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결심이 작심삼일이 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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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결심이 작심삼일이 되는 이유 | magazine new years resolutions 02
2021년 새해가 시작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한 달이 지났다. ‘새해부터는 꼭…’이라며 이런저런 결심을 했던 사람들 대다수가 지금쯤 쓴웃음을 지을 것이다. 작심삼일(作心三日)이라고 처음 며칠은 독한 마음을 먹고 결심을 실천했지만, 어느 순간 지키지 못해 ‘아차!’ 하다가 그 뒤로는 흐지부지돼 예전으로 돌아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새해 결심은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흡연이나 과음, 야식 같은 안 좋은 습관을 끊는 것과 운동, 소식, 독서처럼 좋은 습관을 갖는 것이다. 새해 결심이 작심삼일이 되기 쉽다는 건 바꿔 말하면 기존 나쁜 습관을 버리거나 새로운 좋은 습관을 갖는 게 그만큼 어렵다는 말이다. ‘이성(理性)의 동물’인 인간이 이렇게 의지가 나약하다니 말이 안 되는 것 같다.

그러나 뇌 과학은 이런 사람들에게 너무 자책하지 말라고 위로한다. 우리 뇌는 의지가 나쁜 습관, 즉 충동을 이기기 쉽지 않게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한번 든 나쁜 습관을 결코 끊을 수 없다거나 좋은 습관을 새로 익힐 수 없다는 뜻은 아니다. 반대로 습관이 만들어지는 메커니즘을 이해하면 새해 결심을 실천하는 데 성공할 확률이 높아질 것이다.

행동 반복될수록 의식에서 무의식으로

어떤 행동도 처음 한두 번 해서는 습관으로 굳어지지는 않는다. 처음에는 의식적으로 행동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 어느 순간 자기도 모르게 하고 있다면 습관이 된 것이다. 즉 어떤 행동이 의식의 통제에서 무의식의 통제로 넘어가는 과정이 습관화다.

지난 수십 년 사이 신경과학자들은 우리 뇌에 ‘습관회로(habit circuit)’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어떤 행동을 반복하다 이 회로에 걸려들면 습관이 돼 좀처럼 벗어나기가 어렵게 된다. 그렇다면 어떤 행동이 습관화될 때 뇌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까. 연구결과 이 과정에서 뇌의 활동 패턴이 3단계에 걸쳐 바뀐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먼저 새로운 행동을 배울 때로 전전두엽과 선조체, 중뇌가 활성화됐다. 즉 낯선 경험이기 때문에 뇌가 의식적으로 학습하고 이 활동에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이다. 다음은 습관이 형성되는 단계로, 행동이 몇 번 반복되면 이제 전전두엽은 조용히 있고 선조체와 감각운동피질(전두엽과 두정엽 경계면에 있는), 중뇌의 연결망이 강화된다. 행동의 자동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끝으로 습관이 각인되는 단계로, 선조체의 활동을 변연계아래피질(infralimbic cortex, 전두엽 아래 존재)이 관리하게 된다. 이때도 중뇌가 활성화되는데, 중뇌에서는 도파민을 분비해 행동에 쾌감(보상)이 따르는 결과를 준다.
새해 결심이 작심삼일이 되는 이유 | magazine new years resolutions 01
어떤 행동을 처음 할 때는 의식의 영역인 전두피질(frontal cortex)이 주로 활동하지만(위) 습관화가 될수록 무의식의 영역인 선조체(striatum)가 주로 담당한다(아래). 그림에는 표시되지 않았지만 습관적인 행동을 할 때 선조체의 활동에 변연계아래피질이 관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제공 ‘The Neuroscience of Ayurveda’)
결국 습관이란 어떤 일련의 행동이 하나의 묶음이 되면서 자동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인데, 이 과정에서 의식을 담당하는 뇌 영역인 전두피질이 거의 관여하지 않기 때문에 꽤 정교한 행동조차도 자기도 모르게 수행하게 된다. 즉 습관은 무의식적인 행동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 뇌는 습관회로를 진화시킨 것일까.

