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유사, 글로벌 석유시장의 스윙 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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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적으로 석유 물가가 고공행진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유가 때문이다. 원재료인 원유 가격이 급등한 충격이 완제품 석유 가격에 고스란히 반영되고 있다. 달러화가 뚜렷한 강세를 보이는 것도 물가 부담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원유보다 더 큰 문제가 석유제품 쇼티지(Shortage)이며 그 원인으로 정제설비에 대한 투자 부족을 꼽고 있다. 실제로 산업, 수송 등 일상적인 경제 활동에 투입되는 에너지가 원재료 원유가 아닌 완제품 석유라는 점에서 세계 정제설비 부족 사태는 더 심각한 수급난을 유발할 수 있다.

다행스러운 점은 우리나라 정제설비 능력은 세계 최상위권이며 수출 비중도 높아 내수 석유 수급 안보에 대한 우려는 낮다는 점이다.

정제설비가 세계 석유 수급에 미치는 영향과 경고 메시지, 한국 정유사들의 위상을 정리해봤다.

IEA, ‘제한된 세계 정제 여유 용량이 석유 타이트 악화’

‘지난 4월 원유 가격은 전반적으로 낮은 수준을 보였는데 휘발유와 경유 정제 마진은 사상 최고 수준으로 치솟으며 소비자 가격을 끌어올렸다’

(Crude prices trended lower overall, diesel and gasoline cracks surged to record levels, pulling up refinery margins and end-user prices)

매월 ‘석유시장보고서(OMR, Oil Market Report)’를 발간하는 국제에너지기구 IEA가 5월 간행물에서 4월 석유 시황을 분석한 내용이다. 실제로 브렌트와 WTI 4월 평균 가격은 그 전 달에 비해 배럴당 각각 6.55불, 6.62불 하락했다. 우리나라 주요 수입 유종인 두바이유는 8.11불이 떨어졌다.

그런데 이 기간 동안 정제마진은 십수 년 이래 최고 수준을 기록하며 고공행진을 거듭했다. 우리나라 주요 증권사들이 분석한 바에 따르면 올해 들어 정유사 복합정제마진은 폭발적으로 개선되고 있다. 1∼2월 배럴당 5~7불대에 불과했던 마진은 3월에는 13불대, 4월 들어 최대 20불, 5월에는 그 이상을 기록할 정도로 호황을 누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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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영향으로 유럽을 중심으로 심각한 수급난을 겪은 경유 마진은 40불대에 육박했다. 기본적으로 국제유가가 급등한 영향을 빼놓을 수 없지만 IEA는 ‘세계 정제 시스템의 제한된 여유 용량이 석유 제품의 타이트함을 악화시켰다’며 원유 생산, 공급 단계인 업스트림(Upstream)보다 석유 완제품을 생산하고 유통하는 다운스트림(Downstream)의 결핍에 주목했다.

구체적인 정황도 소개됐는데 IEA는 ‘4월 세계 정제 처리량은 하루 140만 배럴 하락한 7,800만 배럴에 머물러 2021년 5월 이후 최저 수준을 기록했고 중국 정유사들의 가동률 하락 영향이 컸다’고 밝혔다. 중국 정부가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상하이 등 대도시를 전격 봉쇄했고 탄소저감을 목적으로 석유 수출도 줄이면서 2020년 3월 이후 정제 처리량이 가장 낮은 수준까지 떨어졌다는 IEA 분석이다.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높은 석유가격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미국은 정제 가동률을 끌어올리고 있지만 한계에 처해 있다. 현재 미국 정제시설 가동률은 90%를 크게 넘는 수준까지 상승해 추가적인 생산 증대 여력이 없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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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관련해 IEA는 ‘미국 정제 처리량은 올해 1분기 대비 오는 3분기에는 하루 68만 배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도 ‘계절적 요인 등으로 휘발유, 등유, 경유 같은 주요 석유제품의 자국 내 수요가 거의 같은 폭으로 증가해 수출 능력이 확대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제 능력 한계가 향후 석유 물가 상승을 추가 압박할 수 있다는 IEA의 전망은 미래의 불안감도 증폭시키고 있다. IEA는 ‘중국 코로나19 봉쇄 규제가 완화되고 미국 등을 중심으로 하절기 드라이빙 시즌이 도래하면서 수송 연료 소비가 회복되며 항공유 소비도 늘어나 세계 석유제품 수요는 4월 이후 8월까지 하루 360만 배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진단했다. 또한 ‘정유사들이 보조를 맞추지 못하면 석유 시장과 소비자들은 추가적인 압박을 받을 수 있다(If refiners cannot keep pace, product markets and consumers could come under additional strain)’고 우려했다.

