부 전체 12개의 사이클론(Cyclone)을 교체했고 안정적인 전기 공급과 관리를 위해 변전실 신축, 330km에 달하는 케이블 교체가 이뤄졌습니다.
올해 TA에서는 AI와 로봇 활용도가 높아지면서 TA 과정에서의 안전과 작업 효율도 크게 개선되었고, 다양한 무선 CCTV로 위험관리와 안전 계도 활동이 이뤄졌는데 특히 시범 설치된 AI CCTV는 사람이 직접 모니터링하지 않더라도 테마를 학습해 자동으로 안전을 계도하는 효과가 확인되었습니다. 높은 지역에서 안전벨트를 착용하지 않은 경우에 스피커에서 자동으로 경고 메시지가 송출되는가 하면 고위험 작업을 선정해 총 12곳에 모바일·고정식 CCTV를 설치해 집중 관리하며 안전사고를 사전 방지하기 위한 강도 높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사람의 접근이 어렵거나 위험도가 높은 검사에는 로봇 역할이 확대되기도 했습니다. RFCC 공정에 투입되는 촉매로 설비가 부식돼 손상될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해 이전에는 비계(飛階, scaffolding)를 설치해 사람이 직접 검사했는데 현재는 로봇이 투입돼 설비 외부 전면에 대한 점검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폭발사고의 위험에 대비해 기압 테스트를 위해 관련 설비에 사람이 접근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는데, 올해 TA에서 GS칼텍스는 열교환기 파트 중 가장 미세한 누출 발생이 우려되는 튜브시트 롤 조인트(Tubesheet Roll Joint) 정밀 검사를 로봇으로 대체하는 파일럿 테스트를 거쳐 유효성을 확인했습니다. 내년부터는 로봇을 통한 정밀 검사를 올레핀 생산설비(MFC, Mixed Feed Cracker)의 TA부터 본격 확대 적용할 계획입니다.
가혹한 공정을 안전 관리하는 것이 정유·화학 공정의 본질
산유국에서 수입된 원유를 서울 장충체육관보다 큰 규모의 저장시설에 옮기는 것이 정유·화학 공정의 첫 단계입니다. 원유를 가열하거나 중질유를 분해하는 과정에 최대 600℃에 달하는 열이 가해지고 증류된 증기의 액화를 위해 냉각시키고 다시 증류하는 과정이 반복됩니다. 기화를 막기 위해 인위적으로 압력을 가하는가 하면 고온 증류 과정에서의 생산 수율 손실이나 품질 저하를 막기 위해 때로는 진공 상태로 압력을 낮추기도 합니다. 많게는 70개에 달하는 탄소 원자가 기다란 사슬이나 고리 모양으로 연결된 모습의 중질유를 휘발유, 경유와 같은 고부가가치 경질유로 전환하기 위해 수소, 촉매 등을 첨가해 작은 탄화수소 분자로 잘라내는 ‘크래킹(Cracking)’ 과정도 거치게 됩니다. 원유저장탱크에서 출발해 증류탑을 거치고 다양한 중간 공정을 지나 최종 석유제품이 생산되는 길목은 수만 개의 파이프라인이 수직, 수평으로 끊임없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상압증류탑에서 추출된 다양한 ‘유분(留分)’은 황을 제거하는 수소첨가탈황, 감압증류, 개질공정 등 또 다른 프로세스를 거쳐 우리가 실생활에서 사용하는 다양한 석유·석유화학제품으로 탄생되는데 생각보다 험난하고 가혹한 과정을 견뎌내야 합니다.
정유·화학 공정의 본질은 부가가치가 높은 고품질의 제품을 생산하는 것이지만 폭발·인화·유독성이 높은 위험물이 가열, 감압, 분해 등 가혹한 환경을 이겨낼 수 있도록 관리, 통제하는 것 또한 공장이 정상적으로 돌아가기 위해 필수불가결하게 필요한 제반 조건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TA는 매년 천문학적인 비용과 인원이 투입되어서 이뤄지는 고도의 계획된 정비 작업입니다. 수많은 공정들이 각기 다른 내구연한과 법적 관리 주기를 갖기 때문에 매년 정확한 측정과 점검을 통해 시설을 정비하고 교체해야 합니다.
GS칼텍스는 창사 이래 최대 규모의 이번 ‘대정비(Turn around)’를 통해 생산 효율을 개선함과 동시에 젊고 건강해지는 계기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번 TA가 100년 기업을 향해 가는 대전환(Turning point)의 초석이 될 것으로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