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 흐름과 유가 간 상관관계는 ‘동전의 양면’ 같은 측면이 있다. 경기가 호황이면 에너지 수요가 늘어나 석유 가격이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 반대의 경우라면 소비가 줄어 에너지 가격은 떨어질 수 있다. 수요와 공급 원칙에 기반하는 일반적인 원칙이 그렇다. 다만 현실에서의 국제유가는 산유국과 소비국간 다양한 이해 관계가 맞물리고 지정학적 요인을 비롯한 다양한 변수가 작용한다는 점에서 수요–공급 원칙에 기반한 예측을 ‘확신’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 그렇더라도 세계 주요 에너지 기구나 기관들은 어김없이 새해 유가 전망을 내놓고 있다. 이들이 제시한 유가와 그 배경 그리고 다양한 변수들을 짚어 봤다.
1. ‘유가 떨어질 것’ 지난해 예측 빗나가고 우상향
IEA(국제에너지기구), OPEC(석유수출기구), EIA(미국 에너지정보청) 등 에너지 관련 국제기구들은 매월 석유를 포함한 글로벌 에너지 정보 분석 리포트를 발간하고 있다. 한 달 주기의 리포트인데도 그 안에 담겨 있는 석유 수급이나 유가 전망 데이터는 항상 바뀐다. 전 달 예측한 다음 해 평균 국제유가 전망치가 상향 또는 하향되는 일이 빈번하다.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다’는 표현이 딱 들어맞을 만큼 석유 수급을 둘러싼 국제 정세 변화가 변화무쌍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EIA는 2021년 12월 제시한 리포트에서 2022년 평균 브렌트유 가격을 전 해 대비 소폭 떨어진 배럴당 70.05불, WTI(서부텍사스유)는 66.42불로 예측했는데 오히려 반대 방향으로 우상향했다. 코로나19 오미크론 변이 출연으로 이동 제한 조치 등이 시행된 영향으로 석유 수요가 제한될 것이라는 점이 당시 EIA 유가 전망의 주요 근거였다. 글로벌 금융기관들도 유가 전망을 내놓았는데 스위스 은행인 줄리어스 베어(Julius Baer)는 2022년 브렌트 평균 가격을 배럴당 63.8불로 예측하며 가장 낮은 선을 제시했고 모건 스탠리는 88.8불로 가장 높은 가격을 예측했다. 하지만 모든 예측과 달리 실제로는 큰 폭의 상승장이 이어졌다. 지난해 평균 브렌트 가격은 99.16불, WTI는 94.45불을 기록했으니 EIA 예측보다 40% 이상 높았다.
유가 전망이 크게 빗나간 배경은 역시나 변화무쌍한 국제 정세 환경 변화 때문이다. 앤데믹으로 전환되면서 중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에서 방역을 포함한 이동 제한 조치를 해제하면서 수송 연료와 항공유 수요가 회복된 것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2월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를 계기로 미국, 유럽 등의 서방 세계가 러시아 경제 제재에 나서면서 석유, 천연가스 수출을 제한하기 시작했는데. 오히려 러시아가 에너지 자원 무기화로 반격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심각한 에너지 수급난에 직면한 것도 국제유가 급등을 초래했다.
지난해 3월 8일 브렌트와 WTI 가격은 배럴당 각각 127.98불과 123.70불로 올해 최고점을 찍었으니, 당초 EIA가 전망한 연중 평균 가격 보다 두 배 높은 비용을 지불해야 했다. 미국 바이든 대통령이 세계 최대 산유국이자 OPEC 맹주인 사우디까지 날아가 빈 살만 왕세자를 면담하고 증산을 통한 유가 안정을 요청했는데도 OPEC+(석유수출국협의체)가 유전 파이프라인을 조이고 있는 것도 유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OPEC+는 지난해 10월 열린 회의에서 대규모 감산을 결정했다. 지난해 8월 생산 쿼터 기준으로 하루 200만 배럴에 달하는 생산량 감산에 합의했고 올해 12월까지 적용된다.
2. 올해 유가 대체적 하향 전망 속 100불대 가능성도 제기돼
유가 변동성을 결정짓는 기본 재료가 세계 경제 흐름이니 순수하게 이런 요소만 감안하면 올해 유가는 지난해 보다 하향 조정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에너지 관련 주요 국제 기구들의 전망도 공통적으로 그렇다. 에너지 소비국 모임인 IEA, OPEC, 미국 에너지정보청 EIA 모두 세계 경제 성장률을 기반으로 올해 석유 수요 회복의 한계를 지적하고 있다.