세계 정제용량 감소·신설 취소 등 투자 부족 심각

세계 정제설비 부족 사태를 지적하는 목소리는 IEA에서 그치지 않고 있다.

지난 5월 24일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에 참석한 세계 최대 산유국 사우디의 파이살 빈 파르한 알 사우드(Faisal bin Farhan al-Saud) 외무장관은 ‘휘발유, 경유 등 제품가격 강세가 정제 부문 투자 부족에 기인한다’고 발언했다. 석유정보망에 따르면 파이살 빈 파르한 장관은 ‘최근 2년 여간의 정제 부문 투자 부족이 석유제품 공급 부족의 주요 원인으로 단순히 원유를 더 많이 공급하는 것만으로는 소비자 부담을 경감할 수 없다’고 평가했다.

세계 정제설비 용량이 감소하고 있다는 분석도 제시되고 있다. 플래츠(Platts)는 ‘시설 폐쇄, 바이오연료 제조시설로의 전환 등으로 전 세계 정제용량이 2020년 하루 41만 배럴, 2021년 5만 배럴 줄었다’고 밝혔다. 팬데믹에서 벗어나면서 세계 석유 수요는 회복되는데 석유를 생산하는 설비를 줄어들고 있는 셈이다. 전 세계적으로 운휴 중인 정제시설 용량도 올해 2월 하루 1,085만 배럴에서 4월 1,400만 배럴까지 확대됐다는 석유정보망의 분석이다.

올해 중 사우디 Jazan, 쿠웨이트 Al-Zour, 중국 Zhoushan 등 대규모 정제 시설의 가동이 개시될 계획이지만 다수의 정제시설이 폐쇄되거나 바이오연료 제조용으로 전환될 예정으로 정제능력을 늘리는 데는 기여하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도 제시되고 있다. IEA 역시 5월 보고서에서 ‘중동의 새로운 정제설비 증설과 유럽, 중남미, 아시아의 정제설비 재가동은 지연될 가능성이 있다’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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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에너지 전문기관도 같은 맥락의 분석을 제시하고 있다.

에너지경제연구원 이달석 명예선임연구위원은 최근 본지에 기고한 글에서 ‘2010년대 중반의 유가 하락 때에는 주로 산유국의 국영석유회사들이 계획하고 있었던 정제시설 건설을 취소했고 2020년 코로나19에 의한 수요 감소와 유가 하락 때에는 국제석유회사들 중심으로 노후화된 정제시설을 폐쇄했다’며 ‘에너지정보업체 EI에 의하면 현재 세계 정제능력은 코로나19 직전에 비해 하루 약 400만 배럴이 적다’고 소개했다.

이달석 위원은 특히 ‘최근 세계 석유시장에서는 원유보다 석유제품의 공급 부족이 더 심각하다’며 ‘석유가 신‧재생에너지로 전환되는 속도보다 더 빠른 속도로 석유생산 투자가 축소돼 화석에너지는 물론이고 신‧재생에너지 공급도 부족한 상황에 직면하게 됐다’고 진단했다.

여러 분석과 평가 등을 요약하면 코로나19 팬데믹이 종식되는 과정에서의 경기 회복과 국경 봉쇄 완화 등이 맞물리면서 석유 수요는 증가 중인데 정제 설비는 줄고 있고 에너지전환으로 탈화석연료 붐이 일면서 정제설비 신증설에 대한 신규 투자까지 취소, 위축되며 석유를 생산할 시설 부족이 심각해질 수 있다는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

이와 관련해 에너지경제연구원 이달석 명예선임연구위원은 ‘세계 각국은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석유기업들로 하여금 적절한 석유 투자와 함께 신‧재생에너지 투자를 확대하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며 탈석유에만 몰입하지 말고 에너지 정책에서 ‘중용(中庸)’이 필요하다는 점을 시사했다.

