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쪽은 화수분 같은 원유가 무용지물이 되고 있고 또 다른 쪽은 막대한 원유를 앞에 두고 재생에너지 투자 등 다른 길을 모색하고 있다. 세계 에너지 소비는 여전히 증가 중이고 세계 공장인 중국이 견인하고 있다는 점도 통계로 확인되고 있다. 미국도 원유 소비가 꾸준히 늘고 있는데 석유화학용 수요에 집중되고 있다는 점이 색다른 관전 포인트가 되고 있다. 전 세계 원유 생산은 셰일 혁명에 기반한 미국이 주도 중으로 지난해 원유 생산 증가 대부분이 미국산으로 채워졌다. 한편 전 세계적으로 청정에너지 소비로 전환하려는 다양한 시도가 이어지고 있지만 석탄화력 발전 기여도는 여전히 1위를 기록 중인 점은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BP Statistical Review of World Energy 2019’에 담긴 세계 에너지 주요 이슈를 다시 리뷰해본다.
세상에서 가장 많은 원유 매장한 베네수엘라의 저주
그런데 사우디는 화석에너지 종말과 유가 하락 등에 대비해 탈석유·산업다각화를 지향하는 ‘사우디 비전 2030’을 추진하고 있다. 사우디 경제의 석유 부문 의존도를 줄이고 신재생에너지 중심의 새로운 성장 동력을 육성하겠다는 로드맵을 실행하고 있다. 원유가 넘쳐 나도 쓰지 못하는 베네수엘라는 원유 부국의 저주를, 전 세계 원유 매장량의 17%를 보유한 자원 부국 사우디는 탈석유 시대를 대비하며 에너지 전환을 준비하는 아이러니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셰일원유 개발을 주도하는 미국은 612억 배럴을 보유하며 세계 9위 원유 자원 부국에 랭크되고 있다.
중국, 모든 1차 에너지 소비 증가 견인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한때 원전 가동을 전면 중단했던 일본이 원자력 에너지 소비를 늘리는 대목도 관전 포인트이다. 2011년 3월 발생한 동일본 지진으로 야기된 후쿠시마 원전 방사능 유출 사고로 한때 일본은 원전 가동을 전면 중단했고 BP 리포트에 따르면 2013년 원자력 에너지 소비량이 ‘제로’를 기록했다. 하지만 부분적인 원전 재가동에 나서면서 지난해 1110만 TOE를 소비하며 직전 연도 대비 68.9%가 증가했다. 반면 우리나라 원자력 에너지 소비량은 2015년에 3730만 TOE를 기록하며 정점을 기록한 이후 3년 연속 감소 중이다. 특히 지난해 소비량은 3020만 TOE로 전년 대비 10.1%가 줄어 일본과 대비되고 있다.
‘미국에 의한’ 원유 생산 증가
그 사이 세계 석유 생산 분야에서는 매우 의미 있는 숫자가 발표됐다. ‘218만 B/D’ 지난해 미국의 원유 생산 증가량인데 BP는 ‘단일 국가 기준으로 사상 최대 증가량’이라고 밝혔다. 미국은 OPEC+의 감산에도 불구하고 세계 원유 생산량이 늘어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지난해 세계 원유 생산량은 그 전년 대비 2.4%, 물량으로는 하루 평균 221만 배럴이 늘어난 9471만 B/D를 기록했다. 그런데 미국 원유 생산이 하루 218만 배럴이 늘었으니 지난해 원유 생산량 증가는 ‘미국에 의한 것’으로 해석해도 틀림이 없다. 미국의 원유 생산 증가세가 얼마나 폭발적인지를 보여주는 또 다른 지표가 있다. BP에 따르면 미국은 2012년 이후 지난해까지 NGL(천연가스, natural gas liquid)을 포함한 원유 생산량이 하루 744만 배럴 늘었다. 이 물량은 세계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의 원유 수출과 거의 맞먹는 규모인데 BP는 미국에서 비롯된 석유 혁명(셰일 혁명) 영향 때문으로 풀이하고 있다.