IEA는 올해 세계 경제 키워드로 ‘인플레이션’, ‘중앙은행의 긴축 정책’, ‘부동산 침체’, ‘코로나 19 관련 지속적인 봉쇄에 따른 중국 경제 성장 전망 불투명’을 꼽았다. 물가를 잡기 위해 세계 중앙은행들이 금리를 인상하며 시중 유동성 회수의 고삐를 더욱 조일 테니 그만큼 경제성장률은 떨어질 것이고, 세계 최대 석유 소비·수입국 중 한 곳인 중국의 경기 위축은 유가 하락 요인을 제공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 IEA의 해석이다. IEA는 올해 세계 석유 수요가 지난해보다 하루 170만 배럴 늘어난 1억164만배럴을 기록할 것으로 예측했다. 반면 석유 공급은 77만 배럴이 늘어나며 1억81만 배럴로 예측했다. 수요 우위 시장을 전망했는데 러시아에 적용되는 석유 수출 제한과 가격 상한제 영향으로 공급이 줄어드는 영향이 반영된 결과로 해석된다.
석유수출국기구 OPEC 역시 IEA와 같은 맥락의 경제 흐름을 예측하고 있다. OPEC은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을 지난해 보다 0.3%p 하락한 2.5%로 전제하고 있는데 그 배경으로 인플레이션, 높은 국가 부채, 주요국 중앙은행의 통화 긴축, 공급망 제한 등을 꼽았다. OPEC이 가장 최근 제시한 리포트에 따르면 올해 세계 석유 수요는 하루 221만 배럴 늘어난 1억177만 배럴로 예측됐다. 비OPEC 산유국 생산량은 하루 154만 배럴이 늘어난 6,711만 배럴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EIA도 올 한 해 글로벌 경제 상황 악화 때문에 석유 수요 증가에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EIA는 올해 세계 석유 생산량이 지난해 대비 하루 108만 배럴 늘어난 1억106만 배럴, 수요는 100만 배럴이 증가한 1억82만 배럴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예측대로라면 소폭의 생산 우위 시장이 점쳐진다. 올해 평균 유가는 지난해 평균보다 하향 전망했다. EIA는 올해 브렌트 평균 가격을 지난해 보다 9.12불 낮춰 92.36불로 전망했고 WTI는 8.86불 떨어진 86.36불로 예측했다.
특히 올해 상반기에는 세계 석유 재고가 줄면서 WTI 가격이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을 유지하겠지만 하반기 들면서 재고가 증가해 하향 안정화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주요 국제 에너지 기구들의 전망대로라면 OPEC+ 감산, 러시아 수출 제한 등의 석유 공급 여건 악화에도 불구하고 세계 경기 위축에 따른 수요 회복이 제한되면서 지난해보다는 낮은 가격으로 원유를 구매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우리나라 한국석유공사도 최근 열린 석유 관련 컨퍼런스에서 글로벌 경기 둔화, 달러화 강세 등의 영향으로 올해 석유 수요 증가폭이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구체적으로는 지난해 대비 1~2% 수준 늘어나는 데 그칠 것이며 평균 유가는 브렌트 기준으로 연평균 85~90불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내다봤다. 또한 상반기 유가는 미국 등 주요국의 긴축 경제, 에너지 수요 억제책, 중국 수요 부지 등으로 보합 또는 소폭 하락을 전망했고 하반기 들어 미국 연준의 긴축 속도 완화로 거시 경제 측면의 우려가 완화되고 중국 경기 회복, 항공유 수요 요인이 반영돼 상승 기조를 전망했다.
반면 올해 평균 유가가 100불을 기록할 것이라는 고유가 시나리오도 일각에서 제시돼 대조를 이루고 있다. 유진투자증권 황성현 애널리스트는 ‘지금까지는 석유 판매자가 공급을 조절하고 가격을 제어하는 OPEC 카르텔이 존재해왔는데 석유 구매자가 특정 국가로 지정하고 판매가격에 상한을 정해 수입을 줄이는 시스템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EU(유럽연합), 미국 등이 러시아에 적용하는 유가 상한제 의미를 평가했다. 이 경우 러시아산 원유 공급 감소로 유럽 주요국들은 다른 구매처를 확보해야 하며 그 과정에서 OPEC+의 스윙 프로듀서(Swing producer) 입지가 강화될 것이라는 점도 지적했다.
실제로 러시아는 서방의 가격상한제 시행에 대한 대응으로 상한제 참여 국가에 원유, 석유제품 공급을 오는 2월부터 5개월간 금지하는 명령을 발표했는데 이 계획이 현실화되면 러시아산 원유를 대신할 대체 구매처 발굴 여부가 글로벌 원유 수급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황성현 애널리스트는 또 ‘생산량 증가를 기대할 수 있는 유일한 국가인 미국의 E&P(석유개발) 기업들이 최근의 유가 하락을 반영해 올해 예산을 감축할 것으로 예상되는 등 석유 수요와 공급 불균형으로 유가는 다시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며 고유가 전망의 근거로 제시했다.
