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022년 상반기 유가 동향
2021년 이후 세계 경제가 코로나19 영향력에서 점차 벗어나며 원유 수요도 회복세를 보인 반면, 공급은 제한적으로 증가함에 따라 국제 원유시장은 타이트한 수급 상황이 이어졌다. 공급이 타이트한 상황에서 2022년 초 리비아 내전으로 인한 일부 유전의 불가항력 선언, 러시아-우크라이나 간 지정학적 불안 확대 등에 따른 공급 차질 우려로 유가는 상승세를 보였다. 급기야 2022년 2월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며 러시아발 공급차질 우려가 현실화되었다. 세계 2위의 산유국인 러시아의 원유 생산량은 약 1,100만 b/d, 수출량은 약 521만 b/d로 세계 원유생산량과 수출량의 각각 12%에 달한다(BP 통계, 2020년 기준). 미국이 러시아산 원유수입 금지를 천명(3.8일)하는 등 공급 불안은 최고조로 높아졌다. 이를 반영하여 유가는 배럴당 120달러 대로 폭등(3.9일, 두바이유, $127.86/bbl)하였고, 2008년 7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하였다. 당시 에너지조사기관인 라이스타드 에너지(Rystad Energy)는 미국에 이어 유럽의 러시아 원유수입 중단이 이어질 경우 유가가 배럴당 200달러까지 상승할 수 있다고 전망하기도 하였다.
3월 중순 유가는 미국 원유재고 증가, 러-우 협상 기대감 등으로 전쟁 발발 초기의 배럴당 100달러 수준으로 하락(3.15일, 두바이유, $99.78/bbl)하였다. 이후 EU의 러시아산 원유거래 중단 검토(3.21일), 러시아의 CPC(카스피 송유관 컨소시엄) 가동 중단(3.24일) 등에 따라 유가가 다시 배럴당 110달러 대로 상승(3.24일, 두바이유, $115.6/bbl)했으나 이후 4월초까지 국제 에너지 기구(IEA)의 비축유 방출 결정, 중국 ‘제로 코로나’ 방침 하의 강력한 봉쇄조치에 따른 수요위축 등으로 재하락하는 등 배럴당 100달러대 이상의 고유가를 유지하는 가운데 등락을 거듭하고 있다.
4월 이후 유럽 연합(EU)의 러시아산 원유 수입 금지계획, 중국의 봉쇄완화 및 드라이빙 시즌 도래에 따른 수요회복 기대감 등으로 추세적으로 상승세를 보이며 6월 중순 배럴당 120달러에 육박하였다. 하지만 미국의 자이언트스텝 금리 인상 등 고강도 긴축 정책, 경기침체 우려 등으로 6월 중순 이후 상승세가 한풀 꺾이며 6월말 110달러 내외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2022년 상반기 유가 추세를 간략히 정리하면 러-우 전쟁 등 지정학적 리스크로 인해 타이트한 원유수급 상황이 더욱 심화되며 배럴당 120달러 대까지 상승하는 등 강세를 보이다가, 6월 중순 이후 글로벌 경기침체 우려로 소폭 하락세를 나타내고 있다. 즉 2022년 상반기 유가는 공급차질 우려 증폭으로 큰 폭으로 상승하여 두바이유 평균 가격 기준으로 배럴당 약 102달러를 기록하였는데 이는 전년동기 평균인 배럴당 64달러 대비 거의 2배 수준이다. 이하에서는 원유시장의 수급 요인을 중심으로 2022년 하반기 유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인들과 이를 바탕으로 하반기 유가 향방에 대해 살펴보도록 한다.
2. 2022년 하반기 석유시장 전망
가. 수요
코로나19 팬데믹의 영향력에서 서서히 회복하고 있던 세계 경제는 러-우 전쟁 발발 및 장기화에 따른 세계 공급망 제약의 심화, 그로 인한 인플레이션 가속화, 중국 대봉쇄에 따른 수요 위축 등으로 또 한 번의 큰 충격을 받고 있다. 이를 반영하여 IMF(국제통화기금) 등 주요 기관들은 잇달아 경제성장률 하향 조정에 나서고 있다. 6월 24일, IMF는 2022년 미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지난 3월 3.7%에서 2.9%로 대폭 하향 조정하였다. 2023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도 지난 4월 2.3%에서 1.7%로, 2024년 전망치는 0.8%로 더욱 낮아진 이후 2025년 1.7%, 2026년 2.1%로 서서히 반등할 것으로 예상하였다. 한편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는 지난 6월 17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기준금리를 75bp 인상하였는데, 이는 1994년 11월 이후 28년 만의 최대 인상폭이다. 미국의 자이언트스텝 금리 인상 단행, 공급망 제약에 따른 인플레이션 심화와 저성장 우려, 투자 심리 위축 등으로 글로벌 석유 수요 회복세가 둔화될 전망이다.
