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의 석유시장, 무엇이 유가를 움직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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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의 석유시장, 무엇이 유가를 움직이는가? | 20220825 01 00 F

1. 들어가며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석유수요와 공급능력이 동시에 감소한 이후 수요가 공급보다 먼저 회복하면서 상승세를 이어오던 국제유가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급등하였다가 글로벌 경기침체 우려가 심화되며 다소 진정세를 보이고 있다. 브렌트(Brent) 유가는 연초 $80/B 이하 수준이었으나 전쟁 발발 이후인 3월 초에는 $130/B에 가까운 수준까지 급등하였고, 이후 급등과 급락을 되풀이하며 6월에 $120/B대 수준까지 상승하였으나 최근에는 $100/B을 조금 넘는 수준에서 거래되고 있다.

가격 급등세는 다소 진정되었지만 유가의 변동성은 여전히 매우 높은 상태에 있는데 이는 기본적으로 원유선물의 미결제약정(Open Interest) 규모가 낮은 수준을 유지함에 따라 비교적 적은 거래량으로도 큰 폭의 가격 등락이 초래되는 구조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한, 바닥을 보이는 잉여생산능력(Micro)과 심상치 않은 거시경제 상황(Macro)이라는 서로 다른 성질의 강력한 힘이 맞부딪치면서 유가의 중장기적인 방향성은 그야말로 안갯속에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불확실한 상황은 글로벌 경기침체 여부, OPEC+ 생산정책 변화, 중국의 방역정책 전환,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 시기 등 주요 불확실성이 정리될 때까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향후 유가의 방향성에 대한 구체적인 전망을 하기보다는, 금년 현재까지의 주요 이슈를 다시 한번 돌아보고, 각 이슈에 대한 시장의 초기 예측과 이후 변동한 상황을 비교해 보며 정리하는 시간을 갖고자 한다.

2. 주요 이슈 분석

가. 우크라이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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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에서는 동부 분리주의 반군 세력과의 교전,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강제 합병 등으로 수년간 계속 군사적 긴장이 이어져 왔지만, 러시아와의 전면적인 전쟁이 발발할 가능성은 낮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주류 의견이었다. 2021년 말 이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와의 국경 지대에서 대규모 군사 훈련을 실시하며 무력 시위에 나섰으나 이것이 대규모 분쟁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러시아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세력권 확대(동진)에 대해 지속적인 경고를 해오긴 했어도, 전쟁을 통해 양측이 얻을 이익보다는 손실이 크다고 평가되었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입장에서는 충분한 명분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침공을 강행할 경우 국제사회로부터 제재를 받아 경제적, 외교적 타격을 입을 수 있고, 유럽 국가들에 대한 미국과 영국의 영향력이 강화되는 결과를 낳게 되므로 침공은 자충수로 평가되었다. 우크라이나 역시 자국에 대한 침공은 큰 피해로 이어지게 되고 우크라이나의 빈약한 군사력으로는 러시아의 침공을 오래 막아내기도 어렵다는 점에서 전쟁으로 얻는 이익이 없다고 여겨졌다.

그러나 러시아는 예상을 깨고 2.24일 우크라이나 전역에 대한 전면 침공을 감행하였고, 며칠 만에 항복하리라 여겨졌던 우크라이나 정부와 군 역시 예상을 뒤엎는 치열한 항전으로 러시아의 공세를 막아내며 전쟁을 장기전으로 끌고 가는 데 성공하였다.

석유시장에 미치는 영향 역시 여러 방면에서 시장의 예측과 다른 양상이 펼쳐졌다. 전쟁 발발 직후 주요 전망기관들은 서방이 높은 의존도 때문에 러시아의 에너지 부문에 대해 직접 제재를 가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전망하였으나, 실제로는 결국 미국·영국에 이어 유럽연합(EU)까지 직접 제재를 단행하였다.

