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 굴기(崛起) 넘보는 중국, 미국 정제능력도 뛰어넘을까?

GS칼텍스 -

세계 석유 수요 증가세가 둔화되고 있다. 최근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은 올해 세계 석유 수요를 하루 9,240만 배럴로 전망했다. 이 전망이 적중한다면 세계 석유 수요는 지난해보다 하루 평균 885만 배럴 줄어들게 된다. 코로나 19 팬데믹으로 지구 곳곳의 하늘길이 봉쇄되고 이동이 제한되는 등 올해 들어 석유 소비가 감소할만한 특별한 사정이 있었던 것은 맞다.

하지만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도 석유 소비가 예전으로 회복되는 것은 어렵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특히 세계적으로 탄소 중립과 에너지 전환 바람이 거세지고 있어 석유 수요가 정점에 도달했다는 분석도 힘을 얻고 있다.

한편에서는 정제산업 수익성 저하로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설비 폐쇄가 가속화될 것이라도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세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중국은 정제설비를 확장 중이다. 유가 하락 기조에도 불구하고 자원개발도 열심이다. 중국이 향후 세계 정제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궁금하다.
정유 굴기(崛起) 넘보는 중국, 미국 정제능력도 뛰어넘을까? | 20210119 01 01

미국 정제 설비 폐쇄 줄 이어

블룸버그통신이 지난해 11월 송고한 기사 제목은 향후 세계 정제 시장의 전망을 함축적으로 시사하고 있다. ‘China to Take Oil-Refining Crown Held by U.S. Since 19th Century’ ‘19세기 이후 줄곧 미국이 보유한 석유 정제 왕관을 중국이 가져간다’는 제목의 기사는 ‘빠르면 내년에 중국 정제 역량이 미국을 추월할 수도 있다’는 전망으로 시작한다.

그 징조 중 하나로 지난해 11월, 미국 로열더치쉘이 루이지애나 콘벤트 정제공장(Convent refinery)의 문을 닫은 사건을 꼽았다. 코로나 19 확산으로 석유 수요가 둔화된 영향으로 쉘은 이 정제공장을 폐쇄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글로벌 에너지 분석 기관인 IHS는 미국 마라톤 페트롤륨(Marathon Petroleum)의 마르티네즈 정유공장 폐쇄의 상징성에 주목하고 있다.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일산 15만7천여 배럴 규모의 이 정유 설비의 폐쇄와 관련해 IHS는 마타톤 페트롤륨에서 보유한 정유 설비 중 가장 높은 마진을 가진 곳 중 하나라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코로나 19가 가져온 석유 수요 파괴 영향이 컸지만, 수익성이 보장된 정유 설비가 폐쇄될 만큼 미국 내 정유 업황이 심각한 상황이라는 점을 보여주고 있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미국 정유사들이 바이오 연료를 생산하기 위해 용도 변경에 나서는 현상도 정제 능력 축소로 이어진다는 분석이다.

중국 정제설비 확충은 현재 진행형

그런데 그사이 중국 정제 능력은 꾸준히 성장 중이다. 올해 들어 중국은 산둥성에 일산 40만 배럴 규모의 Yulong 정제 시설 프로젝트 추진을 발표했다. 지난해에는 헝리(Hengli)와 저장(Zhejiang) 등 대형 정제업체들의 1단계 프로젝트로 각각 40만 b/d 규모의 새로운 정제 설비가 가동에 돌입했다. 중국은 추가 설비 확장도 모색 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에너지컨설팅기업인 ‘Facts Global Energy’의 정제 담당 이사와의 인터뷰를 인용하며 ‘중국은 향후 수년 안에 하루 100만 배럴 이상의 정제 능력을 추가로 확보할 것’이라고 소개했다.
정유 굴기(崛起) 넘보는 중국, 미국 정제능력도 뛰어넘을까? | 20210119 01 02
주목할 대목은 그 결과로 중국 정제 설비 능력이 ‘빠르면 내년 늦어도 2년 이내’에 미국을 추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는 점이다. 실제로 지난해 중국 정제 능력은 일산 100만 배럴 이상이 증가한 것으로 분석됐다. 이후에도 신증설은 계속되는데 일산 140만 배럴 규모의 정제 설비 4곳 이상의 프로젝트가 착공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국수출입은행도 같은 전망을 내놓고 있다. 한국수출입은행 산업경제팀에서 분석한 ‘정유사 정제마진 동향과 중장기 전략 방향’에 따르면 중국 정제설비 신증설은 내년까지 연간 4~5% 수준으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2010년대 중반 0~2% 증가율에 비해 높은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아직은 미국이 세계 최대 정제 능력 보유하고 있지만…

