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에너지 메이저 BP의 최근 통계에 따르면 2022년 우리나라의 석유 소비는 전년 대비 1.5% 증가한 하루 평균 285만 8,000배럴이었다. 특히 주목할 대목은 2012년 석유 소비량인 246만 B/D와 비교할 때 10년 사이 15.9% 늘었고 연평균 증가율은 1.5%에 달한다는 점이다.
같은 기간 전 세계 연평균 석유 소비 증가율이 0.9%로 분석됐으니 우리나라가 세계 평균 보다 0.6%P 더 높았다. 유럽연합 EU의 석유 소비가 0.4% 감소한 것과 대비하면 우리나라의 석유 의존도가 얼마나 높은지 단적으로 비교된다. 우리 정부가 2019년 수립한 ‘제3차 에너지기본계획(이하 3차 에기본)’에 따르면 석유는 2040년까지 주력 에너지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2017년 기준 우리나라의 최종 에너지 중 석유 수요는 6,140만 TOE를 기록하며 34.9%를 차지했다. 2040년에는 석유 수요가 3,940만 TOE, 최종에너지 비중은 22.9%로 감소할 것으로 전망됐다. 그렇더라도 2040년 최종 에너지 중 28.9%를 차지할 것으로 예측된 전력에 이어 석유가 두 번째 지위를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 배경에 대해 3차 에기본은 국제에너지기구 IEA의 2018년 전망을 인용해 ‘석유는 수송, 산업, 발전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되며, 저장운송사용이 상대적으로 용이해 비상시 활용 가능한 에너지원으로 2040년까지도 최대 에너지원으로서의 위상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언급했다.
특히 유럽을 중심으로 한 환경 선진국들은 탈석탄을 주창하고 있고 내연기관차 판매·생산 금지처럼 당장 실현 가능할 것 같지 않은 강력한 조치까지 언급하고 있다. 지난 2021년 11월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UN 기후변화당사국총회(COP26)에서 OECD 일부 국가들은 자국 내 모든 석탄발전설비를 폐지하는 취지의 ‘탈석탄동맹’을 맺으며 탄소 저감 의지를 천명했다.
석탄이 이산화탄소 최대 단일 배출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지구온난화 속도를 늦출 수 있는 매우 의미있는 결심을 했는데 현실은 녹록치 않다는 것이 통계로 확인되고 있다. IEA에 따르면 2022년 전 세계 석탄 사용량은 전년 대비 3.3% 증가한 83억 톤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글로벌 탄소 저감을 주도하고 있는 유럽 조차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영향으로 천연가스 수급 불안을 겪으면서 지난해 석탄 소비가 전년 동기 대비 0.9% 늘었다. 화석연료 의존을 줄여 기후위기를 극복해야 한다는 이상(理想)도 당장의 에너지 위기 속에서는 힘을 쓰지 못하는 현실을 보여주는 대목으로 해석되고 있다.
중국, 인도, 동남아시아 등 개발도상국들은 세계 석탄 수요 증가를 견인하고 있다. 특히 세계 최대 인구 보유국인 중국과 인도는 향후 세계 경제 성장을 주도하는 과정에서 석탄 의존을 줄이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2021년 11월 COP26에서 인도 Bhupender Yadav 환경부 장관은 ‘개도국들이 석탄과 화석연료 보조금을 단계적으로 폐지하는 것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이며 개도국들은 여전히 빈곤 문제를 다뤄야 한다’며 석탄 사용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명확히 밝혔다. 지난해 전 세계 석탄 발전량의 52.3%에 해당되는 5,397 TWh를 중국이 차지했다는 BP 분석을 감안하면 중국 역시 석탄 의존도를 낮추는 것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지구온난화 속도를 늦춰 기후위기에서 탈출해야 한다는 당위성에 많은 국가들이 공감하면서 화석연료의 대체재로 재생에너지 보급 확대에 속도를 내고 있다. 그렇다고 화석연료 의존을 쉽게 끊어 낼 수도 없는 것이 당장의 국가 생존을 위해 에너지의 안정적인 수급 그리고 경제적인 소비가 절실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전 세계적인 화석연료 퇴출 압박과 전기에너지로의 전환 추세에도 불구하고 석유 수요는 쉽사리 꺾이지 않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석유수출국기구 OPEC이 지난해 발간한 ‘World Oil Outlook 2045’에 따르면 2021년 하루 9,690만 배럴이던 석유 수요는 2045년에는 1억 980만 배럴까지 증가한다. 구간별로는 2021년 이후 2025년까지 세계 석유 수요 증가가 하루 평균 210만 배럴에 달하고 2025~2030년에는 60만 B/D, 2030~2035년에는 20만 B/D를 유지한다.