제재로 인한 영향 역시 예측과 달랐는데, IEA(국제에너지기구)는 최대 3백만b/d(하루당 배럴)가량의 공급 감소가 벌어질 것으로 예측하였지만 인도, 중국, 터키 등이 러시아산 석유 수입을 늘리면서 러시아 원유 생산량 자체는 큰 영향을 받지 않았다. 반면 경유를 비롯한 석유제품과 가스 공급 감소, 식량 등 원자재 공급 감소로 인한 인플레이션 심화와 같이, 간접적 요소들이 원유시장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됐다.

EU는 6~8개월의 유예기간 후 러시아산 원유와 석유제품의 수입을 중단하기로 하였고, 서방 주요국들은 러시아산 원유에 대한 가격상한제를 논의하고 있어 향후에도 우크라이나 전쟁은 석유시장의 중요한 요소로 작용할 전망이다. EU 제재의 물리적 영향은 시간이 갈수록 커질 것이고, 러시아가 가격상한제 등 제재에 반발해 공급을 줄일 경우 유가가 상승압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러시아산 가스 공급 감소가 유럽의 경제성장률 저하로 이어져 경기침체와 석유수요 감소를 일으킬 가능성 역시 주목하여야 할 이슈이다.
나. 물가 급등과 긴축 본격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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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년 상반기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은 예상 대비 매우 급격한 긴축을 단행하였다. 연준은 금년 1월까지만 해도 인플레이션이 일시적이라는 평가 하에 테이퍼링을 3월에 종료하고 하반기에 양적긴축을 개시할 가능성을 언급하는 정도의 스탠스를 취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글로벌 원자재 공급망 차질로 인해 물가가 치솟으면서 연준의 긴축 스케줄은 예상보다 많이 앞당겨지게 되었다.

연준은 3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3년 3개월 만에 기준금리를 0.25%p 인상하였고, 5월에는 0.5%p를 인상하는 “빅스텝”, 6월에는 무려 0.75%p를 인상하는 “자이언트 스텝”, 7월에도 또다시 0.75%를 인상하면서 단 4개월 만에 2.25%p를 인상하는 초강경 급브레이크 조치를 단행하였다. 연준 주요 인사들은 인플레이션이 잡히지 않을 경우 9월에도 고강도 금리인상을 이어갈 수 있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어 당분간 연준의 매파적 태도는 계속될 전망이다.

금리인상이 가속화되면서 금융시장에는 찬바람이 몰아쳤다. 연초 16,000에 가까웠던 나스닥 지수는 14,000 이하로 하락하였고, 대표적 가상화폐인 비트코인 가격은 약 $47,000에서 $23,000으로 50% 넘게 하락하였다. 원유가격 역시 공급부족 여파로 상승하였으나 긴축으로 인한 경기침체 및 소비감소 우려, 위험자산 회피, 달러 강세 등으로 인하여 6월 말 이후 하락세로 전환되었다.

유가는 인플레이션을 촉발한 원인이기도 하지만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긴축정책의 여파를 받는 입장이라는 점에서 순환적 관계에 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석유제품 가격은 정제시설 부족까지 겹치면서 경유가격이 한때 $170/B을 돌파하는 등 초강세를 보였었는데, 이는 소비자물가지수(CPI) 급등 등 소비자 부담을 가중함으로써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을 직접 가속화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또한, 에너지 가격이 급등함으로 인하여 제조업, 서비스업 등 대부분 업종의 원가 부담이 증가하는 영향도 상당하다.