글로벌 에너지 메이저인 BP가 지난해 발표한 ‘BP Statistical Review of World Energy 2020’에 따르면 세계 최대 정제능력을 보유한 국가는 미국이다. 하루 1,897만 배럴의 정제 능력을 보유하며 같은 기간 우리나라 정제능력인 일산 339만 배럴에 비해 5.6배에 달하는 규모를 확보 중이다. 이어 중국이 하루 1,619만 배럴의 정제능력으로 2위를 기록했다. 미국과는 하루 생산량에서 278만 배럴 정도의 차이를 보였다. 세계 경제를 주도하는 미국과 중국 두 나라의 정제능력 규모는 3위를 기록 중인 러시아와의 격차로 실감할 수 있다. 러시아는 세계 3위 정제 능력을 보유 중인데 그 규모는 일산 672만 배럴에 불과하다. 미국이나 중국과 비교하면 1/3 수준에 그치고 있다.
정유 굴기(崛起) 넘보는 중국, 미국 정제능력도 뛰어넘을까? | 20210119 01 03
그런데 미국과 중국 간 정제능력이 좁혀지고 있다. 중국 정제 설비 확충 세가 가파르기 때문이다. BP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정제설비 능력은 한 해 동안 1.1% 증가하는 데 그쳤는데 중국은 3.5%가 늘었다. 같은 기간 세계 정제 능력 증가율도 1.5%에 그쳐 중국은 두 배 넘는 성장세를 기록했다. 그런데 멀지 않아 중국 정제 설비 능력이 미국은 앞지를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중국이 끊임없이 신규 정제 설비 구축을 모색하면서 세계 최대 규모의 정제능력을 보유한 미국을 조만간 뛰어넘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저유가에도 해외 자원개발에 열심인 중국

비단 정제능력뿐이 아니고 중국은 자원개발 영토 확장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특히 유가 하락 영향으로 해외에서 확보한 자산 가치가 떨어지는 것을 우려하기보다는 자국의 에너지 안보 강화에 더 큰 의미를 두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중국 정부는 지난 2015~2016년 유가 하락으로 인한 실적 악화, 반부패조사, 과거 매입한 해외 자원 기업인 Addax, Nexen 등의 부실 자산에 대한 비판 때문에 해외 자산 매입을 중단하기도 했다. 그 결과 2013년 해외자산 매입금액은 400억 불에 달했는데 2016년에는 단 한 푼도 지출되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 2017년 중국 내 천연가스 수요 증가와 석유 해외 의존도 상승이 이슈화됐고 시진핑 주석이 국영 석유사에게 자원개발 자본 투자를 늘리라고 지시하면서 상황은 급반전되고 있다. 시진핑 주석 지시로 페트로차이나, 시노펙, CNOOC 등 3대 석유사의 자본 투자비가 대폭 늘어났고 공격적으로 자국 내 석유·가스전 개발에 나서고 있다. 이들 석유 3사의 2019년 자본투자비는 2014년 이래 최대치인 770억 불로 집계됐다.
정유 굴기(崛起) 넘보는 중국, 미국 정제능력도 뛰어넘을까? | 20210119 01 04
특히 자국 내 탐사와 더불어 해외 자산 개발에도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중동 유전 등을 시작으로 해외자산 매입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그 과정에서 정부 행정 규제 완화도 병행되고 있는데 시급성이 요구되는 해외 투자는 정부 검토 기간을 단축하고 국책은행은 석유회사의 해외투자 자금 조달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그 결과 중국 정부는 아랍에미레이트 ADNOC Onshore 지분 매입에 대한 승인 검토 기간을 3개월에서 3주로 단축했다. 이외에도 중국 정부는 이란 등 중동 국가는 물론이고 우간다, 세네갈, 멕시코 등 대륙을 넘나들며 해외 자산을 매입 중이다.

