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원유의 세계시장 복귀,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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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 산유국이지만 서방 세계의 경제 제재에 묶여 막대한 석유 공급 능력을 제한받고 있는 이란의 시장 복귀가 유력해 보인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핵 협정 JCPOA에서 탈퇴한 이후 석유 금수를 포함한 다양한 경제 제재에 묶여 있는 이란을 국제무대에 복귀시키기 위한 협상이 재개됐고 막바지 조율 중이라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이란이 원유 생산과 수출을 본격화하면 국제유가가 많게는 배럴당 15불까지 하락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제시되고 있어 극심한 인플레이션에 고통받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주요 에너지 소비국들은 협상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란 핵 협정 협상과 관련한 경과와 원유 수출 재개가 시장에 미치는 영향 등을 알아본다.

핵·이슬람 종파 갈등 등 대립 요소 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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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은 세계 최대 산유국이다.
BP가 연례적으로 발표하는 세계 에너지 통계 리뷰(Statistical Review of World Energy) 최신판에 따르면 2020년 이란의 석유 매장량은 1,578억 배럴에 달했다. 베네수엘라, 사우디, 캐나다에 이어 세계 4위 규모의 매장량을 기록했고 전 세계 매장량 1조7,324만 배럴 중 9.1%를 이란이 보유 중이다. 그런데도 자원 부국 이란의 석유 생산량은 매년 줄고 있다.

2017년 하루 458만 배럴의 석유를 생산하던 이란은 2018년 460만 배럴, 2019년 339만 배럴, 2020년에는 308만 배럴까지 줄었다. 막대한 원유를 보유하고 있지만 생산량은 2018년에 비해 33%나 감소했다. 서방 세계의 경제 제재에 묶여 그 많은 석유는 땅속에 묻혀 있는 처지에 놓여 있다. 배럴당 100불대를 훌쩍 넘어서는 최근의 고유가 상황을 감안하면 이란이 보유한 석유 자산 가치는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지만 지금은 그저 ‘그림의 떡’일 뿐이다. 서방 세계가 석유 금수 조치를 포함한 경제 제재로 이란을 묶어 놓은 결정적인 배경은 핵 개발 가능성 때문이다.

이란은 지난 2015년 7월, UN 안전보장이사회 상임 이사국인 미국, 영국, 러시아, 프랑스, 중국 등의 P5 그리고 독일이 포함된 ‘P5 + 1’과 ‘이란 핵문제 해결을 위한 포괄적 공동행동계획(JCPOA: Joint Comprehensive Plan of Action)’에 최종 합의하며 세계 경제 교역의 일원으로 복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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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2018년 이란 핵 합의(JCPOA)에서 탈퇴했고 경제 제재가 재개되면서 지금까지 이란 경제는 고립되고 있다. 당시 트럼프 행정부가 이란과의 핵 합의를 파기한 배경은 JCPOA가 핵 개발, 탄도미사일 개발 억제력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란 측에 이라크 내 시아파 민병대, 예멘 후티 반군 지원 중단을 요구했던 것이 수용되지 않은 것도 핵 합의 탈퇴에 영향을 미쳤다.이란은 세계 최대 산유국이자 석유수출국기구 OPEC을 주도하는 친미 성향의 사우디와 심각한 종파 갈등도 겪고 있다. 수니파 정부가 집권하고 있는 예멘은 시아파 무장 단체인 후티 반군과의 분쟁이 지속되고 있는데 그 과정에서 시아파 종주국인 이란은 후티 반군을 지원하고 있고 수니파 종주국인 사우디는 예멘 정부를 후원하면서 이슬람 세계 무력 충돌이 멈추지 않고 있다.

현재도 이란 지원을 받고 있는 후티 반군은 끊임없이 사우디 유전 등을 향해 탄도미사일, 드론 등의 공격을 감행 중이다. 이란이 습관적으로 호르무즈 해협 봉쇄 카드를 꺼내 드는 것도 서방 세계 입장에서는 눈엣가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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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무즈 해협은 사우디가 위치한 아라비아반도와 이란 사이의 페르시아만을 벗어나 아라비아해로 연결되는 너비 50km에 불과한 좁은 해협이다. 세계 원유 교역의 30% 정도가 호르무즈 해협을 경유하고 있어 이곳에서 병목 현상이 발생하거나 봉쇄된다면 세계 석유 수급에 심각한 차질이 발생할 수밖에 없어 이란은 서방 세계를 압박하는 무기로 종종 활용하고 있다.