세계 5위 정제 능력 갖춘 한국, EU 수급난 숨통도 틔워

세계적으로 정제설비 규모나 처리 능력이 감소 중인 상황에서 우리나라 정유사들이 세계 거의 유일한 스윙 프로듀서(Swing Producer) 역할을 하고 있다는 분석이 주목받고 있다.

‘스윙 프로듀서(swing producer)’는 ‘세계 석유시장에서 자체적으로 원유 생산량을 조절해 전체 수급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산유국’을 말하는 용어다. 하지만 원료인 원유보다 완제품인 석유제품 부족이 심각한 상황에서는 산유국보다는 오히려 정제능력이 우수한 국가가 스윙 프로듀서 역할에 더 가깝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그런 측면에서 세계 5위에 해당하는 정제설비 능력을 보유 중이고 수출 비중까지 높은 우리나라 정유사들이 글로벌 스윙 프로듀서로 주목받고 있다.

글로벌 메이저인 BP가 매년 발간하는 ‘BP Statistical Review of World Energy’의 가장 최근 버전인 2021년 판에 따르면 한국 정유사들의 ‘정제 설비 능력(Oil Refining Capacity)’은 하루 357만2,000배럴로 세계 5위를 기록 중이다. 미국이 하루 1,814만 배럴로 1위, 1,669만 배럴의 중국이 2위, 673만 배럴의 러시아가 3위, 501만 배럴의 인도가 4위에 랭크되어 있고 그 뒤를 이어 우리나라가 5위로 집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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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우리나라 보다 경제 규모가 큰 일본의 328만 배럴도 수년 전에 뛰어넘었다. 더 주목할 대목은 한국 정유사들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단일 정제능력 기준으로는 한국 정유사 3곳이 세계 톱 5 정제 능력을 갖추고 있어 채산성과 가격 경쟁력이 탁월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 같은 장점 때문에 세계 전체의 3.5%에 불과한 정제 설비 능력을 갖춘 한국 정유사들이 스윙 프로듀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하나금융투자 윤재성 애널리스트는 지난달 발간한 정유산업 분석 리포트에서 ‘한국 정유업체는 수출과 내수의 비중이 50:50으로 다른 국가 대비 수출 비중이 압도적’이라고 평가하고 ‘현재의 글로벌 석유제품 쇼티지(Shortage) 상황에서 유연하게 수출처를 다변화하면서 수혜를 받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스윙 프로듀서(Swing Producer)가 한국’이라고 평가했다.

이 같은 분석은 통계로도 확인되는데 대한석유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정유사들의 원유 수입액은 621억 3,763만 달러를 기록했는데 이 중 53.5%에 해당하는 332억 3,534만 달러의 석유제품을 수출했다.

가장 최근인 5월 우리나라 석유 수출액은 사상 처음으로 한 달 60억불을 뛰어넘으며 64억불을 기록했다. 이 기간 우리나라 전체 수출액이 615억불을 기록했던 것을 감안하면 석유가 약 10%의 기여도를 보인 셈이다. 특히 금액 기준으로 반도체에 이어 2위를 차지하며 자동차, 철강, 선박 등 주력 수출품목을 모두 제쳤다. 이 같은 석유 수출 강세와 관련해 산업통상자원부는 ‘아시아는 물론이고 미국, EU 등 주요 석유 시장에 대한 한국 정유사 수출이 고르게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특히 EU에 대한 수출 증가율은 전년 동기 대비 무려 514.4%에 달할 정도로 성장했는데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로 경유를 비롯한 석유제품 수급에 심각한 어려움에 봉착한 EU 등에 한국 정유사들이 숨통을 틔워주고 있음이 통계로 확인되고 있다.

안정적으로 석유제품을 생산, 공급할 수 있는 정제설비의 노후화와 폐쇄, 신규 투자 위축 등으로 세계 석유 수급이 위협받고 있는 상황은 불안하지만 끊임없이 대규모 투자를 단행해 설비 증설과 고도화설비 능력을 확충해온 한국 정유사들이 세계 석유 시장에서 스윙 프로듀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은 큰 위안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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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 - 에너지플랫폼뉴스

전북대학교에서 독어독문학을 전공했다. 하지만 전공과는 상관없는 에너지 분야 전문 언론에서 20년 넘는 세월을 몸담고 있는 에너지 분야 전문 기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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