원유 소비, 석유에서 석유화학으로 전환중
세계 최대 석유 소비국인 미국의 석유 소비 증가 배경이 시사하는 포인트는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세간의 일반적인 평가와 달리 석유 소비는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증가세를 보일 것이라는 점이다. 또 한 가지는 수송용 등 전통적인 석유 제품 용도보다는 석유화학 기반 원료로서의 기여가 향후 석유 소비 증가를 이끌 수 있다는 대목이다. 때마침 우리나라 정유사들도 경쟁적으로 석유화학산업에 천문학적 투자를 집중하고 있다. 원유를 정제해 석유제품을 생산하는 정유사보다 석유화학사의 미래 비전이 더 밝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니 기업의 투자 방향에서 석유산업의 미래는 이미 읽히고 있었던 셈이다.
수력 발전이 이렇게 위대할 줄은!
발전원으로는 석탄 발전이 1만 100 TWh의 전력을 생산해 38.0%에 달하는 비중으로 1위를 기록했고 가스 발전이 23.2%로 2위를 차지했다. 물의 힘을 이용한 수력발전(水力發電, hydro electric)이 전 세계 발전량 중 15.8%를 기록해 10.2%의 기여도를 보인 원전보다 더 많다는 대목은 흥미롭다. 수력발전은 높은 곳에 위치한 물의 위치에너지를 낙차 과정을 통해 운동에너지로 변환시켜 전력을 생산하는 방식인데 중국이 지구 전체 수력 발전의 28.7%, 브라질과 캐나다가 각각 9.2% 등 이들 3개 국가 비중이 47%를 넘고 있다. 특히 브라질은 국가 전체 전력 소비의 최대 80%를 수력 발전이 담당한다니 물 자원은 우리가 일용하는 식수로서의 역할 이외에도 막대한 발전 에너지원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 재생에너지도 전 세계 발전량 중 9.3%에 해당되는 2480TWh를 기록하며 명실 상부한 주력 발전원 지위를 확보하고 있다. 증가율도 괄목할 만한 수준인데 전년 대비 14.5%가 늘었다. 반면 석유 발전은 7.7%가 줄었다.
석탄 발전 기여 여전, 탈 탄소 없는 전력화 의미 없어
연료발 발전원 비중지난해 전력 생산 분야에서 주목할 만한 키워드는 ‘재생에너지 발전 증가’와 ‘여전한 석탄 기여도’를 꼽을 수 있다. 우리나라는 궁극적으로 탈석탄화를 지향하는 에너지 전환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고 세계 주요 국가들도 석탄 발전 축소에 동의하고 있다. 온실가스 배출이 야기하는 지구온난화 재앙을 막기 위한 것인데 석탄 발전을 배제한 대안을 여전히 찾지 못하는 한계가 발전 통계를 통해 드러나고 있다. BP 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 전 세계 석탄 발전 비중은 38%로 20년 전 수준과 변함없다. 특히 전 세계 전력 수요가 늘어나면서 석탄 발전량은 매년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이에 대해 BP는 매우 의미 있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Electrification without decarbonizing power is of little use’
탈(脫)탄소 발전이 전제되지 않은 전력화는 의미가 거의 없다는 말이다.
더 큰 전력화 사회로의 전환은 발전원의 탈탄소화와 동반돼야 한다고도 주문하고 있다. 전 세계가 탈화석연료, 탈내연기관 자동차를 주창하며 전기차 중심으로 전환하려는 시도가 한창이지만 석탄 등 화석연료 기반의 발전 기조가 계속된다면 온실가스 저감 등 지구 환경 보호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우리나라 연구자들도 유사한 해석을 내놓고 있다. 국책연구기관인 에너지경제연구원의 김재경 박사는 우리나라의 2016년 발전원 기준으로 전기차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가 휘발유 차의 약 53%, 미세먼지(PM10)는 92.7%를 배출한다는 연구 결과를 제시했다. 전기차는 배기가스 배출이 전혀 없어 무공해지만 전기 생산 과정에 유연탄과 LNG, 중유 같은 화석연료가 사용되면서 상당한 온실가스와 미세먼지를 배출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와 관련해 BP 그룹의 스펜서 데일(Spencer Dale)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전력 부문 탄소 배출을 2015년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해 재생에너지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재생에너지 발전 분야에서 더 빠른 성장이 필수적이지만 그렇게 될 것 같지는 않다’며 ‘재생에너지에만 의존하지 말고 탈탄소화를 위한 다양한 기술과 연료를 채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제안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