이는 가격상승에 따른 수요파괴(Demand Destruction)의 간접적 형태로 평가할 수 있다. 단순히 고가격으로 인하여 소비자가 석유류의 구매를 줄이기도 하지만, 중요한 에너지원인 석유류의 가격상승으로 인해 경제성장률이 하향됨으로써 소비자들의 구매력이 감소하여 석유수요 감소가 일어나는 것이다. 팬데믹 시기 가계저축액이 상당히 늘어나긴 하였으나, 소비자들의 지출 의사결정은 향후의 물가상승이나 수입 감소에 대한 예상에도 큰 영향을 받으므로 소비심리가 냉각될 경우 석유 수요에 부정적 영향은 불가피하다. 경기침체의 발생 가능성, 시기, 강도는 향후 수요 측면에서 유가의 향방을 결정할 가장 중요한 변수이다.
다. 공급 확대 제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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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팬데믹 사태 대응을 위해 사상 최대 규모(9.7백만b/d)의 감산을 단행하였던 주요 산유국(OPEC+)은 이후 꾸준한 감산 완화(증산)을 이어왔으며, 금년 8월부로 감산 물량 9.7백만b/d 전체에 대한 완화 조치를 완료함으로써 OPEC+ 감산은 모두 종료되게 되었다. 그러나 OPEC+의 실제 생산량은 감산의 기준점이 되는 2018년 10월 생산량에 크게 미달하고 있다. OPEC+의 6월 총생산량은 생산 쿼터에 284만b/d나 미달하였는데,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를 제외한 나머지 참여국들은 쿼터가 늘어나더라도 그에 맞춰 생산량을 늘릴 수 없어 향후 미달분은 더욱 증가할 전망이다.

현재 고유가 상황에서 모든 산유국이 수입 증대를 위해 생산 확대에 전력을 다하고 있음에도 생산량이 2018년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까닭은 장기간 상류 부문에 대한 투자가 부족하였기 때문이다. 유전, 송유관, 저장시설, 수출터미널 등에 대한 투자가 적시에 이루어지지 못하면서 생산량이 감소하거나 유지보수 등으로 인한 가동 차질이 발생하는 것이다.

생산 증가가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발생한 지정학적 사건들도 수급을 더욱 타이트하게 만드는 요소로 작용하였다. 연초 예멘 후티 반군은 정부군을 지원하는 사우디와 UAE를 드론과 미사일로 공격하였고, 카자흐스탄에서는 대규모 시위가 발생하면서 생산이 일시적 차질을 빚기도 하였다. 규모 면에서 가장 큰 차질은 리비아에서 발생하였는데, UN의 중재로 내전 세력 간 평화협정이 맺어졌지만 향후 정국 주도권을 놓고 양측의 다툼이 재발하면서 실력행사에 나선 동부 세력이 시위대를 동원해 유전, 수출터미널 등 주요 석유시설을 점거한 것이다. 약 120만b/d 수준이던 리비아의 원유 생산량은 6월 한때 절반 이하로 감소하여 실물 시장 강세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유가가 고공행진을 계속하면서 미국을 주축으로 한 소비국들은 집단 대응에 나섰는데, 전년 11월 몇몇 국가가 비축유 방출에 나선 데 이어 금년 3월에는 IEA 공조를 통해 6,270만B의 비축유 방출이 시행되었다. 특히 미국은 IEA 공조 물량 이외에도 자발적인 추가 방출을 통해 6개월간 총 1.8억B의 비축유 방출을 진행하여 부족한 공급을 일부 보충하고 있다.