갈수록 증가세가 둔화되지만 주목할 대목은 ‘그럼에도 석유 수요는 늘어난다’는 점이다. 국제에너지기구 IEA도 석유 수요 증가에 ‘방점’을 찍고 있다. 지난 6월 발표한 ‘2028년까지의 석유 중기 전망(Oil 2023, Analysis and forecast to 2028)’에 따르면 IEA는 2028년 세계 석유 수요가 2022년 보다 하루 590만 배럴 늘어난 1억570만 배럴에 달하고 2030년에는 정점을 찍을 것으로 예측했다. 부문별로는 자동차 연비 개선과 전기차 보급 확대로 휘발유, 경유 같은 도로 수송 분야 석유 수요가 2025년에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이후 감소세로 전환되는 것으로 전망했다. 반면 항공유 같은 중간 유분과 석유화학용 나프타 생산 중심으로 수요의 구조적 이동이 이뤄지며 석유 소비를 견인한다는 것이 IEA의 예상이다.
국제 에너지기구나 우리 정부 전망이 공통적으로 가리키는 방향은 화석연료 의존은 줄고 재생에너지 등 친환경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는 점이다. 다만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에너지 안보는 반드시 담보돼야 하는데 우리나라 같은 자원빈국 입장에서 고민이 더 깊어질 수 밖에 없다.
우리나라는 석유·가스의 전량을, 전체 에너지 중 93%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국가 경제의 수출 의존도가 높은데 에너지 수입으로 막대한 국부가 유출되는 구조다. 최근 3년 사이 우리나라의 석유, 가스, 석탄 등 에너지 수입액은 올해 7월이 97억불로 가장 낮았고 지난해 8월은 187억불로 가장 높았다.
에너지 수입량은 큰 차이가 없는데 수입액이 두 배 정도 차이를 보이는데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의 영향으로 지난해 국제에너지 가격이 급등했기 때문이다.
가장 최근인 9월 우리나라 에너지 수입액은 113억불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우리나라 전체 수입액이 509억불로 집계됐으니 에너지 수입에 22.2%를 소비한 셈인이다. 그런데 비싼 값을 치르더라도 에너지 자원을 확보할 수 없는 상황은 더욱 위험스럽다.
1970년대 초반 아랍권과 이스라엘 사이에 벌어진 중동전쟁으로 아랍 산유국들이 석유 생산을 크게 줄이고 자원 무기화에 나서며 발생한 오일쇼크(Oil shock) 당시 우리나라는 석유 배급제를 실시했을 정도로 심각한 수급 위기를 겪은 전례가 있다. 그런데 최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인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습으로 세계 최대 원유, 가스 보유 지역인 중동의 지정학적 위험이 고조되면서 우리 정부에도 비상이 걸렸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간 무력 충돌이 중동 전체로 확산되면 1970년대에 발생했던 오일쇼크가 재현될 수 있다는 경고다.
블룸버그 이코노믹스는 이번 사태가 이스라엘·이란전으로 확대되면 국제유가가 150불을 넘어서고 오일쇼크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았다. 실제로 세계 원유 수송량의 20∼30%가 경유하는 호르무즈 해협을 이란이 통제할 경우 글로벌 석유 수급에 비상이 걸릴 수 있다.
국제에너지기구 IEA는 ‘한국의 석유 안보 정책’ 평가에서 ‘한국이 석유화학 원료를 제외한 대부분의 석유제품을 자급자족하고 있다’고 평가했고 그 배경으로 ‘매우 중요한 정유산업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Korea has a very significant refining industry and is self-sufficient in most products, apart from petrochemical feedstocks)
구체적으로는 하루 350만 배럴에 달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정제 능력을 보유하고 있고 석유공사 등 국영 기업 소유의 5곳과 정유사에 위치한 5곳 등 10곳의 석유 항만 터미널을 소유할 정도로 인프라가 잘 발달되어 있다고 평가했다. 석유 수급 위기시 비상 대응 수단인 석유 비축이 한국 비상 대응 정책의 핵심으로 공공에 더해 민간 산업에도 관련 의무를 부여하고 있는 점도 지적했다.