중동 바라보는 시각 변한 미국

그런데 미국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이란 핵 합의 복원이 추진되고 있다.
지난해 4월 오스트리아 빈에서 이란 핵 합의 복원 협상이 재개됐고 이후 여러 우여곡절을 겪고 있지만 이란의 세계 경제 무대 복귀 가능성은 높은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복원 협상 와중인 지난 해 6월, 이란 대선이 치뤄지면서 논의가 중단됐고 반미 성향인 에브라힘 라이시 대통령이 당선되며 난항이 예상되기도 했지만 이란의 핵 개발을 포기 또는 지연시키려는 미국의 의지는 강해 보인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해 9월 열린 UN총회 연설에서 ‘이란이 중단 상태에 있는 핵 합의를 완전히 준수한다면 미국도 동일하게 합의를 준수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했는데 이란 라이시 대통령도 제재 해제를 위한 협상 재개 의사를 밝히며 긍정적인 제스처를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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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지역에 대한 미국의 시각 변화도 핵 협상 복원 가능성에 무게를 실어주고 있다.
1970년대 중동 지역에서 촉발된 오일쇼크를 겪으며 주요 석유 소비국들은 미국 주도로 국제에너지기구(IEA)를 설립해 에너지 위기 공동 대응에 나서 정도로 에너지 안보를 국가 경영의 중요한 우선순위에 두고 있다. 세계 최대 석유 소비국이지만 산유국이기도 한 미국 역시 2010년대 중반까지 40여년동안 자국산 석유 수출을 금지하며 에너지 안보 기조를 유지해왔다.
그런데 비전통 원유인 셰일오일의 상업적 개발에 탄력이 붙으면서 이제는 석유 수출국 반열에 올라 미국 입장에서 석유 자원과 관련한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가치가 예전만 같지 않다는 분석이다.

오히려 이란 핵과 미사일 개발을 저지하는 것이 미국 국익에 더욱 중요한 가치가 되고 있어 이란 핵협정 복원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지금은 이란 원유도 절실하다. 코로나 팬데믹을 통과하면서 세계 석유 수요가 빠르게 회복 중인 가운데 우크라이나 사태까지 겹치면서 국제유가가 급등하고 있는데 이란산 원유가 시장에 풀리면 수급과 가격 안정에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란 복귀 이후 OPEC+ 대응 여부도 관전 포인트

이란 경제 제재가 풀릴 경우의 원유 증산 규모, 수출 확대 속도에 대한 전망은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세계 석유 수급과 가격 안정에 긍정적일 것이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국제에너지기구 IEA는 2018년 고점 대비 하루 100만 배럴 이상 줄어든 이란의 원유 생산량이 핵 합의 복원으로 석유 수출이 허용되면 130만 배럴 규모의 생산량 증가가 가능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글로벌 에너지 정보 기업인 플래츠(Platts)는 이란 핵 합의가 타결되고 경제 제재가 완전히 해제되면 이란 원유 생산량은 빠른 시간안에 하루 75만 배럴 늘어나고 30만 배럴의 수출 증가가 기대된다고 분석했다.

Synergy Consulting 전문가는 이란이 생산 능력을 빠르게 증대시킬 수 있고 이란국영석유회사인 NIOC(National Iranian Oil Company)의 생산량이 수개월 이내에 현재의 하루 250만 배럴에서 320만 배럴로 70만 배럴 늘릴 수 있다고 예측했다. 이 관계자는 이란산 원유가 하루 100만 배럴 시장에 추가 공급되면 국제유가에 배럴당 5∼8불의 하방압력을 가할 수 있다고도 분석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이란 핵 협상이 타결되면 석유 시장에 하루 약 50∼100만 배럴 규모의 원유가 추가 공급되고 국제유가가 배럴당 최대 15불까지 하락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았다. 그런데 이란 원유가 시장에 풀릴 경우를 대비한 주요 산유국들의 견제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는 점은 변수가 될 수 있다. 먼저 러시아가 이란 원유 증산 이후의 세계 석유 수급 균형에 딴지를 걸 수 있다. 최근 러시아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은 ‘이란 핵 협상이 타결돼 원유 수출이 재개 될 경우 OPEC+가 생산 쿼터를 어떻게 최적화해 분배할지 합의하는 절차가 필요하다’라고 언급했다.