그러나 비축유 방출의 효과에 대해서는 비판적 시각도 존재하는데, 장기적으로는 석유기업들의 생산 증가 의사결정을 교란함으로써 장기적 공급 확대를 저해하고 미래에 비축유를 재충유하는 시점에 수요가 증가하게 되므로 현재의 문제를 미래로 이연하는 효과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한, OPEC+의 잉여생산능력이 아주 낮은 상황에서 비축유 재고마저 줄어든다면 심각한 공급 차질이 발생했을 때 완충장치가 없게 되어 시장의 불안감을 자극한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한편 연초 타결이 가시권에 들어온 것처럼 보였던 이란 핵 협상은 핵심 이슈(미국의 파기 방지에 대한 법적 보장, 이란 혁명수비대 테러집단 지정해제)에 대해 당사국들이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하며 타결 가능성이 다소 저하된 상태이지만, 타결이 이루어질 경우 현격한 공급 증가를 발생시킬 수 있는 유일한 요소이므로 협상 진행 과정을 주의 깊게 지켜볼 필요가 있다.
라. 끝나지 않은 팬데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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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겨울 상대적으로 치명률이 낮고 전파력은 높은 오미크론 변이가 출현해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주류로 자리 잡은 이후, 세계 각국은 백신 접종은 계속하면서도 봉쇄, 거리두기, 출입국 규제 등의 방역조치는 점차 완화하며 일상을 회복하는 “위드 코로나”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이는 고령층에 대한 높은 백신접종률을 통해 코로나19의 치사율을 독감과 큰 차이가 나지 않는 수준에서 관리하는 것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조금 다른 상황이 펼쳐졌는데, 백신에 대한 불신과 문화적 차이로 젊은 층보다 고령층의 백신 접종률이 저조하였고, 홍콩에서 전파력이 높은 오미크론이 확산되자 대규모 사망자가 발생한 것이다. 홍콩의 사례를 본 중국 정부는 본토에서 동일한 사태가 벌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팬데믹 초기에나 볼 수 있던 극단적인 수준의 봉쇄 조치(제로 코로나)를 단행하였고, 특히 핵심 경제도시인 상하이는 3월 하순부터 약 2개월간 봉쇄되었다. 이로 인해 중국의 석유수요가 감소한 것은 물론이고, 주요 공장과 산업시설 가동이 중지됨에 따라 글로벌 공급망 차질이 심화되는 결과가 초래되었다.

최근에는 오미크론의 하위 변이인 BA.4와 BA.5가 전 세계적으로 재유행하고 있는데, 다행히 오미크론과 치명률 차이는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대부분의 국가들은 마스크 착용, 백신 추가 접종 등 비교적 소극적인 방법으로 대응하고 있다. 다만 중국이 계속해서 “제로 코로나” 정책을 유지할 경우 석유수요와 세계 경제의 리스크 요인이 될 수 있으나, 10월 예정된 중국공산당 당 대회 이후 정책 방향이 변화할 수 있다는 예측도 있으므로 향후 중국 당국의 입장 변화를 면밀히 주시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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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나가며

금년 석유시장은 역사상 유례를 찾을 수 없는 변동성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팬데믹의 여파와 우크라이나 전쟁의 영향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하루하루 한 치 앞을 알기 어려운 시황이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유가의 향방이 불확실하더라도 에너지 자원 확보의 중요성은 그 어느 때보다 확실하다. 유럽이 과도하게 러시아 에너지에 의존한 결과 우크라이나 전쟁이 유발되었고, 전쟁이 장기화되고 에너지 공급난이 심화되면서 유럽 국민들은 21세기 들어 그 어느 때보다 춥고 어두운 겨울을 맞이하게 될 전망이다.

지난 수년간 각국 정부와 투자자들의 관심은 신재생·대체 에너지에 집중되었지만, 실제로는 세계 경제를 지탱하고 에너지 빈곤을 방지하는 데 아직 석유·가스가 가장 막중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OPEC+조차 고유가에도 쉽사리 생산량을 늘리지 못하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석유자원의 탐사·개발·생산에는 장기간의 노력과 투자가 필요하며, 이러한 투자가 소홀해졌을 때 반드시 위기가 초래된다는 점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끝으로, 최근 인기를 끈 영화 “탑건: 매버릭”에서 곧 무인기의 시대가 오고 파일럿은 사라질 것이라는 제독의 말에 주인공 매버릭 대령이 답한 대사를 인용하며 본고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Maybe so Sir. But not today.”
그럴지도 모르죠. 하지만 오늘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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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성 과장 - 한국석유공사 석유정보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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