미국에너지정보청(EIA)은 6월 월간보고서에서 2022년 석유수요가 전년대비 228만 b/d 증가한 9,963만 b/d로 추정하였고, 2023년은 올해 대비 약 169만 b/d가 증가한 1억 132만 b/d로 전망하며 석유수요 증가세가 크게 둔화될 것으로 전망하였다.
물론 석유 수요회복 기대감도 여전히 남아있어 큰 폭의 유가 하락은 제한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의 드라이빙 시즌 도래, 중국 봉쇄 해제, 글로벌 항공용 수요 회복 등이 하절기 유가 상승을 지지할 전망이다. 실제로 미국의 항공용, 도로용 수요(휘발유)는 이미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수준에 근접하며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나. 공급
연초 공급차질 우려를 증폭시켰던 러-우 전쟁이 장기화되고 있다. 또한 하반기에 전쟁이 종료된다 하더라도, 서구의 러시아 경제제재는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유럽은 러시아에 대한 원유수입 의존도가 약 30%에 달하고 있어 러시아산 원유를 대체할 공급원 확보가 어려워 당초 유럽이 자발적으로 수입을 중단할 가능성은 비교적 낮을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러-우 전쟁이 장기화되고, 예상과 달리 영국에 이어 폴란드, 독일, 오스트리아 등 EU 국가들이 러시아산 석유의 단계적 금수조치에 찬성하고 있어 하반기에도 타이트한 수급 상황이 이어질 전망이다. 다만 서방국가들이 러시아 석유 의존도를 낮추는 반면, 친러국가인 중국, 인도 등이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대폭 확대하며, 전체적인 원유수급 균형을 맞춰가고 있어 공급불안 리스크는 전쟁 발발 초기보다는 다소 약화될 것으로 평가한다. 한편 미국, 유럽 등의 금수조치, 경제 제재 등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의 원유 수출제한 효과가 예상보다 크지 않아 일각에서는 실질적인 러시아 제재 효과보다는 원유시장의 공급불안 요인만 증폭시키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러시아산 원유를 대체 공급할 수 있는 지역은 크게 세 지역으로 압축할 수 있다. 먼저 OPEC+ 산유국의 추가적인 공급 확대를 기대해 볼 수 있다. OPEC+는 점진적인 증산을 지속하고 있는데 현재와 같은 고유가가 지속될 경우 글로벌 원유 수요가 위축될 수 있다. 또한 미국의 셰일오일 생산이 확대되어 시장점유율을 뺏길 수 있기 때문에 OPEC+ 입장에서도 고유가가 마냥 행복하기만 한 상황은 아닐 것이다. 이에 따라, OPEC+가 유가 안정화를 위한 추가적인 증산 가능성이 존재한다. 한편 사우디아라비아는 러시아가 OPEC+ 주요국임을 강조하였는 바, OPEC+ 내에서 러시아산 원유 비중이 대폭 축소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현재 OPEC+는 매월 40만 b/d의 점진적인 증산을 유지하고 있으며, 사우디는 약 200만 b/d의 잉여생산능력을 보유하고 있어, 고유가 지속으로 인한 수요둔화 움직임이 나타난다면 유가 안정화를 위해 추가적인 증산조치를 실행할 가능성이 존재한다.
다음으로 미국의 원유생산량 증가를 기대해 볼 수 있다. 2022년 급격한 유가 상승세에 비해 미국의 신규 시추리그 수는 다소 완만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었으며, 원유 생산량도 증가세를 지속하고는 있으나 생산비용 증가, 자재 부족, 미완결유정 감소 등으로 코로나19 이전의 최고치 수준인 1,300만 b/d보다 낮은 약 1,200만 b/d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하지만 고유가 하에서 미국의 석유 시추리그 수 증가세가 꾸준히 이어진 결과 6월말 기준 594기를 기록하며 지난 2020년 3월(624기) 이후 최대치를 기록하였고, 이에 따라 향후 원유 생산량 증가폭 역시 확대되어 러시아발 공급불안 해소에 기여할 전망이다. EIA는 지난 6월 보고서에서 미국의 원유 생산량이 2022년 1,192만 b/d로 전년 대비 73만 b/d 증가한데 이어 2023년에는 올해 대비 105만 b/d가 증가한 1,297만 b/d로 전망하며, 이전 최고치 수준에 근접할 것으로 예상하였다.