석유수출국기구 OPEC은 비OPEC 산유국과 결합한 OPEC+를 통해 세계 석유 공급량 등을 조절중인데 러시아는 비OPEC 산유국 대표 역할을 맡고 있다. 이런 러시아의 외무 장관이 ‘이란이 참여하는 OPEC+ 조직을 통해 세계 시장에 신규로 공급되는 물량이 발생하는 상황에서 쿼터를 최적 분배하는 방안을 합의해야 한다’라고 발언한 것은 이란의 가세로 세계 원유 공급량이 늘어나더라도 OPEC+ 회원국들의 생산량 조절을 통해 공급 총량이 늘어나는 것을 막겠다는 메시지로 해석되고 있다.

세계 최대 산유국이며 친미 성향인 사우디의 행보도 심상치 않다. 주요 외신들에 따르면 3월 초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 지도자들은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전화 통화 요청을 거부했다.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해 증산 등을 통해 국제 유가 안정에 기여해 달하는 미국 정부의 요청에도 응답하지 않고 있다.

그러는 사이 사우디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미국 경제 제재를 받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통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랍 세계에서 미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왔던 사우디의 이례적인 행보는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이란 핵 협상 복원 등이 추진되는 과정에 대한 불만 표출로 해석되고 있다. 이란에 적대적인 사우디 입장에서는 미국이 경제 제재 해제를 주도하는 과정이 달갑지 않다. 특히 핵 개발과 더불어 예멘 반군 지원 중단 등을 옵션에 추가하며 이란을 압박했던 트럼프 행정부와 달리 바이든 대통령은 자국 안보 위협 수단이 되는 핵과 미사일 개발 저지에 협상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이 사우디의 불만인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그럼에도 경제 제재 카드만으로 이란의 핵 개발 진척을 억누를 수 없고 이란산 원유가 시장에 풀려 유동 물량을 늘리는 것도 절실한 미국 입장에서는 핵 합의 복원에 적극적일 수 밖에 없어 이란의 국제무대 복귀는 시간 문제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한편 이란산 원유가 시장에 풀리게 되면 우리나라 정유사들의 원유 구매 선택지가 넓어지고 도입 가격 경쟁력이 개선되는 긍정적인 효과가 기대된다. 이란 경제 제재가 풀렸던 2017년만 해도 우리나라 도입 원유의 13%가 이란산 원유로 채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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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우리나라 정유사들이 이란에서 도입하는 원유의 약 70%가 초경질유인 콘덴세이트인데 2016년 이후 우리나라의 전체 콘덴세이트 도입량 중 54%가 이란산일 정도로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했다.

이란산 컨덴세이트는 가격경쟁력도 탁월해 수입이 한창이던 당시 운송비가 비슷한 카타르산에 비해 배럴당 평균 2.5달러 이상 저렴해 우리나라 정유사와 석유화학사 선호도가 높았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이란 핵협정을 폐기하며 석유 금수 등 경제 제재를 가하면서 이란산 원유 도입의 길은 지금까지 막혀 있다. 2019년 5월 이후 현재까지 이란으로부터 단 한 방울의 원유도 수입되지 않고 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가격 경쟁력까지 확보한 셰일원유 개발 확대에 힘입어 미국산 원유가 중동산 원유의 대체지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더라도 미주보다 수송 거리가 가깝고 가격경쟁력까지 갖춘 이란산 원유 거래가 허용되며 구매 선택지가 추가되는 상황은 우리나라 정유사 입장에서 환영할 일이 분명하다.

세계 원유 시장으로의 이란 복귀는 그래서 우리나라 그리고 주요 에너지 소비국 입장에서는 간절한 희망이 되고 있다.
이란 원유의 세계시장 복귀,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은? | profile 김신

김신 - 에너지플랫폼뉴스

전북대학교에서 독어독문학을 전공했다. 하지만 전공과는 상관없는 에너지 분야 전문 언론에서 20년 넘는 세월을 몸담고 있는 에너지 분야 전문 기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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