‘중국 석유 소비 정점’ 중국 국영 석유사 전망

급격한 경제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중국이지만 석유 수요가 머지않아 정점에 도달할 것이라는 전망이 자국 내에서도 제기되고 있다. 중국 국영 석유사인 CNPC는 중국 석유 수요가 지난 2000년 이후 2019년까지 연평균 5.6%가 늘었는데 이후 2025년까지의 연평균 증가율은 0.9%에 그칠 것으로 분석했다. 중국 내 수송 연료는 여전히 휘발유와 경유가 주류를 이루고 있지만, 전기차와 수소차, 석유대체연료 등이 대체하면서 2025년 석유 연료 수요가 정점에 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IEA도 석유 정제 능력 과잉을 우려하고 있다. IEA에 따르면 최근 수년 동안 세계 정유와 석유화학 시설 신규 투자 규모는 단기적인 소비증가를 크게 앞서 진행되고 있다. 특히 중국 헝리(Hengli), 저장(Zhejiang) 등이 신규 대형 설비를 가동하면서 공급 충격이 우려된다는 점을 지적했다. 코로나 19 팬데믹도 정제 설비 과잉을 심화시키고 있다. 석유 수요가 급감하면서 기존 정유사들은 정제 가동률을 축소하고 있는 상황에서 신규 정제 설비가 속속 들어서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정제 시설 확충, 세계 시장 확대 필요로 이어져

그런데도 중국은 여전히 정제설비 확충을 멈추지 않고 있는데 향후 세계 정제 시장 판도를 바꿀 수도 있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페트로넷은 옥스퍼드 에너지연구소의 분석을 인용해 ‘중국은 자국 내 내수가 둔화되는 가운데 정제시설을 확충하면서 전 세계에서 시장 점유율을 확대할 필요가 높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당초 중국 정제산업 확대는 급증하는 내수를 충족시키기 위한 것이었지만 최근의 중국 정제산업 부상은 휘발유와 경유 등 세계 연료 시장에서 중국 정유사의 파워(power)를 강화해 다른 아시아 지역 정유공장에도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페트로넷은 주요 에너지 전문가들의 분석을 인용해 ‘내수 부진 속에서 정제시설 확충으로 중국의 석유제품 수출이 증가하고 한국, 호주, 유럽 등의 정유업계가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도 분석했다. 중국의 왕성한 해외 자원 확보와 정제 설비 능력 확충은 탄소 중립 시대로의 전환을 준비하는 글로벌 정세와 다른 행보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해외에서 확보한 자원 그리고 그 자원을 정제해 에너지로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은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에너지 안보를 지킬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수단인 것도 분명하다. 중국 정부의 선택이 미래 어느 시점이 어떤 결과로 귀결되고 어떤 평가를 받게 될지가 궁금하다.

함께 보면 좋은 글

정유 굴기(崛起) 넘보는 중국, 미국 정제능력도 뛰어넘을까? | profile 김신

김신 - 에너지플랫폼뉴스

전북대학교에서 독어독문학을 전공했다. 하지만 전공과는 상관없는 에너지 분야 전문 언론에서 20년 넘는 세월을 몸담고 있는 에너지 분야 전문 기자다.
정유 굴기(崛起) 넘보는 중국, 미국 정제능력도 뛰어넘을까? | img ccl

GS칼텍스에 의해 작성된 본 콘텐츠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4.0 국제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으며, 에너지플랫폼뉴스의 저작물에 기반합니다.

GS칼텍스 뉴스레터 구독신청

에너지 산업 이슈, 석유 관련 기초 지식 등 다양한 콘텐츠를 보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