마지막으로 현재 서방국가의 제재 하에 원유 수출이 제한되고 있는 이란도 대체공급이 가능한 지역 중 하나이다. 물론 미국의 대이란 제재 해제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미국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이후 이란핵합의(JCPOA) 복원을 위한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올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유가가 급등하면서 JCPOA 복원 협상이 빠르게 마무리될 것으로 기대하였으나 중요 조항에서 아직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특히 협상 당사국 중 하나인 러시아가 JCPOA 복원을 빌미로 우크라이나 침공과 관련한 서방 제재에서 대이란 교역과 투자에 대한 예외 보장을 요구하는 등 협상 막바지 단계에서 난항을 거듭하고 있다. JCPOA 복원 협상까지 중요한 관문이 남아있는 상황이긴 하나 핵협상이 타결되어 미국의 대이란 제재가 해제될 경우, 이란산 원유가 국제석유시장에 빠르게 유입되며 수급 타이트 상황을 완화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란의 원유 생산능력은 약 450만 b/d, 현재 생산량은 250만 b/d, 수출량은 60만~70만 b/d 수준으로 추정된다. 다만 서방국가의 경제제재 동안 이란 원유생산 시설 투자가 지연되어 원유 생산량이 제재 이전 수준(380만 b/d)으로 복구되는데, 3~6개월 정도가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며, 약 80만 ~130만 b/d 수준의 원유 수출 증가가 예상된다. 이란산 원유는 러시아산 석유 부족분을 일정 부분 상쇄하며 유가 상승세를 둔화시킬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다. 재고
2020년 초 코로나19 영향으로 사상 최고치 수준을 기록했던 OECD 회원국의 상업용 원유재고는 2021년 하반기 이후부터 타이트한 공급여건 하에 5년래 최저치 수준까지 낮아졌다. 2022년에도 여전히 재고가 매우 낮은 수준을 기록하고 있지만 석유수요 증가율 둔화와 함께 OPEC+, 미국 등의 증산에 따른 러시아발 공급충격 완화에 힘입어 OECD 회원국의 원유재고도 완만하게 증가하여 2022년말 이후부터는 5년래 최저치 수준에서 점차적으로 벗어날 것으로 기대된다.
3. 2022년 하반기 유가전망
2장에서 살펴본 수급 요인 외에 현재 원유시장을 둘러싼 예측 불가한 변수들이 매우 많은 상황이다. 6월말 이후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들은 러시아 제재를 위해 러시아산 원유가격의 상한선을 배럴당 40~60달러로 제한하는 방안을 논의 중에 있다. 배럴당 40~60달러는 러시아산 원유의 한계 생산비용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전의 유가 수준을 고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가 상한제가 실제 실행될지, 실행된다면 상한 가격대가 어느 범위에서 정해질지는 의견이 분분하다. JP모간은 서방국가의 러시아산 원유 가격 상한제 실행 시 이에 대응하여 러시아가 경제적 이익을 과도하게 해치지 않으면서 최대 500만 b/d 수준까지 감산할 수 있으며, 이 경우 유가는 현재보다 약 4배 높은 배럴당 380달러로 폭등할 수 있음을 경고한 바 있다.
이처럼 향후 유가 전망과 관련한 돌발변수들이 산적한 상황이나 펀더멘탈한 수급 요인에 기초하여 살펴보면 하반기에도 러-우 전쟁 장기화 영향 등 공급불안 요인으로 타이트한 수급상황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어 높은 수준의 유가가 이어질 전망이다. 다만 글로벌 경기침체 우려, 인플레이션에 따른 원유수요 증가세 둔화가 예상되고, OPEC+의 증산, 미국 셰일오일 생산량 증가 등이 러시아발 공급 충격을 완화하여 2022년 하반기 석유시장은 근소한 공급초과 상황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유가도 상반기보다는 소폭 하락한 배럴당 100달러 수준이 될 것으로 전망한다.
성동원 선임연구원 -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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