우리의 일상생활 대다수는 반복적인 행동이다. 이를 매번 의식적으로 행한다면 엄청난 낭비다. 예를 들어 옷을 입을 때 단추와 단춧구멍을 하나하나 보면서 찾아 낀다고 생각해보라. 모든 행동을 의식적으로 해야 한다면 우리의 삶은 크게 위축될 것이다. 즉 이런 반복 행동은 습관화시켜 뇌가 의식적 노력이 필요한 다른 일을 할 수 있게 만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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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를 없앨 수 있으면 좋지만…

그런데 안타깝게도 한번 만들어진 습관회로는 사실상 사라지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따라서 나쁜 습관을 극복하려면 습관회로를 작동시키지 않거나 이를 변형시키는 전략이 필요하다. 먼저 일상에서 할 수 있는 일로는 습관을 유발하는, 즉 충동을 느끼게 하는 ‘신호’를 없애야 한다. 즉 군것질 습관이 있다면 집이나 사무실에 군것질거리를 없애야 하고 흡연 습관이 있는 사람은 담배를 없애는 건 물론 흡연실은 쳐다보지도 말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서 나쁜 습관으로 이어지는 신호를 100% 없앨 수는 없다. 따라서 특정 신호에 다른 행동으로 반응하는 새로운 습관을 만드는 것도 효과적인 방법이다. 사람은 사람으로 잊는다는 말도 있듯이, 나쁜 습관도 대안이 있어야 고칠 가능성이 더 크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한 참 일을 해 정신이 멍해지며 담배 한 대가 간절해지면 대신 커피나 녹차 한 잔을 마시는 식이다. 니코틴 대신 카페인을 섭취하는 것이다. 아무것도 안 하면서 의지만으로 극복하려면 실패하기 쉽지만 다른 행동으로 습관회로를 속이면 성공 확률이 높아진다.

같은 신호에 대해 나쁜 습관에서 좋은 습관으로 행동을 바꿀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앞의 경우에서 흡연의 대안으로 산책 같은 가벼운 운동을 선택할 수 있는 여건이라면 더 좋다는 말이다. 군것질 생각이 날 때도 빵이나 과자 대신 견과류나 과일을 먹는다면 몸에 덜 해롭고 때로는 건강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이런 지식이 있더라도 사실 나쁜 습관을 없애기는 어렵다. 잘 실천하다가도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 순간 무너지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절치부심 금연에 성공한 사람이 하루는 아내와 심하게 다퉈 “이럴 바엔 이혼하자!”는 말까지 들은 뒤 집을 뛰쳐나와 3년 만에 담배를 입에 무는 식이다. 그런데 어떻게 스트레스는 오랫동안 잠자고 있던 습관회로를 단번에 깨울 수 있는 것일까.

우리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의식을 담당하는 뇌가 그 문제에 집중하기 때문에 무의식적 행동을 주관하는 습관회로를 통제할 여력이 없다. 따라서 평소 같으면 의식에 눌려 미처 인지하지 못하던 사소한 신호가 잠자는 습관회로를 깨울 수 있고 재개된 습관 행동이 한두 번 반복되면서 회로가 완전히 재활성화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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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부의 몸짓으로 나쁜 습관 밀쳐내

나쁜 습관 행동의 극단적인 형태가 강박증이다. 알코올의존증이나 파산처럼 큰 타격을 입을 결과가 나올 걸 뻔히 알면서도 술이나 도박을 끊지 못하는 사람들이 그런 경우다. 이런 사람들은 혼자 극복하기 어렵기 때문에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게 좋다. 강박적인 습관을 고칠 수 있는 뛰어난 방법 가운데 하나가 ‘체화된 인지(embodied cognition)’다.

체화된 인지란 서로 은유적으로 비유된다고 생각했던 신체적 감각 또는 행동이 정신에 영향을 미치는 현상이다. 가장 유명한 예로는 ‘맥베스 효과(Macbeth effect)’가 있다. 셰익스피어의 비극 ‘맥베스’에서 스코틀랜드의 무장 맥베스는 아내와 짜고 자신의 성을 방문한 국왕을 살해한 뒤 왕위에 오른다. 이 과정에서 맥베스 부인이 손을 씻으며 죄를 떨쳐버리려는 장면이 나온다.