3. 석유제품 부족, 운반 운임 상승에도 영향
그런데 유가보다는 석유 완제품 가격이 어떤 흐름을 보일 것인가가 새해 글로벌 에너지 물가에 중요한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의 경우 원유보다 석유 완제품 수급 불안과 가격 변동이 극심했다. 싱가포르에서 거래된 황함량 0.001% 경유 국제가격은 지난해 첫 거래일인 1월 3일, 배럴당 90.34불로 연중 최저치를 보였는데 2월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급등 양상을 보였다. EU를 중심으로 경유 수요가 증가하면서 6월 21일에 186.08불이었던 거래 가격이 불과 4개월 사이에 2배가 뛰었다. 중간 유분인 등유 가격 역시 같은 기간 동안 배럴당 86.49불에서 두 배인 174.01불까지 상승했고 옥탄가 92 휘발유는 155.73불까지 올라 연중 가장 높은 가격을 기록했다.
물론 이 기간 석유제품 생산원료인 원유 가격도 같이 올랐다. 하지만 석유제품 상승폭에는 미치지 못했다. 지난해 첫 거래일인 1월 3일 브렌트는 1배럴에 78.98불에 마감됐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공습이 시작된 2월 24일이 수일 경과한 3월 8일, 127.98불을 기록하며 연중 최고점을 찍었다. 이후에도 상당 기간 세 자릿수 유가를 기록했지만 석유제품 가격상승률보다는 현저하게 낮은 오름세를 보였다. 휘발유나 경유 등 주요 석유제품과 원유간 가격 차이도 일반적으로 배럴당 10불대이던 것이 지난해에는 시점에 따라 60∼70불대까지 확대되기도 했다.
이 같은 현상은 러시아 경제 제재 여파로 발전용 천연가스 공급이 줄면서 대체재로 경유 등 석유 수요가 EU를 중심으로 늘어난 것을 수급이 뒷받침하지 못한 영향이 컸다. 실제로 국제적으로 수급난을 겪은 등, 경유 중심으로 정제마진이 배럴당 40불대를 넘어서는 이례적인 현상이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이를 두고 KB증권 전우제 수석 연구원은 ‘세계 운임과 정유 수급의 상관관계가 높은데 원유 운반 운임 (VLCC) 대비 정유 제품 운반 운임(Clean Tanker)의 상승세가 높았고 원유보다는 정유 제품의 지역적 쇼티지(Shortage) 현상이 강하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특히 ‘지난해 가격 폭등에도 불구하고 국제유가는 10년 밴드 안에 머물렀지만 석유 정제마진은 10년 밴드를 초과한 강세를 보였다’며 원유보다 석유 완제품 수급에 미치는 충격이 더 컸고 그 결과가 석유 가격 급등으로 연결됐다고 평가했다.
이 같은 현상은 올해도 지속될 수 있다는 일각의 분석이다. 전 세계적으로 탄소중립 기조가 대세를 이루면서 정제설비 신증설 투자는 줄고 폐쇄나 설비 전환이 늘면서 2021년 전 세계 정제 설비 능력은 30년만에 감소세를 기록했다. 다만 지난해에는 하루 100만 배럴 규모의 생산 능력이 확충됐고 올해도 160만 배럴 정도가 늘어날 것으로 IEA는 전망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이 코로나 방역에서 벗어나는 등 글로벌 석유 수요 확장 요인이 발생하면 지난해와 마찬가지의 정제설비 부족 현상이 이어질 수 있다. 이에 대해 미래에셋증권은 최근 발간한 리포트에서 ‘올해 석유 정제마진 역시 경유 강세를 중심으로 과거보다 높아진 저점을 상회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 근거로 글로벌 정제설비 순증설량이 수요 증가량보다 적다는 점을 꼽았다.
미래에셋증권 이진호 애널리스트는 ‘올해 전 세계 원유 수요 증가분은 하루 150만 배럴, 정제설비 순증설은 120만 배럴에 그칠 것으로 분석되는데 높은 유가에도 원유 생산에 대한 공격적인 신규 투자가 나타나지 않는 것처럼 글로벌 정제설비 역시 향후 수년 동안 수요 증가량 대비 공급이 부족한 상황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이 같은 전망이 적중한다면 원유 수급과는 별개로 전 세계인들은 상당 기간 높은 비용을 지불하고 석유제품을 구매할 수밖에 없다. 전 세계가 탄소 중립으로의 전환에 몰두하면서 유전과 정제설비 등 석유 산업 투자를 멀리한 대가가 너무 비싸지 않았으면 그리고 오래 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