실제로 정부를 대신해 비축 사업을 수행하는 석유공사는 6월 말 기준 9,600만 배럴의 원유, 석유, LPG를 보유중이고 석유사업법령에 근거해 정유사 등의 석유사업자는 연간 일 평균 판매 물량의 60일분 범위 안에서 석유 비축의무를 부여받고 있다.
IEA는 석유 위기 발생 시 고려할 수 있는 수요 억제 수단으로 소비 절약 캠페인을 비롯해 차량 이동 제한, 지역별 석유 배급도 언급했는데 석유배급제는 1970년대 오일쇼크 당시 우리 정부가 취했던 조치 중 하나다. 그렇다고 우리나라의 에너지 안보가 완성된 것은 아니다. 가장 절실한 자원개발율이 감소하면서 안보 공백이 커지고 있다.
최근 10년 사이 우리나라 석유가스 자원개발률은 매년 낮아지고 있다. 특히 2015년에 15.5%로 가장 높았고 2022년에는 10.5%로 가장 낮았다.
일본의 경우 2021년 석유가스 자원개발률은 40.1%에 달해 우리나라 보다 4배 정도 높았다. 자원개발 위축의 주요 배경은 정부 지원 축소와 에너지 전환 정책이 꼽히고 있다. 막대한 초기 투자 비용이 투입되는데 탐사 개발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고 자원 확보 성공률은 낮아 BP나 쉘 같은 글로벌 에너지 메이저가 아닌 이상 민간 기업 차원에서는 자원개발에 쉽게 뛰어 들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이 때문에 우리 정부는 성공불 융자, 자원개발특별융자 등의 이름으로 기업들의 해외자원개발 자금을 지원 중인데 정권의 에너지 정책 기조에 따라 융자 예산이 늘고 줄고를 반복하고 있다.
역대 정부 중 해외 자원개발 투자액이 가장 많았던 때는 5조 5,328억원, 가장 적었을 때는 4,328억원에 그칠 정도로 격차가 심각한 상황이다. 이와 관련해 우리나라도 일본 정부의 해외자원개발 지원기구인 조그멕(JOGMEC, Japan Oil, Gas Metals National Corporation)처럼 정권이나 유가 등에 구애받지 않는 독립적인 기구 설립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커지고 있다.
전문성을 갖춘 석유공사 등 자원개발 공기업과 글로벌 네트워크를 갖춘 민간 기업이 상호 협력해 해외 자원개발에 적극적으로 뛰어 들어 사업 리스크는 낮추고 시너지를 극대화한 대표적인 성공 사례도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 2012년 석유공사, GS에너지로 구성된 한국컨소시엄은 UAE 국영석유회사와 공동으로 UAE 할리바 유전의 탐사, 개발을 주도하며 상업 개발에 성공했고, 현지에서 생산된 원유를 GS칼텍스가 직도입해 석유제품으로 생산하고 있다. 해당 사업의 성공을 계기로 우리나라와 UAE는 수소, 암모니아 등 그린 분야 부분까지 협력 영역을 확대 중이다.
경제 선진국 위상에 맞게 에너지 효율 향상, 재생에너지 확대, 탄소 감축 등의 친환경 투자를 강화해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모습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현재의 대한민국은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이자 GDP 중 수출 비중이 절반에 가까운 무역 대국으로 화석 에너지의 안정적인 확보와 공급이 간과돼서는 안된다. 특히 세계 최고 정제산업을 보유하고 있더라도 원유 도입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정제설비는 쓸모 없게 되고 IEA가 평가한 ‘석유제품 자급자족’을 통한 에너지 안보의 의미를 잃게 되며 앞으로도 상당 기간 석유로 움직일 다른 나라들과의 경쟁에서 밀릴 수 밖에 없다.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도 에너지 안보가 해외 산유국에 종속되지 않고 국가 경쟁력이 위축되지 않도록 보다 공격적인 자원개발 정책과 투자가 필요한 순간이다.