맥베스 효과는 과학으로 입증됐다. 한 실험에서 참가자들에게 과거 죄스러운 일을 회상하라고 한 뒤 타인에 대한 협조 성향을 조사했다. 이때 한 그룹은 그사이에 손을 씻게 했다. 독감 예방을 위해서라고 이유를 댔다. 설문 결과를 분석하자 손을 씻은 그룹이 씻지 않은 그룹보다 협조 성향이 낮게 나왔다. 손을 씻으면서 회상으로 인한 죄의식이 같이 씻겨 내려가면서 죄의식을 상쇄하기 위한 행동인 타인에 대한 협조 의사가 낮아진 것이다.

그렇다면 금주 선언 같은 결심의 실행과 체화된 인지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네덜란드 암스테르담대 연구자들은 알코올의존증 치료 과정에서 한 그룹에게 흥미로운 행동실험을 했다. 모니터 화면을 보다가 술병이나 술잔이 등장하면 의자 옆의 레버를 앞으로 밀쳐내라고 한 것이다. 이런 행동을 한 건 하루 15분씩 불과 나흘 동안이었지만, 퇴원하고 1년 뒤 재발한 비율이 46%로 이런 행동을 하지 않은 집단의 59%보다 훨씬 낮았다. 거부의 몸짓인 밀쳐내기가 술과 겹쳐지면서 무의식적으로 술을 거부하게 됐다는 것이다. 실제로 참여자 가운데 한 사람은 파티에서 목이 말라 콜라를 마시려고 냉장고 문을 열었다가 맥주만 잔뜩 있는 걸 보고 자신도 모르게 문을 세게 밀쳐 쾅 닫아 위기를 넘겼다는 에피소드를 전해주기도 했다.

습관이 될 때까지 잘 버텨야

한편 좋은 습관을 들이기 위해서는 인내를 가져야 한다. 새로운 행동이 습관이 되려면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앞서 습관화의 3단계에서 언급했듯이 한동안은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미국의 의사이자 자기계발전문가인 맥스웰 몰츠는 저서 ‘성공의 법칙’에서 “무엇이든 계속하면 습관이 된다”며 ‘21일 법칙’을 제안했다. 반세기 전 그의 주장은 뇌 과학이 ‘습관회로’를 밝혀냄에 따라 그 메커니즘이 입증된 셈이다.

이 사실을 명심한다면 좋은 습관을 가지려는 새해 결심이 작심삼일로 흐지부지되는 일은 좀처럼 없을 것이다. 행동의 습관화가 진행될수록 의식적 노력이 덜 들 것이라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새로운 행동을 습관으로 만들 때 역시 적절한 ‘신호’가 도움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아침에 운동을 하기로 했다면 전날 밤 현관 앞 잘 보이는 곳에 운동화를 갖다 놓는 식이다.

코로나19 사태가 1년째 이어지면서 경제뿐 아니라 건강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코로나블루로 불리는 우울증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크게 늘었고 불면증도 심각하다.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며 체중이 늘어난 사람도 많다. 음주량이 많아지고 흡연율이 높아졌다는 뉴스도 들린다.

이제 며칠 있으면 설날이다. 엄밀히 말하면 소띠 신축년(辛丑年) 새해가 시작되는 날이다. 양력에 맞춰 새해 결심을 했다가 실패해 낙담한 사람들은 심기일전해 설날을 맞아 다시 한번 새해 결심을 해보면 어떨까. 이제 습관의 과학을 어느 정도 이해했으니 적어도 작심삼일은 되지 않을 것이다.
새해 결심이 작심삼일이 되는 이유 | profile 강석기

강석기 - 과학 칼럼니스트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다.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한 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9권)》, 《생명과학의 기원을 찾아서》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반물질》, 《프루프: 술의 과학》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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